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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슬링거 걸 Gunslinger Girl 5
아이다 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만화는 액션이 꽝이다(먼산). 나 액션 마니아 맞는거야? 대체 왜 이걸 지금까지 눈치 못챘지? 특히 바이올린 케이스로 멀쩡한 성인 남자를 후려갈겨 날려보내는 1권에서의 액션은 동세와 움직임이 아주 망가져 있다. 그나마 권수가 지나가면서 조금 나아지는 것 같기는 하지만 비교 대상이 아카히로 이토와 히로에 레이여서야 어디 승부가 되겠나. 따라서 작품 전체의 전반적인 중심 테마는 액션이 아닌 프라텔로(fratello: 형제. 이탈리아어. 작중에서는 의체와 담당관의 파트너 관계를 의미) 간의 미묘한 관계라고 보는 편이 낫겠다.
의체들은 만들어진 것일망정 담당관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고(시쳇말로 "홀딱 빠졌고"), 담당관들은 그녀들을 단순한 도구로 대하려 노력하지만 아무래도 인간인지라 그런 소녀들을 무의식중에 자신의 딸이나 여동생으로 여기게 되는 일이 잦다. 그리하여 프라텔로 사이에는 어떤 공감, 혹은 엇갈림, 또는 마주침이 일어난다. 남매간에 오가는 이런 미묘한 감정의 기류는 (특히 나이차가 있다면) 픽션에서는 그다지 드문 것은 아니며, 여동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현실에는 절대로 없는 판타지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여동생은 오빠의 고혈을 빨아먹고 자라는 흡혈귀란다(아울러 남동생은 멋대로 태어나 엄마 젖을 뺏아먹는 경쟁자다). 가장 프라텔로(남매)답다는 프라텔로(파트너)인 죠제와 헨리에타는 순수하게 오빠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생과 그런 동생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오빠라는 매우 바람직한 (정말?) 관계를 불안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비록 겉으로는 더없이 행복하고 포근하게 보이는 이 관계는 쉽사리 예측할 수 있듯이 서로가 서로의 기대에 아주 조금 어긋날 때마다 크게 휘청이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게 마련이고 그 상처로 인해 소년과 소녀는 어른이 되어가는 법이지만(그게 좋은 건지는 제쳐두고), 그러나 이 프라텔로 - 죠제와 헨리에타의 경우 일단 죠제는 알 바 아니고 문제는 헨리에타다. 몸도 마음도 속박당한 살인인형 안에 담긴 작은 영혼은, 그 흔들림과 그 상처를 이겨낼 수 있을까? 그녀는 애초부터 어른이 될 수 없는데… 어쩌면 엘자 드 시카의 죽음은 헨리에타에게 주어질 지 모를 최후의 한 장면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화려한 액션물이라 생각했었고, 두 번째 보았을 때는 상처받은 소녀들의 부활을 다룬 작품이라 생각했었고, 세 번째로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의 작은 흔들림에 고통받는, 그러나 어른이 될 수 없는 소녀의 속삭임이라 보이는 만화. 주제는 부도덕하고 전개는 음울하며 심리묘사는 도착적이지만, 순수하고 환한 소녀들의 웃음이 모든 것을 용서한다. 아주 미묘한 감정의 교류를 가졌던 목격자를 "미안해." 라고 말하며 단숨에 사살해버리고서도 공사에서의 생활은 즐겁다며 환하게 웃는 소녀. 이와 같이, 의체들은 가장 큰 피해자이자 학살자로서의 양면성을 갖는다. 작중에서 "총이든 성서든 사람을 죽일 수 있다."라고 표현되는 바로 그것인데, 비록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 해도 총은 원래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이지만 성서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성서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그리고 부자연스러움이야말로 공포의 정수이며, 이 공포는 동시에 작품 전체를 통해 기묘한 매력을 만들고 있다.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이 부자연스러운 공포야말로 [건슬링거 걸]이 갖는 기묘한 매력의 가장 큰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