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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역사 - 책과 독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독서 편력의 서사시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3월
평점 :
독서의 역사
나에게 독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환상문학의 대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이다.
민음사에서 나오는 그의 전집을 사서 읽은 적이 있다. 그의 소설은 이해하기도 어려운 것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내용을 곱씹게하는 매력이 있었다. 그의 소설의 주제는 여러단편에서 느꼈지만, 영원과 무한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의 소설을 읽은 까닭에 그가 지독한 독서가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의 도서관에 틀어박혀 지냈고 거의 평생 동안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책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책벌레였다고 한다. 책을 너무 좋아한 지나친 독서를 하였고, 그결과 시력을 서서히 잃기 시작하여 말년에는 물체 덩어리로만 사물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을 거의 잃었다고 한다. 물론 그의 시력상실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이었지만, 너무 이른 시간에 잃은 그의 시력은 지나친 독서의 영향이었음이 분명하였다고 한다.
시력을 잃은 후 그는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역임하게 되는 데, 이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신은 나에게 책을 주시고, 동시에 어둠을 주었다”
세종출판사에서 출간된 ‘독서의 역사’는 보르헤스와 연관된 사람이 쓴 책이다.
이책의 저자 역시 보르헤스 못지않게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저자는 십대후반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피그말리온’이라는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가 보르헤스를 만났다고 한다. 당시 시력을 잃어 가던 보르헤스가 책을 사러 서점에 들렀다가 그를 만나 자신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르바이트를 제안했고, 그 후 그는 4년동안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이 책의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이다.
이책 ‘독서의 역사’는 망구엘의 독서의 이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독서라 하면 단순히 ‘책을 읽는다’ 정도만 생각하기 쉽지만, 독서라는 행위를 이처럼 하나의 역사로서 체계를 세워 세분하여 저술 했다는 점이 놀랍다.
독서의 역사라 하면 당연히 책읽기의 행위자인 독서가, 대상인 책 그리고 읽는 방법의 종류를 떠올릴 수 있다.
이책은 이것뿐 아니라 책훔치기, 금지된 책읽기, 얼간이 책벌레 이미지등 독서와 관련된 생각지 못한 것들 아울러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 소개한 독서가들은 보르헤스, 카프가, 프랭클린등 유명한 독서가도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독서가들도 등장하고, 그들의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독서사랑을 보여준다.
이책은 ‘책읽는 행위’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한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누구도 쉽게 예상치 못한 독서와 관련된 역사를 400페이지 이상을 서술한 후, 독서의 역사는 끝이 없다는 말을 하며 책 말미에 여백을 남긴다는 말을 함으로써, 독자들이 독서의 역사를 계속 써 나갈 것을 재촉하며 끝을 맺는다.
이책을 읽으면서 반가웠던 구절이 있었다. 박웅현 저자의 서평을 담은 책인 ‘책은 도끼다’에 인용된 프란츠 카프카의 말을 이 책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평소 마음에 와 닫는 말이었는데, 온전하게 이 책에 소개되어 있었다.
카프카는 1904년에 친구인 오스카르 폴라크에게 이런 글을 보냈다고 한다.
“ 요컨대 나는 우리를 마구 물어뜯고 죽죽 찔러대는 책만을 읽어야 한 다고 생각해. 만약 읽고 있는 책이 머리통을 내리치는 주먹처럼 우리를 흔들어 깨우지 않는다면 왜 책 읽는 수고를 하느냐 말야? 자네가 말한 것처럼 책이 우리를 즐겁게 하기 때문일까? 천만에. 우리에게 책 이 전혀 없다 해도 아마 그 만큼은 행복할 수 있을지도 몰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책들은 우리가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쓸 수 있단 말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마치 우리 자신보다도 더 사랑했던 이의 죽음처럼, 아니면 자살처럼, 혹은 인간 존재와는 아득히 먼 숲속에 버 림 받았다는 기분마냥 더없이 고통스런 불운으로 와닿는 책들이라구. 책은 우리 내부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깰 수 있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141P)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독서의 역사를 계속하게 하는 사람 중 한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의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