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문학과지성 시인선 473
송재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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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애하는 것을 거리두는 일에 대해




무엇이 되기 전에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음가'로 수 놓는 시가 있다. 때문에 의미가 나중에야 오는 것을 나무랄 수 없다. 사방에서 보고 되뇌인 후에야 쓰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아끼는 것을 대할 때 간신히 한 발 물러설 수 있는 안감힘이 있는지. 다행히 둘 수 있는 그 짧은 곳을 '거리'라고 하자. '거리' 두고 싶은 시. 이 의미를 안다는 듯 저자는 초엽에 「햇빛은 어딘가 통과하는 게 아름답다」를 놓았다. 햇빛을 길게 읽는다. 그것이 어딘가를 통과하는 '긴 장소'는 어떤 것일까.  



햇빛의 혼잣말을 알아듣는다

불투명한 분홍 창이

내 손 일부이기 때문이다

(중략)

이토록 섬세한 공소(空所)의 햇빛이 키우고,

분홍 스테인드글라스가 가꾸는,

인동초 지문이 

손가락뼈의 고딕을 따라간다


「햇빛은 어딘가 통과하는 게 아름답다」 부분.


햇빛이 창에 내리고, 창을 짚는 손가락이 있고, 창 밖에는 창을 올라타는 인동초가있다. 겨울일 것이다. 그러므로 햇빛 아스라한 정도도 알겠다. 바깥의 인동초와 안쪽의 손가락은 지문으로 만난다. '손가락뼈의 고딕을 따라간다' 부분에서는 숨을 죽이게 된다. 창을 스미는 손가락과 인동초는, 어떤 애니메이션이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로 화해 아주 오래된 건물 한 채를 올릴 것 같기 때문이다. 햇빛이 어딘가 통과하는 것은 통과가 떠올리는 '장소'뿐만이 아니라 예사 시간을 포함해 '역사'에 이른다. 송재학이 천작하는 '예스러움'의 기미가 바로 이거다. 고어와 고문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스며들어 스스로 발화하는 문장의 유별함. 한 번에 읽어내릴 수 없는 특유의 호흡이 여기서 온다. 해서 이 시는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는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수평선의 직선은 표정이 좋다 곧장 아침에 일어나

서 지평선 시렁 위에 이불을 반듯이 개어 쌍희[囍]

자가 보이도록 올렸더니 구름처럼 가볍다 그렇다면

수평선 위에 다락의 속셈도 있겠구나 지난여름에 보

아둔 물웅덩이를 그곳에 옮겼다 어김없이 점심 무렵

여우비가 흩날렸다 수평선의 직선이 구불구불해졌

다 수평선 위로 속이 훤히 보이는 남해의 기차가 오

래 정차해서 눈이 부셨다 수평선이 멀어 이별의 모

서리는 생략되었지만 직선이 파르르 떨린다 일몰이

번지기까지 직선은 짐짓 침묵이다


「수평선이라는 직선」 부분.


유쾌한 것은 예스러움의 정서에 천진한 발상이 이렇게 어울린다는 것이다. 전작을 불러보자. '너가 인편으로 부친 보자기에는 늪의 동쪽만 챙긴 것이 아니다 새털 매듭을 풀자 물 위에 누웠던 항천 하늘도 한 웅큼, ' 늪의 내간체를 얻다 부분. (언니가 여동생에게 보내는 내간체의 느낌을 살린 시에서 시인은, 아니 화자는 완전히 '언니'에 이른다)보자기에 '늪의 동쪽'을 챙겼다거나 새털 매듭을 풀자 '하늘이 한 웅큼' 나왔다는 천진한 부분은 딱딱한 문체와 극으로 어울린다. 지난여름에 보아둔 '물웅덩이'를 그곳에 '옮겼다'는 구절에는 '~은 ~다'는 단순한 구조에서 생동감이 더한다.


비를 피하려고 우산을 만들었다고, 아니 비를 응

시하기 위해 우산이 필요한 산족(傘族)도 있었다 고

대 언어 우산은 얼굴의 물기만 슬쩍 가린 셈이다 언

필칭 비와 눈[目]의 고독한 간격을 위해 우산이 필

요했다 물기 머금은 눈동자의 다른 이름인 우산이라

는 여린 글자는 비가 숭숭 새기도 하거니와 경사면

을 집적거리는 빗물을 어쩌지 못한다 아랫도리가 심

하게 젖어버리는 우산은 그야말로 나긋나긋한 물건

이다 왜 비에는 응시가 필요했을까 빗방울을 통해

거미줄을 알게 되었다는 우연도 있지만 대체로 비

에 젖은 것은 번지니까 비의 화석은 먼 우레의 핏방

울처럼 남겨져서 석기시대의 사료(史料)를 대신했다

비의 빗장을 뽑은 후 우산 그늘이 생겼다는 반성처

럼 오늘 비를 대신해서 '우산'이라는 기록을 남긴다

우산에게 들킨 비, 비에 들킨 우산의 말들은 교감 중

이다


「우산」 전문.


손잡이가 있고, 팡 하고 펼쳐지는 우산보다 더 현물일 수 없는 '우산'이 여기 있다. 이 시는 우산의 탄생같다. 나중에 비를 좀 맞게 되더라도 글자가 더 실체가 되는 순간을 믿어야겠다. 비로부터 시작된 물건이었을 우산에 대한 탐사는 '비를 응시하기 위해' 우산이 필요했으리라는 '우'산족의 이야기를 전하며 시작한다. '눈[目]의 고독한 간격을 위해 우산이 필요했다'는, 글자의 뜻을 만든 마음을 올리고 글자의 생김에 침전한 부분은 우산의 어디를 이루는 것일까. 메기고 받는 문장에서 의외로 빛나는 부분은 또 이런 것이다. '대체로 비에 젖은 것은 번지니까' 욕심 없이 평범하게 풀어버리는 순간. 제 힘으로 얼레를 푸는 연처럼, 시는 멀리 날아간다. 


시인은 시간의 눈금을 세기 위해 '석기시대', '구석기'등의 실제 사용되는 연표를 사용한다. 긴 시간을 더듬었다는 뜻으로 이해해얄지만, 셈했던 그 시기가 '진짜'인듯 매기는 부분에서 슬몃 웃음이 가는 것도 사실. 어울리지 않는 단어로 애써 조상한 마음을 더 읽는다. '비'와 '응시' 그리고 '우산'으로 이어지는 회로에서 마지막은 약간 아쉽다. 송재학의 시 대부분에서 오는 감정이다. 아쉬운 마무리. 어쩌면 아름다움이 의미 그 자체인 지경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찾는 것은 무의미가 되기 때문일지도.


그런가 하면 이렇게 긴 문장에서도 엉키지 않고 '결빙음'이 '청유형 거울'을 끌어오는 힘이란 여간하지 않다. '결빙음은 자문자답, 얼음덩어리 저수지를 통째로 끄/ 집어내어 읽으시라는, 꽝꽝 얼어붙은 갑오년 달성판/ 방각본을 삼동 내내 읽으시라는 청유형 거울이다' 겨울 저수지가 얼면서 울부짖는 소리는 군담소설과 다를 바 없다」부분.


『검은색』은 다른 색을 흡수하고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 그림자, 다른 것을 통과하고도 남는 색이다. 제목을 이리 단 것은 자신을 어쩌지 말아달라는 SOS요청인가. 검은색을 대하는 마음으로 거리를 지키며 더욱 읽는 대는 것이 이 제목에 대한 대답이 될 것 같다. 물러서고 싶은 한 걸음의 거리에는 '빙의'라고 해도 믿을 만큼 지나간 옛 정서를 살려내는 말씨가 있고, 이 시집에서만 생생해 대하기 어려운 살아있으며-동시에 죽은 기이가 있다. 등등을 찾아내지 못한 아쉬운 글은 저수지를 싣고 가는 밤의 트럭」으로 닫는다. '5톤 트럭에 세상의 짐을 다 싣고도 여유롭다고 생각한 건 저녁 식사 때의 반주 탓이겠지'로 입을 떼는 어쩌면 비극의 순간, 혹은 꿈이라고 믿고 싶은 위험한 운행이다. 송재학은 그저 저수지를 지나가는 트럭의 풍경에서도 '생명의 서사'를 발견한다. '틀림없이 모서리가 약간 젖었을 짐 속의 모든 생명도 속도에 의해 순해진다/ 별빛을 기준으로 어딘가 멀어진다는 것의 순수,/ 새벽이면 가장 밝은 별 아래쪽에 저수지의 날것들을 부릴 예정이다' 저수지를 싣고 가는 밤의 트럭」부분. 







아침도 겨울이라 작년에 썼던 리뷰를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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