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남궁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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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사실주의 라는 틀로 엮어진 글을 읽었던 책을 읽은지 반년이 흘렀다. 월급사실주의에 옴팡지게 젖어들어 사는 직장인 나부랭이로서 올해 두번째로 출간된 이 책을 읽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실정이다. 입에 풀칠하는 것에 애쓰며 사는 사람인지라 또 이렇게 이 세계에서 나만 힘든게 아니라는 걸로 위안 받으려고 책을 들게된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이라니. 내 주변 사람이 이런 캐릭터로 불리운다면 얄밉기도 하겠다만 부러움이 더 크지 않을까. 인성이 개떡같고 지랄맞아도 일이 잘 풀리고 하는 것마다 인정받아 능력치에 대한 보상이 두둑하다면 그보다 좋은건 없을테니 말이다. 때때로 밉상짓이라 할 지라도, 하는 짓이 마냥 이뻐보이진 않더라도 한 번 쯤은 나도 요렇게 인성에 비해 잘 풀리는 뭘 해도 되는놈이길 바라게된다.




📖등대_ 궁지에 몰리면 자신 같은 종업원을 보호해주지는 않을 테다. 그렇다고 앞에 나서 저들에게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느냐며 따질 상황은 아니었다. 사람들을 잘 지켜보다가 위험을 피하는 게 최선이었다.

어떻게든 그 세상 속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위치. 눈알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듯한 바쁜 사위. 그렇게 유용한 인재가 되기 위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짤리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하게되는 수습직원. 정직원 전환이 뭐라고, 이 과정만 잘 버텨내면 정식 직원이 될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 정신이 팔리고 앞에 뵈는게 없어지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세뇌. 그렇게 달달하게 유혹하고 빨때 꼽아 쪽 빨아먹고 위기의 순간엔 가장 먼저 내동댕이 쳐지게되는 위치.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배워가면 더 많이 보이고 성공할 수 있다는 건 밑바닥을 밟기만 하지 빗자루로 쓸어본 적 없는 인간들의 하는 조직생활의 허울 아닐까.



📖두 친구_ 적어도 의료보험을 내주고 일정한 급여를 주는 직장이 생겼다는 면에서, 또한 가족이 아닌 어딘가에서 소속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면에서, 지현에게 조무사 일은 일종의 구원이었다.

한참동안 없는 사람인냥 지낸 시간들이 길었던 사이. 친구였으나 지금은 친구라 말하기도 애매한 관계의 사람들. 한 사람은 환자로, 또 다른 한 사람은 간호조무사로 같은 공간에서 만난다. 단박에 알아 볼 만큼 오랜 기억을 나눈 사이는 아니다. 그럼에도 떠올려보니 한 때 친구라는 관계로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는 것. 이제와서 새삼스러운 듯 반가워하며 그간의 안부를 물어보고 하지도 않을 밥 약속과 만남을 기대하며 얼굴 보기를 바라는 반가움을 건네본다. 그 시절엔 똑같은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입장차이가 한겹 더 씌워진다. 갑과 을로 따질 순 없겠으나 사람이, 결국은 직업이, 어쩌다보니 상황이 그렇게 높고 낮은 격차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그런가? 눈대중으로 재어보며 자신이 한 단계 더 높다는 이들이 으레 그렇듯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건네게 되고, 보다 아랫단은 밟고 있는 이들이 마뜩치 않지만 빨리 대화를 마무리하기 위해 대답을 얼버무리곤 한다.

이러한 관계까지 친구라 하는게 맞을까?



📖식물성 관상_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이해하는 척하며 마음에 없는 말을 마음에 있는 말처럼 하는 게 일을 잘하는 걸까? 그러다보면 '자낳괴'가 되는 걸까?

비건 식당의 매니저로 스카웃 될 수 있었던 것. 관상? 관성? 분위기? 결국 오너가 잘 쥐고 이리저리 흔들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기에 가능했던걸까? 군말없이 하라면 하라는 대로, 자신의 견해는 철저하게 배제한 피노키오같은 그런 직원. 사업가의 마인드는 그렇게 돈을 쫒고, 신념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해가는 인간이어야 짤리지 않고 밥벌이가 가능한 거겠지. 식물성 관상은 물주고 햇빛주면 주는대로 잘 받아들이고 키워내는 반항기 없는 그런 관상임을 착하게 그려낸 허상으로 보여졌다. 보이사 밑에 있게되면 자발적 식물성 관상으로 변해 주관이나 객관이나 모든 관념을 버려 둔 후 일해야 할 테니 나는 죽어도 그짓거리는 못하겠다. 결국 나는 태생보다 삶 자체가 식물성 관상은 아닌걸로.




기획의 말을 대신하여 파트에서 보면 '평범한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한국소설이 드물다. 우리 시대 노동 현장을 담은 작품이 더 나와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작년에 출간되었던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보다 좀 더 예민한 부분을 건드렸다. 특수성을 띤 직업군보다는 다수가 경험했거나 다수의 손을 거치는 직업군에서 일어날만한 에피소드를 담아냈다. 그리고 한번 쯤 생각해봤을 만한 갈등을 특수한 상황으로 몰지 않고 으레 겪어야 될 만한 과정의 일부처럼 담아내어 나만 겪을 일이 아니라 나도 겪을 일로 풀어주어 나만 특이한 인간으로 내몰지 않아 고맙게 느껴졌다.

보여지는 건 화려한 프리랜서의 아나운서 이지만 매 회 재계약을 기대해야했고, 실적이 안 좋으면 다음번은 없는 삶이었다. 당장의 평온보다 다음을 위한 관계 유지가 중요한 것. 그래서 더욱 허탈해지는 나란놈 포장방식에 무딘 인간으로 살아야 했다. 돌봄교실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교육 가치관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해야헸고, 그 와중에 비용 수급도 확실히 해야했다. 아이들에겐 착해야했고, 돈앞에선 냉정한 사람으로 버텨야 하는 극한의 감정 노동이 필요했다. 단순 사무직이든 서비스 직군이든 특수성을 띈 작업자든 그건 중요치 않았다. 그 무리에서 적응을 해야했고, 수습 직원에서 정직원 전환을 위해 눈칫밥도 체할만큼 먹어야만 사위가 뚜렷하게 구분이 되었다. 그렇게 목메이듯 산다고 모두가 목구멍 뚫리는 사이다를 얻을 순 없었다. 가장 애썼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먼저 나가리(국어사전에 등재된 명사 맞음)될 수 있다는걸 잊지 말자. 조직세계에서 선입선출은 당연한게 아니다. 시작은 같은 학생이었으나 그 갈래에는 무한한 변주가 있다. 한 때 같은 교복을 입고 다니던 학교의 같은 반 친구라 할 지라도 성인이 되고 밥벌이를 시작하고 내 갈길 찾아 가고나면 학창시절의 동등한 위치는 모두 옛말로 쓰여진다. 그래서일까? 앳된 얼굴이 아직 남아있어도 이름도 알고 얼굴도 눈에 익은 사람이지만 먼저 알은체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못나고 니가 잘난 문제가 아니다. 엮였을 때 좋을 거 없어 뵈는 각자의 삶 바운더리 때문인 것이다. 니가 잘나서 피하는 것도, 니가 나보다 못해보여 무시한 것도 아니였다. 그냥 그 상황을 겪어야하는 과정이 피곤해서 그렇더라구. 알바의 세상은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조건없는 모임의 장이었다. 조건이 필요 있겠나. 결국 시급 맞춰 몸써가며 돈 벌려고 모이는 목적만 가진 컨베이어 벨트 앞 작업자 1과 2로 구분되는 것 뿐이다. 웃긴게 여기서도 지들끼리 서열을 나누고 공장밖에서는 좀 더 잘난 사람으로 살았더라는 라떼시절을 들먹거리는 걸 보면 여기든 거기든 왕노릇 하고 싶어하고 가르치려하는 사람들이 꼭 하나씩 있더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와중에 나는 잘난놈, 니네랑은 다른 놈을 티내고 싶을까? 프리랜서라고 계약된 금액을 제공받고 작업을 할 때엔 그 역할만 수행하는게 돈에 대한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돈을 주는 입장이라고 통역사의 사상까지 돈을 주고 바꿔 원하는 대로 변주를 준다는 것. 그렇게 한다면 능력을 산 게 아니라 그냥 예시 인물 1의 인격을 산건데 그건 어디서 보상받나 싶어진다. 오너가 원하는 상(像)으로 만들어져 결국 오너의 미니미가 되어 일을 처리하는 것. 내 주관없이 네 주관으로 일하는 것. 오너 마인드가 아니라 오너 확성기가 되어 가는 과정. 사업가 마인드 인 척 하면서 사업가 마임을 하고 있는 모양새. 오너 확성기가 인풋과 아웃풋이 달라지는 순간 오너의 아웃을 감당해야 함을 잊어선 안된다. 시작은 모든걸 수용하는 말 잘 듣는 인재에서 끝은 할 줄 아는게 없는 놈이 시키는대로도 안하는 금쪽이가 된다는 점이다.

확실히 작년에 봐온 단편보다는 현실감이 고봉으로 담긴 이야기였다. 어느 부분은 겪어봤고 들어도 봤으며, 제 3자의 입장에서 지켜만 봤던 이야기들이 많았다. 20년 가까이 겪어보니 성인군자로서 보살미소 지으며 으쌰으쌰 해가는 아귀가 딱딱 맞는 조합의 밥벌이 전당은 없다. 오죽하면 밥벌이 전쟁터라 했고, 아침에 눈뜨면 회사 때문에 미쳐 돌아버린 동태눈깔로 출근을 하겠냔 말이다(너무 좋아 행복에 겨워 초점을 잃는 그런 상태=반어법)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은 결국 지 복을 미리 끌어다쓴 영특하면서도 앙큼한 사람이었다. 일단 이 능선은 넘어가야 다음 퀘스트를 해 볼 조건이 부여되는 것이다. 그러니 인성에 비해 잘 풀리는 것도 지 복이고 지 일머리라는 거다. 그래서 그런가. 이 문장의 조건이 나로 직결되면 좋겠다. 누가 뭐라하든 일단 나부터 잘되고 봐야지 싶은 마음이 큰 월급사실주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서 잘 되고 난 후에 생각이란걸 해보고싶은 욕망이 크다.

나만그래? 나만 그리 느껴? 인성에 비해 더 잘 풀리고픈 마음? 욕심과 욕망이라 수근거릴지라도 나도 그딴 시기 받으면서라도 잘나보고 싶고, 능력 인정받아 보고싶은 검은 속내를 슬쩍 내비치고 싶어진다. 이상 밥벌이 인생 20년을 채워가고 있는 이구역 고인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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