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식객 Ⅱ 1 : 그리움을 맛보다 허영만 식객 Ⅱ 1
허영만 지음 / 시루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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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기억을 푸는 얼레-식객2_그리움을 맛보다


 

내게 주방은 머물기 약간 불편한 장소다. '요리앞에서 서툰 마음재료와 도구를 가져오는 것도 조금은 어색하다공들여서 무엇을 만들거나 대접하고 싶은 마음은 아직도 어린 싹이다불 꺼진 곳으로 퇴근그리고 한잠 자면 다시 맞을 아침이 사이에 요리로 번잡스럽게 시간을 볶을 만한 여유가 없다그렇다고 특별히 맛있는 집을 찾는 눈이 밝아진 것도 아니다입맛이 변하거나 잊은 것은 아닐텐데밥 한 공기와 찬 몇 개를 꺼내는 것에 만족하는 저녁이다배고픔을 가시게 하는 그저 섭취로서의 음식내게 '요리'는 너무나 멀다.

 

먹는 것만큼 세상은 넓어진다고 했던가한 번의 식사로 견문을 확장했다고 할 수는 없을 테지만 그 한 번이 다시없을 만남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횟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태국의 길거리에서 먹었던 팟타야설명할 수 없는 향신료 냄새와 약간 짠 듯한 간은 더웠던 그날을 곧바로 데려가는 걸 보면 말이다땀을 뻘뻘 흘리며 다 날아가는 가쓰오부시에 웃고 오꼬노미야끼를 볶던 일본의 작은 밥집이 이렇게 선하다어떤 견고한 기억이라도 시간에 무력하게 사라지지만 그날의 맛은 한 치의 상함도 없이 나를 부른다.

 

그러나 들켜버렸네자리가 몇 개 없는 소박한 가게이쑤시개를 물고 있는 수수께끼 주인에게 그냥 밥집이라는 수수한 간판에 나의 허름한 저녁을 혼났다나는 기억할 만한 저녁을 차리고 있는지나중에 떠올릴 것은 허기와허기가 가셨다는 건조한 사실만 남는 건 아닐지잘 채려 먹어라라는 고향의 당부와 함께 몰려와 한참을 혼났다.

 

<그냥가게>에는 그 가게 이름만큼이나 덧붙일 것 없는 이름 그대로의 요리를 만날 수 있다대구내장젓은 '대구'부터 시작이다그의 몸통과 아가미와 내장을 손질하고 턱턱 두들기는 장면이 지나가는데. 식객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음식으로 어떤 모양을 갖기 전 원형을 생각해 보게 하는데 있다. 바다 속대구꼬리를 흔들며 바다를 지났을 큰 입 같은 것을 말이다.

 

오늘 손님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늙은 아내와 가족이다늙은 남편은 대구 내장젓을 함께 먹으며 그것을 직접 담그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온전한 아내를 만나게 된다맛이 기억을 붙드는 힘은 유달리 세서 그날과 똑같은 맛을 보게 되면 순식간에 그 시절로 데려간다. 온 가족이 놀라는 순간……. 그래서 그리움을 맛보다라는 제목은 전혀 감상적이거나 허황된 것이 아니다집을 생각할 때 내 마음 한켠이 편해지는 것은 내가 아주 어릴 때내 안에 살고 있는 어린 나의 기억이 그때를 여전히 호출하고 있기 때문 아닌가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어떤 것보다 황홀하고 정교하게 새겨지는 각인일 것이다. 식객은 그것을 가장 잘 푸는 얼레다. 만났던 기억과 몰랐던 기억에 줄을 당긴다. 만난김에 저녁은 찌개를 한소끔 끌여야겠다. 저 안쪽부터 뜨듯해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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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4-07-27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에서 밥 냄새가 나네. 봄밤님이 지으셨나 봄밥님이 지으셨나.

봄밤 2014-07-27 11:01   좋아요 0 | URL
어서오세요 봄밥집입니다. 보통은 죽을 많이 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