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21
찰스 디킨스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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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공과 깃털-위대한 유산




그러니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만큼 옳고 그름을 생각해보기도 전에 무슨 정의처럼 여겨지는 말이 또 있을까. 문장대로,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가? 그 자리에 가면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가. 구태여 대답할 필요를 느낄 수 없을만큼 피곤한 질문이다. 사람을 한낱 물건보다 못한것으로 보는 대사라는 생각피사의 사탑에서 떨어져 내렸던 쇠공과 깃털은 꼭대기에 있었을 때와 같이 바닥에 닿은 후에도 여전히 쇠공과 깃털이었음을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위치에서 '떨어진다'는 것을 '올라가는 것'만큼 근심한다. 지위, 또는 학력, 근력, 재물같은 것이 변동을 전전긍긍한다. 내 주변을 이루는 것이 나와 동일시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변하지 않기에, 이런 걱정은 쇠공이 깃털로 변하는 것과(날아가 버리기라도 할까봐?) 깃털이 쇠공으로 바뀌어 바닥에 박히는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다사람들아 여기 조를 보아라신사는 빳빳한 와이셔츠의 깃과 근사한 커프스로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나를 거울삼아 상대를 비추고 근심하는 마음가짐당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내 한 발을 뒤로 물러나는 사려 깊은 몸짓들이것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J자와 O자를 만나게 되어 자신의 이름 ''를 발음하는 것 이상의 지식이 왜 필요한지 궁금해진다물론 조가 그 밖에 울리는 철자의 화음을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조 스스로에게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조가 둘러싼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말이다.

 

<위대한 유산>의 주인공 핍은 가엽다. 부모와 형제를 영영 잃어버림으로써 자신이 그려야 할, '어떤 나'를 비춰 볼 대한 청사진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뻥 뚫린 풍경. 때문에 오리가 태어나 처음 만나는 대상을 어미로 생각하는 것처럼 핍 역시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두 사람을 평생 지울 수 없게 되는데매그위치 그리고 미스 해비섬 옆에 있던 쌀쌀한 에스텔라가 그렇다. 핍은 이들 사이에 있을 어떤 친연성도 알지 못하고 상상도 할 수 없으면서 쉽게 볼 수 있는 겉만 믿는다. 이들이 벌인 욕망의 충돌로 부의 자리를 얻지만 허무하게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한다. 그는 참으로 살아내는 수밖에 지금을 지나갈 방법이 없는 삶의 속성을 보여준다. 

 

그가 바랬던것은 쇠공이 깃털이 되는 것과 같은 일종의 '마법'이었다누군가에 의해 자신이 신사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 믿음을 설명하자면 그렇다그러나 어느 대장간의 쇠공은 다른 쇠를 몇 천 번 때려 빛나는 쟁기를 만든다쇠공이 변화를 꾀할 수 있는 방법은 밖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 스스로 해보는 것. 그래서 부딪혀 단단해지고, 상대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 말이다. 핍은 자신이 가졌던 것을 한순간에 잃는 것으로 이 마음가짐을 비로소 가질 수 있었고 자신이 닮고자했던 모습이 자신이 벗어나려고 했던 풍경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초라하고 낡은 대장간에서 망치를 때리는 '조'를 재발견하는 순간풍경은 같으되, 이편으로 들어가서 저편으로 나오는 놀라운 마법이다.

읽기 전에도읽은 후에도 영원히 지켜질 이 위대한 진공에서 쇠공과 깃털은 천천히 같은 속도로 바닥에 닿는다. 이 둘은 결코 뒤바뀌는 일이 없다. 안심으로 둘을 쓰다듬는다. 신사란 무엇인가, 그저 깃털은 깃털을, 쇠공은 쇠공을, 그리고 나는 나를 단련해나가는 것이다. *




*그래, 가는 것이다 우리의 피는/아직 어둡지 않다

김충규, 「가는 것이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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