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마지막으로 나는 신분주의와 학교 폭력의 연관성에 대해 언급하고싶다. 우리 사회의 신분주의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가장 날카로운 경고음은 교실에서 나온다. ‘일진‘이 더 이상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아니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교실 내의 위계는 사회의 위계를 닮았다. 가진 게 많은 아이들, 지배문화의 요구에 가장 잘부응하는 아이들이 꼭대기에 있고, ‘자본‘이 가장 부족한 아이들이 밑바닥에 있다. 위에 있는 아이들은 아래 있는 아이들을 괴롭힌다. 별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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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하에서 모욕은 흔히 굴욕의 모습을 띠고 나타난다. 예고없이 실직을 당할 때, 일한 대가가 터무니없이 적을 때, 아무리 절약해도 반지하 셋방을 벗어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굴욕을 느낀다. 하지만이것은 모욕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모욕은 구조가 아니라상호작용 질서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를 해고한 사장도, 월세를 올려달라는 주인집 할머니도 나를 모욕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아니다. 그들은 시장의 법칙에 따라(즉 구조의 담지자로서 구조가 명하는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그들은 매우 예의 바르게, 심지어 미안해하면서자기들의 입장을 전달하지 않았던가? 누구도 나를 모욕하지 않았다면,
내가 느끼는 굴욕감은 전적으로 나 자신의 문제가 된다. 신자유주의의전도사들은 이것을 자존감의 결여 탓으로 돌린다. 그들의 주장은 이런식이다. 실직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이 굴욕으로 느껴진다면, 당신에게 자존감이 부족한 것이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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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적 노동 통제는 신분적 모욕을 새로운 형태의, 더욱 미묘하고 일반화된 모욕으로 대체하였다. 문자 한 통으로 해고를 통보한다든가, 프로페셔널리즘의 이름으로 노예 같은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이대표적이다. 과거에는 모욕이 주로 저학력, 여성, 육체노동자의 몫이었다면, 오늘날에는 모든 노동자, 즉 노동자로서 모든 사람이 모욕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아마도 그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비자로서만의식하려 하며,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은 되도록 잊고 싶어 한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우리는 연대 의식을 느끼는 대신에 소비자로서 겪게될 불편을 먼저 생각한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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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이 죽고 나서 한동안 아버지의 못마땅한 얼굴이 상당히 자상해 보였다. 어머니에게 당신한테는 정말 미안하게 됐어, 하고 말하던 얼굴이 유난히 온화했기 때문에 어린아이였지만 바로 그때의 말까지 작은가슴에 새겨두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 말에 어떻게 대답했는지는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내려고 해도 생각나지 않는 것을 보면 처음부터 기억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만큼 예민하게 아버지를 관찰하는 능력을 갖고 있던 내가 어머니에 대한 주의가 부족했던 것도 참 희한한 일이다. 사람이 자신보다는 쓸데없이남을 알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는 존재라면 나에게 아버지는 어머니보다는 훨씬 남처럼 보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거꾸로 말하자면 어머니는 관찰할 필요도 없을 만큼 나와 친밀했던 것이다. 하여튼 여동생은 죽었다. 그 이후로 나는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외아들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지금의 나는 어머니에게 외아들이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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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게이타로는 주인의 착각에 내심 화가 났다. 하지만 화를 내기 전에 우선 차가운 구렁이라도 손에 쥔 듯한 섬뜩함을 느꼈다. 묘하게 침착한 모습을 보이며 고풍스러운 담배통에서 살담배를 집어내 대통에 채우는 주인의 오해는 게이타로에게 사실인 것과 마찬가지의 불안을 안겨주었다. 주인은 담판에 따르는 일종의 예술처럼 교묘하게 담뱃대를 다루었다. 게이타로는 그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저 모른다고 말하는 것 말고는 상대의 의혹을 풀어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예상한 대로 주인은 쉽사리 담배통을 허리춤에 넣지 않았다. 담뱃대를 통에 넣었다 뺐다 했다. 그때마다 퐁퐁하는 예의 그 소리가 났다. 마침내 게이타로는 어떻게 해서든 그 소리를 물리치고 싶어졌다. - P46

게이타로는 진심으로 자신이 탐정을 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본디 탐정이란 세상의 표면에서 밑으로 기어드는 사회의 잠수부 같은 존재라 그만큼 인간의 불가사의함을 포착하는 직업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입장은 그저 남의 어두운 면을 관찰할 뿐이고 스스로 타락할 위험성은 없어 더욱 괜찮은 일임은 틀림없지만, 애석하게도 그 목적이 이미 죄악의 폭로에 있기 때문에 사전에 남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속셈 위에 성립된 직업이다. 그런 고약한 일을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인간 연구자, 아니 인간의 이상한 장치가 깜깜한 밤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모습을 경탄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다. 이런 것이 게이타로의 주된 뜻이었다. 스나가는 방해하지 않고 들었고, 이렇다 할
비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게이타로에게는 원숙하게 보이면서도 실은 평범한 것으로만 받아들여졌다. 더군다나 자신을 상대해주지 않겠다는 듯이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인 것도 밉살스럽다고 생각하며 헤어졌다. 하지만 닷새도 지나지 않아 다시 스나가의 집에 가고 싶어 밖으로 나와서는 곧장 간다행 전차에 올랐다. - P55

게이타로는 멍하니 사오일을 보냈다. 문득 학창 시절 학교에 초대된 어느 종교가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는 가정에도 사회에도 아무런 불만이 없는 처지였는데도 스스로 중이 된 사람으로, 당시의 사정이 아무리 해도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 그 길로 들어섰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아무리 쾌청한 하늘 아래 있어도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아괴로웠다고 한다. 나무를 봐도 집을 봐도 거리를 걷는 사람을 봐도 또렷이 보이지만 자신만 유리상자에 넣어져 바깥 존재와 직접 연결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아 결국에는 질식할 것같이 힘들었다고한다. 게이타로는 그 이야기를 듣고 그것은 일종의 신경병이 아닐까하고 의심해봤을 뿐 여태껏 한 번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사오일을 끙끙 앓기만 하며 멍하니 있는 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자신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끝까지 해내 통쾌감을 맛본 적이 한 번도없는 것은 중이 되기 전 그 종교가의 마음과 어딘지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자신의 느낌은 비교가 안 될 만큼 미약한 데다 성격도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 스님처럼 용단을 내릴 필요는 없었다. 좀더 분발하기만 한다면 되든 안 되든 그래도 지금보다는 통쾌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그렇게 마음 쓸 일을하지 않았던 것이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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