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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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상반되는 평온한 표지. 이건 마치 풍류를 즐기는 양반가의 한량스러움을 현대판으로 재 해석한게 아닐까 싶은 나른함이다. 공원에서 즐기는 낮술이라니. 그늘이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 밉지 않은 시간. 좋아하는 책과 좋아하는 술이 함께하는 노곤한 시간을 표현한 것. 나같은 놈을 위한 표지라고 느껴졌다. 공원 갈 때면 책 한권을 챙기고, 평일 저녁 남편과 하는 홈술이나 주말에 즐기는 야밤의 와인한잔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사람이 말하고 표현하는 언어라면 당연 나도 습득이 가능 할 듯 했다. 그래서 당연스레 펼치게 되었고, 먹을 줄 알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의 풍성한 표현력에 이 가을 나를 무럭무럭 살찌울만한 식욕증가제가 되어버렸다.



📖여름나기 밑반찬 열전_ 공부와 음주의 공통점이 있다면 미리미리 준비해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아니,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저자는 먹고 마시는 이야기를 아주 맛깔나게 담아두었다. 저자의 산문집은 오늘 뭐먹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딱 맞는 선택지를 내어준다. '오늘 뭐 먹지?'의 개정판이라 하는 이 '술꾼들의 모국어'는 새롭게 단장한 표지와 본문 디자인도 그러하지만 제목이 주는 힘이 있다. ~꾼이라는 단어가 주는 유니크함이 있거든. 타고난(?) 까다로운 식성이 하나를 먹더라도 더욱 맛있고 기분좋게 먹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식견을 채워가는 과정에서 얻어진 데이터들이 지금의 저자를 만들지 않았을까를 짐작해본다.

공부머리도 있는 사람이 먹는머리의 재능까지 겸비했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 음식사진 하나 없는 이 글에서도 입안에 침을 돌게하고 그래서 나도 오늘 저녁에 저걸 먹어봐?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듯 하거든. 특히나 이 파트에서는 요즘은 잘 찾아 보기 어려운 가죽나물도 있고, 고생고생해서 만드는 시래기반찬에 대한 이야기. 내 손으로는 매번 실패해서 결국 친정엄마의 손을 빌어 얻어먹게 만드는 오이지에 대한 꼬들한 아삭함을 떠올리게 만든다. 역시 먹고 즐기는 것에는 켜켜이 쌓인 경험을 무시 못 하나보다. 고추장 속에 질척하니 박혀있는 가죽나물은 물에 말은 밥에 하나씩 뜯어 올려 먹는 묘한 향과 질깃한 식감이 있으며, 시래기나물은 그 집의 부엌 주인이 얼마나 바지런하고 손끝이 야무진 지를 알 수 있는 가장 빠른 척도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자식들은 엄마의 입맛과 손맛을 닮아 자라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는 파트. 나 또한 저자 못지 않게 엄마의 입맛을 빼다 박은 사람으로서 여름나기 밑반찬이 나를 키웠고, 또 나를 무르익게 만들 듯 하다. 나를 키워내던 엄마의 나이가 이제 내 나이에 다다른 상태인데, 과연 나도 이러한 묵직한 한방의 밑반찬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엇비슷하게 맛을 내더라도 오래도록 엄마 손맛 타령하며 계속 얻어먹고 싶어지는 마음을 들게하는 문장들이었다.



📖가을무 삼단케이크_ 봄에 싹텄던 것들은 여름에 왕성히 자라 마침내 가을이면 완숙에 이른다. 그런 의미에서 맛에 있어서만은 가을이 쇠락의 계절이 아니라 절정의 계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 절정은 단맛으로 표현된다. 모든 먹거리들은 가을에 가장 달콤해진다.

가을무가 맛있긴 하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그 무도 아작 베어물면 사방으로 물이 튀고 달근하니 퍼석함 없이 배를 씹어먹는 것 마냥 양 볼에 수분이 가득 퍼지는 맛이 있다. 그래서 그 즈음 해먹는 무반찬은 다른 식재료의 맛까지 싸그리 잡아채어 누가 메인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매력적인 한입거리로 만든다. 생선무조림을 해두면 말캉하고 살캉한 무에 생선의 감칠맛에 쪽쪽 들어가있고, 맑은 소고기 뭇국을 끓여두면 전날 내가 과음을 했던가 싶을 정도로 위장이 시원하고 개운하게 싸그리 내려가는 느낌을 받게된다. 살짝 달큰하고 새콤하게 무쳐낸 생채는 만들자마자 먹으면 아작거리는 맛 덕분에 씹는 행복을 느낄 수 있고, 하루를 냉장고에서 묵히면 수분이 빠져나와 적당히 유연해지고 부피도 줄어 젓가락 두어번 듬뿍 옮겨 담아 뜨끈한 밥에 생채만 넣고 내이름은 김삼순의 삼순이처럼 양푼에 비벼 먹으면 입안 가득 퍼지는 묘한 기쁨이 있다.(생채를 담았던 반찬통에 찰박거리는 무채국물은 다른 국거리 없어도 될 정도로 수저로 퍼 먹으며 국물김치의 자리를 메꿔주기도 한다) 이러한 가을무의 맛에 홀려봤던 사람이라 그런가 나와 같은 결의 혀를 가진 사람임에 반가움이 가득해진다.

어린시절 무를 깎아서 간식으러 먹어 봤던 사람이 알려주는 맛의 스펙트럼. 어린시절 얻어진 귀한 경험이 지금의 저자를 만들었고, 그걸 백분 공감하며 같이 그 시절을 회상 하게 만들어준 나의 어린시절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 국물 그 감자탕_ 첫맛이 주는 놀라움 속에는 어린 나를 동료처럼 존중해준 어머니의 '신뢰'라든가, 내게 맛있는 감자탕을 먹이고 싶어 한 남자친구의 '애정'같은 마법의 조미료가 숨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목구멍에서 국자가 튀어 나오는 고통을 느끼며, 잊지 못할 첫 국물의 맛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저자에게 '간순이'의 시절이 있었다면 나에겐 '간재미야' 시절이 있다. 많은 시동생들을 한 집에서 먹여 키우던 형수였던 나의 어머니. 딸린 식구는 많은데 이것저것 다양하게 먹을 형편이 되지 못했던 시절. 집에서 부업하던 낮에는 거실에서 전자제품 시야기(일본식 한자어)칼질을 같이하던 동네 이모들과 간단한 한끼를 떼우기 위해 갖은 나물반찬을 해서 양을 늘려야 했고, 저녁이면 학교 마치고 돌아오는 시동생들을 배불리 먹여야 했기에 밑반찬과 양을 그득하니 해야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즈음엔 내가 유치원에 입학하기 전이었으니 그 곳이 놀이터였고 공부방이었고 급식소였다. 그러니 시야기하던 이모들을 불러와 간보라 할 수도 없었고, 형수가 하는건 뭐든 다 맛있어하며 다 먹어치우던 시동생 놈들을 불러 세워 짜니, 다니, 싱겁니를 케 물을 수 없었으니 조막만한 놈을 보조로 세워두고 병아리 입에 나물 한줄기, 새끼손가락으로 양념 한번 쿡 찍어 혓바닥에 톡 쳐주는 그 양념이 '간재미야'가 활약을 하던 순간이었다. 당신도 알 맛이었다. 맛이 없을 수 없지. 그럼에도 오물랑거리며 입을 연신 삐죽거리며 먹어본 후 잔뜩 심각한 얼굴로 꼬소하니 싱겁니 짜니를 논하던 쪼무래기. 이 집 밥상의 내가 좌지우지 한다는 그런 오만함으로 살았던 세월 덕분에 저자 못지 않게 갖은 식재료와 양념에는 모든 추억이 있고, 남들보다 할말이 많은 '간재미야'의 기록들이 쌓여있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의 '신뢰'와 한 남자의 '애정'으로 채워진 입맛의 결들. 그 누구도 카피하지 못할 촘촘한 맛 덕분에 저자는 먹는 행복이 유독 더 깊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까막고기의 시절부터 시작하여, 달에 한번씩만 먹을 수 있던 고로케, 감칠맛과 씹는 맛이 남다른 불린오징어튀김의 역사까지.

자칭 술꾼이라 말하던 저자가 알려주는 음식들은 안주 일체라기보단 '권여선을 키워낸 음식들'의 조합이라 할 수 있겠다. 어린시절 키워냈고 버텨내게 했던 힘의 원천이며 어른이 된 저자가 술과 함께 먹으며 위로받는 위안의 맛이기도 하더라. 밥이랑 먹으면 밥 반찬이 되어주는 것이고, 술이랑 즐기면 술안주가 되어주니 삶의 애환을 달래고 그 시절 추억의 맛으로 감질맛을 더하면 그게 뭐 술꾼을 위한 상차림인거지 다를게 있겠나 싶다.

어릴 때 다양하게 느끼고 살려낸 입맛은 평생을 살아가게 함을 저자의 글로 느끼고, 내 입맛의 결로 증명하게된다. 배달 어플과 식당 리뷰를 찾아보며 먹을건 예전보다 더 다양해지고 화려해졌지만 그럼에도 나는 좀 더 소박하지만 잔손이 많이 가고 SNS에 올릴만큼의 땟깔이 화려하지 않더라도 마지막 젓가락질이 아쉬워지는 그 맛에 더욱 집중하게 됨을 느낀다.

타이밍도 기가막히지. 명절 연휴다. 먹을게 넘쳐나고 입맛도 더욱 살아나는 계절이다. 나는 또 며느리 노릇 한답시고 튀김 튀겨내고 전 부치고 기름앞에서 온갖 생쑈를 해가며 음식을 바리바리 싸 놓고 준비를 하겠지만 내가 만든 것 보다 친정엄마가 해둔 똑같은 음식 다른 손맛에 관심가지며 주방에 널려진 채반의 밥보자기를 뒤적이지 않을까 싶다.

덕분에 내가 살아낸 맛의 시절을 되새겨 볼 수 있었고, 세상엔 먹을게 많고 기억 할 것도 많으며 이런 재미 덕분에 나는 또 먹어제낌을 느낀다. 술꾼의 모국어는 결국 나의 0순위의 언어였음을 실감한다.



📖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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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기술자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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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을 살펴보면 8년간 모아온 작품을 엮어 낸 책이라 했다. 이야기꾼 김려령의 글에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상식이나 제도에 질문을 던졌고, 물밑의 갈등을 고스란히 띄워올려 전형적인 가족서사의 이야기를 현재를 고스란히 옮겨둔 현실적인 가족서사의 판으로 갈아엎어두었다. 그래서 예민해진 인물을 마주 할 땐 더 익숙하다 싶은 설정이라여겼다. 세상에 그렇게 애틋하고 눈물나는 가족은 생각보다 많지 않거든. 가족이 가,족같은 경우도 더러있고, 생판 남이 평생 손발 맞춰온 영혼의 단짝마냥 짝짝꿍이 맞을 때도 있으니 그걸 잘 까발려줘서 속도감있게 완독 할 수 있었다. 결국 프론트맨처럼 내세웠던 기술자들이야말로 부모 노후 밑천과 동생의 통장까지 긁어가며 제 살길 찾아갔던 자식놈보다 훨씬 나은 놈이란걸 다시한번 느끼며 세상이 정해준 인연의 고리가 당연한 법은 없음을 느끼게 된다.





📖기술자들_ '이것저것'들의 역사가 궁금했다. 지금의 일들도 이미 그의 이것저것 속에 포함됐을 거였다. 그렇긴 하지. 하고 최가 빠르게 수긍했다. 얼마나 모호하고 적확한 표현인가. 완곡한 자기비하가 아니었다. 어떤 이유로든 해야 했던 지난 일들을 꾸밈없이 그러모은 말이었다.

출판사 홍보멘트에는 유사 가족이라 했던 두 중년의 동행.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먹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는 영혼의 콤비 이자 피만 안 나눈 형제같다는 말이 입에 착착 감기는 둘의 이야기였다. 최에 대한 서사는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구인승 승합차에 있는 이유를 알려두었다. 하지만 조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아 계속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뭘 했대? 뭐 하던 사람인데? 라는 물음을 가지고, 빨리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었다. 일머리가 있는 사람이었고, 밖에서만 맴도는 사람이지만 눈썰미가 예사롭지 않았으며, 배 곯고 살 사람은 아닌거 같았다. 최도 최지만 조도 어지간한 풍파 다 겪었을 것이고, 사람에게 더럽고 치사한 것들을 다 겪어낸 관상을 지녔으리라 생각되었다.

조의 '이것저것'들의 역사. 지금도 '이것저것'을 해오고 있으니 이 친구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라 여겨지며 제법 장편으로 이뤄저 아주 긴 이야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였다. 최도 아마 그 '이것저것'의 역사의 큰 사건으로 각인이 될 것이고 말이다. 승합차 위의 삶에서 조만간 24시간 30년 경력자 콤비 상시 대기 설비소를 하나 차리지 않을까. 번듯한 광고와 SNS인플루언서 고용해서 광고 도배하는 것이 아닌, 찐 후기들로 가득해서 맘카페나 지역 커뮤니티에 쌍엄지 받는 그런 아재들의 설비소 같은 곳으로 돌고돌아 나도 추천 받아 DM 대신 전화하게될 그런 뉘앙스를 풍겼다.

 



📖상자_ 상대의 취향은 존중하나 자신이 못 견디겠으니 떠난 이별이었다. 그가 말을 마칠 때쯤 나도 정이 뚝 떨어졌다. 사람 싫어지는 거 한순간이었다.

동갑내기의 연애. 프로포즈는 없었으나 자연스레 먼 미래를 함께하지 않을까를 생각하게되는 삶의 이상향이 비슷한 커플. 아이가 싫은 건 아니지만 열정을 쏟을 자신이 없고, 아이 때문에 포기하는 일이 생기면 애를 원망할 것 같다는 것. 그래서 신중할 수 밖에 없음을 비췄던 둘이다. 유년기를 회상하며 50대엔 자유로은 삶을 바라는 이들. 그런데 어떠한 일이 생긴 그 다음 날 별것 아닌 듯한 일에 별것이 되어 헤어졌다.

부친의 콜을 받고 가족끼리 식사를 하게된 그녀. 친오빠가 아이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모친이 그간 간직해온 그녀의 어린시절 물품의 전달. 모친은 여러겹의 마음이 쌓여 고민하다 물건의 주인인 그녀에게 전달했다. 혹여 손주를 애틋해하는 마음보다 다 큰 딸의 어린시절이 더 소중하다 여길까 마음이 닳던 시모로서의 입장. 며느리가 마음상할까 벌써부터 걱정만 가득하니 이제는 돌려준다는 그녀의 낡은 담요와 갖가지 유아기 물품. 그 상자가 이 균열의 시작이었다. 우연찮게 보게된 그녀의 어린시절 물품에 그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여러 소설을 쓰다시피 하더만 제멋대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녀에게 하는 말이 가관이다. '우선... 이건 절대로 네 문제가 아니라는 것부터 말하고 싶어. 순전히 내 문제야. 그러니까 뭔가 잘못됐다면 내가 이상한거지, 네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뜻이야.'로 니탓 아니라는 척하지만 결국 너랑나랑은 같을 수 없다며 착한이별인척 하는 꼬락서니였다.

소유주에 따른 다른 의미, 확대 해석하며 사물에 대한 히스토리를 히스테리로 바꿔버리는 급발진 전개.

속으로 생각했다. '이 시키 뭐라 씨부리는거야?'라고....(자주 욱함, 그것도 혼자서만 그러지 입밖으로 못 꺼내는 인간의 욕지거리 최대치) 그리고, '이 시키 이별 생각하고 있다가 구실 하나 찾아서 지 혼자 처연한척 아픈 이별한다고 지랄하는거 아냐?'라고 밖에는 이해가 안 되더라.

그의 행동에 나는 이렇게밖에 해석 할 수 없었다. 이미 이별을 준비했거나, 그녀가 가족과 나눴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은 받아보며 살지 못한 가족간의 애정지수에 평생 나는 그녀의 가족관에 대해 질투하고 열등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사랑 덜받고 산 사람이구나에 괜시리 씩씩거리며 제풀에 꺾여 이별을 고한 것이라고 밖에 여기지 못하겠더라.

아귀가 딱딱 들어맞아 평생을 같이 할 사람을 찾는건 쉽지 않지만 이런 것에 욱하고 악하는 인간이라면 빨리 잘라내는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유년기 마저 지가 뭐라고 가족 관찰 프로그램의 솔루션마냥 이래라 저래라 하냐는 거지. 그녀가 연 건 어린시절의 히스토리가 아니라, 뭐 뭍은 놈 털어낼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였다고 쿨하게 여겨주길 바랄 뿐이다.




📖황금 꽃다발_ 부지런히 살았다고 해서 돈도 부지런히 모인 것은 아니나, 어미가 자식놈 산 세월을 알아주지 않으면 누가 알아주겠나. 큰놈은 안식년이라고 몇년마다 쉬더만, 작은놈이라고 그리 못할 건 뭐란 말인가, 너도 쉬어라. 새끼가 어미 옆에서 쉬는 게 무슨 흉이더냐. 푹 쉬거라.

전작 '상자'에 욱 한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 놈은 또 뭔 빌런인가 싶은 놈과 뭐만 해도 짠한 놈을 둔 어미의 태몽이 단편의 제목이기도 하다. 긍정적이긴 하나 제 속 차리는게 시원찮고, 하는 일 마다 잘 되었음 싶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고, 그래서 마음이 닳고, 애가 쓰이는 막내. 그리고 제 밥그릇에 만족못하고 당당하게 부모에게 손벌리고, 동생놈의 돈까지 긁어모아 지 하고픈거 하는 첫째놈. 첫째놈은 잘나서 티비에도 나오고 제 글로 사랑받더니 애틋한 가족이 있었기에 그 글이 있는 것이라는 듯 지 입맛에 맞는 서사로 포장을 한다. 너는 동치미국수가 그리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어미는 입짧은 놈이 그나마 잘 먹는 거였기에 한거지 가난이 가당키나 하나 싶은 모습. 가난했고, 그랬지만 행복했고, 그덕에 그 모든 스토리가 글로 표현된다는 듯 보기좋게 포장하며 사는 놈. 어미는 또 거기에 돌뿌리 박을 수 있나. 저놈의 장단에 맞춰주며 인터뷰를 하지만 그 황금꽃다발의 태몽은 그 놈이 아닌 저 놈이라는 말에 속도 없고, 벨도 없는 막내놈이 또 마냥 애린다. 고루고루 잘난 놈으로, 고루고루 이쁜 놈으로 살아주면 좋겠지만, 모습도, 재능도 반반으로 사이좋게 나눠 가졌으면 이 아린 마음이 덜 했을까를 떠올려보게 만든다. 착한놈은 또 착해 빠져, 미운 놈은 장독 위에 쌓인 눈더미로 바락바락 씻어제껴도 밉상인 건 한 뱃 속에 나와도 답이 없음을 보여준다.



📖뼛조각_ 이 수술로 아버지를 내 엄살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줄 작정인 듯했다. 무릎은 멀쩡했으므로. 아버지는 이것으로 근심할 이유가 전혀 없었으므로. 주무시면 안 됩니다. 네. 지금 이 의사는 내가 아니라 아버지의 근심을 수술하고 있다. 내 엄살의 싹을 뿌리까지 뽑아내는 것이었다.

중학생 때 우연히 알게된 몸속 뼛조각 하나. 좀 더 큰 병원에가서 검사해보니 선천적 유합 부전. 그러니까 태어날 때부터 세포들이 하나의 뼈로 발달하지 못한 조각 하나라는 것. 그것은 아들에게 엄살과 핑계의 조각이었고, 아버지에게는 물려주어선 안되는 죄스러운 대물림의 조각이었다. 다 커서도 아들에겐 나약한 마음을 갖게되며 이리저리 피할 구실이 그 작은 뼛조각이 되었다. 못살게 굴고 싶었고, 혹사시켜서라도 미워하고프며 원망의 끝은 다 그것으로 인한 것이라며 정직원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보단 이 조각으로 인해 수술을 해야하고 퇴사 할 수 밖에 없다는 방식으로 저 편한방식으로 회피의 구실이 되었다. 간단하다했지만 입원과 퇴원이 필요하고, 간병을 해줄 보호자가 있어야하는 것. 그게 이 뼛조각을 있게 만든 아버지였다. 수술 전이든 후든 손이 많이 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이는 마음이 쓰이기 마련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 길 없는 아들은 1.5cm 뼛조각을 빼 내고, 5cm의 흉터가 남았고, 아버지는 이렇든 저렇든 상관없이 있으면 있던대로, 없어도 없어지지 않은 흉터자국에 또 미안해하며 살게 될 거라는 걸 느끼게 했다. 아들은 이제 뼛조각 핑계 없이 살 수 있을까? 아마도 흉터자국을 핑계삼아 아버지에게 또다른 마음의 짐을 덮어주고도 남을 행동에 철없음보다 미련한 짓이라 잔소리를 할까 싶다가도 말을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세입자_ 이제 나는 열심히 살지 않기로 했다. 열심히 산 결과가 늘 썼으므로 설렁설렁 살기로 했다. 내 노력의 결과가 조금이라도 달았다면 없는 힘도 짜내가며 살았을 거였다. 가난해도 자식이 번 돈은 아까워서 못 쓴다는 부모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런 사람들은 바닥까지 긁어 퍼줘도 뒷주머니 찼다고 욕하는 내 부모를 어떻게 볼까. 박박 긁어 먹히는 노력. 그런 거 이제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 그럼에도 돈 벌 궁리 하는 건 나 뿐. 지어지는 집은 많고, 인구수는 줄고 있다 하건만 내가 편히 뉘일 집은 하나 없는 실정. 어떻게든 벗어나고픈 집. 그래서 악착같이 벗어났던 곳이지만 대한민국의 혈연의 고리는 도망친다고 도망쳐지지 않는다. 부친의 암 선고, 등본만 떼어도 알 수 있는 자식놈의 거처 이동경로. 잘 살면 잘 산다고 뜯어가고, 못 살면 밥벌이 안 하냐고 몰아세우는 낳아만 준 사람들. 그렇게 소라게의 집 이동만도 못한 거처 이동 중에 귀신같이 알고 찾아며 뜯어낼 궁리하느라 바쁜 모친.(다행인건 부친이 암 선고를 받아 둘이 손잡고 독촉하러 오진 않는다) 곰팡내 가득한 집, 상해빠진 미역국을 끓이면 괜찮다고 먹어대는 딸. 그래야 돈 뜯으러 오는 텀이 줄어드는 이 관계. 세입자의 딸 거처에서 돈을 훔쳤다는 모친의 영상. CCTV는 모든 정황을 그녀의 모친만을 가르킨다. 보증금으로 그 돈을 메꿀 것인가, 아님 모친을 신고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더이상 혈연의 고리에 끌려다니기 싫다면 행불자의 삶을 선택하는 것. 엄마 아빠 동생놈 없다는 셈 치고 살아도 되지. 이미 남보다 못한 사람으로 살아 왔는데, 그까짓거 라는 생각으로 팔다리 다 잘라내듯 그렇게 끊어낸다. 가족은 우리가 아는 형태의 가족만 있는 것이 아님을, 이건 뭐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만한 그런 집안이 따로 없구나 싶겠다만 세상엔 이러한 집구석이 제법 많다는 걸 느끼는 바다. 그렇다. 오죽하면......



📖청소_ 더이상 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긴 시간이 흐른 날. 그녀는 아직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먼 곳에 있는 그녀에게 누군가 말했다. 당신은 당신의 하나를 간직할 수 있습니다. 없습니다. 다 닦고 다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기고 왔습니다.

제일 애닳다. 연년생의 남매를 키운, 남편 없이 육아와 사회생활을 도맡아오던 그녀는 회사생활을 정리했고, 그렇게 쉬면서 집안 구석구석을 하루하루 할당량에 맞춰 비워낸다. 청소라기보단 비워낸다. 냉장고 구석부터 시작해서 싱크대 선반, 먼지가 쌓이던 베란다며, 화장실..... 그 틈틈히 남매가 여자를 대하는 말투와 시선이 느껴진다. 시키는걸 하되 먼저 나서지 않는, 긍정적인 대답보다는 마뜩잖은 뉘앙스이지만 결국 잔소리들어가며 할 거라는 걸 알고 툴툴거리며 수긍하는 반응. 그렇게 아이를 키웠고, 자신을 소비했고, 남편의 자리까지 채운 만49세의 그녀는 멀끔하게 흔적들을 버렸다.(비워냈다는 말보다 버렸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그러고 다시 시작이 아니라 집을 나갔다. 어떠한 일련의 사건이 있었기에 버려두고 나온 건지, 다 버리고 시작하기 위함이었던 것인지, 낡고 쓸모가 없어진 물건을 버리며 자신도 버린 건 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하루씩 날을 잡아 끄집어내어 버리는 걸 보고 생각이 들더라. 이 사람 집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삶 자체를 정리하고 있구나 라는 걸 느꼈다. 살다보니 그런 눈치만 늘더라. 묵은 일을 해내는게 아니라 다시 할 일이 없을 것 같으니 굳이굳이 일을 만들어 해치우는 모습. 그래서 그녀는 어디로 간건지. 어디에 있긴 한지 알 수 없지만 아마 남매는 두고두고 후회를 하고 있을게 빤했다. 숱한 시그널에는 무뎠고, 후회한들 바뀔 구실은 전혀 없다는 것. 말끔히 비워진 공간에서 흔적찾기. 여러모로 늦었고, 놓친 순간들이다.



성질머리 세우게 되는 글도 있고, 그냥 마냥 가엾은 인물도 있다. 의 원주는 마음이 쓰이고, 걱정만 하게된다. 아마 내 친구였다면 분명 엄마는 나보다 원주를 더 걱정해서 찬거리든 계절에 맞는 방한용품이나 혼자 살면서 챙기기 어려운 것들을 싸그리 쥐어줬을게 뻔한 생이라 행불자가 될 지언정 친구인 나에게는 실종되어주지 말아달라 간곡히 일러두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족은, 그러니까 부모에게 자식은 에 고이 담아두고픈 찰나를 안겨주었고, 혹여나 하나라도 잘못되는 것이 있으면 의 아버지처럼 모두 당신의 탓인냥 걱정과 근심의 집합체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만사 제쳐두고 다큰놈의 병수발을 하며 모든 것에 예민해 질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역할이 나뉘어진다. 밉든 곱든 제 새끼는결국 내가 품을 삶의 몫. 의 어머니처럼 못되쳐먹었다고 궁시렁 거리지만 남들에게 싫은 소리 들을까봐 자식놈의 허울을 덮어버리는 사람으로 변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재영의 학창시절 교우관계로 어려워 할 때면 어떻게 해서든 내 자식을 미워하는 시선을 끊어내고 싶어 캥거루맘을 자처하면서까지 교문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에 진짜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지. 내 새끼 마음 쓰는 것만 덜하면 되니까. 그리고 마지막의 순간에 다다를 땐 를 통해 혹여라고 있을 당신의 선에서 성가신것, 버려도 될 만한것을 정리하면서 그리워 할 틈과 마음을 다잡을 것 마저도 싸그리 정리해 두고 가는 모습에서 '결국 엄마는 그런 사람'이라는 말을 하게 되는 존재의 무언가로 남아있다. 가족, 부모라는 감투는 어쨋거나 저쨋거나 결국 내 비빌 언덕이란 말을 하게되나보다. 지랄맞은 딸년이어도 당신들이 아니었음 품어 줄 사람이 없었을 것이고, 사람 구실 할 수 있도록 가르쳐 놓을 사람은 결국 당신 뿐이더라는 말로 김려령의 글과 나의 살아온 세월을 교차해보며 나의 그대들의 애쓴 마음에 감사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게된다.

'살아 계실 때 잘하자. 곁에 있을 때 잘하자. 뒤늦게 피눈물 흘리지 말자.'를 또 한번 실감하지만 이 반성과 다짐도 며칠 못 갈걸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해두고 때때로 개딸 모드가 되어 잔소리 폭격 하며 성깔 내새울때마다 수양하듯 읽어볼까 싶다. 당연하다 싶은 상식과 제도속에 당신의 가족은 무수한 포기를 했고, 수차례 반복된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을 차선으로 두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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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의 위로 - 해야 하는 일 사이에 하고 싶은 일 슬쩍 끼워 넣기
김지용 외 지음 / 아몬드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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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적으로 이러한 마음 토닥임이 필요한 사람이다. 글자 도둑인 것 마냥 책에서 모든걸 배우고 익히는 사람으로 그게 편한 삶을 살다보니 위로의 과정 마저도 병원을 찾아가 주치의를 배정받고 상담을 하기보단 나와 닮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읽는 것으로 마음해소하는 걸 선호한다. 사람을 마주하는 걸 어려워하는게 아님에도 그게 편하다. 일단 내 이야기를 온전히 다 내어놓을 자신이 없는 것도 맞는 이야기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털어버려도 될지 모르기에. 그리고 상대가 그걸듣고 다음날부터 나를 바라볼 시선이 두려운 소문자i의 인간이라 어쩔 수 없다. 일단 내가 편한 방식으로 내 마음의 위안부터 받아야겠다.



📖입사한 해에 휴가 간 첫 신입_ 겨우 숨만 좀 돌린 것 같았는데 휴가가 끝나버렸다. 그게 무엇이든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앞으로 잘 해보겠다 다짐하며 마음을 재정비하길 바랐지만 그러기엔 내가 너무 지쳐 있었다. 그래도 나름 만족했다. '숨이라도 돌린 게 어디냐, 이렇게 쉬어본 게 어디냐'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용과 대담하는 방식. 김지용이 먼저 마음을 드러내어 주었고, 거기에 강다솜과 서미란, 김태술이 답했다. 그 중 나는 강다솜과 서미란의 이야기들에 많이 끄덕였다. 한 분야에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도 있지만 결국은 직장인이라는 점에 집중했다. 잘하고픈 마음의 시작 입사 후 금방 소진되어버린 열정에 대한 부분에 많은 공감을 했다. 어렵게 입사한 것, 드디어 원하는 목표를 이뤘다는 것부터 시작하여 텐션 떨어짐 없이 쭈욱 이어지는 생활이면 좋으련만 격하게 기쁜 만큼 또 격하게 추락하는 에너지 소진의 과정. 그럴 땐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쉬는것, 쉬어주는 것이 답이라는 점에서 나와 일치함을 느꼈다. 무의식중에서도 작용하는게 숨쉬기라했건만 그게 버거워 질 때라면 의도적으로라도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강다솜 좀비 시절_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더 신경 쓰느라 정작 중요한 본인의 감정 상태는 잘 인식하지 못해요. 혹은 알아채더라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숨기는 데만 급급하죠.

사람들을 생각보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너를 세세하게 보는 사람도 없을거다는 말에 '나도 알지!'라며 답하고 싶으나 알면서도 안되는 것에 짜증이 일어난다. 같은 공간에서 종일 생활하는 동료라고 하더라도 나를 하나하나 뜯어볼 듯한 사람처럼 느끼지만 생각보다 관심도 없고, 생각보다 애정도 없다. 그런데 내가 문제다. 내가 남들에게 어찌 보일지가 계속 마음이 쓰여서 그런다. 내가 어떤지보다 늬들이 어떤지가 궁금한 사람이 되어가고있었다. 학창시절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 더 심해졌다. 괜히 귓속말이 신경쓰이고 내가 없을 때 나눌 이야기들이 마음에 쓰인다. 사회생활에서 밉보이기 싫고, 구설수에 오르기 싫은 마음이 나를 케이지 않으로 꾸깃꾸깃 욱여 넣는 걸 자처하는 듯 하다. 제 발로 작은 우리에 터덜터덜 들어가는 덩치 큰 코끼리가 되어가는 과정.




📖무용함이 우리를 구한다_ '이 무용함이 내겐 필요하다.' 무용함은 내 일상을 안정적으로 꾸려나가기 위한 수단이다. 쓸모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날 지탱해주는 지지대이다. 그런 시간과 활동들이 반대로 유용한 일들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주기에, 이 무용함은 내 인생에 필수적이다.

쓸모 없는 것이 있긴 할까? 다 쓸모가 있으니까 만들어진 것이고, 판매를 하고 누군가는 그걸 구입하기에 이렇게 버젓이 나와있는거 아닌가?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사물에 대한 무용함, 행위에 대한 무용함, 마지막으로 사람에 대한 무용함까지로 형용사의 대상 범위를 확장해보았다.

사소한 것에서 주는 안정감,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한 깊은 애정. 소소하고 하찮다고 여기는 것에 따뜻한 눈길을 주며 내가 전해받는 에너지를 생각하며 제발 타인이 느끼는 그것과 비교하며 이 것마저 눈치보지 않았으면 한다. '왜 이런걸?'이라는 말에 상처 받는게 힘들다면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오롯이 내가 전해받는 에너지를 무용함과 나누며 평소엔 아닌척하며 살아도 좋지 않을까를 생각한다. 이구역 고인물로 사회생활 물 많이 먹은 우리들은 다들 '일반인 코스프레' 잘 하잖아? 우리 그렇게 여러가지의 부케 만들어내며 각자 나름의 무용함의 순간을 지켜나갔음 싶다.





📖장래희망이 '건강'인 아이_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았다. 100퍼센트는 아닐지 모르지만 떠올릴 수 있는 굵직한 일들은 모두 내가 결정했다. 그 과정을 겪으며 가족들의 반대를 무릎써야 했고, 때로 상처도 주고받았다. 선택의 결과가 모두 좋았던 것도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누군가를 원망하지는 않을 수 있었다.

저자처럼 특정한 병명이 있었던건 아니다. 그저 초등학교 저학년 때 까지는 지금의 내 몸뚱아리(지금은 병명을 찾았지만 체격만큼은 어디 내어놓아도 지지 않을 건장함 보유중)를 떠올릴수도 없을 만큼 허약하고 자주 아팠던 시절이 있었다. 잘 체하는 건 기본이고, 어디 스치기만 하면 멍이들고, 기력이 없었고, 자주 주저앉기도 했다. 그래서 집 근처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내 절친이 되기도 했던 기억. 맞벌이 부모의 손을 잡고 가기 보다 제 발로 어그적거리며 병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고 수액을 맞으며 혼자 버텨냈던 시절이 있었다. 아픈 건 아픈거였고 하고싶은 건 하고싶은거였다. 그래서 좋아하는건 어떻게 해서든 했고, 하고싶은건 기를쓰고 나섰던 나의 몇 안되는 대문자 E시절이 떠올랐다. 명랑소녀가 있다면 그게 그시절 내가 아닐까를 떠올리게하는 제일 활발하고 생기넘치던 유년기. 잘한다 잘한다 해주면 신이나서 방방거리던 잔망미 넘치던 때를 떠올리면 하고 후회할래, 안 하고 후회할래를 놓고 나는 무조건 하고나서 후회하는 편으로 주저없이 나아갔기에 그래도 나이들어 '덜'후회하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할 줄 아는 능력_ 아프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에겐 쉬운 일이 자신에게만 유독 어려워서, 스스로의 부족함과 허술함을 감추느라 애쓰며 이삼십 대를 보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나처럼.

그냥 미안해서였다. '나 때문에...'라는 말로 시작되는 송구스러운 마음. 나로 인해 변화되는 상황. 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나로서 시작되는 바뀐 사안들에 대해 눈치보기 싫어서 였을수도 있겠다. 괜찮다고 돌아오는 따뜻한 말 조차 그 너머에 감추고 있을 짜증과 번거로움이 반드시 있을거라는 마음에 그 숨겨진 무언가를 굳이 들춰내어 나를 후려치고 있음을 느꼈다. 안 해 도 될 걱정, 꼬아내지도 않아도 되는 해석인데 지금까지 쌓여진 데이터는 다른 이야길 하고있기에 이렇게 어렵게 사는건가보다.





📖"힘든 이야기, 죄송해요"_ "지나친 자기합리화는 미성숙하고 무책임한 사람으로 만들 여지가 있지만, 그것이 적당하면 마음이 정박할 언덕이 되어준다. 자기비난과 자기합리화, 이 둘 사이에 적당한 균형과 긴장이 있어야 삶이 좀 더 단단해지고 건강해진다."

살면서 이따금씩 마주하는 노잼의 시기 + 좌절의 순간 + 자책의 과정 + 포기와 단념 + 자존감 소멸 + 긍정적 사고 감소 + 육신의 활력 저하의 과정. 나만 겪는건가 싶지만 나도 겪는 과정이며, 한 번 왔으면 다시는 마주할 일 없을거라 영영 잊고 싶으나 초대하지 않는 손님인냥 잊혀질만 하면 스믈스믈 기어와 들러붙는 감정이 있다. 회차를 거듭하다보면 학습이 되었다 싶어하지만 막상 들이닥치면 처음 마주 할 때 처럼 회귀하는 당혹스러움은 매번 나를 살떨리게 한다. 그렇다. 이게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나는 더 잘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그저 내 몫의, 그러니까 내 밥값은 할 수 있다 싶을 정도의 깔끔한 끝맺음을 바라지만 내 머릿속의 의도와는 달리 몸이 반응하는 조급함은 더 잘 하고픈 마음과 합쳐져 아등바등의 형태로 드러나다보니 마음은 매번 울고 있었다.

지금은 어떠냐고?

완벽히 극복 했다고는 말 못하겠다. 입밖으로 떠벌리며 잘 지낸다고 하기엔 이 안온한 시간에 돌을 던지듯 찾아올 부정적인 감정을 몇번이고 맛보았기에 대답을 뭉뜽그리게 된다. 대단히 잘난 성과를 이룬 사람도 아닌 내가 몇번이고 주저앉아 긴 텀을 보냈던 나도 이렇게 지치던데, 꿈을 이뤄본 사람들의 씁쓸한 삶의 뒷편은 어떨지가 궁금했다. 타인의 슬럼프와 타인의 고통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자 함이 아님을 일러두고싶다. 이렇게 잘 살아가는 사람도 겪으며 고뇌하는걸 들어보면 내 인생에서의 노잼과 삶의 빈틈은 당연한 인생의 사이클이었구나로 받아들이고픈 마음이 컸다. 그래서 이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전해들었고, 내 손에 쥐기까지를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사회적으로 이름과 얼굴을 알린 이들이고, 더군다나 여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적은 사람 중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PD도 있어서 애정을 가지고 볼 수 있었고, 더욱 집중하며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었다. 출판사에서 알려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로 읽힌다는 말, 책의 어느 한 대목에서든 자기 이야기가 포개져 보일 것 이라는 말에 완벽히 공감하며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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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어른
이옥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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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해탈한 그녀들의 뒷모습이 표지에 담겨있다. 목욕탕 의자에 앉으면 어디서 쉽사리 내어놓지 못하는 말들이 술술 나오기 마련이지. 그리고 짦은 펌, 묶여있는 머리가 주먹만한 말림새, 그리고 이미 헤어팩을 하고 둘둘 말아둔듯한 싸멘머리까지 절대 젊은 아가씨의 모습이라 할 수 없는 머리카락의 길이들까지. 이 탕 안에 발길을 들여 놓은지 족히 5년은 넘었을 듯한 달목욕 매니아의 포스가 풍겨온다. 여기서 나눴음직한 이야기라면 절대 지루하지 않을 거라는 예감과 함께 만나게되는 에세이.

전업주부로 살아온 저자는 범상한 필력을 지닌 숨은 고수였고, 그녀의 딸 김하나 역시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니 이 사람이 묵혀둔 이야기주머니는 얼마나 방대할지 기대가 된다. 그리고 책 뒤에 적혀진 명언들이 예사롭지 않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절대 유명해지지 마라

내 꿈은 고독사

너 아무도 안 쳐다봐!

...

엄마들이라면 절대 안 할 말들만 쏙쏙 골라서 일침을 놓고있으니 그녀의 말의 굵은 뼈들이 되어주었을 세월이 궁금해져서라도 펼치게 된다. 나의 글을 오랫동안 봐온 사람이면 알거나. 나의 10대의 끝자락과 20대 초반 싸이월드 미니홈페 적어둔 장래희망. 괜찮은 어른, 선한 어른이 되고픈 사람으로서 이 책의 제목처럼 즐거운 어른도 애법 마음에 들고 있으니 또 하나의 장래희망이 되어주길 바라며 무심하게 넘겨볼까 싶다.





📖골든에이지를 지나며_ "까짓거 자지 말지, 뭐. 내가 뒷날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대답해서 나는 통쾌함을 느꼈다.

굶어죽을 걱정을 안 해도 되고, 돈을 아껴 집을 사야할 일도 없는 사람. 꼴 뵈기 싫은 상사가 있어 꾸역꾸역 직장으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며 앉으나서나 자식 걱정을 하며 전전긍긍할 이유가 없는 삶. 저자는 지금 딱 그 시기에 있다. 자식들이 되려 저자를 걱정할지도 모르겠으나 꼭 필요한 일 아니면 전화도 잘 안한다는 단호한 사람. 본인을 팔자가 늘어진 최고의 인생의 한 시절이라며 호쾌하게 말하고있다.

시간에 맞춰 꼭 자야하며 내일을 위해 오늘의 즐거움을 꾹꾹 눌러가며 눈을 질끈 감아 잠을 청할 필요도 없으며 목구멍에 약을 털어넣지 않아도 되는 삶. 통제하고 구속시키지 않으니 자신과 타협의 과정을 받아들여야하는 시기. 덜 바쁘고 덜 빠듯한 일과를 우울해 하기 보다 최고로 늘어지게 여유부려도 된다고 여기는 삶. 그 마음가짐이 부러울 뿐이다.

나로서는 뜻밖에 주어진 하루라는 휴무를 두고서 어떻게든 알차고 후회없이 살아야겠다며 며칠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일말의 빈틈이나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없도록 맞춰놔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다. 그렇다. 나는 바쁜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20대 초반부터 지금 3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이 성격은 쉬이 고쳐지지 않고 점점 더 굳어지고 있는 삶의 방향성인데 저자의 나이 즈음 되었을 때 유순한 골든에이지를 맞이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나.... 이런 성격 너무 부러워〒▽〒





📖유언에 대하여_ 너희끼리 좋은 장소에 모여 맛있는 밥을 먹도록 해라. 또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너희 아빠는 꽃 피는 봄에 돌아가셨으니 나는 단풍 드는 가을에 떠나면 좋겠네. 그러면 너희는 봄가을 좋은 계절에 만날 수 있을 테니. 끝.

울컥하기도 하지만 담담한 마음. 그리고 자식된 입장으로서 감사하게 여기게되는 말들이다. 생의 끝은 언제나 아쉽고 슬프며 짠해진다. 영영 늙지 않고 싶지만 시간은 얄짤없이 흘러가고있고 그 속에서 누가 더 빨리 마침표를 찍느냐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당신의 마침표에 대해 속 시원히 알려주시고 훗날 그 날이 닥쳐왔을 때 주변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지않고 그 말을 떠올리며 절차를 진행 하는 과정. 몇번 겪어본 사람으로서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결정하고 수순을 밟는 것에 큰 에너지를 쏟지 않게 해주는 마음이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매일 슬퍼하거나 매일 그리워 하지 않고, 계절이 돌아 올 때마다 기분좋게 인사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마지막 말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내가 떠난 덕에 너희들이 한번 더 만나고 한번 더 생각 해주길 바라는 어른의 마음. 우는 것보다 읏으며 회상 할 수 있는 건강한 관계를 기대하는 어미의 애틋함이 밀려오는 단락이다.



📖엄마가 되면 비겁해진다_ 나는 내 아이들이 순한 삶을 살기를 바랐고, 특별히 잘난 존재가 되어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냥 남들 사는 평균 정도의 수준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그들의 인생이 순탄하게 흘러가기를 바랐기때문이다.

누군들 그러하지 않을까. 잘 되면 자만에 빠질까봐 걱정, 못되면 또 안쓰럽고 짠하며 이 과정을 극복해 내지 못할까봐 걱정. 뭐 이건 사람구실 하도록 키워내는 데에 부업으로 걱정인형 꿰매고 앉아있는 것 보다 곱절로 드는 마음 쓰임이다. 순탄한 삶. 남들처럼 딱 그정도의 과정. 제 손으로 밥벌이도 할줄 알고 누군가에게 손가락질 받을 정도의 험한 꼴도 안 보이는 튀지 않는 삶. 그러니 촌지든 어머니회 활동이든 학부모모임이든 빡빡한 삶에 쪼개고 쪼개어 그 틈에 끼려 했을 그시절의 엄마들의 마음이 고맙고 때로는 미안하다. 우리가 뭐라고.....

그런 덜 영근 놈들이 다 커서 제 밥그릇 챙기고 다녀도 엄마의 비겁함과 엄마의 욕심은 줄어들지 않는다는게 큰 문제이지 않을까. 딸놈 머리에 흰머리가 희끗해지며 같이 늙어가고 있다며 우스개소리를 해도 절대 엄마를 이겨먹을 수 없는 반푼이 애 인게 분명하니 말이다.





📖결혼 생활에 해피엔딩은 없다_ 누군가 이 지구상에서 소멸하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거다. 한 죽음에 따른 수많은 일들이 있고, 그것을 부부 중 남은 쪽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이러니 결혼 생활에 해피엔딩은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내가 우스개소리로 남편에게 하는 말이 여기에 담겨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생의 끝을 바라보는게 힘들다. 그리고 더군다나 당신이라면 나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배우자의 끝을 잘 마무리 해야하는데 나는 그럴 마음의 여력이 없는 놈이다. 그래서 나는 이기적이게도 당신보다 조금이라도 일찍 먼저 생을 끝낼 것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당신이지만 나보다 더 오래 살아야하니 맛있는것도 많이 먹이고, 영양제든 운동이든 계속 해주면서 보필 할테니 부디 나보다 오래 살아줘. 순장은 안 바랄게ㅋㅋㅋㅋㅋ 그저 나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살아. 라고......(

이 이기적인 이야기는 연애때부터 결혼 10년차가 될 지금까지도 일말의 고민없이 해오는 이야기다. 나는 진지하다. 궁서체로 적어두고싶다!!!)

정말 저자의 말처럼 사고사가 아니고서야 함께 숨을 거두는 일도 극히 드물다. 저자는 배우자를 직접 배웅한 사람이니 일단 해피엔딩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하다. 남겨진자의 슬픔은 어쩔 수 없으니. 그래서 그런가 검은머리 파뿌리처럼 희게 되더라도 그렇게 잘 살아와도 결국 끝은 눈물바람인건 어쩔 수 없는 건가보다. 얄궂어 정말.




📖심란하고 난감하고 왕짜증 났을 때_ 그러니까 심란하거나 난감하거나 왕짜증이 나는 정도는 어쨌든 어찌저찌 해결할 수 있는 좀 불편한 일들에 불과한 것이다. 전 지구적 대책 없는 큰일들을 생각하면 그나마 이 정도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다 싶다.

지금까지 살아오니 애지간한 일은 다 겪어 낼 만큼의 시련이었고 난관이었더라. 라는 식의 해탈한 인생 스승의 말씀. 두 세기를 다 살아본 저자이며 핏덩이를 사람구실 하도록 키워낸 이. 몸에 사리 몇개는 충분히 만들어 내고도 남을 내공의 사람으로 살고 있으니 이런들 저런들 지랄맞고 난잡한 순간이 있더라도 지나보니 발에 채이는 자잘한 돌뿌리 같은 걸림돌이었음 담아두었다. 이 모든 문장은 너른 마음으로 되돌아 볼 수 있는 생을 살아온 자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나는 어릴 적 언니랑 같은 방에서 나란히 누워서 자며 했던 이야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엄마 아빠의 팍팍했던 젊은 시절. 제 앞가림도 하기 빠듯했을 때에 오붓한 신혼 살림이 아니라 거기에 숟가락 들고 눌러 앉았던 시동생들과 살던 샛방살이에서 키워낸 두 딸을 지키고자 했던 마음. 다른 친적집에 맡겨지지 않고 튼튼한 벽이 있고, 물이 새지 않는 지붕이 있는 곳에 둘이서만 잘 수 있는 방이 있는게 얼마나 고마운거냐며 제법 어른스러운 말. 이제 막 어린이 티를 벗은 중학생이 해준 말이지만 초등학생인 내가 듣기에는 최고로 멋진 말 이었다.

그렇다. 이정도로 살아 낼 수 있는 것도 행운이다. 그 많은 천재지변과 의도치않게 빚어지는 사건사고들에도 이만큼 무탈히 지낼 수 있는 것도 모친과 부친의 애닳는 걱정과 노력으로 거저 얻어 살고있는 삶이라는걸 이제서야 느끼게된다.


슬픔도 지나갈 것이고, 기쁨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 지기 마련이라는 점. 평생 주구장창 같은 감정으로 살 일도 없으니 오면 맞이해주고, 간다하면 배웅해주는 삶. 그걸 말해주고픈 엄마이자 인생 선배의 후일담 같은 것. 내 친 엄마랑 이야길 한다면 아마 오늘 약은 먹었느냐부터 시작해서 밥은 잘 챙겨먹고 있긴 한거냐. 오래된거 있음 미련없이 버려라. 전기세 조금 아낀다고 달라지는거 없다. 더위먹으면 병원비가 더 든다. 에어컨 맘껏 틀어라. 옷 한장 산다고 내 통장 바닥나는거 아니다. 이쁜 옷 입고 살자. 그러니 기쁘게 입어주라. ...... 안다. 내가 우리집 독설가이며 독불장군이다. 그래서 순순하게 엄마의 이야길 듣지 못하고 승질부터 부리는 개딸이다. 울 엄마도 이런 말을 종종 해주셨는데 그 시절의 엄마가 너무 안쓰럽고 가여워서 두 귀 막아두고 안 들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저자의 이야기가 더 진득하게 박히는 느낌이다. 나의 엄마뻘의 그녀이며 엇비슷한 삶을 살아왔음이 분명한 굴곡이 제법 있는 사람이니 아마 울 엄마도 이런 말을 나에게 해주고싶었던게 아닐까를 유추해보며 각각의 이야기를 들었다. 듣길 잘 했지. 읽기 잘 했지. 최선 하다면 네가 맘 고생이 컸다는 거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말아라. 예민한 네가 하나의 일 갖고 애쓰면 또 몸 상한다. 그러니 다 지나갈테니 조금은 풀어두자. 혹여라도 유명해져서 네 이름 석자로 다른 사람이 알아보면 좋기야 하겠지. 헌데, 너의 일거수 일투족을 물고 늘어질 개떼같은 이들이 있을 수도 있어 내가 다 마음이 닳는다 그러니 조금 덜 유명하고 덜 튀게 살아보자 하는 항시 전전긍긍하는 마음들이 있어 벅하고 울컥함이 가득했다. 때때로 엄마 목소리가 그립고 엄마 잔소리가 흐릿해지는게 느껴지면 이 책으로 긴급수혈 할 수 있도록 손이 가장 잘 닿는 책장에 넣어둘까 싶다.



📖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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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인류 보고서 - 리얼 하드코어 오피스 생존기
김퇴사 지음 / 비에이블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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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사무실에서 보면 안 될것 같은 책표지. 그리고, 진짜 궁금하게 만드는 그림의 표정. 아.. 퇴사 마려운 직장인들을 위한 책임은 페이지를 넘겨보지 않아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내가 왜 사무실에서 이 책을 들어올리고 있냐고? 오늘은 어린이날 이니까! 부서장 죄다 출타하고, 몇몇은 외근가고, 바쁜 업무도 끝이 났고, 퇴근 시간 몇분 남지 않았으니 어린이날이라는...(일명 아랫것들만 있는 시간) 이기에 용감하게 책 인증을 해본다.



숨만 쉬어도 에피소드가 넘쳐나는 우당탕탕 회사생활. 그렇다. 우리는 백날 천날 입으로는 때려치운다 하지만 몸은 착실히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직장인 나부랭이이다. 주말엔 그렇게 아프다가도 월요일 새벽만 되면 열이 떨어지고 정신이 말짱해진다. 그렇다. 나의 바이오리듬은 10년넘게 회사의 시간과 맞춰져 있었다는 것. 슬프도록 지독하고 눈물나도록 안타까운 나의 일상을 여기서 찾아보기로 한다.





📖프리워커

다들 N잡러라고 하지. 내가 아는 몇몇의 동료들은 개인 사업자를 내서 100일용품,돌잔치용품 수제 작업 판매업도 하고있고, 또 어떤이는 간간히 지인들의 네일을 해주고 소정의 금액을 받기도하며, 또 어떤이는 암*이 사업을 하면서 갓생을 산다하듯 N잡러로 누구보다 촘촘한 24시간을 살고 있다고 했다. 다들 메인은 여기 이 회사지만 서브가 되어주는 소작업들이 더 재미나고 즐거우니 그게 주업을 이기는 목표치에 도달하게되면 가차없이 퇴사 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도 퇴사를 안한다. (아? 몇몇은 퇴사를 하긴 했구나. 1년 안에 그 업을 접고 가정주부나 이직을 했다만...)

나 역시 나름의 N잡러라며 그 부류에 살짝쿵 발가락을 들이밀어 보고싶어진다. 각종 리뷰어를 자처하며 원고료를 받기도하고, 출판사와 계약을 하여 신간 도서 서평을 기록하기도 하는데 그 금액이 미미한 것으로 그냥 용돈벌이 수준이라 좋아하는 일로 얻는 소소한 행복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역시나 좋아하는 걸 업으로 삼으면 안된다는 교훈을 주는거지. 역시나 대감님댁 노비가 제일 편하지 모.( ˘︹˘ )




📖무두절

이거...ㅋㅋㅋㅋㅋ 내가 친구들과 남편에게 그렇게 자주 이야기하는 무두절에 대한 이야기구나. 오너라인과 부서장들이 외근 나간 사무실. 그리고 그 상황을 일찌감시 알아챈 중간관리자들 마저 외근을 핑계삼아 출타한 상황. 여기는 외진 산업단지 속의 회사라 외근=퇴근으로 이어진다. 다시 복귀하려면 들어오는데 또 한참이거든. 그러니 고로 아무도 안 들어올거라는 사실.

막내라인과 당당하게 째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들을 위한 시간. 퇴근을 못할 망정 내 뒷통수에 레이저 발사하는 선임과 부서장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맘편히 인터넷 창 키워서 쇼핑도 할 수 있고, 쓸데없는 관심으로 아는 척 하는 이도 없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가. 맘껏 누려라. 이 시간은 절대 다시 되돌아 오지 않는 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신종유괴

이건 마치 취준생의 기간이 길어지고, 결국 하나하나 포기를 하다가 뭐라도 나는 데려간다는 데에 팔려가는 느낌? 아웃소싱 당하는 것도 아니고, 신생사업에 전도유망한 젊은피를 수혈한다는 명목으로 질질 끌려가는 뉘앙스가 가득하다. 내 대학 동기 몇몇도 이 정부지원사업에 팔려갔더랬지. 출퇴근 자유로워, 복장 편해, 새로운 사람들을 자주만나, 번지르르한 오피스텔이나, 벤처타워에 입점하는 근무환경이야, 신생사업이라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대단한 사람으로 불리우는 성+직급보다 OO님, 닉네임, 영문명으로 수평적인 관계라는 디게 신박한 것들로 채워진 것.

..... 그런데 내 동기들 중 그 어느하나 2년? 3년을 채우지 못하더라. 현실을 자각하는데엔 1년도 걸리지 않고, 이력서에 반듯하게 적어도 될 만한 그런 가치라 여겨지는 것도 아니니 내가 지금 므슨 일을 하는 건지도 모르는 모호함을 겪는 것이지.

결국 좋은 곳이라 함은 경력직의 스카웃 제의만 있을 뿐 신생 회사의 신종 유괴 버전으로 착출되는 일은 모래사장에서 내 머리카락 찾기와도 같다는 것. 현실은 늘 냉정해.



거진 다 내가 느꼈던 순간들이 담겨있다. 지금 다니는 곳에서만 11년차로서 아줌마 과장 나부랭이로 살고 있고, 그 전에 대학 졸업 전부터 일했으니 15년차의 직장인 고인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런가 이 퇴사인류 보고서가 마냥 낯선 것도 아니더라. 이 모든 과정을 겪었고, 그러한 마음을 품고 살지만 나는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다. 내 사업보다는 꼬박꼬박 월급 입금해주는 대감님집 노비로 사는 것이 마음편하며, 코로나 시국과 관련업 불경기를 겪어왔음에도 급여 한번 밀린 적이 없었던 오너님에게 감사할 따름이다.(갑자기 시상식 수상 소감 버전?) 그래서 퇴사 하고픈 마음이 있어도 카드 고지서와 아파트 대출금을 보며 겸혀하게 사직서를 꾹꾹 밀어 넣으며 꺼낼 일을 안만들고 싶어한다. 내차 할부는 일단 끝났으나 남편의 차 할부가 시작될 뉘앙스에 돌입해있고, 그 누구도 나의 노후를 준비해 주지 않을테니 나는 더더욱 미래의 나놈을 위해서 더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이 회사의 붙어있고 싶은 마음에 주둥이만 나불거리며 퇴사를 부르짖는지도 모르겠다. 막상 그 날이 닥쳐오면 오만가지의 생각과 걱정이 앞설테니 지금만이라도 이렇게 안전한 곳에서 유치한 불멘소리하듯 투정을 해보는 게 아닐까 싶어진다.

일단 나는 오늘 오전을 어찌어찌 버텼다. 동료와 회사 밖에서 바깥바람 쐬며, 그리고 내돈 써가며 테이크아웃 커피를 한모금 쪼록 마시면서 오후를 버텨내고 칼퇴요정이되어 집으로 가는 신나는 도로위의 나를 상상해보기로 한다. 직접 퇴사의 길로 가지 못하는 자들이여, 나처럼 대리만족으로 이 책을 달게 삼키듯 후루룩 읽어보며 사무실 책상서랍 한켠에 몰래 숨겨두었으면 한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기록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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