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희 옆집 살아


성동혁


 난 너의 옆집에 살아Ⅰ소년이 되어서도 이사를 가지 않

는 난 너의 옆집 살아Ⅰ너의 집에 신문이 쌓이면 복도를

천천히 걷고Ⅰ베란다에 서서 빈 새장을 바라보며Ⅰ새장

을 허물고 사라진 십자매를 기다리는 난Ⅰ너의 옆집 살

Ⅰ우린 종종 같은 버튼에 손가락을 올려놓고Ⅰ같은 소

독을 하고 같은 고지서를 받고 같은 택배를 찾으며 ll 안

개가 가로등을 끄며 사라지는 아침Ⅰ식탁에 앉아 처음으

로 전등을 켜는 나는 너의 옆집에 살아Ⅰ이사를 오며 잃

어버린 스웨터를 찾는 너의Ⅰ냉장고 문을 열어 두고 물

을 마시는 너의 옆집 살아Ⅰ내가 옆집에 사는지 모르는

너의Ⅰ불가사리처럼 움직이는 별이 필요한 너의 옆집 살

Ⅰ옆집엔 노래하는 영웅이 있고 자전거를 복도에 세워

두는 소년이 있고 국경일엔 태극기를 올리는 착한 어린이

가 있어 ll 십자매가 날개를 접고 돌아와 다시 알을 품을

수 있도록Ⅰ알에 묻은 깃털을 떼어 내지 않는Ⅰ비가 오는

날에도 창문을 열어 두는 나는 너의 옆집에 살아Ⅰ복도

끝에서 더 긴 복도를 만들며Ⅰ가끔 난간 위에서 흔들리는

코알라처럼Ⅰ난 너의 옆집 살아Ⅰ바다의 지붕을 나무에

새기며Ⅰ커튼을 걷으면 밀려오는 나쁜 나뭇잎을 먹어 치

우며Ⅰ같은 난간에 매달려 예민한 기류에도 함께 흔들리

는 난Ⅰ난 너희 옆집 살아




성동혁, 『6』, 민음사. 2014.





나와 너만큼 반복되는 '살아'라는 말. '살아'보다 먼저 오고 싶은 '나'라는 말. 

내가 사는 것 만큼이나 자주 곁에 두고 싶은 '너'라는 이름.

마음에 거리를 둘 수 있어야 오래 지켜볼 수 있다는 노래에 

나는 너의 옆(집)에 머물고, 마지막에 가서 너는 비로소 '너희'가 된다.



독자들을 위해 썼다고 한다.

















'성동혁'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6'이라는 시집이 나오고 '6'이라는 시집을 검색하면 '성동혁'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저 네모난 테두리가 빛나서 당신 눈이나 손가락이 비친다고 하면 쉽게 믿지 않겠지만. 그치만 정말이예요. 가까운 서점에 가면 꼭 만져보세요. 이 커버 안으로 은색의 눈부신 양장이 얼마나 고요한지. 왜 아름다운 것 앞에선 숨을 크게 참고 싶어지는지. 왜 처음 본 시에게서 나를 이해받는 것 같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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