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양귀비밭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유명한 시구를 떠올렸다. "플랜더스 들판에서 양귀비꽃이 흩날리네(In Flanders fields the poppiesblow)." 영국에서는 양귀비가 기억의 상징이지만 이곳에서는 왕국의 돈줄일뿐이었다. 모든 양귀비는 머잖아 헤로인으로 가공되고, 여기서 벌어들인 수입으로 우리를 향해 쏘는 탈레반의 총알과 우리를 노리고 도로와 와디에 매설한 사제폭탄의 비용을 감당했다.
이번처럼.
마침내 폭탄 전문가들이 사제폭탄을 폭파했다. 버섯구름이 공중으로 솟•구치고 대기는 짙은 먼지로 자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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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안을 더 가까이서 더 선명하고 더 세밀하게 찍은 사진도 있었다. 지금에야 어머니의 남자친구라는 걸 알았지만 당시에는 그저 친구로만알았던 남자의 시체가 거기 있었다. 사고에서 생존했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은 어머니의 경호원도 있었다. 또 핸들 위로 엎어진 운전사의 모습도. 많은사람이 사고의 원인으로 그 운전사를 비난했다. 혈액에서 알코올이 검출되었기 때문인데, 이미 사망했으니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마침내 어머니의 사진에 이르렀다. 어머니 주변으로 빛이 보였다. 후광처럼 환한 아우라가 놀라웠다. 빛의 색깔이 어머니의 머리카락 색과 같은 황금색이었다. 온갖 종류의 초자연적 현상들을 살펴보았지만 그 빛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 빛의 실체를 알았을 때는 속이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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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올바른 싸움이라면 결코 마다하지 않았다. 글로스터셔 주에 위치한 350에이커 면적의 대저택인 하이그로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던 아버지는, 이곳에서 스트랫퍼드가 멀지 않은 까닭에 잊지 않고 나를 데리고 그곳을 찾곤 했다. 그렇게 예고 없이 불쑥 나타나서 상연되는 연극이 무엇이든 관람했다. 어떤 연극이든 아버지에게는 상관없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상관없었다. 그 이유는 서로 달랐지만. 每日나에게는 온통 고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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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현실이 되었다. 아버지의 출장이었지만,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스파이스 걸스 콘서트는 장례식 이후로 내가 공식적인 자리에 처음 모습을드러내는 행사였고, 주변에서 살짝 엿들은 것을 감안하면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 대중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모든 관심이 사라졌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레드카펫을 걷던 나는, 별안간 세인트제임스궁의 내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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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삶을 사는 데는 두 가지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적이 전혀 없다고 여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모든법칙을 통일하지 못했다고 의미 없다고만 할 수 없다. 초끈이론을 포함해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은 전부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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