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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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격정적인 단어지만 이만한 표현력이 없다 싶은 제목. 그래서 이러한 지랄맞음이 얼마나 켜켜이 쌓여 저자의 삶을 채웠나를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고, 결국 마지막 페이지까지 덮고 나서야 느낄 수 있었다. 그나마 지랄맞음이 풍년이라 버텼지 그마저도 표출하지 못했으면 어찌 살았을까 싶은 저자의 세월이다. 찰떡같은 제목에 물개박수라도 치고싶은 심정을 담아본다.




책을 펼처 몇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다른 책과는 다른 글로 시작됨을 느낀다. '이 책이 점자 도서 혹은 전자책으로 만들어졌을 때를 위해 간략한 표지 설명을 덧붙입니다.' 로 시작되는 것. 그렇다. 저자에게도 필요한 사항이고, 저자 뿐만 아니라 결국 모든 이에게도 필요했을 사항인데 오늘에서에 새삼스러워지는 문장을 마주했다.

저자는 장애인이며, 마사지사이며, 여성으로 이 세상을 마주한다. 열 다섯, 시력을 잃기 시작한 이후 각종 문학을 탐닉하였고 그의 인생과 뜨거운 감성이 만나 이토록 화끈한 글들이 만들어졌다.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로서 나온 첫 단행본.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으레 떠올리듯 처연하게 바라봐 주길 바라며 쓴 장애인 일상 수기는 아니다. 자칫하면 숨기고싶으며 때로는 서러움에 북받치기도하고, 그 때의 어린 자신이 짠해 눈물 한바가지 와르르 쏟아낼만도 한데 생각보다 덤덤하다. 속에 묵혀서 덤덤하고 담담한게 아니라 확 질러버리고, 왈칵 쏟아내 버려 주어 담담한 것이다. 그래서 버틴거지 그러지 못했음 이 지랄맞은 세상에 어찌 마주했을까를 생각해본다. 때때로 시트콤 같으면서 가끔씩 영화의 한 장면같은 애잔함도 크다. 그래서 각각의 단편들을 넘나들때마다 와르르 불타올랐다가 다시금 사르르 녹아내리는 온도차에 적응하느라 애쓰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헌데 다 읽고나니 느껴진다. 이렇게 살았으니 버텼지 이 지랄맞음이라도 있었으니 살았지.

그렇게 지랄맞도록 냉탕온탕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던 청소년기, 아니 유치원 시절부터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저자의 시간까지. 몇번씩 시간을 넘나들게 된다. 부디 그 장면마다 화끈하고 후끈한 인물간 대화에 놀라지 않도록 심장부여잡고 저자의 삶에 전투적으로 개입해보길 바란다.



📖에릭 사티가 내리던 타이베이_ 우리가 원하는 것은 비장애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상이었다. 그 사소함이 우리에게는 특별함이었다.

로코물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입에 달고 살았던 단어 '극복' 아니, 더 찰지게 '극뽀옥!' 이건 자신이 할 수 있음에도 안 했던 행실에 대한 자기 암시를 말했던 거지 저자가 생각하는 그 모든 사전에 대한 해결은 아니라는 점이다. 평범을 기대하지만 누군가에겐 평범을 넘어선 비범한 바람에 대한 것이라는 걸 떠올려 볼 때 저자의 해외여행 에피소드가 그러했다.

시간도 있고, 돈도 있어도 맘대로 떠나지 못하는 삶. 동행인이 있어야만 가능하고, 복지관에 부탁하고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쉬이 구해지지 않는 도움의 손. 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으레 동반자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 짧은 생각. 항상 케어하고 주변을 살펴줄 사람이 24시간 상주할거라 생각했던 오만함이다. 각각의 변화되는 장소마다 도움이 필요했다. 항공사의 케어 서비스라던가 승무원의 세심한 안내라던가 전담가이드가 필요한 것. 그리고 보이지도 않는데 왜 힘들게 해외여행까지 왔냐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들에 담담해질 방어태세까지 갖추어야 되는 곱절의 고된 시간들.

볼 수 없을 뿐이지 그 나라 특유의 기운, 살갗에 닿는 공기의 감촉, 낯선 음식을 마주하는 설레임과 다른언어로 표현하는 무수한 말들의 생경함. 그건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낯설고도 자극적이며 진득하게 남겨지는 삶의 새로운 자극점이라는 것이다. 그걸 무디게 받아들이도록 장애가 생긴 건 아니며 그러한 감각에 무뎌진것도 아니기에 이러한 과정이 더욱 소중하고 간절했을지도 모르겠다.

덧+ 관광지여서 그랬을까, 사람들의 기본 소양이 그러한 것일까. 대기 줄이 몹시 긴 미슐랭가이드 식당이지만 그 식당은 몸이 불편한 노약자를 위해 작은 테이블 하나를 항상 비워두는 마음을 가진 곳이었고, 풍등을 날리러 간 작은 상점은 같은 언어를 쓰는 여행객들의 가시돋힌 말보다 어색한 한국말로 괜찮다며 간이 의자를 내어 쉬라고 해주는 보드라운 마음에 울컥해진다. 이건 제한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이든 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상태의 사지 멀쩡한 인간이든 내어주고 받아주는 마음의 차이에서 새삼스러움을 느끼게 했다.



📖운동화 할머니_ 마음이 괴로웠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눈물이 났다.

나는 늙은 부모를 부양할 수 있을까?

부모가 평생 자식을 책임져야 한다면 얼마나 숨이 막힐까?

나는 엄마한테 미안해서 울었다.


가장 울컥하고, 뜨거웠던 단편이다. 아마 나이를 먹어가며 어른 행세를 하고 사는 나의 또래들이라면 느닷없이 느껴지는 감정을 이 단편에 고스란히 담아두었다. 나만 어른이지, 나만 잘났지 싶어하며 살다보니 나보다 곱절을 사신 노쇠한 부모가 뒤늦게 눈에 들어온다. 부양에는 의무를 두진 않으나 키워주고 사람구실 시켜주신 분에 대한 도리라 하면 그들의 나은 노후를 일정부분 마련해드리는게 도리일 것이다. 그래서 각자의 방식으로만 해석하려했던 과정을 운동화 할머니를 통해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리고 시력을 잃은 자신은 과연 부양을 할 수 있는 자격이 될런지, 되려 책임을 더 얹어주는 상태는 아닌지를 생각하며 되려 부양받아야될 시절에도 자식을 살폈을 어머니가 떠올라 마음이 힘을 잃게된다.

저자의 말 대로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감정이다. 시력도 잃었고, 엄마도 잃었으며, 사랑하는 이도 잃은것도 모자라 도망치듯 떠나와도 마음편히 누일 고향을 잃은 상태. 그 모든 상실의 빈틈을 오롯이 견뎌 낼 것은 산 자가 해야하는 몫이었다.



📖그녀가 핼러윈에 갔을까_ 내 기준으로 당신을 판단하고 한심하게 여겼습니다. 미안합니다. 진실로 반성합니다.

내가 보는 시선, 내가 느끼는 감정, 내가 판단하는 견해. 그 모든 것이 매우 사사로운 편견일 수 있다는 것. 누군가는 흘려버릴 말 일지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흘려듣지 못할 따가운 마음의 표현법이라는 것에 대해 반성하고 마음을 다잡는 저자의 글에서 아무도 뭐라하는 이가 없음에도 마음에 담아놓는 생각을 탈탈 털어 반듯하게 개어두는 습관에 감탄하게만든다.

어쩔 수 없다. 팔은 안으로 굽고, 자신이 보는 세상이 전부 일 수 밖에 없고, 제 입으로 내뱉는 것들이 진실이며 옳은 것일 수 밖에 없는게 사람이란 작자의 휘어버린 잣대인데 어쩌겠는가. 코리안타임 따위 없는 약속된 시간의 방문, 선을 넘지 않는 언사와 서비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의 의무까지 가진 사람이니 바른 인간이라고밖에 여길 수 없는 여건이다. 표현해내는 것들이 단정했으니 누구나 그리 여길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의 죽음이나 불합리한 상황에서 가볍게 여기는 말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어 공감을 끌어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가벼운 화젯거리로 동조를 구하며 굳이 생각할 이유조차 없을 가십거리라 할 지라도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님은 물론이고, 때로는 흘리듯 아무렇게나 쏟아낸 단어들에도 살기를 느낄 수 있다는 걸 저자는 한번 더 되새기며 상황과 처지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경우의 수에서 자신은 어떻게 살아가며 어떠한 마음으로 마음을 읽어나갈지에 대한 공부를 한번 더 한 듯 보였다.




📖비극으로 끝날 줄 알았지_ 그들은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나도 내가 자랑스러웠다. 처음이었다.

나는 내 자신이 무척 사랑스럽게 생각되었다.

움츠렸던 어깨가 펴지며 새로운 꿈과 함께 자신감이 피어났다.


초등학교 졸업식엔 아파서 못 갔고, 중학교 졸업식은 분명 등교는 했으나 졸업 후 새로운 시작의 갈래가 달랐으며 또래와 고민의 교차점이 없는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자신을 창피해하며 꺼리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컸기에 즐기지 못했다. 애써 버텼던 고등학교 졸업식 또한 축하받지 못하는 시간이었기에 자신을 위해 꽃다발 한아름 안아들고 찾아와주어 모두가 자신의 일 인냥 기뻐하는 그 달뜬 감정을 모르고 살았다. 알고 싶지만 알려주는 이가 없는 시절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엔딩은 매번 비극이고 축하를 받는 것이 익숙치 않은 저자의 삶에서 공모전 입상 후 시상식에서 마주한 지인들의 반응은 결국 축하받고 응원받으며 잘했다고 애썼다며 노고를 보상받으며 다독임 당하는 것이 당연한 삶의 과정임을 일깨워주었다. 그게 가족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 또한 좋은 사람들을 통해 얻은 뒤늦은 감정이었다.

저자의 눈에는 형태도 색도 없는 검은 꽃이지만, 새벽시장까지 달려가 향이 있는 꽃들로만 골라 챙겨와주고 손에 안겨주며 뿌듯해 했을 그 마음을 시간에 따라 차근차근 떠올려 코앞의 마주한 꽃에 다다를 때엔 세상엔 비극을 더한 비극은 없다는 걸 저자 본인의 삶으로 증명해 낸 것으로 보였다.

다행이다. 저자가 써내려간 비극의 끝은 사건의 지평선으로 남을 것이니 이제 진득한 해피엔딩으로 기분좋게 누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렇게라도 할 말 다 하고, 먼저 성질 부려가며 바득바득 마음의 독기를 뱉었으니 살아냈지 그 지랄맞음이 없었음 어쩔뻔 했나 싶어진다. 지랄맞은 성격 덕에 장하게 살았다고 앞으로는 더 하면 더 했지 덜한 삶의 시간은 없을 듯 하니 우리 이왕 이렇게 살기로 마음 먹은거 이 구역에서 가장 지랄맞은 인간으로 뜨겁고 화끈하며 단단하게 살아보자고 하이파이브를 세게 해보고싶어진다.

(어릴적부터 엄마랑 입씨름하는 알싸한 단편들에서 눈앞에 너무 사실적으로 그려지는 터라 내가 다 조마조마 했으며 같이 광광 울고싶어지는 순간이 제법 많으니 눈물샘 수도꼭지가 약한 사람들은 알아서 완급조절 하길 바란다)

📖이 책은 달 출판사를 통해 서평단이 되어 비매품 도서를 먼저 제공받아 완독 후 작성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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