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어머니의 사진들을 들여다보던 어느 저녁, 나는 친구들의 부탁으로 펠리니의 영화 ‘카사노바‘
를 보러 갔다. 나는 우울했고 영화는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그런데 카사노바가 자동 인형인 젊은여인과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마치 마약을 먹은 것처럼 그 장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자동인형의 동작을 세세한 부분까지 하나도 빼 놓지 않고 쳐다보면서 나는 거의 미칠 지경이되었다. 너무도 귀엽고 부드러운 그 자동인형의 여인은 마치 드레스 안에 거의 신체가 남아 있지않은 것처럼 (only trifling body under the flattened gown). 금방이라도 부서지고 깨어질 것만 같아 보였다. 주름진 흰 비단 장갑과 모자에 달린 깃털 장식은 우스꽝스러웠지만 그것마저도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의 얼굴은 화장을 하고 있었지만 개성적이고 순진무구했다. 거의 살아있지않은 듯한. 그런데도 카사노바가 이끄는 대로 몸을 다 맡기며 춤을 추는 그 인형의 몸짓은 너무도 부드럽고 헌신적인 것이어서 마치 ‘선한 마음‘으로 가득한 천사의 몸짓인 것만 같았다. 그러자나는 갑자기 ‘사진‘이 무엇인지를 자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춤추는 자동인형에게서 보고 느끼는 그 모든 것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진 (어머니 사진)에서도 보았던 바로 그것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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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 한 달 여행 - LA에서 마이애미를 거쳐 뉴욕까지
김춘석 지음 / 스타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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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너무 넓고 큰 나라라, 여행을 갈 마음을 엄두를 내는 것도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내가 가장 많이 접한 문화가 미국 문화라 언젠가 기회만 되면 과감히 이 넓은 나라를 조금이라도 경험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2023년 1월 말부터 여행 계획을 세워, 5월 1일부터 6월 3일까지 34일간 미국 남부를 여행하고 기록을 남겼다. 생생한 경험이 살아있는 글과 사진을 보니, 막연했던 낭만적인 생각들은 뒤로 가고 여행의 실감이 전면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무엇을 하기 전에, 다른 이의 생생한 경험담, 실패과 성공의 에피소드들은 피와 살이 된다. 모르면 모르는 만큼, 지불해야 할 비용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미국 남부를 보다 가까이 느끼고,여행 지도를 머리 속에 그려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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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수업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리즈
김사업 지음 / 불광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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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이 자유로운 초월성, 이것을 불성이라 한다. 39p

낯선 땅의 높은 봉우리에 서서 생전 처음 경험하는 신비로운 바람 맞는다. 지인으로부터 그 바람에 대해 알려달라는 간곡한 부탁까지 받았다. 그 바람이 어떤 것인지 알려는 일념으로 바람을 맞을 것이다. 당신의 몸에도 바람뿐이고 당신의 마음에도 바람뿐일 것이다. 당신은 바람과 하나가 된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신비로운 바람을 맞듯이 이 생각 저 생각 하지말고 그냥 눈앞의 일을 직시해보라. 화가나는 일이 있다면, ‘이런 이유로 화를 낼 수밖에 없다‘ 하면서 화를 내는 자신의 정당성을 되뇌지 말라. 화를 내는 것에 대해 자꾸 설명하거나 이유를 붙이면 화는 정당성을 확보하고, 그럴수록 화의 뿌리는 더 깊어져 끝날 줄을 모른다. 화에서 도피하지도 말라.
화에 대한 어떤 생각도 없이, 이것이 화라는 생각도 없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그것을 만난 것처럼 ‘이것이 무엇일까?‘ 하는 일념으로 그냥 그것과 만나라. 당신 몸에도 마음에도 진정 초면初면의 화뿐일 때, 당신은 맨눈으로 화를 본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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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폰과 미엔투스에 대해서는 모두 잊어버렸다. 논쟁도중단했고, 모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려 했고, 사라지려고 했다. 학생들은 작아졌고 창백해졌으며 지워졌다. 배•를, 손과 발을 움츠렸다. 더 이상 지루하지 않았고, 지루할 수도 없었다.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된글들을 먹고사는 이 유치한 믿음이 공격해 올까 봐 겁에질려 기다리고 있었다. 걱정에 휩싸인 아이들의 얼굴은 어두운 그림자, 허깨비가 되었다. 도대체 어떤 것이 말도 안되게 황당하고 허황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자기들이 그런 건지, 아니면 부정법 대격이 그런 건지, 헛소리쟁이 노교사의 끔찍스러운 신뢰가 그런 건지, 그것조차 알 수 없었다. 현실은 조금씩 몽상의 세계로 바뀌었다. 아! 꿈을 꾸련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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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멜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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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읽기‘는 올해 처음 개설된 3학년 선택과목이었다.
곽의 또래들만 해도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종일 한 교실 한자리에서 꼼짝없이 듣는 수업에 익숙했으므로, 곽이 요즘 고등학생들은 수강 과목의 절반 이상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면 다들 신기해했다. 선택권을 주는 척만 하고 학교가 행정 편의에 맞춰 배정했던 과거와도 달랐다. ‘학생이 주체적으로 진로를 설계해 각자의 적성과 흥미를 계발하도록 수요자 중심의 교육과정을 운영할 것.‘ 그런 문장이 밑줄로 강조된 각종 지침과 사업 안내가 문서함에 끊임없이 하달되었다. 대입 종합 전형에서도 자기주도성,
전공적합성 같은 평가 요소가 부상한 지 오래였다. 학생이 무슨과목을 택했는지에서부터 가늠되는 자질이었다. 있는 꿈도 없는듯 주머니에 쑤셔넣고 문제집을 푸는 게 과거의 입시라면, 없는꿈도 있는 듯 만들어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게 지금의 입시였다.
곽은 경쟁은 여전히 경쟁이며 선택은 기만이 아닌지 의심하기도했다. 그러나 학생 주체가 자신의 결정에 따라 배우고 성장할 가능성이 마련되긴 했다는, 그런 원론적인 차원에서 새 교육정책을얼마간 환영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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