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프!
나리타 료우고 지음, 민유선 옮김, 에나미 카츠미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하드보일드라는 단어가 있다. 1930년대 미국 문학에 나타난 창작 태도로 현실의 냉혹하고 비정한 일을 감상에 빠지지 않고 간결한 문체로 묘사하는 수법이다. 주로 탐정 소설에 영향을 끼쳤다고 하며, 고대의 난해한 철학서적 [제멋대로 카이조]에서는 하드보일드의 의미와 존재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한 바가 있다.

법에 굴복하면 안된다. 권위에 굴복하면 안된다. 폭력에 굴복하면 안된다. 도덕도 예절도 알 바 아니다. 그러나 "나"의 정의, "나"의 의지에서만은 벗어나서는 안된다. 설령 패배한 개가 될지라도 어금니가 있는 한 물어뜯는 남자, 그 내용물을 단단히 굳혀 얇은 껍질이 깨지더라도 무너지지 않는 남자, 연약한 흰자위가 으스러지더라도 진한 노른자가 원형을 유지하는 남자, 하드보일드란 그런 남자들이 파멸해가는 이야기이다.

소악당이라는 단어가 있다. 왠지 모르게 백과사전에도 안 나와있는 점이 이상하지만 아무튼 있다. 악당을 대악당과 소악당으로 나눠 악의 미학을 알고 확고한 목표를 지니고 스케일이 크고 포스가 넘치고 끝마무리가 깔끔한 카리스마있는 대악당과 그렇지 못하고 쪼잔한 소악당으로 구분하는 개념인 듯한데, 이 작품 [뱀프]에는 사상 최강의 소악당이 등장한다. 좀 치사하고 좀 비겁하고 좀 유치하고 좀 억지스러운, 그러나 대악당 이상으로 의지 강하고 끈질기고 주의깊고 심지 강한, 지독하게 하드보일드한 사상 최강의 소악당이 등장한다.

[뱀프]는 나리타 료우고의 작품이 늘 그렇듯이 지독하게 멋져버린 캐릭터가 가득한 작품이다. 몇 페이지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 강렬하게 성장하는 소년, 오라버니만을 따른다는 타인 의존적인 길을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고 스스로 걷는 여동생, 금단의 사랑을 불태우는 남매(거기 오타쿠! 착각하지 마라!), 성장을 거부하고 멈춰버린 미식가, 의도적으로 캐릭터성을 강화한 광대와 뭔가 과로에 지친 샐러리맨 분위기가 나는 마술쟁이(어감상, 요술쟁이로 번역하는 편이 낫지 않았으려나?), 그리고 자신이 택한 길을 극한까지 쌓아올려 완성한 '귀족이자 신사'에 이르기까지 나리타 료우고의 작품선 중에서도 특출날 만큼 멋진 캐릭터만 넘쳐난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이 소악당의 존재감은 특출나다.

"난,
[지는 것은 싫어하니까요]"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Ri_Goon 2008-03-17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마지막글 네타자나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