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리미가 있는 풍경」에나오는 ‘자유의 불‘과 다소 비슷할 것 같았다. 유목이 타는 불은 가스 난로의 불, 라이터의 불, 일반적인 모닥불과 다르다. 자유로운 장소에서 타오르는 자유로운 형상의 불이며 자유로운 까닭에 불을 지켜보는 사람의 심정을 반영해 나타낼 수 있다.
유목이 타는 불에서 유목의 자유를 구상해 냈다. 이렇게 해서 그 해변에서의 내 심정과 딱 맞아떨어지는 시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난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탐색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시를 찾을 것이다. 물론 영원히 못 찾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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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시기를 산 사람끼리 이 정도의 유사성을 공유한다는 게 놀랍다. 다만 그 사진은 한 가지를 더 말해주고있었다. 정면을 응시한 단호한 눈길은 그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 같은 단독자의 삶에 길들여진 사람의 것이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그는 지독한 외로움이 목을 조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완전히 버림받았다는 소외감이었다. 격정을 누를 길 없어 사진집을 한 장씩 넘기는 일에 열중했다. 각기 다른 표정을 지닌 다양한 나이와 인종과 성별의 얼굴을 대면했다. 그와 무관한 그들의 태연한 표정이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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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울었다. 예전의 씩씩한 울음소리로 힘차게 울어재꼈다. 나는 눈을 떴다. 새소리는 무척 가까이서 들렸다. 이번에는 진짜 새울음소리였다. 나는 옆을 돌아보았다. 저만치서 핸드폰 액정이 깜짝거리고 있었다. 불빛은 우렁차게 새소리를 쏟아내고 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일곱 시였다. 새는 자지러질 듯 두어 번 더 울고 나서숨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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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이 잠에서 깨어난 그의 콧속으로 아주 익숙한 냄새가 흘러들었다. 문틈으로 새들어오는 아궁이 냄새 같기도 했다. 엄마젖처럼 끈끈하고 친숙한 여운이 느껴졌다. 그는 일으키려던 등을 다시 구들에 눕히고 냄새를 음미한다. 손을 뻗어 그녀가 누웠던 자리더듬었다. 온기가 남아 있는 자리에 손이 닿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뱉어 냈다. 갑자기 목 줄기가 뜨거워졌다. 그는 지난밤 그녀를 괴롭혔던 꿈자리의 근원을 알지 못한다. 그녀와 그는 각자 다른 악몽에 시달렸다. 깨어나면 더 큰 허탈감에 사로잡히는 모진 꿈들. 깨고 나면 빈손을 쳐다보며 허공에 잠시 시선을 던질 뿐그들은 서로의 꿈을 모른 체했다. 어젯밤 잠들기 전, 모처럼 밝아진 얼굴로 그녀가 했던 얘기만 아직 귓전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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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을 만지듯 가방 속에 챙긴 달러를 손으로 더듬었다. 돌이킬수 없음을 확인시켜주듯 손바닥에 지폐의 감촉이 생생하다. 등에불이 붙은 사람은 물만 보이면 어디에고 뛰어들게 마련이다. 살아남는 일만 생각하자. 정말로 필요한 건 휴식이다. 그녀는 거듭 다짐했다.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의 심정을제대로 전달하는 건 불가능하다. 나중에,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른다음에, 그녀는 혼자 중얼거린다. 갚아야 할 빚을 남겨 놓아야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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