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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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모]는 내가 가장 먼저 접한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싶다. 정말이지, 상상력은 시대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통신문학이라는 것의 탄생에 의해 양적으로 엄청나게 증가한 일본, 한국의 판타지소설계 전체를 통틀어도 이 정도의 상상력으로 빛나는 작품이 또 있을까. 회색 담배에서 회색 연기를 내뿜으며 시간을 잠식해사는 회색 인간들과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시간의 꽃을 지키기 위한 싸움... 동화와 하드보일드와 현대물과 타임패러독스까지 줄줄이 담아넣은 상상력은 멋지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모모와 회색 인간들의 싸움은 어떤 거대한 괴물과 싸우는 용사의 전투보다도 화려하다. 칼과 마법이 난무하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로 서로를 설득하는 싸움. 삼국지 시절의 논객들을 방불케 하는 회색 인간들의 설득력을 오로지 들어 주는 것으로 대응하는 모모의 역습은 판타지의 싸움이라면 이쯤 돼야지, 하는 감상을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악의 조직원 말단 A를 멋지게 때려눕힌 모모에 대해 최초로 나타난 정의의 용사를 향해 최대 전력을 동원해 뭉개버리는 회색 인간들의 재공격 역시 마왕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다. 직접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면 간접 공격으로, 일단 세계를 정복한 다음 친구와 이야기 상대를 빼앗아가고 권력을 동원한 공격, 그리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것을 피해 세상의 끝으로 달아나, 신비한 현자를 만난 끝에 얻는 위대한 무구. 정말, "판타지라면 이 쯤은 되야지."
그리고 그 모든 것들보다도 멋진 것은 모모 그 자신이다. 그 누구보다 순수한 어린아이이면서도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로서의 능력은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가장 환상적인 존재로서의 능력에 값한다. 어린 시절 [모모]를 처음 읽었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었지만, 그 ‹š 모모의 그 능력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더라면, 나도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아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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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디페이스 5 - 메두사Ⅱ
다테 마사노리 지음, 서범주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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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절한 청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쿠사가리 슈우지.
쿨한 미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토우 미키.

뭐, 다 좋다. 부잣집 따님과 가난뱅의 청년의 알콩달콩 사랑 이야기, 괜찮은 편이다(아냐). 쿨뷰티가 진실은 왕푼수에 일곱살 때 여덟 살짜리 남자애를 덮쳐 애를 만든 미혼모라는 것도 별 문제는 아니다(메여?). 이쯤되면 남자가 알고보니 인간흉기라는 것도, 딸이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재력가라는 것도, 아들이 초거대그룹의 실질적인 총수라는 것도 알 바 없다(뭐냐…).

…이쯤되면 그렇고 그런 펄프 픽션이라고 불러도 할 말은 없다.

열두살바기 딸은 모든 무기체계에 능통하며 F-22(미국이 30년째 개발중인 1대에 2천억원짜리 초강력 전투기. 성능은 한마디로 SF)를 타고 날아가 다섯 개의 바다를 마르게 하고 순항미사일에 킬러위성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퍼부어대는 트레져 헌터, 아들은 산맥 세 개만한 나무를 통째로 들어올리는 초능력자에 적들은 외계인의 기술을 멋대로 갈취해 사용하는 로우테크 매니아 집단, 거기에 어찌어찌 끼어든 아빠는 물 위를 달리며 탱크를 때려부수는 사상최강의 무술가! 아울러 모친 되시는 분도 한가닥 했었다고 한다.

…이쯤되면 그렇고 그런 먼치킨 물이라고 불러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본인은 이 '그렇고 그런' 책에 별을 4개나 책정했다. 별이 4개라는 것은 말로 표현하자면 '킬링타임용으로는 독보적인 경지를 이룩한 작품'이라는 의미다.
그렇다! 무지막지하게 재미있는 것이다. 무기체계에 대한 고증이 부족하다는 것도(OICW는 공중작렬식이지 레이저유도가 아냐! 레이저유도는 프랑스제 20mm차기소총이라고!), 우연과 행운이 중첩된 개연성 제로의 스토리라는 것도, 전혀 쓸모없는 서비스신이 의미없이 들어가 있다는 것도(아니 이건 좋은 점이고), 전혀 문제없을 정도로 재미있다! 재미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라!

근데 갈수록 표지가 에로해지는게… 미사, 성장하고 있구나♡(의미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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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슬링거 걸 Gunslinger Girl 5
아이다 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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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만화는 액션이 꽝이다(먼산). 나 액션 마니아 맞는거야? 대체 왜 이걸 지금까지 눈치 못챘지? 특히 바이올린 케이스로 멀쩡한 성인 남자를 후려갈겨 날려보내는 1권에서의 액션은 동세와 움직임이 아주 망가져 있다. 그나마 권수가 지나가면서 조금 나아지는 것 같기는 하지만 비교 대상이 아카히로 이토와 히로에 레이여서야 어디 승부가 되겠나. 따라서 작품 전체의 전반적인 중심 테마는 액션이 아닌 프라텔로(fratello: 형제. 이탈리아어. 작중에서는 의체와 담당관의 파트너 관계를 의미) 간의 미묘한 관계라고 보는 편이 낫겠다.

의체들은 만들어진 것일망정 담당관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고(시쳇말로 "홀딱 빠졌고"), 담당관들은 그녀들을 단순한 도구로 대하려 노력하지만 아무래도 인간인지라 그런 소녀들을 무의식중에 자신의 딸이나 여동생으로 여기게 되는 일이 잦다. 그리하여 프라텔로 사이에는 어떤 공감, 혹은 엇갈림, 또는 마주침이 일어난다. 남매간에 오가는 이런 미묘한 감정의 기류는 (특히 나이차가 있다면) 픽션에서는 그다지 드문 것은 아니며, 여동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현실에는 절대로 없는 판타지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여동생은 오빠의 고혈을 빨아먹고 자라는 흡혈귀란다(아울러 남동생은 멋대로 태어나 엄마 젖을 뺏아먹는 경쟁자다). 가장 프라텔로(남매)답다는 프라텔로(파트너)인 죠제와 헨리에타는 순수하게 오빠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생과 그런 동생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오빠라는 매우 바람직한 (정말?) 관계를 불안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비록 겉으로는 더없이 행복하고 포근하게 보이는 이 관계는 쉽사리 예측할 수 있듯이 서로가 서로의 기대에 아주 조금 어긋날 때마다 크게 휘청이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게 마련이고 그 상처로 인해 소년과 소녀는 어른이 되어가는 법이지만(그게 좋은 건지는 제쳐두고), 그러나 이 프라텔로 - 죠제와 헨리에타의 경우 일단 죠제는 알 바 아니고 문제는 헨리에타다. 몸도 마음도 속박당한 살인인형 안에 담긴 작은 영혼은, 그 흔들림과 그 상처를 이겨낼 수 있을까? 그녀는 애초부터 어른이 될 수 없는데… 어쩌면 엘자 드 시카의 죽음은 헨리에타에게 주어질 지 모를 최후의 한 장면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화려한 액션물이라 생각했었고, 두 번째 보았을 때는 상처받은 소녀들의 부활을 다룬 작품이라 생각했었고, 세 번째로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작은 흔들림에 고통받는, 그러나 어른이 될 수 없는 소녀의 속삭임이라 보이는 만화. 주제는 부도덕하고 전개는 음울하며 심리묘사는 도착적이지만, 순수하고 환한 소녀들의 웃음이 모든 것을 용서한다. 아주 미묘한 감정의 교류를 가졌던 목격자를 "미안해." 라고 말하며 단숨에 사살해버리고서도 공사에서의 생활은 즐겁다며 환하게 웃는 소녀. 이와 같이, 의체들은 가장 큰 피해자이자 학살자로서의 양면성을 갖는다. 작중에서 "총이든 성서든 사람을 죽일 수 있다."라고 표현되는 바로 그것인데, 비록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 해도 총은 원래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이지만 성서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성서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그리고 부자연스러움이야말로 공포의 정수이며, 이 공포는 동시에 작품 전체를 통해 기묘한 매력을 만들고 있다.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이 부자연스러운 공포야말로 [건슬링거 걸]이 갖는 기묘한 매력의 가장 큰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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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사나이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A.J. 퀸넬 지음, 이종인 옮김 / 시공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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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펜들턴의 [킬러]와 상당히 비슷한 분위기의 마카로니 웨스턴 액션(어디가?). 실제 서부극과는 크게 다르지만 나에게는 그런 이미지로 다가왔다. 중요한 것은 순진한 소녀의 웃음에 미소를 되찾는(전형적이다!) 터미네이터급 전쟁영웅, 그리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복수의 권리를 '법적으로는 신경끄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서' 있는 힘껏 휘두르는 장면들이다. 그야말로 마카로니, 굳이 말하자면 "양키스러운 정통파 무협지"랄까… 역시 양키는 총질을 해야 한다. 법정 스릴러로 끌고 갈 생각 따위는 하지 말고 일단 쏴갈겨야 한다. 문자건 그림이건 영상이건 총질을 해야 제맛이다. 앞뒤 가리지 말고 긁어야 한다. 권총이면 더욱 좋다.


사실, 영화로 [맨 온 파이어]를 보고 나서야 국내에 번역본이 들어와 있다는 말에 [불타는 사나이]를 찾아본 것인데, 역시 가치가 있었다. 상당히 분위기가 어둑어둑한 영화 [맨 온 파이어]에 비해 그 영화가 밝고 경쾌하다고 느낄 정도로 음울하고 차가우면서도 진득하게 가라앉은 소설은 상당히 자극적이다. 뜨겁게 폭발하는 화산이 아니라 손을 대면 피부를 뜯어먹을만큼 꽝꽝 얼어붙은 금속 같다는 묘한 느낌이다. 위험한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지만 끓어오르는 쇳물보다도 위험한 어떤 것이라는 느낌이랄까… 영화에서도 단순한 액션 뿐 아니라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나름대로 잘 표현해 왔었지만 그것을 위한 절묘한 구성에 비해 배우의 이미지 때문인지 뭔가가 안 맞았었는데(이것 때문에 배우에 대해서 알면 영화 보기가 힘들다), 딱딱한 텍스트는 그럴 걱정이 없다는 것만도 큰 이점이다. 영화보다 자유롭고 만화보다 섬세한 감정의 표현, 총알 난무하고 피 튀는 작품 속에서 이런 것을 느낄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아울러, 이 작품에 대해 가장 중요한 감상 한 마디. 그 아까운 애를 진짜 죽이냐 이 역적같은 놈아. 그런 의미로 영화판에 1점 추가(헐리우드의 신성율: 아이와 개는 죽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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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영웅전설 외전 1 - 별을 부수는 자 은하영웅전설 11
다나카 요시키 지음, 윤덕주 옮김 / 서울문화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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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는 독설과 의미 없는 사회비판으로 유명한 다나카 요시키 씨의 고전명작이다. 한참 된 책이지만, 솔직히 그 후의 어떤 작품도 [은하영웅전설] 만큼의 매력과 흡입력을 살리지는 못했다. 요약하자면 시스터 컴플렉스 황제폐하와 무적최강 귀차니스트의 우주적 땅따먹기 게임이다(거짓말은 한 마디도 없다!). 전쟁을 중요한 요소로 도입한 전쟁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전술적, 군사적인 면에서는 한계가 커서 '설정상' 군사적 천재인 주인공을 띄워주기 위해 정규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수십 년의 전쟁 경험을 가진 장군들이 중앙돌파 후 양익전개 이중포위를 보고 경악하고 감탄하는 괴상한 세계관이 되어 버렸다(교본을 한번 보고 싶다).

그러나 다나카 요시키의 진짜 실력은 다른 곳에 있다. 아무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퍼붓는 사회 비판과 그것을 주도하는 캐릭터가 바로 그것으로, 은하제국은 그렇다 치고 이미 좀비즈 수준으로 썩어버린 자유행성동맹의 소위 '민주주의'는 구토할 만큼 리얼하면서도 역겹다. 다만, 사회 구조 전체의 모순과 부패를 제시하기보다는 '악의 축'을 하나 만들고 '이 놈만 없어지면 대강 깨끗해 질 수 있다'는 시각은 상당히 동의하기 힘들지만. 때문에 얀 웬리와 그 추종자들의 입을 빌어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소리높여 외치면서도, 이야기의 전개는 어둠 속의 마왕을 해치우기 위해 손을 잡고서 서로의 뒤통수를 노리는 위대한 황제와 강력한 모험가의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영웅주의적인 시각이야말로 불편하면서도 매력적인 것이 특징이랄까. 멋있는 놈들은 지독하게 멋있고 악당은 총살시키자니 총알이 아깝고 패 죽이자니 주먹이 더러워질 듯한 놈들 뿐이며, 이러한 사회적 악적의 체현화는 '이 영웅만 따라다니면', '저 악당만 해치우면' 사회가 아름답게 돌아갈 듯 하다는 착각을 갖게 만든다. 실제로 자유행성동맹이 로이엔탈의 무력통치에 처해진 이후 공직자 윤리의 확립과 엄벌주의에 의해 일반인들의 생활은 오히려 더 편안해졌다는 묘사는, 미묘하게 드러내 온 영웅주의 사조를 더욱 가속시킨다.

그럴 만큼이나 다나카 요시키의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게을러터지고 키작고 못생기고 허약한 주제에 능력있는 마누라를 건진 (핵심) 얀 웬리라거나, 예쁘고 잘나고 착한데도 남편 때문에 인생망친 힐데가르트 폰 마린돌프 영애라거나, 하나같이 주옥같은 캐릭터들이다. 단, 애니판 라인하르트는 예외. 그 얼굴로 미남이라니 말이 되냐! 작화가 나와~~~!!!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는 정론이고, 올바르고, 멋있지만 그 대사를 말하는 캐릭터가 너무 강렬해 그 정론을 깎아내리는 캐릭터 소설. 과연 이건 칭찬일까, 비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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