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는 40대 남성으로 단정한 머리에 이마가 조금 훤하다 싶었고, 연갈색의 셔츠를 입고 있었다. 배경은 바람이 날아간 하늘색.
테두리가 흰색으로 선명한 증명사진이 지하철 바닥에 떨어져 있다. 건너편에 앉자마자 보였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내가 탔을 때부터 내릴 때까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바닥에 얇게 누운 그의 인상착의를 빗눈으로 알아 보았다. 누가 밟을까봐 조마조마 하면서 지켜봤다. 당신은 그럴거면 네가 사진을 맡아두지 그랬어 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이 질문에서 나는 솔직해져야 한다.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열네 정거장을 오면서 해가 옅어지고 하늘이 무거워지는 것을 보면서 그가 날아가거나 뒤집어지는 일 없는지를 주의깊게 지켜보았다. 그는 과연 40대 남자답게 얼굴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자리를 뜨는 일 없이 눈도 감지 않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가 천장과 완벽한 초점을 이루고 있는 것을 조금은 어려운 각도로 지켜보고 있던 내가 있었단 걸 잊으면 안된다. 그는 하필이면 내리는 문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다. 조바심이 더했다. 삼십센치만 움직여도 그는 지하철 밖으로 엎어질 수 있었다. 그가 위험에 처한 상황을 다 알면서도 왜 데려오지 않았느냐는 원성은, 받아들일 수 있다. 나는 한 겹 더 솔직해질 수 밖에.
'나는 그것을 주워서 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40대 남성, 인상은 아직 확인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을 간직하자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다가 나는 정말 그 사람을 알아버리게 될지도 몰랐다. 책상 한켠에 그를 놓는 순간, 나는 그의 이름을 알 것 같았고 사는 곳과 가족과 딸의 이름, 그 지하철 바닥에 누워있게 된 사연을 줄줄 읊게 될 것 같았다. '나는 언제 나를 버리고 떠났나,' 는 그가 벌이는 꽁트에 관객 1,2,3으로 참여해야 했다. 정말이지 그런건 하고 싶지 않다. 아는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천장을 보고 있는 그는 원래 몸뚱아리의 그 일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실제 그를 아는 사람에게 묻는다면 '잘 나왔네'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는 얼굴일지 모르지만 생판 모르는 이에게 묻는다면 그가 두 명으로 분리되는 일은 너무도 가능했다.
그러는 와중에, 이런 엄살에, '응응' 적당하지만 조금은 귀찮은 대답을 하면서 당신은 말을 아낀다. 너는 당연히 그를 책상 모서리에도 받아들일 수 있는 힘도 없었거니와 언젠가, 언제라도, 그를 버릴 것이 자명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밟을것은 염려한 것은 위선이었고 네가 진실로 꺼려 했던 점은 네 손으로 버리는게 점이었다. 이점이 그가 누워있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이유다. 그러니 이 무슨 앵앵거리는 소린가. 걱정했다는 얘기는 하나마나였다. 흔치 않은 감수성을 갖고 있다고 믿는 너였겠지만, 그런 걱정 그 정도의 걱정은 그 칸에 탔던 모두가 했던 것이었다. 그가 뒤집어지지 않은 이유는 그 칸에 앉거나 서있던 32명의 소망이 무겁게 그를 눌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ok.
그런데 이것을 아는가. 천장을 보던 남자는 네가 옅어지는 낮을 보며 입을 벌리고 있을 때, 의자 바닥을 쳐다 보았고 네가 프로필을 밀어올리며 새로고침을 하고 있을 때, 고요한 무릎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네가 눈을 감고 사진 속 남자를 걱정하고 있을 때 그는 각질이 올라온 7센치 힐의 뒤꿈치를 애처로워 했다는 것을. 그러면서 네가 있는 쪽을 향해 조용히 혀를 찼다. 벌써 두 번째 하는 얘기하지만, 네가 하는 걱정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너는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내리는 곳을 두 정거장 앞두고 있다. 나는 내리는 곳이 왼쪽이면 그를 주워가리라, 도박같은 약속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행인지, 그럴리 없었는지 문은 오른쪽에서 열렸다. 다행이야 라는 속삭임을 숨긴채 천장을 바라보는 40대 남성에게 빗금으로 인사를 전했다. 나는 안전한 어둠 속으로 나와 둥그런 어둠이 되었다. 누워 있는 남자는 천장을 응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만약, 혹시라도, 네가 나를 주워가면 테두리 밖으로 손을 꺼내야 할지도 몰라서 나는 이마에 땀이 다 흘렀다. 네가 지하철을 탔던 열네 정거장 내내.'
밤 아홉시, 외선순환열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