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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름에게 ㅣ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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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이야기해주는 어린시절 이야기. 많이 생각하고 고민 한 후 꾹꾹 눌러담아 보였던 시집 속 몇 안되는 단어들 말고, 좀 더 편히 이야기하며 툭툭 건네주는 여린 저자의 성장과정. 엄마의 빈자리 보다 할머니의 부재가 더 두려웠던 시절. 오랜 시간은 아니나 함께 이야기하고 일상을 나눴던 아버지와의 추억. 또래 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 어린이 친구들과 마음을 주고받았던 순간들까지. 귀한 마음들 덕분에 저자는 인생의 뜨거운 여름의 한복판과도 같은 순간을 무탈히 지내왔음을 느낀다.
저마다의 상처를 갖고 있으며 그걸 어찌 버티고 어찌 겪어내느냐에 따라 인생을 마주하는 마음이 달라 질 수 있음을 저자를 통해 배워간다. 조손가정의 어린이로 성장했음에도 잘 자랐고, 잘 컸다고 말하는게 아니다. 부모의 부재로 인해 모자란 애착형성의 아쉬움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삶을 살아 가는 과정에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 살아가며 겪게되는 아픔과 슬픔, 환희와 기쁨의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음에 품는지를 잘 배웠고, 기특하게 잘 써먹으며 멋진 어른으로 살아주고 있음에 대한 감사하다는 의미이다.
우린 각자의 슬픔이 가장 깊고 아픈 것이라 말하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내가 제일 불행하다는 듯 떠벌리는게 영웅심리 중 하나의 갈래인 듯 한데 저자와 독자가 바라는 방향은 그게 아니다. 내가 겪어낸 순간은 아팠지만 외면하고 싶은 것은 아니며, 때때로 떠올리며 시절을 잘 살아낸 어린 나를 애틋해하며 잘컸다고 다독여주자는 눈짓 정도? 내가 나를 알아봐주고 위해주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이니 우리의 여름이 축축한 장마의 시간을 거쳐 반짝이고 환한 맑음을 바라며 살아보자며 싱긋 웃는 느낌을 가득히 전해받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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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 같지만,_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밥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한끼 식사를 위해 집을 치우고 장을 보고 그릇을 닦으며. 몸에 좋고 마음에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시간은 새벽 2시 13분. 밥을 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고. 밥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대해 시를 써야겠다고 혼자 생각합니다.
자랑 맞지. 좋아하는 사람의 모든걸 맞춰주고픈 마음. 내가 당신을 위하고 있으며 당신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게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이라는 표현. 비싸고 좋은 것도 분명 좋은 대접이겠지만 정성과 노력을 담뿍 담아 내 손으로 상대를 위해 무언가 해 줄 수있어 뿌듯한 감정을 얻는 다는 것. 어릴 적 할머니가 어린 저자를 키워낸 방식이 그러했고, 그러한 노력의 맛을 꼭꼭 씹어 먹고 자란 어른의 저자도 할머니를 닮아 그 표현을 대물림 받아 표현하는 것. 받은 만큼 표현 할 수 있고, 얻은 만큼 나눌 수 있는 감정의 전달과정. 이 책은 어린 시절 자신을 먹여 살린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이며, 그 기억으로 잘 먹고 살아내고 있다는 자랑과도 같은 손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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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냄새_ 하지만 슬픔 없이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슬픈 것은 슬픈 대로 그대로, 조금 더 두기로 했다.
1부의 이야기를 보면 울컥하는 부분이 많다. 할머니와 오이지. 아버지의 눈물, 에어로빅과 성난 마음, 부드럽고 고소한 호두맛 아이스크림. 외로웠고, 가난했고, 그래서 때때로 서러웠다. 그게 왜 아이의 탓이겠는가. 하지만 어른들은 어찌 할 수 없음에 화를 낸다. 아이를 향한 화가 아니라 이러한 여건에 대한 울화지만 아이는 눈치를 보게되고 움츠러들게된다. 결핍은 불안을 당겨왔고, 불안은 또 다른 걱정을 황급히 불러들여온다. 엄마가 없는건 괜찮지만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앞선 걱정. 자신은 아직 아이인데, 어른이 되려면 멀었는데 할머니의 시간은 더 빨리 흐르는 듯 해 조바심도 난다. 그래서 저자는 어린 시절 자신이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할머니와 아빠, 친구들이 주변을 에워싼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산다. 그래야만 지금을 살아내는 데에 덜 외롭고, 덜 무서운 듯 자신을 방어한다. 욕심처럼 움켜쥐고 붙들여 놓을 수 없는 시간이며 존재들이다. 그러니 기뻤던 순간도 슬펐던 순간도 다 안아들고 산다. 존재의 부재를 부정하는 것보다 순응하며 그마저도 담아주는 삶이 덜 슬프고 외로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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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여름 과일이 궁금합니다_ 두려움도 미움도 잊어버리고 문득 '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하게 되는 마음이. 그러니 매일 아침 현관문을 나서며 상상합니다. 저 방에서 할머니가 나와 오늘 나에게 하나의 심부름을 준다면 무얼까.
-기쁘렴. 기쁘게 집으로 돌아오렴.
수박이 이렇게 뭉클한 과일이었던가. 스스로 해 보도록 바라봐주는 과정과 설령 잘 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타박하지 않는 마음. 그럴 수 있다고 직접 겪어보게 만들어주며 그 실패의 결과 또한 어른이 먼저 감싸안는 방법. 할머니가 깨우치도록 하는 방식은 그런 것 이었다. 조손가정이라고 스스로가 할머니 힘들지 않도록, 적당히 잘 하자는 마음이 더 큰 아이를 위해 할머니는 당신의 울타리 안에서만이라도 다 괜찮다며 그럴 수 있다는걸 알려주고픈 수고로운 행동에 어린 저자는 더 많은걸 배우게된다. 수박보다 크고 달큰한 것은 할머니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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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도 혹여 네게 힘이 남아 있다면_ 선물을 받은 그가 그것으로 무언가를 해내고 이뤄내고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내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뜻밖의 선물처럼 여기면 좋겠다. 길을 걷다 우연히 옷깃 속으로 떨어지는 조그만 낙엽 같은 기쁨 정도면 좋겠다.
나눔과 베품. 그러한 마음들을 강요하거나 닦달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자라온 환경이 그러했고, 키워낸 어른들의 성정이 그대로 스민 것일 뿐. 때론 감사했고, 또 어떤 날엔 서러움에 눈물이 장판위로 올라온 빗물만큼이나 가득 할 때 얻어진 외로움. 그냥 그걸 덜어내기 위한 마음이었고, 나만 덜어내기엔 또 미안한 마음이 큰 감정이니 같이 덜어내어 보자는 생각이었다. 타인의 기대와 반응, 그리고 주변의 시선보단 오롯이 내가 덜 슬플 방법과 내가 덜 아플 방법을 찾아낸 것 중 하나의 선택지라 보여졌다. 나 좋자고 하는 선행이고, 내가 뿌듯하자고 하는 마음의 나눔 정도. 그러니 이 마음이 잇닿은 너머의 누군가는 혼자라는 사실보다 기분좋은 호혜의 순간을 얻었다고 바라게 되나보다.
행복했던 순간은 특별할 것 없는 작은 찰나였으나 그 찰나들이 있었기에 제법 괜찮은 어른으로 클 수 있었다. 겪어낸 시간들 덕에 편히 슬픔과 상반되는 행복의 감정을 모두 알려줄 수 있는 이야기꾼이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할머니, 아버지, 후배와 언니들, 남편과 반겨동물 둘, 계수나무 숲과 아이들의 편지. 우리도 익히 아는 단어들 이지만 이 단어가 저자의 곁에선 이야기가 되고 살아가는 양분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시인의 여름이 책 표지만큼이나 더 푸르고 반짝이나보다.
나를 에워싼 단어들이 무엇으로 이뤄졌는지를 떠올려본다. 나도 그 단어들 덕에 살아냈고 살아갈테니 말이다. 부디 내 삶의 여름도 물기 가득 머금은 그런 날 보다 반짝이며 환한, 그렇지만 때때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런 싱그러운 순간으로 남아주길 바라게된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완독 후 기록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