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게 있어서 찾으러 갑니다.

휴가를 내며 김동호 본부장에게 말했던 말처럼, 난 제주도에서 잃어버렸던 것을 찾았고 또 그것이 내 삶에 그 어느것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 또한 확인하게 되었다.

[대표님!]
전화기 너머 신용재의 목소리는 몹시 다급했다.
"왜 그래?"
[압수수색이 들어왔습니다.]
"뭐?"
[조금 전에 검찰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압수수색. 범죄의 정황이 의심될 경우 검찰에서 발행하는 압수수색 영장에 의거해 피의자의 집과 사무실에서 적극적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행위.

난 알 수 있었다.
이번 압수수색이 곧 다가올 거대한 파도의 전조일 뿐임을.

‘이번 일에 정부와 중원 자동차가 있다.
머릿속에 다음에 일어날 수있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클리셰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1차 경고가 통하지 않는다면 2차, 3차 경고가 있을 테고 그 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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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아플 정도로. 어금니도 꽉 깨물었다.
여기에 인생을 걸기로 했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난 뒤 좋은 점은 새로운 능력과 기회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난날들이 전부 헛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심지어 실수하고 후회했던 일들도 의미를 지녔다.
실수하며 보낸 인생이 무의미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인생보다는 더 큰 가치가 있는 듯하다.

"일단 움직이자.

당연히 유통과정이 줄어들수록 마진은 높아진다. 하지만 그런 거래처를 만든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저렴한 값에 구매하는 방법은 경매였다. 하지만 경매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경매사를 고용하고, 따로 배송을 받는 등의 일도 상당히 번거로웠다. 특히 나처럼 소량 구매의 경우 중간 유통을 하나 끼워서 구입하는 게 오히려 저렴할 수도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저렴한 구입법이 또 있긴 했는데, 농장과 직접 거래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쉽게 알아볼 수도 없었고, 도매가로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일정량 이상을 주기적으로 구입해야 됐다.
나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인 데다가 추출기도 3대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매출이 얼마나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공급량을 결정하여 거래를 시작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지금 시점에서는 유통과정이 한두 개 늘어나 비용이 조금 더 발생하더라도 수량 조율이 쉬운 업체를 알아보는 게 제일 나은 선택이었다.

재미있었다.
하나하나 과정을 밟아가는게 힘들지만 즐거웠다.
온전히 내 것인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게 이렇게나 짜릿할 줄이야. 이런 맛에 다들 사업을 하는 거겠지.

진짜 상종하지 못할 사람들은 표정부터가 다르니까.

"아, 허구한 날 어지럽다고 했잖소. 병원 가도 못 고친다고, 의사들 다 돌팔이라고 욕해쌌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해봐야 될 거 아니요?"

"제가 잘 봐드릴 테니까, 잠시만 가만히 계세요."
나는 할아버지의 후두부와 뒷목을 차례로 짚었다. 그리고 엄지로 척추 라인을 따라 쭉손을 움직였다.
순간 머릿속에 박하사탕이라도 녹아내린 듯 눈구멍까지 시원한 느낌이 퍼지면서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끝내주는 기분이었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가 이런 느낌이 아닐까. 당연히 그보다는 훨씬 깊고 큰 무언가라고 확신했다.

"MRI나 CT 같은 거는 찍어보신 적 없으시죠?"
"그럴 돈이 어딨어? 검사 한번에 얼마씩 하는지 알아?"
할아버지는 시종일관 짜증을 냈지만,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몸에 문제를 느끼면서도 검사비에 부담을 느낀다는 게 얼마나 서러운 일인가.
가난의 슬픔과 고통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죠. 너무 비싸죠. 그래도 몸에는 아끼시면 안 되는데. 병원에서 의사 진단으로 검사를 받게 되는 건 실비보험도 적용되거든요."
내가 말하자 할아버지는 또다시 짜증을 냈다.
"아, 누가 그걸 몰라? 실비가 없으니까 그렇지!"
"아, 네. 아무튼 지금 관리를 열심히 하셔야 될 때에요."

"......저것만 하면 안 어지럽다고?"
"더 있습니다. 마늘 드시면 좋고요, 영지를 달여서 아침저녁으로 드세요. 그리고 산수유차도 좋아요. 정확한 양은 써드릴게요. 식사는 그냥 현미같은 건 소화가 잘 안 되니까, 발아 현미랑 찹쌀이랑 찰흑미 같은 거 있죠? 섞어서 드시면 좋아요. 서리태랑 찰기장도 좋고요. 붉은 고기보다는 등 푸른 생선을 드시고요. 고등어 같은 거."

예상치 못한 손님들은 생각이상으로 까다롭고 내 혼을 쏙빼놓았다. 체력적으로만 힘들었느냐? 금전적으로도 소액이지만 마이너스였다. 인건비까지 친다면 더 늘어나겠지.
하지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이것 또한 투자고 영업이라 생각했다.

박춘기 할아버지만 봐도 어쨌든 나를 신뢰하며 지인들을 데려왔다. 언젠가는 구매력이 있는 손님들도 몰려오는 날이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때까지 내가 할 일은 그저 묵묵하게 열심히 하는 거다.

어쩌면 그들에게 필요했던건 이런 케어와 관심이 아니었을까.

일단은 부르는 값에 응하기로 했다. 이기철은 눈탱이를 칠 스타일도 아니라고 보였다.
나름대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합리적인 가격이기도 했고, 특히 주스용 과일들의 가격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만약에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도드라질 땐 얘기를 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합의가 안 되면 돌아서는 것으로 끝이었다. 무슨 계약으로 묶여있는 것도 아니고, 자유경쟁시장에서 선택은 자유니까.
반대로 이기철 입장에서도 내가 진상이라 생각되어 팔기 싫어지면 안 팔 수도 있는 거겠지.

내가 씩 웃으며 말했다.
"자주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중의적이었다. 뜻을 제대로 읽어주길 바랐다. 알아서 잘해주면 자주 찾아올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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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부분에선 국제 공용어인 영어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통일과 관련된 저자의 의견이 인상적이었다. 특별히 통일과 관련해서 주의해야 할 점들을 지적하고, 궁극적으로는 문화적인 이질감을 해소한 상태에서의 통일을 추구하자는 저자의 주장이 마음에 와닿게 느껴졌다.

또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통일의 장점만을 크게 보고 통일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힘든 점 혹은 사회문제에 대해 막연히 생각하는 경향을 지적하면서, 통일을 신중히 추진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문화적으로 이질적이게 된 남과 북이 갑작스레 통일이 될 경우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이슈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올 수 있음을 각종 사례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저자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나는 그 목적 있는 ‘목소리‘ 를 따라가다가 결국에는 하수구에 처박히는 처참한 내일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그 ‘목소리‘ 주변의 힘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국민들이 그들이 시키는대로 하고 있는 동안 나름의 대비책을 마련하면서 항상 살아남았다. 6·25 때 정부와 이승만은 서울을 버리고 내빼면서도 서울을 사수하자고 외쳐댔다. 그뿐인가? 정부가 우리를 속여먹던 일이.
때문에 그러한 학습 효과가 살아 있는 한, 닥쳐올 험난한 21세기에도 실험실의 흰쥐 꼴이 되고 싶지는 않다. - P247

문명의 이기들은 이름 및 개념과 함께 유입되는 법, 이들 외래어들은 그 해당 물건들과 함께 한국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고대 사회에, 중국 문물이 들어오면서 우리 고유의 언어가 적당한 의미와 문물들을 표현할 방법이 없자 한자를 우리 언어 속에 심어놓았듯이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자어로 가득한 우리말을 붙들고 이것이 진정한 우리 것이라고 울부짖을 이유도 없어져버린다.

영어가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받아들이면서 풍부한 어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듯이, 세계를 향해 열린 언어는 결국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또 인도 영어, 싱가포르 영어, 홍콩 영어에서 보듯이 모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사용되는 영어들은 모국어의 영역을 축소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모국어에 물들며 독특한 발음과 표현들을 낳고 있음도 순수국어 수비대 들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 P250

하버드의 헌팅턴은 영어가 문화와 문화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쓰이면서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오히려 강화시키고 있다는 재미있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즉 어떤 문화권 사람들이 영어를 쓴다고 해서 생각마저 영어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언어학자 피시먼은 국제어의 조건으로 특정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결부되지 않은 언어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영어는 이제 세계어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특수한 의사소통 도구일 뿐, 특정 문화만을 대변하는 언어가 아니다. - P251

헌팅턴은 이제 영어는 인종적특성이 거의 탈색된 탈인종화된 언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외교관, 기업인, 과학자, 관광객, 관광업 종사자, 항공기 조종사, 관제 요원 등은 모두 효율적인 의사소통의 언어로서 영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 특정 문화에 종속되고 싶거나 종속되었기 때문에 영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수영장에서는 수영복을 입는 것이 헤엄치기에 편하듯이 영어를 그저 편리한 의사소통 도구로 받아들이면 그뿐이다. 그것을 너무 민족적 입장에서 해석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초라해진다. 물론 우리 것, 우리말을 외치는 몇몇은 강연도 하고 책도 팔면서 자신들의 희소가치를 만끽할 수도 있지만 별 볼일 없는 다수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 P251

사회를 형성하는 주요 요소는 폭력 (질서 폭력, 즉 강제력과 무질서 폭력이 있다)과 자본과 지식이다. 그중에서도 지식은 정보 시대로 정의되고 있는 21세기에 인간의 가치를 구분짓게 될 가장 영향력 있는 요소로 꼽히고 있다. 어느 사회나 지식을 소유하는 계층이 그 사회의 상류층, 지배층으로 군림해왔다. 조선 유교 사회에서 유일한 문자인 한자를 지배한 지식인들이 권력과 자본 모두를 독점했음을 상기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때문에 모든 정보와 지식을 가장 폭넓고 깊게 담고 있는 영어의 장악 여부는 이제 앞으로 각 개인의 몸값은 물론, 사회, 조직, 국가에 이르기까지 크게 영향을 줄 것이다. - P251

일부 여유 있는 계층의 영어 조기 교육은 그 아이들을 궁극적으로 좀더 새롭고 유용한 정보의 세계로 초대할 것이며, 보다 빠르게 가치 있는 정보와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할 것이다. 그것은 결국 사회 전체로 볼 때, 부모의 부와 사회적 힘이 영어라는 지식을 통해 문화적으로 상속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또 개인의 삶이 존중되는 열린 사회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할 만한 것이다. - P252

이제 영어 조기 교육은 그 교육적 효과를 논할 시기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 아니 다급한 필수가 되어버렸다. 일반적으로 7세까지는 프로그램과 환경에 따라(나는 단어나 스펠링 교육을 철저하게 반대한다. 소리 + 이미지만을 재미에 담아 전달해야 한다) 2개 정도의 언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습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왜 애써 부인할까? 설사 2개가 모두 모국어 수준은 되지 않는다 해도 의사소통만이라도 불편이 없다면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고도 남지 않을까? - P252

그에 앞서 영어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과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한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의 효과적 학습 방법은 앞서 말했듯이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만 가지면 마련될 수 있다. 책을만드는 사람들끼리의 학연도 깨고 선후배도 깨고 제대로 된 프로들이 책을 만들고, 실력 있는 교사들이 과학적으로 설계된 프로그램을 가지고 강단에 서서 ‘써먹어야 한다‘는 의지로 가득한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학습은 효과를 올릴 수 있다. - P253

하지만 솔직히 까놓고 지도할 수 없는 우리 교육 현장의 현실이 문제다. 영어 회화 가르칠 능력이 없다보니까 자꾸만 우리 것,
정체성만을 강조하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효도 실습만 진행하는 것 아닌가? 누가 뭐래도 우리의 정체성은 무너지지 않는다. 김치, 된장이 모조리 사라지고, 우리들 머리털이 어느 날 갑자기 노래지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한 한국인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것으로 무장된 한국인이 아닌 다른 것에 익숙한 한국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 것이 그렇게 대단하면 적극적인 홍보를 위해서라도 외국어에 익숙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모습만을 가지고 냉정하게 생각해봐도 우리는 최소한 영어, 일어, 중국어 3개 국어는 할 줄 알아야 하는 사명(?)을 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
힘이 약한 나라는 이래저래 숙제가 많은 법이다. - P253

도대체 4년 동안 같은 학교, 같은 학과에서 배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 한국사회에서는 벌어지고 있다. 동문들로 구성된 이 ‘상아탑 마피아‘ 들은 또 다른 새끼 갱스터들을 낳는다.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리라. 하지만 그건 엄연한 폭력이다. 제도를 통해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젠틀해 보이지만 사실은 위장된 폭력이다.
- P254

원시 사회에서 폭력은 생산도구를 독점하고, 도구의 독점은생산을 다시 독점해 권력을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이 권력은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든 이른바 제도에 의해 세습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 세습은 마침내 계급을 만들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일류 대학들이 만들어내는 커넥션 역시 이런 순환 고리를 가지고 있다. 즉 위장된 폭력을 통해 지식을 독점하고, 지식 독점을 통해 발언권을 확보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멤버를 끊임없이 보완하며 세습해가는 과정이 동일한 것이다. - P257

그저 요즘 애들 버릇없는 것에 대해서만 걱정이다. 요즘 어른들 사랑 없는 것은 말하지 않고. - P263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이 있다. 인사를 바꾸어보라.
"사랑한다. 어서와."
‘어서와‘는 ‘너를 기다렸다.‘ ‘너는 환영받는 존재야.‘ 라는 의미가 숨어 있다. 물론 이런 인사를 어느 날 갑자기 하게 된다면 아이는 순간 닭살이 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싫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인사를 좀더 일찍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은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로서 대하려는 부모의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기성 세대는 완전히 밑지는 장사가 될지도 모른다. 부모에게서 그런 사랑을 받지 못했는데 아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랑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이러한 자세 전환이 세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우리 아이들을 놓치지 않을 최선의 방법이라면 어찌하겠는가?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더구나 아이들은 이제 온갖 문화권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살아야 한다. 그들과 만날 때 첫번째로 건네야 하는 것이 바로 따뜻한 미소이고, 당신을 인격체로 인정한다는 마음이다. 인사에 이것을 담아야 한다. 그러면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사를 선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P265

새로운 문화의 세대로 들어선 아이들에게 새로운 생존 전략을 가르쳐야 한다. 인사에 대해 다시 생각하자. 인사는 마음을 전할수 있는 좋은 기회다. 따뜻한 감정이 전달될 수 있는 사랑의 인터넷이다. 아이에게 고개 숙여 인사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아이와 대화할 수 있다.
"그 따위로 하니까 요즘 것들이 점점 더 버릇이 없어지지!"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이미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습니다. - P265

한국 청소년들의 많은 불만중 하나가 자신들이 분명히 알고 있는 ‘문제‘ 들에 대해 어른들이 ‘얼버무리는 것‘이다.
아이들의 가슴에 ‘엄마는 아빠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말해봤자야‘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그때부터 그 아이는 이미 내 아이가 아니다. 집에 와서 밥만 먹지 생각은 또 다른 진실을 향해 나서게 되고 유혹에 쉽게 빠지고 만다.
‘권한‘으로 가르친다는 생각 자체가 아이들을 망친다. 잠재해있는 아이들의 재능을 최대한 열어주려는 서비스 정신이 없다면 월급은 받겠지만 존경은 받을 수 없다.
이제 가르치려고만 드는 선생님과 학부모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함께 고민하고 잠재된 창의력을 끄집어낼 줄 아는 친구 같은 선생님과 학부모가 필요하다. 한 번 뿐인 인생을 무작정 맡기기에 인생은 너무도 값진 것이다.
"선생님,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P271

우리들의 ‘공부‘는 이제 세계의 모든 문화를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개혁되어야 한다. 책상에서 ‘쓰기‘ 만을 할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과제를 찾고, 그것에 숨어 있는 ‘왜(why)‘ 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동시에 자신만의 창의적인 해결책을 위해 정보를 어디에서(where) 찾아내고 ‘어떻게(how)‘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 - P275

모든 인간은 서로 다르다. 각기 서로 다른 가능성과 마음과 두뇌를 선물로 받고 태어난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말 잘 듣게‘ 만들고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특히 엄마들이 (엄마들만 들먹여서 조금 죄송) 무심코 내뱉는 "네가 뭘 알아." "그게 아니라니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나 해." 라는 외마디들이 아이들의 창의력과 지적 의지 성장에 얼마나 큰 상처를 주고 있는지, 부모들은 너무도 모르고 있다.
창의력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획일화다. 그리고 그 획일화는 강제적 질서 유지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질서유지 콤플렉스는 유교 문화의 ‘도덕적 잣대‘ 때문에 만들어졌다. 더 나이 드신 분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초등학생을 둔 30대, 40대의 부모님들도 유교적 교육 문화에 머리가 절어 있는 사람들이다. - P280

독일의 헤르만 헤세의 소설《유리알 유희》에는 인간 정신의 가장 아름답고 깊은 곳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한 장인이 등장한다. 늘 말이 없고 조용한 그 장인은 음악을 통해 인간 정신의 깊은 세계를 한 걸음씩 찾아 들어간다. - P281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그 생각에 스스로 감동하고, 생각과 감동을 손으로 빚어내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거나 그런 세계를 알지 못한다면, 아이의 ‘창조적 정신‘은 영원히 사장되고 말 것이다. - P281

억지로 지식의 양을 늘려주는 것이 아닌, 생명력 있고 아름다운 창의성을 길러주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마지막 목표이자 희망이어야 한다. - P282

진짜 술꾼은 해장술로 술을 풀 듯이 책꾼은 책으로 피로를 푼다. - P282

학문의 즐거움. 그 안엔 학(學)과 문(門)의 두 즐거움이 존재한다. 몰랐던 것을 처음 알았을 때의 즐거움. ‘학‘의 즐거움이다. 인생의 활력은 때로 이런 ‘학‘ 에서 얻어진다. 그리고 ‘학‘의 즐거움은 대화를 통해 완성된다. 문(問), 바로 대화다. 배움의 즐거움은 바로 요 대화의 꽃씨 안에 숨어 있다. - P283

꿈이 없는 공부는 좌절 아니면 야비함만을 기르고 만다. 히로나카는 꿈을 가졌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승들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우리의 공부가 지겨운 이유는 선명하다. 즐거움의 핵심인 대화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가르침은 배움의 본질이 아니다. 생각이 다 자라기도 전에 학문적 정답만을 머릿속에 쑤셔넣는 교실, 창조성을 도살하는 도살장이다. - P283

"창조라는 것의 출발은 언제나 유치하기 마련이다."
실패 속에서 터득한 히로나카의 이 말을 나는 좋아한다. - P284

한국인으로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땅 위에서 하늘 아래서 사람으로서의 가치와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받으며 사는 일이다. 즉 사람으로서의 아이덴티티는 한국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나 우리 문화 속의 한 구성원이라는 문화적 의무감보다 더 본질적이고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이다. - P288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이 땅에서 단 한 번의 생만을 부여받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다. 이 한번의 생을 살아가는 동안 인간적 삶을 방해하고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가치와 행위는 해체되고 비판받아야 하고 부정되어야 한다. 도덕의 가면을 쓴 유교는 물론이고, 국가 경영이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국민들을 거덜내고 있는 정치, 그리고 우리들의 미래를 담보하겠다는 착각 속에서, 인간들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제도 속으로 몰아넣고 아름다운 창의성을 말살하는 교육도 예외일 수 없다. - P289

유교는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가르치겠다‘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정치는 국가 경영의 허황된 청사진일랑 버리고 엎드려 봉사하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감시와 질책 앞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평생 직업 한 번 없었던 실업자임에도 정치인이라는 타이틀때문에 수억의 재산 소유가 당연시되는 모습 역시 신성한 노동의가치 앞에 참회해야 한다. - P289

김치는, 된장은, 불고기는 한반도의 기후 조건과 환경에 의해만들어진 삶의 한 패턴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쓰시도, 자장면도,
햄버거도, 피자도, 카레도 모두 동일한 삶의 한 단면일 뿐이다. 이제는 지구촌을 함께 경영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들의 먹거리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인정해야 한다. 그것들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문화적 알레르기를 자꾸 일으킬 필요는 없다. 모두 사람이 먹는 음식일 뿐이다. - P290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서로 사람임을 인정하면서 그의 국적이 어떻건 피부색이 어떻건 더불어 살 준비를 해야 한다. 검은 사람이건, 흰 사람이건 그 안에 살아 있는 생명을 생각하고, 사람임을 존중하면서 한 팀을 이루며 살아갈 생각을 해야 한다.
그것은 먹고살기 위해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비굴한 타협 때문이 아니다. 진정 서로를 삶의 동반자로 파트너로 생각하는 의식의 전환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물론 사회 곳곳에 보이는 수많은 문화적 반항과 자유선언을 위해 자행되는 그 ‘작위‘와 ‘흉내‘로부터도 우리는 자유스러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서로가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고, 서로가 생명체임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한다.
이제는 모두 껍질을 벗었으면 한다. 옆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내가 사람임을 의식하면서 말이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권리와 생명으로 가득한 사람임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한국인을 넘어서자. 그리고 사람을 만나보자. 그곳에서 한국인의 문화가 아닌 사람들의 문화를 만들어보자. - P291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깨끗함(clean), 신용(credit), 야무짐(compact)의 3C다. 이제는 더 이상 탐욕과 질투, 그리고 권력욕에 의해 움직여지는 거대한 국가적 횡포와 정치적 속임수에 휘둘리지 말아야한다. - P292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무슨 일인들 올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 P293

왜 자꾸 주변의 나쁜 모습들을 의도적으로 찾으며 우리들의 못난 모습을 정당화시키고자 하는 것인가?
그럴 필요 없지 않은가? - P294

우리는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 라는 새로운 가치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 이 새로운 가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희망이다. - P295

글로벌 스탠더드란 다른 것이 아니다. 투명한 일처리, 깨끗한마음, 열린 가슴, 그리고 단단한 실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외면하고 우리끼리 돌아앉아 형님 아우 나누어 먹겠다는 발상이 바뀌어야 한다. 학연과 지연과 혈연이 업무에 연결되어서는 곤란하다. 아니 그것은 이제 독약이다. 끼리끼리의 밀실 야합이 국가와사회를 거덜내고 만 현실 앞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오직 하나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깨끗함 (clean), 신용(credit), 야무짐(compact)의 3C다. - P295

우리 사회의 아픈 모습들을 지적하면 끝이 없지만 원인은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모두가 공감할 시대정신이 이 사회에는 없다. 자신의 조그만 이익을 모두를 위해 양보할 수 있는 여유가 이 사회에는 없다. 잠시 기다리면 모두에게 기회가 온다는 신뢰를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내일을 위해 인내할 만한 가치가 없다. 목소리 큰놈이 정의고 먼저 입에 틀어넣는 놈이 임자다. 국민들은 더 이상 순진을 떨 수가 없다. - P298

내겐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있다. 중국인, 일본인, 베트남인,
인도인, 미국인, 프랑스인 등등. 그들과 친구가 되는 방법은 단 하나다. 그것은 단순한 외국어 구사가 아니라 진실되고자 하는 태도와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실을 듣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와 가정과 한국을 보여주고 말한다. 꾸미는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아버님은 늘 이런 교훈을 주셨다.
"솔직한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 P313

장점과 단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났을 때 처음 보이는 반응은 언제나 ‘감사‘ 였다. 매번 피드백을 위해 받는 그들의 소감에는 이런 말들이 적혀 있다.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접해주어 고맙다. 장점만을 들어 우리를 교육하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와 문제를 함께 풀어가려는 태도가 고맙다." - P313

우리 사회에는 이것이 없다. 서로를 인격체로 보면서 문제를 동일선상에서 풀어가려는 노력은 언제나 상대방을 감화시키게 마련이다. 그것을 악용하려는 몇몇에 대해서는 적당한 대비책을 세우면 그뿐이다.
더 나은 해결책을 위한 대화의 화술, 그것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오류가 수정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태도에서 가능한 것이다. 이제 정말 새로운 대화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 P315

허리가 동강난 남녘에서 우리가 쓴 ‘역사‘와 잊혀진 땅북에서 쓴 그들의 ‘력사‘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말이 다르다는 것은 생각이 다르다는 뜻이다. 민족의 의사소통이란 단순한 열망이나 계량적 분석에 의존한 ‘플랜‘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민족의 만남이란 그 자체가 삶이다. 삶이란 때로 더럽고 때로 즐겁기도 한, 종합적으로 얼마나 유치찬란한 것인가? - P315

통일이라는 추상 명사는 어느 날 갑자기 구체적인 사실이 되어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다. 마치 황장엽처럼 우리가 동포라고 맞닥뜨리게 될 사람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연 보호가 아닌 ‘사상 보호‘된 사람들이다. 그들을 우리는잘 포용할 수 있을 것인가?
조선족들을 만나고 두만강 너머 북을 바라보면서 나는 통일을 많이 생각했다. 걱정되는 것은 통일 비용도 아니고, 통일 방식도 아니었다. 바로 문화적 의사소통이었다. - P322

조선족들의 정서와 우리 국민들의 태도, 그리고 정부의 조치들을 보면서 나는 통일 후의 갈등을 감지해본다. 북의 동포들은 크게 당황할 것임에 틀림없다. 중국의 조선족들이 알고 있는 ‘력사‘도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물며 수십 년 동안 김일성, 사회주의, 전쟁 외에는 다른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던 그들이 확신하고 있는 ‘력사‘ 는 또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리고 그들의 생각은 또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들은 땅투기, 뒷거래, 입시 경쟁, 외국 여행, 인터넷 등 긴장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체득한 우리들과 악수를 해야만 한다.
우리에게 과연 그들의 무지(?)를 인내하고 교육할 아량과 능력이 있을까? 내가 아는 남쪽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면, 통일후 있게 될 남남북녀의 갈등과 충돌이 눈앞에 선하다. 과학 기술과 생산 기술의 차이로 북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단순 노동직으로 전락할 가능성, 그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등 역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 P324

남과 북은, 그리고 북과 남은 핏줄은 비슷한지 몰라도 문화적으로는 전혀 다른 이질체다. 문화적 이질체가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문화와 말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문화공동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문화공동체는 구호나 기대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질적 문화를 융합해갈 수 있는 고도의 전문가들이 필요하고, 심리적 문제들을 차분히 다루어 갈 전문 컨설턴트들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서로를 배워야 한다‘는 남북의 의식이 전제되지 않는 한 통일 논의는 소모적 정치 쇼의 함정에 빠지고 말 것이고, 남과 북은 계산에 빠른 장사꾼들의 장터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정치꾼들도 한몫 볼 테고, 제 버릇 개 주겠나? - P324

너무 급작스럽게 갖다붙이는 정치적 모자이크가 모두에게 행복한 것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정치적 경제적 아픔을 다 겪은 우리들이 아직도 시련이 부족해서 더 겪어야 할 항목이 있다면 그것은 환경 문제와 통일 실험이지 싶다. 그 중에서도 냉전의 최전방에서 살고 있고 냉전논리에 최후까지 묶여 있는우리들이기에 겪게 될지 모르는 통일 실험은 함부로 다룰 일이 아니다.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나, 민족 통합을 갈망하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냉전 이데올로기 때문에 억눌려 있던 삶의 욕구들이 일순간 수면 위로 터져나올 가능성에 대한 대비가 없는 상황은 억눌려 있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그 분출도 거칠수밖에 없음을 생각할 때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 P325

우리 앞에는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 중에서도 통일은 예측 못할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통일이란 단순한 정치적 게임이어서는 안 된다. 통일비용만큼 중요한 것은 북의 동포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사회의 지적 문화적 성숙함이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아량과 이해가 먼저 생겨나야 통일비용을 아까워하지 않을것이다. 다가올 어려움과 부담에 대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국민들에게 알려 대비토록 해야 한다. 때가 된 듯하다. - P325

우리 민족의 근대사는 언제나 예측하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했던 사건들 때문에 곤두박질치곤 했다. 그리곤 한동안씩 뒷걸음질이었다. 나는 어느날 갑자기 황장엽처럼 들이닥칠 통일이 걱정된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느라고 바쁜 정치를 보면 더욱 그렇다. - P326

서양이 동양을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한 물질적 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을 사랑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있도록 하겠다는 휴머니즘과 합리주의적인 정신 때문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동양의 지성인들이 서구의 정신들을 만나면서 미련 없이 유교를 내던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P327

한반도의 21세기는 통일로 열어야 한다. 그러나 그 통일은 정치로 열려서는 안 된다. 더구나 정권의 ‘업적‘ 을 위해 만들어져서도 안된다. 물론 민족적 열망의 한탕 잔치로만 열려서도 안 된다. 그것온 더불어 살아야 하고 함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는 인간 중심의 생각으로 열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진정한 통일을 이룰 수 있다. 사람이 살아 있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서의 통일을 말이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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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예에?"
"혹시 맥문동이라고 아세요?"
"맥문동이요? 알다마다요.
젊은 사람이 맥문동을 다 알아요?"
"저희 집이 건강원 했거든요. 맥문동 차로 달여서 드시면 기침이랑 가슴 답답한 거 많이 좋아지실 거예요."
"그래요?"

"네. 꼭 챙겨 드세요. 아시겠죠? 그리고 이번 복날에는 닭 대신 가물치 한 번 드셔보세요. 기혈 보강에 아주 좋습니다. 꼭이요."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고마워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곧바로 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할머니가 의아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그런데 내가 기침을 했었나......? 가슴 답답한 건 어떻게 알았대......?"

스스로의 인성 자체가 훌륭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는 게 팍팍하니 날이 서는 것도 별수 없다. 현실적인 부분에서의 여유가 따라줘야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지금 내가 그렇다. 어느새 입가에 미소를 걸고 있었다.
그 할머니가 일부러 엿 먹으라고 그랬을 리가 없지. 아마도 그저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을 뿐이리라.
마음가짐마저 변하고 있었다.
이렇게 변해가는 내가 싫지 않았다.

빚이든 원수든 반드시 갚으면서 살아야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대부분 그렇다. 하지만 세상에 100%는 없다고, 변하기도 한다. 나처럼.

미친놈이면 어때, 행복한 미친놈이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불행하게 멀쩡한 것보다는 낫지.

"그래, 네 할아버지가 그런사람이었어. 돈 안 받고도 사람들 아픈 거 봐주고 그랬어.
할아버지가 언제 보러오나 했는데, 너한테 갔었구나."

"그건 무슨 말이야?"
"사람이 죽어서도 보러 오는 건 바로 오기도 하고 그런데, 저승에서 힘을 쓰려면 우리 시간으로 10년은 지나야된다더라고. 근데 할아버지가 지금 수십 년이 지나서 널 보러 왔잖아. 그리고 얘기를 해줬고, 그거 꼭 해야 돼. 너한테 복 주려고 그러는 거야."

고모는 이런 사람이었다.
미신 같은 것도 많이 믿고, 점보러 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관점의 차이가 있다지만, 개인적으로는 와닿지 않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 완전히 허투루 듣기도 어려웠다. 경험한 게 있으니까.

무화과가 장열도 없애고 부기 빼는 데도 좋아. 꼭 챙겨 드세요.

기본적으로 좋은 마음을 품고 하는 일이지만, 당연히 사적인 목표도 있게 마련이다.
내 능력을 통해서, 이 자본금을 10배, 100배로 불리고 말 테다.
벌써 머릿속으로는 2호점, 3호점, 4호점 줄줄이 생긴 다음 새로운 이름을 달고 프랜차이즈 사업까지 개시했다.

망상이 아니라 계획이고 미래가 되게 하고 만다.
그래, 이제 진짜 시작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없는 1부가 막을 내렸고, 이제 죽여주는 2부의 막이 올라간다.

프랜차이즈가 무조건 싫은건 아니지만, 현재 내가 일구려는 사업 방향하고는 알맞지 않았다. 일단 계약에 묶이면 이래저래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을 테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나도 무조건 공짜를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필요 이상의 프로그램을 고비용으로 구입할 생각은 없었다.

할아버지에게 능력을 받은 뒤로 생활습관부터 시작하여 나의 생각 자체가 변하는 중이었다.
어쩌면, 확실한 계기만 있다면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변할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인테리어 업자의 얼굴을 힐끗 쳐다봤다.
당장 보이는 거에서는 크게 건강에 이상이 있지 않았다.
조금 관리가 필요한 부분으로는 눈과 위 그리고 혈액순환.
"그보다는 일단 당근을 좀 드셔야 할 것 같아요."
"당근이요?"
"예. 당근이 눈에도 좋고, 위건강 개선에도 도움을 주고,
혈액순환에도 도움을 줍니다.
항암 효과도 있는 데다가 건강에도 도움을 주고요. 볶아서 드시는데, 들기름이 좋습니다. 단, 들기름이 잘 타거든요? 처음에는 그냥 볶으시다가 중불정도에서 들기름을 부어 조금 더 볶은 뒤 드세요. 그게 좋습니다."

"그냥 소주 마시면서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안 됩니까?"
"당근은 볶아서 드시는 게 훨씬 좋습니다. 비타민 A가 지용성 비타민인데, 기름과 결합해야 체내로 흡수됩니다. 그리고 들기름에는 오메가3가 풍부하니 또 필수지방산을 섭취하실 수 있어서 좋고요. 오메가3 효능도 다양한데, 특히 심혈관에 좋습니다. 혈액순환이 좋아지면? 아래로도 피가 잘 돌겠죠?"

필요에 의해 쓰는 것은, 받은 도움에 대한 보답을 할 때는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그 누구보다 엄격해지고자 했다.

소상혈. 엄지손톱의 안쪽에 위치한 하얀 부분인 조반월.
그곳의 바로 아래, 마디보다는 위쪽을 바늘로 콕 찌르는 게 아니라, 대고 옆으로 끊어내듯 피를 냈다.

"여기 엄지발톱 아래 보이시죠? 발의 가장 안쪽 부근요.
여기가 은백혈입니다. 여기를 따야 위에 효과가 바로 갑니다."

"따는 건 이제 다 끝나셨어요. 스스로 여기 좀 주무르세요. 지압하면 도움 되니까."
나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위치한 합곡혈을 주무르는 시범을 보였다.

"무가 소화에 좋은 거 아시잖아요."

누군가 내게 고마움을 표시한다는 게 보람차고 좋았다.
낯선 사람을 돕고, 그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던 게 언제였는지. 오랫동안 잊고 살던 기분을 능력을 얻은 뒤로계속해서 받고 있었다.
봉사에 삶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이런 마음일까? 예전에는 아예 이해가 안 갔는데, 지금은 그 기분의 일부분 정도는 알 것 같다.

어쩌면 이게 세상의 그 무엇보다 가치가 있는 걸지도.
그래,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그래서 계속 건강원을 했구나.

하지만 금세 이성을 되찾았다. 그렇게 쉬운 길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면 다 저거 팔아서 부자 됐겠지.

네트워크 마케팅 물건을 호구처럼 사들이고, 상호구나 개호구를 찾아 더 비싼 값에 팔고.
다단계였다.

다단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군대 선임이 오랜만에 보자고 해서 만났더니 그 이유가 다단계에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던 경험이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열 받네. 그때 죽통돌렸어야 됐는데.

나는 휴대폰을 뒤집어서 화면을 보였다. 녹음이 되는 중이었다. 처음에 여자가 접근해와서 얘기를 시작했을 때, 휴대폰을 꺼내 녹음을 하는 중이었다.
무슨 일이든 문서나 파일로 남아야 한다. 그래야 입증이 된다. 구두(口頭)로 하는 것도 효과는 있다지만, 입증하기가 어려우니까.
지난 날의 바보같던 나에게서 배운 교훈이었다.

조그만 장사 하나를 하려고 해도 여기저기서 별의별 사람들이 다 끼어든다더니.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 이 상황마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본다.
수많은 실수와 후회로 점철된 과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
다단계인 것도 알아챘고, 만약을 위해 녹음을 하는 치밀함도 갖췄다. 이번 기회는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노력 중이었고, 목표에 다다르기 위한 편한 지름길은 없다는 것도 다시금 머릿속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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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부분에선 유교사상이 지난 수백년간 우리들의 창의성을 억눌러왔음을 비판하는 저자의 의견이 인상적이었다. 유교사상 말고도 다른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책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니 유교사상 쪽에 국한해서 본다면 지극히 동의되는 부분이었다.

이와 더불어 일본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이야기, 한자와 관련된 저자의 이야기들도 굉장히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핀란드의 세계적 핸드폰 회사인 노키야는 제품들을 마치 게임기처럼 만들었다. 그리고는 광고에서 세계적 정치인들의 우스꽝스런 장난기들을 순간적으로 잡아낸 뒤 이런 카피를 썼다.
"우리들 모두에게는 어린아이들이 숨어 있습니다.(There is little child in all of us.)" - P195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는 사실 어린아이들이 하나씩 숨어 있다. 심리학적으로 볼때, 아이들은 13, 14세가 되면 ‘인간적인 나(에고)‘가 형성되고 그 이후로 심리적으로는 동갑이 된다. 그 동갑의 연령을 지난 후에는, 우리들이 키가 커지고 학년이 높아지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뭔가에 걸맞는 행동들을 해대느라 폼들을 잡고 있지만 우리들 마음속에 숨은 미키마우스와 빨강머리 앤은 언제든 빨주노초파남보의 스펙트럼을 통해 뛰쳐나올 때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P195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바로 어른과 아이들 가슴속에 숨은 살아있는 색상들과 장난기를 효과적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유난히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빠져드는 이유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바로 한국사회 전반에 드리운 유교적 칙칙함에서 찾아낸 시각적 위안이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의 스펙트럼 효과는 단순한 시각적 화사함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정열과 활력과 에너지를 동반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젊은 세대에게 폭발적으로 다가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195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만화가들의 끄적거림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사회 저층에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엉겨 있는 학문적 · 문화적 콘텐츠, 즉 내용물들을 기초로 탄생한 상상의 세계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숙제는 그저 단순히 컷 몇 장을 흉내낸다고 해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건 어깨에 힘을 뺀 학문적 봉사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창조적 상상력. 그리고 냉정한 ‘장사꾼 기질‘이 합쳐질 때에만 비로소 이루어질 예술적 하모니이기 때문이다. - P197

유교의 가치관 중, 공자가 한 말로 이런 것이 있다. "괴이하고, 억지 쓰는 것, 상황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 귀신에 관한 이야기들을 말하지 않는다." 뒤집어 말하면,
정상적이고, 순하고, 단순하고, 인간적인 것만 말하라는 뜻이다. 물론 이 상황들은 사회를 지탱해가는 가치관의 측면에서 다시 다루어져야겠지만 이로 인해 600년(조선 500년 근현대 이상 억압된 상상력은 21세기가 다가오는 오늘날에도 터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 P198

나는 갑골문을 연구하고 있는데, 원시인들 상상력의 집합체인 갑골문의 형태와 그것이 지니고 있는 ‘의미 영역 (meaningboundary)‘ 은 사실 애니메이션이 지니고 있는 만화 기호의 의미와 맥이 닿는다. 언젠가 갑골문의 고대 자형들을 본 디자이너 한 사람은 원시의 생명력이 가득 찬 그 형태들에 매료되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좋아한 일이 있었다. - P199

4,000년 전의 글자들인 갑골문의 형태 속에는 원시 사회의 애니미즘과 토템의 성분이 다분히 담겨 있기 때문에 그것을 효과적으로 분석하면 우리는 초기 인간 사회의 다양한 정신적, 심리적,
문화적 특성들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갑골문을 이용한 것은 아니지만 그 기저에는 갑골문이 지닌 ‘원시적 소박함과 시각적 흥미가 깔려 있다. - P199

이 ‘원시적 소박함‘ 이 바로 모든 사물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과 특정 동물을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일치시켜 생각하는 토템이다. 즉 자연계와 자신을 혼돈하여 사고하는 것이 원시적 사유의 특징인데,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바로 이 원시적사유를 매우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작품들을 창조해내고 있다. - P199

고대 메소포타미아 미술의 권위자인 발터 안드레는 토템과 미술의 관련성에 대해 이런 견해를 피력한다.
"정신적이고 신적인 세계를 감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세계로끌어들이기 위해, 인간은 그것을 만질 수 있거나 느낄 수 있는 형태 속에 구체화시켜놓는다. 그것이 바로 토템 예술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마력이 단순히 현란한 테크닉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지닌 애니미즘과 토템의 정서는 사실 일본문화 저변에 깔린 애니미즘과 맥을 같이 한다. 흔히 800만 신이 있다는 일본의 무속 문화는 사실 원시 애니미즘의 연속선 위에 놓여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는 아무리 작은 곳에도 신은 머문다. (이것이 바로 일본인의 혼을 강조하는 장인 의식의 모태다)는 의식과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 P200

이런 애니미즘적 무속 문화는 귀신과 혼령이 흔하게 등장하게 만드는 문화적 배경이 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보편적 정서 때문에 <원령공주> 같은 애니미즘적 설정이 먹혀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런 무속적 애니미즘 요소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은 악마적 요소와 악마적 세계관을 저변에 깔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짧은 순간 세계인들의 시선을 끌어모을 수는 있으나 인류가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사랑과 인간적 삶을 건강하고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유효기간이 선명해진다. 또 영화 전반에 양념처럼 뿌려진 일본적인 남녀 갈등이나 칼싸움 장면들 역시 일본 애니메이션이 해결해야 할 숙제다. - P201

그러면 한국 애니메이션은 왜 건강하면서도 아름다운 상상으로 풍부한 나름의 콘텐츠를 창조해내지 못하는 것일까? 왜 일본것을 보고 나서야 힌트(?)를 얻고 자꾸만 악마적 세계관으로 빠져들고 마는 것일까?
그건 바로 유교적 가치관이 불러온 상상력의 빈곤과 유교를벗어 던지면서 일어나는 가치관의 공백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 P201

조금은 에로틱하고 조금은 은근한 분위기의 한국과 중국의 춘화에 비해 일본의 춘화들이 유달리 폭력성을 많이 띠는 이유는 사무라이들의 폭력적 성문화 때문에다. 강간과 윤간과 엿보기 상황들은 바로 전시 성폭력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저질 성문화다. 사실은 저질이 아니라 괴로울 苦(고), 고질의 성문화다. - P203

어느 사회가 특이한 형태의 행동에 심하게 기울어지는 것은 그 사회 구성원들이 기본적으로 그런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비디오의 폭력은 일본 문화 저층에 깔린 죽음의 미화 의식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은 칼의 나라다. 일본 중세 전국시대에는 약 280개의 봉건 국가들이 있었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싸움, 칼싸움이 일상적인 일이었다. 이 이야기는 늘 죽음이 일상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공포감을 해결하는 방법 중에 합리화라는 것이 있다.
공포를 당연히 있어야 할 걸로 합리화하여 공포에서 벗어나는 방법, 즉 공포와 타협하는 방법이다. 이 합리화가 좀더 진행되면 그것을 미화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원시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토템의 형성 과정이다.
즉, 주변의 동식물을 수호신 또는 조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의 강인한 힘을 이용해 자신들의 연약함을 극복해보겠다는 심리 때문이다. 한국 프로야구팀들의 동물 상징은 바로 토템의 현대화라고 풀면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 P204

일본인들은 늘 존재하고 수시로 자신에게 엄습하는 공포를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어 놓으면서 죽음을 미화했다. 그래서 그들은 할복을 하고, 자살 특공대를 만드는 것이다. 죽음이 공포일 때는 두렵지만 한번 아름다운 것이 되고 난 후에는 앞을 다투어 기꺼이 그 아름다운 퍼포먼스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의 승화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사실은 죽음과 하는 슬픈 타협이다.
이건 우리 문화에도 있다. 수많은 좌절과 침략이 낳은 한의 역사, 우리는 그것을 우리 민족 고유의 에너지로 미화하고 있다. 그곳에 아름다움이 있노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처럼 일본인들의 죽음의 미화 역시 딱한 구석이 있긴 매한가지다. - P205

일본의 성개방 문화는 기후와 칼 때문에 빚어진 것들이다. 더운 지역이기 때문에 노출이 많고, 그 끈적거리는 일본의 여름을 지내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주 씻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성적인 유혹과 접촉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일본만의 것은 아니다. 비슷한 기후대의 타이완이나 필리핀, 태국 등지에서 볼 수 있는 성 개방 분위기들은 그것이 그 민족의 도덕성과 꼭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물론 일본의 온천 문화도 한몫을 하는 건 사실이다.
한국인이 일본인들보다 더 도덕적이라면 (그런 것 같지도 않지만, 보기에) 그건 인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순전히 기후 탓이다. 추운데 그게………? - P206

바로 이런 문화적 배경 차이 때문에 일본의 성문화 역시 우리에게는 낯선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만일 일본인들의 그런 저열한 성문화 때문에 걱정을 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왜곡된 성의식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성의식을 초월할 수 있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우리만의 성문화를 우리 청소년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일본의 저질 성문화를 극복하는 유일한 대안일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믿는다. 답은 우리가 제시해야 한다. - P207

오타쿠들은 사회의 주류에서 비껴나 자기만의 성취를 느끼는일종의 환자들이다. 도태를 선언받기 전에 미리 독립선언문을 낭독해버리는 꼴이다. 그들은 일종의 정신적 모라토리엄 선언자들이다. 경제적으로 지불 불능을 선언하듯이 자신들의 정신적 성장을 거부하는 행위자들이다. 애니메이션에는 바로 이런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이 함정은 누구나 빠질 수 있다. - P210

더욱이 오타쿠들도 자신들만의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는 측면을 놓고 본다면, 교육적, 사회적 좌절자들을 길러내고 있는 한국사회는 원하든 원하지 않는 오타쿠 성장의 비옥한 토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청소년층의 인디 문화 정서와도 주파수가 비슷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 P210

유교의 정신적 억압이 만든 빈약한 상상력과 새로운 대체 윤리를 마련하지 못한 데서 오는 공허감,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본애니메이션 콘텐츠에 대한 무조건적 숭배.
유교의 스승관이 만든 왜곡된 교실에서 양산되는 수많은 좌절청소년들, 그들은 언제나 잠재적인 폭력배들이다. 기회만 있으면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밖에 없다. 뭔가를 찾던 중 일본미디어들의 폭력성에 감염되고 있는 것이다.
성의 문화 역시 같은 동기, 같은 이유로 왜곡되고 있다. 건강한성 의식과 부부의 아름다운 성이 자랑스러운 문화를 우리 스스로 마련하지 못한다면 그건 꼭 일본의 성문화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무너지게 마련이다. 왜곡된 성이 일본적인 자극이 없다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겠는가? 결국 문제는 한마디로 허약한 우리 문화의 저항력에 있다. - P211

장사꾼은 장사해서 이문을 남기면 그만이다. 왜 거기서 ‘민족‘이나오는가? ‘민족‘과 ‘문화‘는 강자만이 말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중국인들은 정치를 잘하는 지도자보다는 상치를 잘하는 인물을 영도자로 흠모하고 따른다. 떵시아오핑의 시장경제 도입.
현 국가주석인 짱저민의 외자유치, 농업경제학 박사인 타이완의 리명회이 총통 등은 모두 감각적인 상치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다.
홍콩의 초대 특구장 동씨엔화 역시 상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결국 지역은 다르지만 거대한 중국을 유기적으로 통치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장사꾼 기질이다. 우리는 그들은 너무 정치적으로만 관찰하고 있다. 게다가 민족 정서까지 곁들여 그들과 마주앉으니 답답한 일의 연속이다. - P213

정주영을 보라. 남북 대화의 물꼬는 정치학자들의 이론이나정치인들의 잔머리로 트인 것이 아니다. 무식해보이기까지 한 장사꾼의 아이디어로 열렸다. 나는 그를 ‘전위 예술가‘ 라고까지 표현한 일이 있다. - P214

중국인과의 대화는 철저하게 장사꾼 법칙에 따라 진행되어야한다. 이 법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름대로 관찰한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무엇이든 판다‘이다. - P214

서양인들을 만나보면 한국에 대해 관심을 지닌 사람들이 적지않다. 그리고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문화유산 중에는 상품성이 있는 것이 무척 많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잘 팔리도록 잘 포장하여 내놓을 수 있는 의식과 아이디어가 부족하다. 문화의 상품화 전략이 부족한 것이다. - P215

문화의 상품화 전략은 한국인들이 중국 시장을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의식이다. 그것은 중국인들에게 한국 문화 상품을 팔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애지중지하고 ‘이건 절대 못해‘ 로 못 박아놓았던 존재들까지도 상품화하겠다는 마인드의 전환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상품화 전략은 세부적 아이템에 대한 어드바이스가 아니다. 세종대왕의 친필이라도 팔 수만 있으면 팔아야 한다는 장사꾼 기질을 기르라는 뜻이다. 그래야 중국인들의 장사꾼 기질과 싸워 이길 수 있다. - P215

우아한 비즈니스라는 말은 중국인의 뇌리 속에는 없다. - P217

흔히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한자교육을 통해 유교적 가치관을 재교육하고 싶은 의도가 숨겨져 있다. 버릇없는 요즘 젊은것들(?)에게 도덕을 심어주겠노라며 명심보감 따위를 새로 읽게 만드는 해프닝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별 볼일 없는 상품을 조금 괜찮은 물건과 함께 파는 일종의 ‘유교 끼워 팔기‘
형식으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 P219

결론부터 말하면, 한자는 아시아에서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받아들여 사용하면 되는 것일 뿐, 한자를 한글에 섞어쓸 필요는 없다. 또 학교에서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가르칠 필요도 없다. 효과적인 프로그램만 있다면 한자 문제는 아주 간단하고 쉽게 해결할수 있기 때문이다. - P221

국한문을 혼용하자는 사람들의 논리는 이렇다.
우리 전통 문화의 계승을 생각해도 그렇고, 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영향력을 고려해봐도 그렇고 한자는 필요하다. 그러니, 일본처럼 아예 한자를 한글 사이에 넣어 함께 사용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한자 문화권에 자연스레 편입되면, 중국, 일본 등과 의사소통을 할 때 편리하다는 현실적 고려도 있긴 하지만, 어차피 중국 문화권의 영향 안에 있으니 적당히 묻어 살자는 변형된 사대주의적 심리도 들어 있다.
지금도 토씨 빼고는 거의 한자를 섞어 쓰는 변형된 사대주의자들은 의외로 많다. 관공서의 공문, 군대 용어, 법원의 용어 등에는 한자로 먹고사는 내가 봐도 알기 힘든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은 그런 글자들을 쓰면서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고 있는 듯하다. 거기에는 다름 아닌 한자를 모르는 세대나 사람들로부터 은근히 권위를 인정받으려는 조선시대 양반들의 왜곡된 심리가 숨어 있다. - P222

한자는 아시아인들 모두가 만들어낸 공동의 문화적 유산이다. 한글이 세종대왕의 개인 재산이 아니듯이 수천 년 전 여러 종족이 함께 교류하며 만들어낸 공동의 발명품이다. - P224

몇 가지 예를 들어 한자가 지니고 있는 문화적 배경에 대해 설명을 해보겠다.
귀신 鬼(귀)의 경우, 갑골문을 보면 이것은 얼굴에 가면을  쓴 이방 민족의 모습이다. 고대의 부족들은 사회적 분업 측면에서 각자 나름의 역할과 직업을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면, 토기를 잘 만드는 부족, 마차를 잘 만드는 부족 등으로. 가면을 쓴 귀 부족은 장례를 전문적으로 치러주는 종족이었다. 때문에 사람의 혼백을 뜻하는 鬼가 된 것이다. - P227

또 가장 오해가 많은 글자로 글씨 文(문)이 있다. 모두들 잘못 알고 있는 이 문자는 사람의 몸에 심장을 그려넣은 모습이다. 즉 文(문)은 사람의 몸에 주술적 그림을 그려넣었던 문화를 알게 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죽은 사람의 가슴에 심장을 그려넣음으로써 부활을 기원하는 의식의 한 과정이었다.
즉 우리가 지금 말하는 글자로서의 기록이 아닌 주술적 그림이라는 뜻이다. 당사자들의 모든 감정과 애원과 느낌이 듬뿍 담긴 그림으로 후일 인간의 모든 기록을 상징하게 된다. 그 기록 중에서도 감성이 담긴 기록을 말하는 학문이 바로 文學(문학)인 것이다. - P228

자신들도 잘 모르면서 학생들에게 잘못된 지식을 ‘권위있게‘ 전달하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각 한자가 지니고 있는 배경 지식에 관한 오해와 억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따라서 나는 공연히 한자를 가르치면서 어설픈 문화 풀이를 곁들이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건 문화적 이해도 아니고 전통의 계승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걸 통해서 아시아의 커뮤니케이션 문화 속으로 손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우리는 전통으로서의 가치도, 의사소통 도구로서의 기능도 모두 배우지 못하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 P229

전통 계승과 커뮤니케이션의 두 단층 사이에 걸터앉은 채 국가적으로 엄청난 경비와 노력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방법이 전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보다 새로운 감각과 시각을 가지고, 동아시아 문화에서 가장 효과적인 의사소통 도구인 한자의 가치와 내면에 대해 생각하고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나는 중국 한족의 언어라는 의미로 굳어진 한자라는 이름 대신에 21세기 미래 동양의 시그널을 상징하는 아시아 사인 (Asia Sign)이라는 명칭을 쓰고싶다.
한국의 미래 세대는 다가올 아시아 시대의 새로운 주역으로자리하기 위해 이 아시아 사인을 마스터해야 한다. 이 아시아 사인은 어떻게 보면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 모두가 필히 갖추어야 할 문화적 패스포드일지도 모른다. - P229

입장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현재 중국이 일상의 기초 용어로 규정한 한자의 수는 2,205자다. 반면에 일본이 상용 한자로 사용하고 있는 한자의 수는 1,945자, 그 중에서 기초로 가르치고 있는 교육한자는 996자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현대 한자어들을 집어넣고 공통 집합을 내보면 약 1,500여 자 정도를 얻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기본 부수, 역사, 정치, 경제, 문화 등의 갈래를토대로 보다 기본적인 글자들을 추리고 추리게 되면 약 1,000자 내외가 된다. (나는 이 작업을 하면서 한국 신문들과 방송, 일본NHK, 『아사히신문』, 중국의 CCTV, 『인민일보』,『베이징 청년보』 등을 참고했다.) - P231

이 1,000여 자의 글자는 다시 약 10종류의 부수 군, 5개의 문화적 분류를 통해 좀더 세밀하게 나눌 수 있다. 그리고는 다시 문자합성 요소의 단순성과 복합성을 고려해 차례로 나열한 후, 마지막으로 흥미 있는 설명을 더해서 교재로 완성된다. (중국 간체자와 일본식 약자의 경우, 그 자형을 정확하게 맞출 경우, 공통 집합의 수는100자 내외로 줄어들고 만다. 그렇게 되면 공통 문자로서의 의미는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똑같은 자형은 아니지만 자형의 유사성과 내부적연관을 근거로 1,000여 자의 숫자를 뽑아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형이 다소 차이가 나기는 해도, 가장 기본적인 부수들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이들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나는 이 1,000여 자의 글자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칠 계획이다. 중국어와 일어의 공통 분모가 되는 이들 글자들은, 이것을 익힌 학생들이 중국어와 일어를 익히고 싶을 때, 또 개인적으로 한자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려고 할 때, 훌륭한 기초의 역할을 할 수있을 것이다. - P231

한 번만 더 고민하면 쉽고 경제적인 방법을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해보지 않는 것일까? 간단한 방법을 생각하지 않고 왜 온 나라가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을 들여가며 고민을 하고 자라나는 신세대들에게 학습의 부담을 전가하려 할까? 의미도 불분명하고, 논리도 없는 상태에서 왕창 가르쳐놓고 알아서 하라는 것이 어떻게 교육일 수 있는가?
한자 교육이 우리의 미래를 진지하게 우려하는 차원이 아닌한문 교사들의 밥그릇 싸움 차원에서 맴돌거나, 보수주의자들의 ‘신세대 길들이기‘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아시아적 가능성 운운은 먼 나라 이웃 나라 이야기가 될 뿐이다.
그런 무책임이 국가적으로 신세대들에게 저질러지고 있다는것은 너무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천년 묵은 낡은 방법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한자 교육을 강요하면서 그들을 좌절의 악순환 속으로 빠뜨리는 우리는 많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 P233

이제 우리는 좁은 한국이 아닌, 아시아를 이야기하고 아시아 무대에 익숙해져야 한다. 한국인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 더 나아가서 아시아를 이해하고 아시아의 한 부분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할수 있는 능력과 안목을 갖추는 데 한자는, 아니 아시아 사인은 필요한 것이다.
이제는 오랜 세월 권위를 누려온 우리 사회의 한자에 대한 잘못된 교육관과 풀이 문화를 7월의 소낙비처럼 씻어버리고 싶다. - P234

학부모들이 원하는 공부는 아주 간단한 것이다.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읽거나 써야 한다. 또 적당한 체크를 위해 주로 쓰기를 강요한다. 체크하기 편하고, 써놔야 학습이 되었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더욱이 논술이 대학입시에 들어오면서 ‘쓰기‘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우리는 큰 실수를 하고 있다. - P237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바로 ‘공부해라‘ 지만 가장 효과 없는 주문 역시 ‘공부해라‘일 것이다. - P237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한 정보가 어디에 있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현재 당면한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가를 감지하고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 P239

이제 공부를 위한 공부는 끝나야 한다. 그것을 끝내지 못하면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 이제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지식을 머릿속에 쑤셔박는 공부가 아닌 숨은 능력을 끌어내는 지혜를 이야기해야 한다. - P240

나는 한국의 영어 교육이 실패한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반드시 써먹겠다‘는 의지가 부족한 데 있다고 본다. 선생과 학생 모두가 써먹겠다는 의지와 필요 때문에 영어를 가르치고 익히는 것이 아니라, ‘관문 통과‘를 위해 필요한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늘 골치만 아프다. 또 교과서를 만들 때도 아이들에게 도덕적 교훈‘을 주겠다는 유교적 ‘훈수‘의 가치관이 바닥에 깔려 있다. - P241

"영어 공부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영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어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고 고생깨나 해본 사람은 위의 표현이 감춘 외국어 학습의 키포인트를 찾아냈을 것이다. 바로 그거다. ‘공부‘와 ‘사용‘은 전혀 별개다. 한국의 영어교육은 학생들에게 ‘공부‘ 만 강조했기 때문에 ‘사용‘할 수가 없다. 학습의 목표가 잘못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수반되는 결과다. - P241

내가 중국어를 마스터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영어 공부에 그대로 적용했다. 효과는 금방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의 방법은 간단하다. ‘사용‘ 하는 것이다. 그것도 철저히 소리로만 그리고 모든 쪽팔림에서 초연해지는 것이다. - P242

나는 매년 중문학과 1학년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여러분들 4년 동안 중국어 ‘공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중국어못한다. 단 한 달이라도 ‘사용‘ 해야 중국어를 할 수 있다. 쯔따오마? (알겠습니까?)" - P242

나는 처음 한달 정도는 학생들에게 외국어 학습에 필요한 기본 태도에 대해 집중적으로 교육을 한다. 그것은 이제까지 학교에서 해온 영어 ‘공부‘의 녹슨 방법을 철저히 버리도록 하는 일이다. 그래서 다음 세 가지를 먼저 주문한다.
첫째, 반드시 써먹겠다고 결심하라. 둘째, 글자를 버리고 소리로만 익혀라. 셋째,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지 말고, 생각나면 일단 내뱉어라. - P242

아무리 멍청이라도 한 1년 소리만 듣고 동작을 익히다보면 웬만한 말은 알아듣고 할 줄안다. - P243

내 프로그램으로 가르친 아이와 기존의 전통적인 방법(글씨 쓰고, 따라 읽고, 문법시험 보고)으로 공부한 아이와는 6개월만 지나면 능력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이렇게 했을 때 얻게 되는 가장 큰 효과는 중국어 구사력이 아니라 학생들의 자신감이다. 자신감이야말로 존재의 이유‘다.
그리고 나서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한 2, 3년 더 지도하면 중국어는 대충 마스터가 된다. 실제로 학생들 중에는 4학년 때 통역을 나가는 아이들이 있다. 아무 탈 없이 잘 해낸다. - P243

전통적으로 유교는 말에 대해서는 억제하는 태도를 가졌고, 시나 문장 등의 글 다루기에는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러다보니 외국어 학습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의사소통은 무시되고 글 다루기 능력 위주로 교과서가 만들어진다. 또 선생님들은 그것을 가지고 역시 의사소통과는 관련이 없는 단어 스펠링이나 문법 등만을 가르친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교과서를 만들었던 사람들이나 가르쳤던 사람들 중에 영어를 마음껏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적으로 수십 년 동안 수백만 명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댔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던가? 연습장이 새까맣게 되도록 단어를 외웠건만 ‘하이, 굿모닝‘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 P244

조기 교육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의 의견이 만만치않다.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지만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학부모들의 상황을 보면, 조기 찬성론자는 대부분 ‘여유 있는‘ 계층들이고, 반대론자는 대부분 ‘여유 없는‘ 계층들이다. 사실 이들 반대론자들은 구체적인 데이터나 이론에 근거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식들과의 민망한 상황을 조금 해소해보려는 의도에서 ‘전문가 의견‘을 뉴스에서 빌려온 것이 대부분이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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