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한 짐승들의 바다
호시노 유키노부 지음, 하주영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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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짐승들의 바다]가 바로 그런 계열인데, 감상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어떻게 한국에서 출판씩이나 됐는지 알 수 없는 만화’ 되겠다. 전체 테이스트는 2차대전 후반~냉전기의 밀리터리 분위기 단편 분위기라고 생각했었다. 세계 최초의 원자력잠수함이 북극에서 마주친 소비에트의 비밀병기라거나, 마치 ‘멸망한 짐승처럼’ 멸종되어가는 전함의 이야기 등의 눈에 확 들어왔기 때문이다.

근데, 이 아저씨 전문분야는 그게 아니었다. 중간의 ‘아웃버스트’나 ‘멸망한 짐승들의 바다’에서 있었던 어이없는 결말이 뜬금없다고는 느꼈었지만 얼마 뒤 우연히도 [스타더스트 메모리즈]를 보고 당황했으며(“이건 SF냐 판타지냐?”) 그 뒤 [블루월드]와 [2001 밤의 이야기]를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이 아저씨, 나랑 취미가 똑같잖아!”

밀리터리와 스페이스오페라와 거대괴수! 남자라면 한번쯤 환장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그리고 정신 못 차리면 어른이 되기는 틀려먹은 세 가지 요소를 그 나이까지도 버리지 않고 결국은 그 ‘어린애스러운’ 취미로 입에 풀칠하는 용자였던 것이다. 존경할 수밖에 없잖아 이건.

단권에 옴니버스식 이야기 모음이라 읽기도 편하고, 눈에 확 들어오는 주제가 매력적이다. 다만 [멸망한 짐승들의 바다]에 있어서는 초기에 그린 것인지 스크린톤의 남용이 조금 눈에 거슬린다. 배경 그리기는 귀찮고 그리지 말자니 허전한 만화가들이 많이 빠지는 함정이지만, 한 페이지에 소실점 스크린톤이 네 장씩 나오면 매우 곤란하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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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살노트 퇴마침 6 - 마침태동편, 완결
키쿠치 히데유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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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잘생기고 능력있고 정체불명에 주술까지 쓰는- 침 하나로 죽이고 살리고 무엇이든 해내는 침술사가 차례차례 덮쳐오는 사건을 해결하는 옴니버스식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다음 화에 계속’과 ‘다음 권에 계속’이 이어지더니 결국은 최종권까지 사건 하나로 끝나버리는 작품이 되어 버렸으니, 이걸 그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장대하다고 해야할지 통제불능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겨우 지맥탐사 수준의 작업이 결국은 무 대륙의 후예(...)와 이계에서 날아온 괴물과 그 괴물을 이용해 역으로 이계를 침공해 정복하려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마를 멸하는 무예의 직계가 다함께 문명을 멸망시킨 최강의 괴물을 향해 핵미사일을 쏘는 이야기로까지 발전해 버렸으니 이건 통제불능도 아니라 폭주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주변 인물들은 뛰고 구르고 넘어지고 붙잡히고 정신없지만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하며 있는대로 폼을 잡는 미형 주인공은 언제나 엷은 비웃음을 입가에 띄우고 “나는 잘났다아아아~”는 코러스를 몰고 다닌다. 이런 주인공이 아무 어려움 없이 사건을 해결해가는 먼치킨물을 좋아한다면, 볼 만하다. 물론 내가 푹 빠진 분은 희대의 매드 사이언티스트. “놈들이 이쪽 세계를 몇 번이나 침략한 줄 아나? 한번쯤 이 쪽에서 침략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라니... 당신 너무 멋져염♡.

하지만 슬픈 것은, 저 끝도 없는 수정과 덧칠과 생략의 미(...). 그야말로 남자의 눈에서 눈물을 짜낸다. 게다가 눈치못채게 잘 하기라도 했으면 말을 안해, 80년대 해적판도 아니고 덧그린게 뻔히 눈에 보이도록 찍찍 갈겨댄 더 선은 대체 뭐냐? 윤리위원회에 항의하는 거야? 그 사람들은 그런 거 눈치 못챈다구!

 

이번에 보니 똑같은 이름의 작품이 또 나와 있는데, 재간일까, 연작일까?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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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자전거 12
미야오 가쿠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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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자전거밖에 모르는 바보 아빠, 그런 아빠와 잘도 결혼씩이나 저지른 병약한 넘마, 이런 집을 끌고가기 위해 장사수완만 발달해버린 열살짜리 딸내미가 운영하는 작지만 전문적이고 장신의 혼이 살아넘치는 자전거포.

그러나 주인공은 이들이 아니다.

이 만화의 주인공은 아오바 자전거포가 소개하는 수많은 자전거들이고, 그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다. 기뻐도, 슬퍼도, 외로워도, 힘들어도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전진하지 못한다. 서 있지도 못한다. 오로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홀로 일어나 스스로 페달을 밟아야만 하는 것. 홀로 나아가는 여행길에 언제나 함께할 수 있는 동지. 그러기에 자전거는 인간의 힘이 아닌 엔진의 힘으로 움직이는 다른 탈것과는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다른 무언가에 실려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두 다리로-

보도듣도 못한 수많은 자전거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날 달리게 해 줘. 너를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바람을 가르게 해 줄께.

ps. 개인적으로 조립식 자전거가 무지하게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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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탐정 김전일 애장판 2 - 이진칸촌 살인사건
가나리 요자부로 원작, 아마기 세이마루 지음, 사토 후미야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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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야할지 걱정해야할지...

 원제는 긴다이치 소년의 사건부. 이 이름 자체마저도 모 추리물의 패러디라 하고, 늘 이름이 내걸리는(긴다이치 쿄스케는 저승에서 “저눔새끼가 누구 맘대로 내 이름을 걸고 있는거냐아아아~!”하고 외치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할아버지가 주역인 원판본 [옥문도]도 얼마 전에 국내 출판된 바 있다.

하지만 작품이 인기를 끌었다는 불가항력적인(...) 문제로 인해 길이가 한도끝도없이 늘어났기에, 연재기간동안 죽어나간 사람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0명, 그중 전일이네 학교 학생도 거의 [이 학교는 저주받았다!] 특집에 나올 수 있을만한 숫자. 시간대가 앞뒤로 움직이기 때문에 3년 칼같이 걸었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져서 사건이 대략 30개, 1개월마다 한 번씩 살인사건과 맞닥뜨린다. 이쯤되니 사실은 김전일이 데스노트의 소유자로 누구를 어떻게 죽여야 사건이 그럴듯할지 머리를 풀회전시키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지.

가족은 같은 버릇을 갖는다는 메밀꽃 필 무렵 수준의 힌트를 핵심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용의자에게 정신적 압박을 가해 반강제로 자백을 이끌어낸다거나, 아니면 죽을 사람 다 죽은 다음에야 범인을 잡는다거나 하는 비판도 있지만, 그 작품성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다. 간혹 다른 작품을 통째로 베꼈다고 욕 먹은 사건도 있기는 하지만 만화라는 특성을 120% 살려내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표현법을 거의 완성 단계까지 끌어올린 점은 절대로 낮게 볼 수 없다. 뛰어난 추리도 추리지만 그 추리 과정과 증거를 이해하기 쉬운 도구를 이용해 눈으로 보여주는 데 탁월한 실력을 내보인다. 사람들은 복잡하고 어려운 설명은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타로트 카드라거나 하는 시각적인 증거는 이해하기도 기억하기도 쉬우며, 무엇보다 결과를 간략하게 만들어 주는 법이니까. 이는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추리 자체 뿐 아니라 ‘추리극’, 나쁘게 말하면 ‘추리 쇼’에 탁월하다는 것인데, 이는 결국 ‘보여주기 위한’ 매체인 만화라는 특성에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소년탐정 김전일]은 일본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추리 만화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선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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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이치 풍경 4
야나하라 노조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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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수많은 작품에 등장했던 로봇은 자신이 무엇인지 고민하기도 하고, 인간을 사랑하기도 하고,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보살피려 하기도 한다. 로봇의 원어인 ‘로보타’에는 감정이 없이 명령에 따라 일하는 자동인형이라는 의미마저 있었건만 인간이 묘사해 온 - 즉 무의식중에 바래 온 로봇의 모습은 인간과 같이 감정을 가진 인간의 창조물이었다.

하지만 [마루이치 풍경]의 마루이치들은 감정을 갖지 못했다. 표정도 갖지 못했다. 마루이치는 인간의 행동을 흉내내는 작은 로봇일 뿐, 그저 사람이 가르쳐 준 대로 움직일 뿐. 그러나 마루이치 자신의 감정이 없기에 마루이치는 인간의 거울이 된다. 인간의 행동은 무엇이든 따라할 수 있다. 따라한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아버지의 쓸쓸한 손길을, 딸을 만나고 싶은 어머니의 구부정한 뒷모습을, 친구를 때리고자 하는 주먹에 담긴 망설임을,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대로 담아낸다. 그리하여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보인다. 목소리도, 키보드도, 그 외의 어떤 입력장치도 아닌, 인간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마루이치. 마루이치는 인간의 거울이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두렵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나는 이 바보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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