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강성은
아름다운 북유럽 가구들처럼
겨울에 더 빛나는 흰 자작나무처럼
낡은 아파트에서 담요를 두른 맨발의
가난한 음악가처럼
가구를 이리저리 옮겨보는
겨울밤 복도에는 발 없는 유령들이 걸어 다니고
차갑게 식은 욕조 속에서 나는
타일 위에 가고 싶은 나라의 지도를 그렸다
빛이 통과하는 물속처럼
겨울 공원 벤치처럼
어디에도 없는
어디엔가 있을 것만 같은
지도위로 매일 눈은 내리고
강성은, 『단지 조금 이상한』, 문학과지성사, 2013.
"예를 들면 우리가 일상생활을 할때.
속옷을 다른것으로 갈아입을 때 그 즉시는 촉각을 느끼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옷이 피부에 닿고 있다는 느낌이 없어지는 경험이 있다."
이것은 '역치'와 '감각의 순응'에 대한 설명이다.
나는 이 설명이 끝난 후 다시 역치와, 감각의 순응을 말하고 싶고, 마지막으로 다시 역치에 대해 말하고 싶다.
"지도위로 매일 눈이 내리고" 로 끝나는 마지막이다. 하지만 "눈이 내리고"는 그 다음 문장을 부른다. 그 다음에 올 나의 자세, 그 다음의 날씨, 그 다음의 장소 같은 것을 말이다. 그 다음에 올 어떤 것은 "눈이 내린다"를 어쩌지 못하지만, 눈이 내린다 역시 그 다음에 올 어떤 말을 건드릴 수 없다. 그러니까 "내리고"라는 말만으로도 시인이 부르지 못한 말은 대등하게 서 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런 날씨에 맞서있는 모습인 것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도 옷은 여전히 옷으로, 나의 살은 여전히 나의 것으로 있다. 옷은 살이 될 수 없으므로, 나의 감각은 순응하지 않고 외부를 느껴야만 한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느낌에서 온다. 살아 있음으로 외부를 느낄 수 있는 힘을 저항의 가장 작은 형태라고 말하고 싶다.
그곳에는 "겨울밤 복도에는 발 없는 유령들이 걸어"다니며 "차갑게 식은 욕조 속에서 나는" 가고 싶은 나라의 지도를 그린다. 나는 "차갑게 식은 욕조 속에"있지만 가고 싶은 나라의 지도를 타일에 그릴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곁에서 산다. 변하지 않은 채로, 정확하게 기억의 피부에 덮인 채로."
라
고 적었던 <아우슈비츠의 여자들>을 읽는다. 이 책은 "단지 조금"이지만 내가 있는 이곳이 끊임없이 "이상"하다고
여기는 '역치가 있어야 함을 알린다. 감각의 순응을 넘어서는 역치가 늘 필요한 이유는 나는 단지 나라는 이름의 개인인 것만 아니라
아니라. 인류라는 거대한 기억으로 끊임없이 밀려오는 역치로, 아픈 것으로, 살아 있음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일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의 제목 인테리어는
내가 조금 더 잘-살기 위한 장소를 마련하고 가꾸는 행위로 읽을 수 있다. "어디에도 없는/ 어디엔가 있을 것만 같은" 내일을
그리며 잠에 드는 희망 또한 인테리어 아니었을까. 발 없는 유령들이 머물 수 있는 장소는 빼앗기고 부서졌다. 그들이 있던 날은
활자로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나아서도 그 곁에서 산다는 독백, 정확하게 기억의 피부에 덮인 채로
살아가야 한다는 독백에 나는. 그들이 머물러야 할 기억의 장소를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있고 싶은 장소는 "어디에도
없는/ 어디엔가 있을 것만 같은" 나같은 아무개의 머릿속, 인류라는 거대한 기억의 일부 때문이다. 그리고 나 역시,
내가 가진 희망을 나와 다른 누군가가 함께 해줄 거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