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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4월
평점 :
바라보는 눈, 말하지 않는 입셔츠를 걸쳤으되 걸치지 않은 여자의 몸을 읽는다. 몸을 내보이고 고개 돌린 얼굴은 무표정하다. 그녀의 시선이 책 밖의 사람과 눈 마주치려나 싶어 표지를 바라본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시선을 '비껴가' 내 왼 편에 있는 '어떤 것'에 고정한다. 그녀와 마주치려면 책에서 '비켜서'야 한다. 읽기를 그만두어야 가능한 마주침. 그녀, 분명한 입술은 '다물어'져 있고 한 쪽 눈은 '감기지' 않는다.
앞뒤 알 수 없는 그녀의 몸
음영이 진하게 드리운 등-에 의심이 인다. 진한 고동색으로 음영은 근육이 아니라 가리기 위한 자국 같지 않은가. 깊게 팬 그림자를 지나면 둥글게 유선을 잡은 듯한 가슴팍, 동심원이 생기다 자국, 뻗으려다 만 쇄골을 따라가고, 마주치는 것은 명백히 돌아선 얼굴. 거의 다 드러낸 몸을 보고도 그것이 앞인지 뒤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녀를 넘기면 분명해질까. 책을 펼친다.
<혜성>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
벌써 옷에 와인을 흘렸고 그 자리에 냅킨을 덮어놓았다. p16
일상의 언어가 기척도 없이 주저앉는 것은 공들여 쌓아온 사건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깊은 자국을 남긴다. 와인은 흘려지기 마련이고 그 자리를 냅킨으로 덮어두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혜성>의 아델이 발화하는 순간 일상의 언어는 절벽으로 옮겨와 그곳을 뛰어내려간다. 사뿐한 걸음으로 수직을 내딛는다. 이 장면들이 당연하게 연결되어 혹시 아침 산책길을 뛰는 것인가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거꾸로 읽는 것이 아니라면 그녀는 절벽을 뛰어내려 가고 있는 것이 맞다. 맨발로 흩날리는 치마, 절벽 끝은 궁금하지 않았다.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하루는 버그도프 백화점 앞을 지나는데 쇼윈도에 맘에 드는 초록색 코드가 걸려 있었어요. 그래서 들어가서 그 코트를 샀어요. 그런데 며칠 지나서 다른 곳에서 처음 코트보다 더 좋은 걸 본 거예요. 그래서 그것도 샀어요. 나중에 옷장 안엔 초록색 코트가 네 벌이나 걸려 있게 됐죠. p21
그녀는 재혼한 남편 필립의 과거를 사람들 앞에 폭로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기대나 각오도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리고는 "필립은 자기가 어쩔 수 없었던 것처럼 말하는데,..."라고 말을 잇는다. 이 말 뒤에는 당연히 '그렇지 않다'라는 부정이 와야 하 것만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내온다. 그래서 아델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어느 날 옷장을 열었을 때 초록색 코트가 네 벌이나 걸려 있는 당혹스러움. 결국 무엇을 더 나았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나의 욕망은 조금도 나아진 적이 없다. 지리함, 한 번에 네 벌의 코트를 입을 수는 없는 그를 그녀는 무심히 바라본다.
폭로가 끝난 후, 둘은 여느 때의 일상을 맞는다. 필립은 '오늘'만 볼 수 있다는 혜성을 바라보기 위해 바깥에 서 있고 아델은 필립에게 집으로 가자며 부른다. 아델은 발을 '헛디디며'집으로 먼저 들어간다. 모든 비극은 오늘 시작하고, 모든 행복은 오늘 끝난다. 내일이 시작되면, 그들은 여전히 맞을 수밖에 없는 오늘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까. 오늘 앞에서 어젯밤의 모습은 어떻게 떠오를까. 이어서 책의 가장 끝에 실린 <어젯밤>을 읽는다.
'어젯밤'은 완전하다. 어떤 신이 와도 <어젯밤>을 '어제' 아닌 곳에 놓을 수 없다.
그럼, 행복한 나날들을 위하여. 그녀가 말했다. 그러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무서운 미소였다. 미소에 반대되는 게 있다면 바로 그거였다. 184p
월터는 안감힘을 쓰며 앉아있다. 행복을 들킬 수 없고 슬픔에 취할 수 없다. 아내와 보내는 마지막 저녁식사가 될 것이다. 월터는 아내가 원하는 죽음을 도와주기로 한다. "행복한 나날들을 위하여."라는 말은 역시 평소에 쓰이는 말이지만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발화해도 괜찮은 말일까. 위치를 배반하는 단어들이 소설의 간극을 벌리고 일상을 으스러뜨린다. 그녀는 자신에게 없을 '나날들'이라는 말을 살아갈 사람에게 건넨다. 그녀는 정말 그의 앞으로 '행복한 나날들'을 위해 건배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월터가 숨기고 싶었던 기쁨, 수잔나를 부른 자리에서 '행복한 나날들'을 빌고 있다. 그녀는 둘의 관계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두 사람의 들리지 않는 진동을 두드린다. 예고 없이 떨어지는 단어의 폭격을 뚫고 지나면 무심히 던진 보통의 인사가 물 한가운데 떨어져 비가 된다. 주변이 어두워진다.
그는 접시를 꺼낸 다음 마른 수건으로 덮었다. 그렇게 하니 더 끔찍했다. 접시를 내려놓고 주사기를 집어 여러 가지로 손에 쥐어보았다. 결국 거의 다리 뒤로 감추는 모양새가 되었다. 192p
저녁식사가 끝난 후, 월터 부부와 수잔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월터는 앞의 소설 <혜성>에서 처럼 '자국'을 덮는 일은 반복한다. 덮는 것이야말로 자국의 명징한 해설. 덮어서 더 끔찍한 것은 덮은 것으로 인해 모양이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른 수건은 주사기만을 덮는 것이 아니다. 용액을 채운 주사기가 접시에 담겨 냉장고에 들어가 있던 시간을 덮는다. 아니, 그 이전 수잔나를 만나게 되었을 때부터의 아내로부터 변한 마음, 모든 총합이 마침내 주사기 하나로 환한다. 그는 그것을 덮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사기가 고장 나길 바라는 마음은 안쓰럽다. 마음은 힘이 없고 행동은 마침내 주사를 그녀의 팔에 꽂는다.
모두 잘못되었어요. 마리트가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러더니 수잔나를 향해, 아직 여기 있어요?
지금 가려고 했어요. 수잔나가 말했다.
이해할 수가 없어. 월터가 다시 말했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요. 마리트가 흐느꼈다.
미안해. 그가 말했다. 정말 미안해. p198
다음 날, 그녀는 살아서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모두 잘못되었다'는 말을 반복한다. 어젯밤, 아래층에서 월터는 수잔나를 안았다. 그리고 그녀는 '오늘' 출현함으로써 '어젯밤'을 만들었다. 거대하게 출몰한 그녀. 월터는 '미안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안해.'라는 말은 아무에게도 쓰이지 못한다. 월터는 어젯밤의 자신이 되어 '미안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월터 자신도 듣지 못한다. '어젯밤'은 모두의 손을 떠나 완전해졌다. 어떤 신이 오더라도, '어젯밤'을 어제 아닌 곳에 놓을 수 없다.
'어젯밤'의 출현으로 수잔나는 떠났고 수잔나와 만났던 월터 자신도 떠났다. 죽음을 뚫고 온 그녀만 남았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요." 이 말은, 무엇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일까. 자신의 죽음을 놓아 달라는 부탁일까. 혹시 그와의 시작을 다시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닐까. 자신의 죽음이 잘못되어 수잔나를 영영 떠나보낼 수 있었으니, 그녀는 비로소 홀로 남은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신의 왼편
책을 덮는다. 책 읽으려는 사람 왼편에 있는 '어떤 것'을 보는 그녀. 그리고 동시에 입 '다문' 그녀. 집요한 눈동자가 바라보는 것을 읽는 이의 보이지 않는-'과거'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바라볼 뿐'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림이 의도하지 않았던 무엇을 더 오독해 버린 것일까.
소설은 표지의 그녀처럼 '어떤 것'을 끈질기게 바라보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곳에는 언제나 정확히 맞춰지는 것이 있다. 스스로 드러날 수 없었던 거짓이나 덮어 두고 싶었던 진실. 그것은 그녀의 몸처럼 등이나 가슴을 다 꺼내 보여도, 끝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가만히 나의 왼편 허공을 쓰다듬는다. 가만히 '미안해'라고 말해본다.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영원히 올 수 없는 '어젯밤'에게. 그리고 앞으로 마주치게 될 수많은 '어젯밤'에 대한 예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