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이 죽고 나서 한동안 아버지의 못마땅한 얼굴이 상당히 자상해 보였다. 어머니에게 당신한테는 정말 미안하게 됐어, 하고 말하던 얼굴이 유난히 온화했기 때문에 어린아이였지만 바로 그때의 말까지 작은가슴에 새겨두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 말에 어떻게 대답했는지는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내려고 해도 생각나지 않는 것을 보면 처음부터 기억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만큼 예민하게 아버지를 관찰하는 능력을 갖고 있던 내가 어머니에 대한 주의가 부족했던 것도 참 희한한 일이다. 사람이 자신보다는 쓸데없이남을 알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는 존재라면 나에게 아버지는 어머니보다는 훨씬 남처럼 보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거꾸로 말하자면 어머니는 관찰할 필요도 없을 만큼 나와 친밀했던 것이다. 하여튼 여동생은 죽었다. 그 이후로 나는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외아들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지금의 나는 어머니에게 외아들이다. - P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