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맥주를 먹다가 반쯤 쏟았습니다. 자는 곳 경계를 짓는 책담 일부가 젖었고, 아끼는 것을 곁에 두었기 때문에 순서 없이 읽는 책들이 공평하게 젖었습니다. 그 중에는 성경도 있어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가장 밑에 층에 놓았던 것이 화근이 된 것일까, 두 손으로 펼쳐 놓았고 지금은 가장 윗층으로 피해 있습니다. 펼쳐 들었던 곳은 시편이었습니다. '행복하여라!' 무릎으로 맥주를 닦느라 휴지를 많이 썼고, 늦게 들어온 동생은 수북한 휴지를 보며 혹시 감기가 걸린 것 아니냐 걱정했습니다. 제가 옮긴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겠죠.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일을 만들어 한 시간쯤 허둥거렸습니다. 


그 와중에 노트북을 신경쓰지 못했던 것은 맥주가 다행히(?) 책쪽으로 기울었던 까닭이고, 노트북에서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기 때문입니다. 책상이 쓰러졌는데, 그래서 책상에서 떨어졌는데도(!) 노트북은 그 잔잔한 노래를 계속 트는 겁니다.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책상이 아니라 마음이 무너진듯 애지중이 받을었을텐데요. 지켜보고만 있는 마음의 책감에 아랑곳없이 노트북은 침착하게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나는 좌식 책상을 바로하고 노트북을 올려놓았습니다. 맥주는 책이 먹었는데, 이미 취한 기분입니다. 


그런데, 왜 맥주는 쓰러졌던 걸까요? 겨울은 춥고, 내일은 월요일이고, 우울한 손가락으로 밀쳤던 것은 아닐겁니다. 나는 좌식 책상을 잠깐 들어서 옮기려고 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했거든요. 읽고 있는 책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라캉과 푸코를 읽는 책인데, 900페이지가 넘는다는 말로는 그 부피가 와닿지 않는것 같았거든요. 그것을 담으려다보니 프레임에 나의 생활이 끼지 않겠어요. 나는 치우고 싶었습니다. 다 먹은 물병과 이제 다 먹어가는 물병이 이 책의 두께 너머로 보였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는 포즈와 함께 책상이 무너졌고, 책상 아래 있던 맥주가 쓰러졌고, 주위에 책이 젖었습니다. 


사진은 없습니다. 아름답게 편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겠지요. 책을 읽고 쓰지 못해 두께를 보임으로써 읽기의 괴로움을 보이며 자랑아닌 자랑으로 지금을 면피하는 얄팍한 마음을, 보여주려고 했겠지요. '행복하여라!' 행복하려고 했을까요? 다행스럽게 책이 젖어 젖은 책들의 페이지를 한 구절씩은 보게 되었고, 그것으로 읽기를 다한 주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02로 시작하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제 이름을 확인했고, 저는 그럴 수 밖에 없으므로 그렇다고 했습니다. 알라딘이라고 했습니다. <야전과 영원>도서 리뷰가 아직 올라오지 않았으므로 전화를 드린다고 입을 뗐습니다. 신간 평가단을 혹시 그만 두실 것인지,,하고 끝을 흐렸습니다. 저는 속이 뜨끔하여 읽었으나, 아직 적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좀 더 주신다면 적을 수 있을거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31일까지 괜찮으시겠냐고 상냥하게 물었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가능하다고 했으나 정말로 가능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시간을 달려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오늘은 맥주를 쏟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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