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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 ㅣ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6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어떤 연구를 '연재'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것은 연구의 연재가 쉬운지 혹은 어려운지를 묻는 것이 아니다. 전체적으로는 완성되지 않고 부분적으로는 완성인 연구를 공개 할 수 있는 '결백한 믿음'이 있는지 묻는 것이다. 연구자가 자신이 해야 할 말과 할 수 있는 말 사이를 얼마나 상세하게 눈금 해야 가능한 일인지 짐작이 어렵다. 연재를 올리는 부분은 ‘완성된 연구’여야 하며 이후의 연구와 맞물려야 한다. 하여, 발간된 책은 715쪽이다. 일반 소설이 200페이지 내외인 것을 떠올리면 세 권 분량의 소설의 완성이다.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두 손으로도 쉽지 않다.
연재란 책이 되기 전의 상태를 미리 보는 점이 제일 장점이었지만 챙겨 보지 않았다. 만질 수 없는 글씨와 눈 맞추는 것이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 개 에피소드는 기억에 남았는데, 대체 책과 무슨 상관인지 묻고 싶은 대목뿐이었다. 이 책은18세기 한중 지식인, 엄성과 홍대용부터 박제가와 기윤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이 언어와 거리의 불가능성을 뛰어넘어 했던 소통의 재현이다. 이들의 대화는 죽음 이후에도 대를 잇고, 친구의 친구를 소개하며 진실하고 절절하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가기도 전에 이미 저자의 '자료를 대하는 태도'에 몇 번이나 한숨을 쉬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연재를 보고 남는 몇 개의 장면. 정민 선생이 대여한 자료를 복사하고 딱풀로 붙여 제본집을 만드는 풍경. 만드는 게 즐겁고 나중에는 요령도 생겨서 한 권 만드는 것이 금방이었다는 말씀. 딱풀을 곽 째로 사서 놓고 써도 금새 닳았다는 이야기가 책을 보기 전에 있었다.
자료를 읽을 수 있도록 가공하는 일은 길고 무료하다. 그것은 길고 성과도 없고 재미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초 작업을 진지하고 기쁘게 대하는 얼굴이 보였다. 프린트 물이 탑으로 쌓였던 지저분한 책상. 모으기는 쉬워도 흐트러지기 쉬웠던. 자료 정리를 낮게 여기고 힘겨워 했던 언젠가가 떠올라 부끄러웠다. 2단으로 인쇄해 더 많이, 더 작게 박힌 글씨들이 우르르 쏟아지면서 부끄러웠다. 그것은 왜 어려운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어떤 그림도 그리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는 염려와 고통에 지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청조학을 연구하던 후지쓰카는 조선이 청조학으로 가는 ‘우주정거장’적인 공간적 위치로 여겼다고 한다. 그는 경성대학 재직시 평생을 걸쳐 자료를 수집했고 그 결과 정년퇴임 후 일본으로 떠날 때 기차 몇 량에 청대 원간본과 수만 권과 조선 전적 수천 권을 실었다고 한다. 그리고 후에 그 대부분 미국의 도쿄 폭격으로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자신 이후 다른 세대의 연구로 밝혀질 수 있는 일에 일생을 놓은 셈이고 그 대부분이 먼지가 되었다. 나는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문예공화국을 너무 쉽게 무릎 위에서 넘겼고, 그마저도 무거워서 잠시 덮고 있었다. 부제가 들어왔다.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 그 밑에 저자 이름 '정민'. 미국에 있는 중국저서를 보관한 도서관에서 일본인의 컬렉션을 발굴한 한국인의 학자가 한중 지식인의 교류의 장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후지쓰카가 어떤 말씀이라도 남겼는가, 지속해 연구해 달라고. 그런 전언은 '없었다'. 다만 어떤 이가 묵묵히 했던 일을 후대의 사람이 밝은 눈으로 발견한 일이 있었을 뿐이었다. 18세기, 이국의 사람들이 서신에 기대 고된 거리를 걸어가 서로를 알아보며 "바다가 마르고 바위가 문드러져도, 오늘을 잊지는 말자"던 일은 과연 뭉클했거니와, 세대와 국적을 건너 이룩될 어떤 연구의 한 장을 보았다는 기쁨에 또 뭉클해졌다. “옛날엔 내 눈앞에/오늘은 꿈속에만.”588p 시를 읊어 서로를 그린 아득함을 한 입도 떼지 못했으나, 그러나 이것으로도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