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를 통해 이 책이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결론에 좀 더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존재의 이유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하면 된다.‘

하단에 밑줄 치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위에 적은 이 문장이 ‘오늘의 핵심 문장‘ 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자기가 원하는대로 해요. 일단 답을 찾으면 그건 자기 것이거든요. 자기 것을 찾았으니까 그것으로 무엇을 하든 그건 자기 마음이지요."

"자기가 여기 존재하는 이유를 깨달은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깨달음을 실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 하겠죠. 따라서 제 질문은 어떻게 그 깨달음을 실행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케이시를 쳐다보니 그녀는 이미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듯했다. 단지 내가 스스로 그 길을 찾아내기를 기다리느라 말을 아끼는 느낌이었다.

"그건 사람에 따라 달라요."

"예를 들어드리면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살면서 남는 시간을 활용해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가정한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어떤 종류의 예술작품을 남기고 싶으세요?"

"모르겠어요. 어떤 종류의 예술가가 되고자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하지만 그게 뭐든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보려고 할 것 같은데요."

"그게 그렇게 간단한 거였나요? 자기가 존재하는 이유를 깨닫고 나면 그 다음에는 그 깨달음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무엇이든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이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내가 무엇인가 특별하면서도 중요한 것을 발견했고, 그것을 내 몸 안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 확인시켜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깨달음의 내용이 너무나 간단한 것이어서, 내가 찾던 정답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존재 이유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하면 된다.‘ 이렇게 단순할 수 있다니.

"그럼 나의 존재 이유가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한 거라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좋을지 스스로 판단하고 그 판단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겠네요?"

"맞아요.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이 의료계에 종사하는 거라면 그렇게 하는 거지요. 또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것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거라면 그렇게 하면 되고요. 회계사가 되어서 세금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회계사가 되는 거지요."

현기증이 일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관점에서 내 삶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족들이 해주는 조언을 따르거나 보이지 않는 사회적 압박에 눌려, 또는 사람들의 의견을 좇아 결정을 내리며 사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이런 시각은 확실히 새로운 것이었다.

"만약 내 존재이유가 백만장자를 경험해보는 거라면 어떻게 되죠?"
"그럼 백만장자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그 정의를 달성하기 위해 뭐든지 해야죠. 그게 백만장자들과 사귀는 것이라면 백만장자와 사귀어야죠. 또는 그게 백만장자가 될 때까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라면 일을 해야 하고요. 아까도 말했듯이 선택은 스스로 하는 거랍니다."

"다 좋아요. 그런데 그게 정말 당신이 여기 존재하는 이유인가요?"

"메뉴판에 있는 질문을 다시 한 번 보시겠어요?"
나는 메뉴판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로 보였던 질문이 ‘나는 왜 여기 있는가?‘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놀라움 가득한 얼굴로 케이시를 쳐다봤다.

"자기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 이를 일컬어 ‘존재의 목적‘을 찾았다고 하는데, 인생을 살면서 바로 이 존재의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 열 가지 일을 할 수도 있고 스무 가지 또는 수백 가지의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어요. 존재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한 일이라면 뭐든 할 수 있답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바로 자신의 존재 목적을 찾아내고 그 목적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랍니다."

"덜 행복한 사람들은 어떻죠?"
"덜 행복한 사람들도 많은 일을 해요.
케이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마음 한구석에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말로 내뱉었다.
"그 사람들은 존재 이유와 무관한 일을 많이 하겠죠."
이 말에 케이시는 미소를 지었고, 나는 이것이 바로 내가 끌어내야 할 결론의 일부임을 깨달았다.

"사람은 자기의 존재 목적을 탐험하고 그와 관련한 수많은 일을 직접 몸으로 부딪쳐보면서 그 존재 목적을 충족시켜나가는 것 같아요."

"맞아요. 우리는 모두 자기가 가진 현재의 경험이나 지식 안에 갇혀 있어요.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바로 ‘현재‘ 입니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그 어느 때보다도 쉽게 갖가지 정보라든가, 여러 분야의 사람들, 다양한 문화와 접할 수 있어요. 존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 가장 큰 장애물은 접근성의 한계가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그런 정보나 사람, 문화에 접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게 문제지요."

"맞는 말이에요. 나부터도 얼마든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데 그 가능성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 그날이 그날인 것 같아요.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지금까지 경험에 비추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 존재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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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사업이 날로날로 번창하고 방송도 타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학창시절 친구 중 한 명이 주인공의 매장에 방문한다. 처음에는 그냥 순수한 방문인줄 알았건만, 실질적인 목적은 자동차 영업이었다. 때마침 학창시절 그 친구로부터 학폭을 당했던.. 그리하여 상처가 깊었던 현재 회계사인 친구가 같이 있었는데, 주인공과 회계사인 친구가 합심해서 그닥 구입의사가 없는 자동차를 자꾸만 강매하려는 그 친구를 쫓아낸다.

이 이야기와는 별개로 주인공이 방송출연을 위해 메이크업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주인공의 메이크업을 담당하고 있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주인공의 제품에 관심을 보이자 주인공이 자연스럽게 제품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 개인적으로는 위에 나온 자동차 영업과 주인공의 제품을 영업하는 방식을 대비해보면서 영업의 좋은 예와 나쁜 예를 하나씩 구경한듯한 느낌을 받았다.

구매자가 딱히 원치도 않는 제품의 구입을 억지로 강요하고 영업은 소비자들로부터 반감을 사기 십상이지만, 구매자가 구매의사를 가지고 구매하기 원하는 제품에 대해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며 구매자의 구매의사결정을 돕는 게 참 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많이 배려해서 먹고살기 위해 혹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영업해야하는 세일즈맨의 입장도 어느정도 이해는 하지만, 소비자가 그닥 원치도 않는 물건을 가져와서 구입을 강요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Win-Win의 관계가 아닌, Zero-Sum 게임은 어느 한 쪽에 손해를 끼치게 되는 행위인지라...

뭐 소비자 입장에서 평소에 제품의 필요성에 대해 크게 생각지 않다가도, 세일즈맨의 설득에 의해 제품의 필요성이 마음속에 와닿게 느껴진다거나 각종 혜택에 의해 제품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되어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논외이긴 하다. 가까운 한 예로, 알라딘 북플러분들이라면 거의 알고 계실듯 한데 위의 사례처럼 직접 사람과 사람이 면대면으로 마주하는 건 아니지만, 알라딘 앱에서 푸시로 기대별점 작성시 적립금을 증정해주는 이벤트를 종종하는데 이게 몇 번 쌓이면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금액이 된다. 이런 경우 책을 안사는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어 책구매로 이어졌던 경험이 요근래 꽤나 있었다. 아마 다른 분들도 비슷한 경험들을 하고 계실듯 하다. 이런 경우는 판매자인 알라딘이나 구매자인 사람들간에 Win-Win의 성격으로 보는게 맞는거 같다. (소비자입장에서는 혜택을 많이 보면서 산다는 느낌이 들어 좋고, 판매자 입장에서는 혜택을 주기 전보다 혜택을 주었을 때 매출이 증가하면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잠시 곁다리로 빠졌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과 회계사 친구가 구매거절의 의사를 여러번 밝혔음에도 자동차 영업하는 친구가 그들의 마음을 돌릴만한 어떤 혜택을 준다던가 자동차 구매의 필요성을 적절하게 설득하지 못함으로서 영업에 성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거절도 확실하게 해줘야 더이상 마음에 들지도 않는 제품을 억지로 구매하게 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근데 현실에서는 어떤 거절을 쉽게하지 못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로 인해 딱히 필요도 없는 것들을 구입하게 되는 사례들도 적잖이 있는듯 하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전 북플 친구님이신 가필드 님이 올려주신 거절과 관련한 글을 본적이 있는데,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잘 활용하면 아주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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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서 포도와 관련된 얘기들이 나오는데 잘 몰랐던 포도의 효능을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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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방송출연과 더불어 미모의 출연자들과 사진도 찍게되고 그들이 SNS에 사진을 업로드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게 홍보도 되는 등 사업이 승승장구를 달리던 그 때...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

"그럼 욕심 부려야지. 탐욕스러운 게 아니라, 건강한 욕심. 욕심이 있어야 앞으로 나아가지."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야. 그리고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고, 사람들이 행운만 찾다가 곁에 있는 행복을지나치곤 하거든? 행복이 제일 중요한 거잖아. 다들 행복하게 살길 원하고! 뭐 원래 가게 이름이 행복 건강즙이기도 했고."

일에 대해 확신은 없었다. 누가 성공의 확신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 누구도 100%를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가 있었다. 이 일을 하고 싶었다.

시간은 절대 멈추는 법도 없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언제나 그 일관성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 어떻게 대하느냐는 순전히 본인에게 달려 있다.
내가 느끼는 시간도 많이 달라졌다.

전보다 시간이 빨리 가는 느낌이다. 회사에 다닐 때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때가 종종있었다.
당연히 나의 세월이 훅 지나가길 원한 것은 아니다.
회사 생활을 할 때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지겨운 야근이 빨리 끝나길 바랐고, 얼른 시간이 지나 월급날이 오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하루가 아쉽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일요일이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하는 만큼 벌어서, 온전한 내 것인 무언가를 꾸려 나가서 그런 듯하다.

보통 사장이 손을 떼면 가게가 망한다고들 하던데, 손을 대려고 하면 다 저리 가라고하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행복함이 묻어나는 헛웃음.

"다 숨통 트일 곳이 있으니 나오는 거지. 준비도 안 하고 그냥 때려치겠냐?"
"그러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오정득이 눈을 흘겼고, 나는 씩 웃어 보였다.

"너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을 거 아냐. 그것도 장사 잘 되는 거 훤히 드러냈고. 남 잘 되는 꼴 못 보는 사람들 많다. 그러니까 조심해라. 행동 하나하나 조심해야 돼."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이렇게 찾아온 건데-내가 말을 끊었다.
"그 옛날 생각에 대해 느끼는 게 다 같지가 않잖아."
"뭐....... 그건 그럴 수도 있겠네."

오정득은 여전히 아무 말도않은 채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영기는 기분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지만, 조금 전보다는 확실히 수그러져 있었다.
전부 과거의 영향이리라.
오정득은 학교폭력의 피해자였고,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안영기의 얼굴을 보자마자 부글부글 끓는다.

이미 지나간 과거라지만 결코 그 얼룩은 지워지지 않는 법.

안영기는 탐욕으로 가득한 눈을 번뜩이며 혀로 입맛을 다셨다.
나는 테이블 위에 손을 얹으며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차 영업하러 온 거야?"

더 이상 이런 얘기를 들어주고 있고 싶지 않았다. 조금 묵직한 걸 툭 던졌다.

"영업 그만해라. 친구끼리 불편해진다."
최선을 다해 좋게 말했지만,
직설적이었다.
역시나 그 말이 관통했는지 안영기의 표정이 불편해졌다.

다시 얼굴색을 싹 바꾸고 영업을 시도한다.
계속 약을 팔아대네. 무사고? 침수차나 아니면 다행이지.
그나저나 계속 저렇게 끊임없이 떠들 생각인가? 약은 언제쯤 떨어질까. 아마 약발이 들 때까지 도돌이표를 신명나게 찍어대겠지. 좀 더 묵직한 한 방을 날렸다.
"그만하라고. 적당히 하라고 했지?"
"어?"

"생각 없다는데 계속 왜 그래? 그래도 오랜만에 이렇게 보게 돼서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데, 좀 심하잖아. 이제 그만 가라."
안영기는 당황스러움이 잔뜩 드리운 얼굴로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거기에 대고 오정득이 마지막 한 방을 날렸다.
"차를 사더라도 너한테는 안 사."
"아......."
안영기는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나 그리 반갑지 못했다.
그래도 자동차 영업이면 양반이지. 다짜고짜 돈 빌려달란 소리 안 나온 게 운이 좋았던거라고 여겼다.

무엇을 하든 제법 잘 돼서 달달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면 온갖 벌레들이 꼬이게 마련이니까.

"저번에 다른 프로 나오시는 거 봤는데, 진짜 거기 제품이 효과가 좋은가 봐요."
"전부 유기농 재료로만 깨끗하게 만들고 있으니 품질에 자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제품만 드신다고 되는 건 아니고, 생활습관이랑 식습관 자체를 전부 개선해 주셔야 합니다."
"그렇구나. 나도 사먹어야겠다."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방송에서는 간혹 전문의와 한의사가 대립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실제로는 다들 웃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반면에 방송에서는 친한 사이 같던 사람들이 멀찍이 떨어져 앉아서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 모습이기도 했고,

"노화를 막아주는 회춘 명약의 정체가 무엇인가요?"
"바로 포도입니다."

"포도는 왕들의 명약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뛰어난 항산화 작용을 가지고 있는데요. 바로 안토시아닌, 레스베라트롤, 폴리페놀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안토시아닌은 노화를 일으키는 활성산소 생성을 억제해주고, 레스베라트롤은 세포를 젊게 유지시켜주는 장수 유전자 시트루인을 활성화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오, 놀랍네요 그럼 폴리페놀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그 물음에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대답을 줄줄 늘어놨다.
또다시 연예인들이 ‘그거 커피에도 들어 있는 거죠‘ ‘나도빨리 포도 먹어야겠다‘ 같은 말들을 늘어놨다.

비만 체형인 중년 남자 개그맨이 조금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포도가 달잖아요. 당도가 높은데, 저처럼 살찐 사람들한테는 안 좋은 거 아니에요? 노화 막으려다가 비만이 되면 아무 소용 없잖아요."
그러자 처음 보는 젊은 여자 연예인이 말을 보탰다.
"맞아요, 저도 조금만 먹으면 살이 잘 붙는 스타일이라서 아무래도 단 건 좀 피하게 되더라고요."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내놨다.
"실제로 포도는 웬만한 과일들에 비해 당도가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는 것만 아니면 오히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과일입니다."
"당도가 높은데 어떻게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거죠?" 
"레스베라트롤 성분이 있기때문이죠. 당분이 지방으로 전환되는 것을 억제하고, 축적된 지방을 제거하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잼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잼은 다들 좋아해.
설탕이 많이 들어가서 문제지."
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설탕이 1g도 들어가지 않는 포도잼을 만드시면 됩니다.
건강한 단맛을 가진 포도잼이죠."
"그런 포도잼은 어떻게 만드나요?"
여자 MC가 물었다.
"아주 간단합니다. 깨끗이 씻은 포도를 통째로 갈아서 센불에 끓이면 됩니다."

"그럼 물처럼 되지 않나요? 아무래도 잼에는 설탕이 들어가야 점성이 생기잖아요."
"식초를 조금 넣어주시면 됩니다."
"식초요?"
"네, 포도의 팩틴과 식초의 산이 만나면 점성이 생기게 됩니다. 이때 약불로 줄여서 타지 않도록 저어가며 걸쭉해질때까지 끓여주신 뒤에 보관하시면 끝입니다."
여기저기서 ‘나도 해먹어봐야겠다‘ ‘저런 식으로 포도잼을 만드는 방법은 처음 알았네요.‘ 등의 리액션을 했다.

"그럼 포도를 먹을 때는 알맹이만 먹으면 되나요?"
"포도의 좋은 성분들은 껍질과 씨에 많이 함유돼 있습니다. 때문에 껍질과 씨까지 통째로 드셔주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제인 노화 방지를 위해서는 보랏빛 포도가좋지만, 성인병이나 골다공증예방을 위해서는 칼륨이 풍부한 청포도가 좋습니다."

남자 개그맨이 손으로 잔을 꺾는 제스처를 하며 물었다. "그런데, 내가 술을 좋아하는데, 포도주도 몸에 좋습니까?"
"가능하면 음주 자체를 권하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적당히 드실 수도 있죠. 그리고 기왕 드시는 거 포도주면 더 좋을 거긴 합니다."
"오, 이제 와인 좀 따야 되나?"
"그런데 일반적으로 만드는 포도주 말고, 가지까지 함께 들어가야 더 좋습니다."
"가지? 포도 가지를 왜 넣어요? 그거 버리는 거 아닌가?"

"포도 가지에는 껍질이나 씨, 과육보다도 항산화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습니다. 그래서 포도주에 가지까지 넣거나, 이 가지를 말려서 차로 마셔도 좋습니다. 이때 포도알을 조금 추가해서 차를 우려내면 좀 더 단맛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여자 MC가 감탄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말 버릴 게 하나도 없네요."
"네, 포도처럼 접하기 쉬우면서 항산화 성분이 뛰어난 과일도 드뭅니다. 다들 포도 많이 드시고 노화 방지해서 건강해지시길 바랍니다. 저도 제철일 때는 과일로 먹고, 다른 때도 거의 매일 즙이나 주스로 먹고 있습니다."

"어떤 거든 SNS 하시면 홍보도 되고 좋으실 거예요."

할리우드 스타 중에는 아웃스타그램에 게시물 하나만 올려도 광고비로 수억을 받는다고 하던데.
요즘은 블로그보다 이용자 숫자가 훨씬 많으니 해봐도 괜찮을 듯했다.
"네, 저도 이따 시작해 봐야겠네요." 내가 웃어 보이자 양미희도 생긋 웃었다.

빼어난 미모에 젊은 한의원 원장이라는 점 때문에 크게 이목을 끌었다. 어떤 분야든 실력 이전에 외모 혹은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가 튀면 더 관심을 받는 세상이니까.
그렇다고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름대로 한의학 업계에 혁신을 일으킨 여자였다.
현대의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최신기기 도입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한의학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것으로도 유명했으니까.

뭐가 어찌됐든 매력적인 이성의 접근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럴 때도 있는 거야. 살다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어. 아마 곧 오해는 풀릴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감사합니다. 괜찮아요."

할아버지는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든지 쉽지가 않지? 좀 잘된다 싶으니 주위에서 질투도 하고 말이야."
"보고 계셨군요"
"알면서 물어서 미안하다."
"아니요, 사과하실 건 아니죠. 안부 물어봐주신 건데."

"아무튼...... 원래 세상살이가 그렇다. 사촌이 땅을 사도배가 아프다는데, 나 두들겨팼던 놈이 잘 되면 얼마나 배가 아프겠냐?"
"그러게요. 저 같아도 그러겠어요."
뻔히 알고 있던 사실인데도 할아버지를 통해서 들으니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할아버지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양 웃어 보였다.
"더 심한 꼴도 얼마든지 볼수 있어. 죽어도 남 잘 되는 꼴은 못 보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리고 질투하는 사람만 있을것 같으냐? 뭐라도 하나 빼먹으려고 다가오는 놈들부터 해서 별의별 놈들이 다 있지."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당연히 속이야 상하겠지.
속상할 수밖에. 하지만 거기에만 묶여서 진짜 중요한 걸 놓치지는 말라는 얘기야." 나는 고개를 한 번 크게 끄덕이고는 씩 웃어 보였다.
"명심하겠습니다."

"네, 해주세요. 무슨 얘긴데요?"
"사람들이 질투하고 배알꼴려서 남 앞길 가로막으려고 하고, 뒤에서 붙들고 늘어지는 얘기에 관한 거야."

대나무 망태기 안에 게가 가득 들어있는데 뚜껑이 없었지. 그래서 이첨지가 ‘여보게, 이 안에 게가 전부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물었지. 그러자 어부는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했어. 해서 이첨지는 ‘도망이라도 치면 어쩌려고 뚜껑을 덮어놓지 않는단 말인가.‘ 라고 했지. 그러자 어부가 말하기를..."
할아버지는 마치 어부가 된양 말했다.
"당췌 조선 게라는 것들은 자기 몸 상하는 것보다 남 잘되는 것이 더 걱정인지라, 한놈이 망태기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다른 놈들이 힘을 합쳐 끌어내립니다. 무슨 뚜껑이 필요하겠습니까."

나는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할아버지는 나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자 이첨지는 ‘과연 조선 땅에서는 게나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구나!‘하고 감탄하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옛날 이야기다."
"엄청나게 공감이 돼서 조금은 씁쓸할 정도네요."

"옛부터 그랬던 거란다. 대부분의 사람들 성향이 그래.
그러니 마음 편히 먹거라."
"네, 꼭 그럴게요."

어떤 식으로든 화제가 되는건 좋은 일이라더니.
가게의 매출이 수직으로 상승했다.

오정득은 아이튜브의 방향성을 바꿔서 일상 같은 걸 올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조회수가 수천씩은 찍히고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냥 밥을 먹고 산책을 하는 영상의 댓글에 회계나 세무 관련 질문도 적지 않게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막상 회계 및 세무관련 영상은 조회수 자체도 엄청 적었는데.

황금기라고 부를 수 있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에게 능력을 전수받기 전까지의 인생만 생각한다면, 그 시기가 그나마 가장 찬란했던 때인 듯하다.
문제는 그 황금이 도금이었다는 거지만.

인성도 모르는 거다. 한 단면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다. 사람이 얼마나 복잡한 동물인데.
최악의 사람이 기막힌 타이밍에 좋은 모습을 보일 수도 있는 거고, 좋은 사람이 아이러니하게 최악의 모습을 보일 수도 있는 거니까.

양미희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진실이 어떨지 모르는 상태에서 엮이기 싫은 게 당연했다. 아마 나 같아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해가 된다는 거지,
포용까지 되는 건 아니다.
양미희와의 인연은 여기까지.
개인적으로 잘 맞는 것 같지가 않다.

이 만남이 어떻게 이어져도 좋았다.
사업이든 남녀 관계든 오늘로 끝이든.
그 와중에 주머니 속의 휴대폰은 몇 번 더 진동을 울렸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양미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좋게 말하면 능동적으로 직진할 줄 아는 사람이었지만, 조금 다른 시각으로 나쁘게 보자면 질척거리는 스타일인 듯하다.

점심식사가 거의 다 끝나갈 무렵이었다. 음식의 맛 자체는 괜찮았다. 그렇다고 엄청 훌륭해서 감탄을 자아내고 머릿속에 파도가 치며 뒤통수 뒤로 우주가 펼쳐지는 그런 맛은 아니었다.

나도혜는 정말이지 헷갈리는 여자였다.
양미희에게 연락이 온 걸보고 일부러 그랬는지(오직 양미희에게 엿을 선사하기 위해), 아니면 내게 정말 호감이있던 건지, 그냥 그녀의 대화방식이 이런 건지. 어쩌면 나름대로의 비즈니스 스킬일지도 모른다. 적당히 상황을 파악하고, 잡다한 이야기 속에서도 자잘하게 오가는정보의 교류 그리고 뜸들이기로 유혹을 하는 그런 것.

"예. 그리고 이미 배불러서 이건 괜찮으니 원장님 드세요."
나는 디저트를 슥 밀었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눈을 마주쳤다.
"아, 네."
나도혜의 두 눈에서 당황스러운 기색이 보였다.
난 저 눈빛을 안다.
과거에 많은 사람들에게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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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9-29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포도를 한 번 더 사먹어야겠습니다 ㅎㅎ 추석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9-29 10:12   좋아요 1 | URL
저도 읽기 전엔 미처 몰랐는데 포도가 굉장히 좋은 과일이라는 걸 오늘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ㅎㅎ 서곡님도 추석 잘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는 질문

‘당신은 왜 여기에 있습니까?‘

아직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아서 질문의 의도가 뭐라고 명확하게 말할 순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 질문을 스스로 곱씹어보면서 뭔가를 자꾸 생각하게 되고, 밑줄 친 것처럼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궁극적인 존재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냥 하루하루 강가에 물이 흘러가는것처럼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다소 안일하게 살고 있었던건 아닌지 등과 같은 약간의 반성(?)도 해보게 하는 질문이었다.

이래저래 여러가지 생각들을 해보게 하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나면 어떤 결론 혹은 생각을 갖게 될 지도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많은 사람이 잘 살아가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냥 잘 사는 것 이상의 무엇을 찾는답니다. 뭔가 좀더 의미 있는 것을요."

자기가 이곳에 있는 이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사는 이유를 깨달으면 깨달은 대로 살고 싶어져요.

그건 마치 보물 지도에 X 표시된 보물이 숨겨진 곳을 찾아나서는 것과 같아요. 그 표시를 보면 무시하기 힘들죠.
마찬가지로 존재의 이유를 깨달으면 깨달은 대로 살지않고 그냥 살아가기가 더 힘들어진답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각자에게 달려 있는거니까.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다시 읽어보니 처음 이 자리에 앉아서 읽었던 때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질문처럼 느껴졌다. 아까 케이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 존재의 이유에 대한 질문이에요."

"정말 어려운 질문이긴 합니다. 사람들이 그런 의문을 품게 되는 순간은 모두 제각각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린시절에, 또 어떤 사람은 조금 더 커서 그런 의문을 품게 되죠. 죽을 때까지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요. 우습지요."

"그런데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스스로 묻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냈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인가요?"

"둘 다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그리고 답을 찾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흠……… 답을 찾는 방법에 대해서 모든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정답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제각각 자기 방식대로 인생에 접근하거든요. 하지만 지금까지 답을 찾는데 성공한 사람들이 사용했던 기술정도는 몇 가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려고 하다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해답을 찾는 방법을 알게 되면 질문을 하지 않고 사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다른 사람들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찾았는지 그 방법을 아는 것이 정말 나에게 좋은 일일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정말 그런 질문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조차 아직 알 수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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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을 맞아 주인공과 주인공의 작은 아빠가 함께 모임을 하는 자리를 갖는데 전 처였던 숙모가 그 자리에 예고 없이 나타난다. 두 사람은 성격상의 차이가 아닌 경제적인 문제로 갈라선 것이라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주기적으로 연락하며 지내곤 했다고는 하는데...

이러한 스토리 상의 전개와 더불어 사업에 관한 주인공의 깨달음(?)같은 독백이 나오는데 마음깊이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서 유익했다.

4기로 진행돼서 전이가 됐다는 것은 혈관과 림프관을 통해 암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뜻이었다.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가 잘들거나, 다양한 면역치료, 고용량 비타민C 요법 등이 잘 들어서 완치 판정을 받는 경우도더러 있긴 했다.
하지만 암이라는 놈은 몇기든 간에 완치를 받는다면 기적이라고 봐야 했다.
현재 국내에서 말하는 완치는 5년 생존율이다. 5년 내에암이 재발하지 않으면 완치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나고도 재발이 될 수 있는 게 암이다.
지독한 놈이다. 진짜 암이라는 것은 암 같다는 표현 외에 더할 것이 없다.
건강한 사람도 매일매일 몸속에서 암세포가 생기고 사라지고를 반복한다. 우리의 면역체계가 버텨주면서 암세포를 없애고, 암세포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커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암은 어떠한 바이러스나 세균이 아니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최악의 반응이다. 결국 몸이 버텨줘야 한다. 그래야 이겨낼 수 있다.

그렇기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능력은 민간요법을 이용하여 신체 자체의 방어력을 높이는 거니까.
그렇게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하지만 이혼의 가장 큰 원인 하나는 알고 있다.
경제적 이유였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긴 하지.
언제나 현실의 벽이 압박하고, 걱정에 둘러싸인 채 쉬지 못하고 일하니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겠지.
그러다 보니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두 사람은 그렇게 갈라서고 말았다.
숙모의 입장에서는 작은아빠가 원망스러울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고, 사기꾼이 나쁜 놈이지만, 형편이 나아지려는 찰나에 작은아빠가 사기를 당했으니까.
숙모는 안정적인 걸 원했고, 작은아빠는 이번에야말로 가족들을 호강시켜주겠다는 마음으로 도전을 한 것이었다.
사기만 당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텐데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갑작스러운 방문이긴 했지만, 작은아빠가 이혼한 뒤에도 숙모와는 이따금씩 연락을 하는 사이였다. 마땅히 다른 호칭을 쓰기도 애매해서 여전히 숙모라고 부르기도 하고. 누군가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작은아빠 역시 아이들 때문에라도 주기적으로 숙모와 얼굴을 보는 사이였다. 그래서 가끔은 재결합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다.

약간 의심이 들었다. 숙모와는 가끔 안부를 묻는 수준으로 지내며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 가깝다고 하기도 어려웠으니까.
"그런데 어쩐 일로 이렇게연락도 없이 오셨어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웃지 못했다.

숙모는 멋쩍게 웃었다.
"그냥...... 잘 지내나 해서. 잘 지내는 거 같네."

간식거리나 가져다주면서 인사만 하러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숙모는 무언가 부탁할 게 있었고, 그걸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결정권은 내게 있었다.
나보다 한참 위인 숙모 입장에서, 이제는 사실상 가족관계도 아닌 우리 사이에 무언가를 부탁한다는 게 쉽지는 않겠지. 더군다나 숙모 성격이면 더욱. 이혼할 때도 작은아빠에게서 무언가를 원치 않았다. 뜯어갈 것도 없었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양육비조차 원치 않았다. 내가 데려가서, 내힘으로 키우겠다고. 작은아빠는 자신의 아이들이기도 하다며 합의를 끌어내 양육비를 꼬박꼬박 보내고 있긴 하지만. 이런 숙모이기에 더욱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도 쉽지 않다. 어떤 부탁이든 무작정 들어줄 수 없는 노릇이고, 거절하기에도 애매하다.
이래저래 불편한 상황이었다.

분명히 무언가 부탁을 하러 온 걸 텐데. 아마도 돈이겠지.
건강상담이라면 진작 얘기를 꺼냈을 테지. 돈 말고 다른 부탁이랄 게 있을 것도 없었고.
방송까지 탔으니 자금적으로 여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쉬운 상황이었다. 실제로 생각이상의 매출로 여유가 생기고있기도 했지만.

"숙모."
내가 목소리를 내자 숙모가 몸을 돌렸다.
후회할지도 몰랐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의 돈을 빌려달라고 해도, 돈이란 게 한 번 내 손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게 하기 어려워지게 마련이다. 돈을 못 돌려받고, 독촉도 못해서 속앓이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촌동생들의 엄마였다.

"잘 오셨습니다. 위염은 식습관에 따라 재발하기도 쉽고,
혈압의 경우도 관리를 하지 않으면 평생 약으로 조절을 하는수밖에 없거든요. 병원에서도 설명을 들으셨겠지만, 제가 말씀드린 것들을 잘 지키시면 걱정하실 일 없으실 겁니다."

"아니요, 아니요, 위염에 양배추 좋다고 하셨잖습니까. 양배추즙은 제게 필요한 거 아닙니까?"
나는 피식 웃었다.
"네, 그럼 한 상자만 드셔보시고 괜찮으시면 뭐 저희 쪽에서든 어디서든 믿을만한 곳에서 주기적으로 도시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아침에 입 헹구시고, 미지근한 물 한 잔 드신다음, 공복 상태에서 한 팩 드시면 좋습니다."

"재미없어."
"재밌기만 하면 일이 아니지."

중간부터는 어느 정도 감을 잡긴 했다. 그런데 진짜 취업부탁일 줄이야. 당연히 돈을 빌리러 온 거라 생각했었는데. 어느 정도는 빌려줄 마음도 있었고.

할머니는 숙모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작은아빠와 숙모가 이혼했을 때도 그 누구보다 슬퍼했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가 그런 숙모를 챙기는 것은 당연했다.

숙모가 일할 자리를 만드는 정도야 어려울 게 없었다. 마침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이기도 했고. 목적이 있어서 나를 찾아온 것이긴 했지만, 이런 거라면 아무 상관도 없었다. 문제는 숙모가 작은아빠와 남남이라는 것이었다.

"그건 아무도 몰라, 하늘만이 알지."

"그게 순리인 거야. 알 수도없고, 알아서도 안 되는 거지."
"예,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그렇다고 포기하라는 소리도 아니다. 될 수도 있는 거니까. 너는 많은 걸 가지고 있지않느냐?"
"예, 할아버지께 전수받은 능력이 있으니 열심히 하면 분명......."
"그것도 그거지만, 중요한건 간절함이다."
"간절함이요?"

"그래. 언제나 예외는 있고, 기적이 일어나게 마련이지. 네가 지금 나와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것도 기적 아니겠느냐?"
나는 아랫입술에 잠시 힘을 주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래. 그 간절함 그리고 의지가 기적을 빚어내는 법이야.
네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네 도움을 받는 사람도 강한 의지를 굳혀야하고."
"알겠습니다."

"넌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세상에서 가장 믿어야 할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

"바로 나 자신이야. 스스로도 못 믿는데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러니 좀 더 스스로를 믿어. 그러면 돼. 안타깝게도 그 암환자분이 나을 수 있을지 없을지 어떻게 될지는 몰라. 하지만 끝까지 최선은 다해봐야지."
"예, 끝까지 해보려고요. 설사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까지 보다 존엄성을 지킬 수있게, 하루라도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선 넘는 것보다는 선 그어져 있는 게 낫지."

할아버지가 내게 전수해 준것은 서양 민간요법이었다.
이걸 알 수 있는 부분은 토마토와 달걀 그리고 올리브유를 다루면서였다.
기존에 받은 능력으로도 전부 어디에 어떻게 좋은지, 바른 섭취법은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양 민간요법으로 들어오면서 이것들을 활용할 더 다양한 방법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도 영어로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할아버지는 사후세계에서 글로벌하게 지낸 듯하다.

사람이 참 간사하게도 그순간에는 지난날의 다정함을 조금도 기억할 수 없었다. 이따금씩 떠올려도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은 왜 저렇게까지 변했나‘ 같은 생각뿐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는 알 것 같았다. 얼마나 한이 되고 두려웠을까.
할머니를 비롯한 주변 사람 몇몇은 환자가 가기 전에 마지막에 뒤바뀌는 것은 정을 떼려고 그러는 거라고.

"아, 선생님 식사하시는데 왜 자꾸 쓸데없는 말들을 하고 그려? 밥 먹을 땐 말이여, 입을 밥 먹는 데만 써야 하는 거여."

이런 부분도 도움이 되는게 아닐까? 긍정적이고 행복한 마음을 가져야 나아질 수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으니까.
노우민과 두 동생을 데려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컨디션이 조금 좋아진 것 같아요. 확실히 억지로라도 챙겨먹으니까 힘이 더 나는 거같고요."
"무조건 잘 드셔야 돼요. 그래야 몸이 이겨낼 힘을 가집니다."
"그래야죠.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당분을 비롯해서 너무 자극적인 음식들 그리고 튀긴 거는 피하시고요. 채식 위주이긴 하지만, 섬유질도 필요 이상으로 먹으면 좋지 않거든요. 장에서 머무는 시간이 짧아져서 영양분 섭취량이 줄어들어요."

"사우나요? 좀 걸려요. 시내까지 가야 되니까. 그런데 사우나는 왜요? 사우나 가시게요?"
"제가 가려는 건 아니고요.
어머니께서 주기적으로 찜질을 하셔도 좋으실 듯해서요."
"찜질이요?"
"네. 핀란드에는 사우나로 치료가 되지 않으면 불치병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돈데요. 과한 찜질은 좋지 않지만, 적당히 이용해 주면 도움이 될수도 있어요."

"예전에 무슨 온열요법인가 받으라고 하는 요양원 사람이 있긴 했는데......."
"그래요?"
"네. 그런데 너무 비싸서 안한다고 했죠. 거기 요양원에서 지내는 비용에 온열요법 비용에 다해서 한 달에 300만 원이 넘더라고요. 말도 안 되죠. 그나저나 진짜로 사우나가 효과가 있다고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장담은 못합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될 것도 같긴 한데. 왜 암세포가 특정온도 이상에 노출되면 사멸한다고, 암이란 게 체온이 낮을때 좋아한다고 그러더라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그런 말이 있긴 하죠. 정확히는 체온이 42도 이상이 되면 암세포가 증식을 못하고 사멸하게 된다고. 그런데 문제는 체온이 40도 이상이 되면 뇌의 단백질에 변성이 일어나서 큰일이 날 수도 있습니다. 암세포뿐만 아니라, 다른 세포들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고요."

"그럼 사우나도 안 좋은 거아니에요?"
"장시간 고온에 노출되면 체온도 상승하겠지만, 적은 시간으로 체내의 온도까지 상승시키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러면 또 암세포 죽이는데는 효과가..
"한 가지라도 더 해보는 겁니다. 변칙적으로 공격을 퍼붓는 거죠."
김현자는 재미있다는 듯이피식 웃었다.

"효과만 있다면 뭐든 할 텐데 말이죠."
"벌써 효과를 조금씩 보고 계시잖아요. 컨디션이 좋아지셨죠? 분명히 더 나아지실 겁니다. 사우나는 위치도 멀고, 처음부터 부담되실 수도 있으니 반신욕 정도로 하시면 좋을듯 해요. 반신욕이야 여러 가지로 효과가 좋기도 하고요."
"반신욕 좋을 것 같네요."
"딱 30분만 하세요. 하시면서 미지근하거나 적당히 시원한 느낌이 드는 물을 드시고요. 차도 좋고요. 왜 외국영화 보면 반신욕하면서 샴페인 같은 거 마시고 그러죠? 그런 기분 내보세요."

김현자가 활짝 웃어 보였다.
처음 봤을 때하고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에게, 모든 사람들이 항상 밝은 미소를 짓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이 감자튀김이랑 콜라가 몸에 정말 안 좋아. 사실 햄버거 자체도 호밀빵 같은 거랑 채소 많이 넣고, 소스 잘 골라서 한 다음 패티도 고기 질이 좋은 걸로 만들면 건강식이지."

"건강하고 착하기만 하면 됐지 뭐. 자기 하고 싶은 거 분명하고."
"그건 그래요."

단순히 빚이 생기는 게 싫어서는 아니다. 부자가 되려면 적절하게 대출을 써야 하니까.
대출을 많이 쓸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내가 안다. 쥐뿔도 없을 때는 은행에서 대출은 안 해준다. 사금융권에서도 빨대를 꽂을 수 있을 만큼의 소액만 허용한다. 대출도 자산이라고 하지.

내가 저렴한 월세에 들어간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지금 구한 집도 혼자 살기에는 충분하다. 지금은 상담실이 된 쪽방 그리고 모텔달방을 살던 내게 궁궐이나 다름없다.
다른 하나는 전세에 돈이 묶이는 게 싫어서이다. 전세에 묶인 돈만큼 다른 쪽으로 투자든 뭐든 할 수 있으니까. 어떻게든 굴려보겠다는 마음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건강에도 빈부격차가 존재했다.
건강은 타고나는 게 가장 크다고들 한다.
평생 탄산음료를 달고 살면서 100살이 넘게 장수한 할머니가 한 말이 있다. 자신에게 탄산음료를 끊지 않으면 금방 죽게 될 거라고 했던 의사들이 전부 죽었다고. 수십 년 동안 라면만 먹어도 건강한 할아버지, 평생 술, 담배를 즐겼는데도 100살 가까이 산 할머니.

하지만 타고나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관리가 필수다.
관리에는 돈이 든다.
간단한 예로 미국의 중산층 이상보다 서민층에 비만율이 훨씬 높다. 건강한 음식들보다 인스턴트식품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더 극단적이다. 체감물가가 전 세계 최고수준이니까. 채소나 과일 같은 것들은 임금대비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비교해도 가장 비싸다. 그러니 가난할수록 건강도 챙기기 어렵다.

백날 봉사를 하고, 수많은 조언들을 하는 것보다 당장 입금되는 돈 몇 푼이 더 크게 와닿고 도움이 될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경제적으로 나아지면 스트레스도 줄어드니 건강에도 좋다. 내가 건네는 건강관리를 더 충실하게 지키기도 쉽고.

"특히 사과 같은 경우 씨에 독소가 있어서 반드시 제거해야 돼요."

"사장님이랑 우리 우민 씨도 너무 좋으시고."
숙모의 말에 피식 웃었다.
"사장님은 무슨......."
"가게에서는 사장님이라고 해야지."
먼저 이렇게 위계질서를 잡아주니 편했다. 감투를 쓰고있다고 그걸 이용해 무언가를 할 생각은 없지만, 선이라는게 있는 법이니까. 안 그러면 아쉬운 소리도 하기 힘들고.

아는 사람과 일하는 건 조심해야 한다. 가까울수록 더.
동업은 절대 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일이란 게 아는 사람하고 하면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일을 못하면 못하는 대로 아쉬운데, 서운한 말을 하기가 힘들다. 일을 잘해도, 아는 사람이기에 더 큰 걸 바라게 된다. 이런 식으로 문제들이 끊이지가 않는다.

식생활교육지도사, 약용식물관리사, 약초관리사, 약초이용발효지도사, 식품가공기능사까지.
나의 학력으로 빠르게 딸수 있는 것들은 전부 손에 넣은 셈이었다. 다른 자격증들은 수년에 달하는 실무 경력이나 학력이 필요했다. 이 기본적인 조건은 충족하고도 남는 걸로 보였다. 사람들에게 조금은 더 신뢰감을 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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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다 같이 영화를 보는 것은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일종의 전통이 됐다.
수년 전부터 작은아빠 집에서 차례를 지내기 시작하면서 할 것 없이 텔레비전이나 보다가 흩어지느니 문화생활이라도 같이하자면서 시작됐다.

단숨에 우리 사이에 있던 벽을 허물 수는 없겠지만, 그 높이가 조금은 낮아진 듯한 기분이었다.

돈이란 게 참으로 재미있었다. 돈이 벌리기 시작하니까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돈을 쓰니 더 좋았다.
나는 가족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내가 잘 돼서 다들 호강시켜줄게!

"원래 뭐든지 차곡차곡 쌓여서 한 방에 터지는 거야. 당장은 괜찮아도, 버틸만해도, 그게 쌓여서 나중에 한 방에 터지는 거라고. 무슨 큰 병 하나씩 달고 살거나 터진 사람들 대부분 5년, 10년, 길게는 20년 전부터 진행이 되어온 거야."

"이잉? 내가 거짓말하는 줄아나 보네. 진짜로 그래. 건강은 있을 때 챙겨야 돼. 사람 몸이라는 게 교체가 안 되잖아.
그래서 최대한 멀쩡할 때부터 관리를 잘해서 오래 가게 해야된다고. 물론, 고장 나서 고칠수도 있지. 그런데 못 고치는 경우도 있어, 자동차처럼 전손처리해야 된다고."

어떻게 이렇게 한 순간에 여러 개가 터지는지. 버티고 버티던 게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

"쉴 때는 쉬어야지. 돈도 좋지만 아프면 다 무슨 소용이냐. 너만의 문제가 아니야. 나한테도 그렇고 밤에 일한다는 곳에도 폐를 끼치는 거야."

통풍은 그리고 요산이 쌓여서 생기는 거고,

어떤 사람들은 사인이 암인게 차라리 낫다고들 한다. 주변 정리를 할 수 있다고. 주변사람들도 천천히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마지막에 고통이 너무 크다.
모르핀에 의지하지만, 결코 그 고통을 다 덜어내지는 못한다. 주변 사람들 또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같이 죽어간다. 암은 그렇게 지독한 병이다. 마지막이 다가올 때는 의식도 서서히 멀어진다. 가족인데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니까.

극심한 스트레스는 신체의 자기방어능력을 떨어뜨리니,
자연히 아픈 곳이 생기기 쉽게 만든다.

"커피도 가능하면 피하셔야돼요. 위장에 자극이 많이 갑니다."

"풍부한 단백질에 좋은 기름으로 지방 그리고 탄수화물은 적당히 드셔야 합니다. 음식도 조금 심심하게 드셔야 하고요. 짠 거는 안 됩니다. 생선이 참 좋습니다. 고등어 같은거요. 달걀도 좋고요. 물은 충분히 드시되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드실 필요는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해. 얼마나?"
"물은 하루에 1.5리터에서 2리터 정도만 드시면 됩니다."
"그리고 또?"
"오리탕도 몸보신 하실 때 좋으시고, 마늘도 좋고요."

"잉어나 가물치 같은 것도 좋지 않나?"
"아, 좋죠. 제가 말씀드린 것들 지키시면 일단 배부터 들어가실 겁니다."
"그려? 안 되면?"
"꼭 될 겁니다. 좋아지실 겁니다."
"......알았어. 해볼게."
마냥 쉽지는 않았지만 노인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처음에나 그렇지,
결국에는 해보겠다고 했다.

"그런 말이 있어요. 예순부터는 해가 지날 때마다 다르고, 일흔부터는 달이 지날 때마다, 여튼부터는 하루마다 다르다고."
"하이고, 맞아유, 진짜 그래유."

"무엇 하나 제가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4기 암을 이겨낸 분들도 계시죠.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잖아요. 하지만 그만큼 극소수에 불과하기에 텔레비전에도 나오는 거죠."
마음은 무거웠지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그런 기적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습니까? 완치를 약속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약속할 수가 없으니까요. 한 가지만 여쭈겠습니다. 병원에서 몇 개월 남았다고 했죠?"

"저랑 좀 더 노력해 보시죠. 조금이라도 가족들과 함께하실 수 있는 시간을 늘려보죠. 혹시 모르죠, 기적이 일어날지도. 진심으로 기적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부분은 단 하나입니다."

"시간을 벌어주신다고요?"
"아니요, 적어도 마지막까지 최대한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존엄성을 지키실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고통이 덜하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김현자는 말문이 막히는 듯 입을 몇 번이나 벌렸다가 다시 다물기를 반복했다.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하지만 그이상 뭐가 어떻게 될지는 모두 어머님께 달려 있습니다. 지금처럼 생활하셔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겁니다. 나으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기왕이면 치열하게 싸워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의지가 중요합니다.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제가 상상도 못할 만큼 힘드신걸 압니다. 그래도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가능할까요? 나을 수 있을까요?"
"그건...... 하늘만이 알겠죠.
하지만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김현자는 여전히 망설이는듯했다. 그리고 곧 그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지금까지 안 해본 게 없을 정도에요. 하지만 호전되는 경우는 없었죠. 오히려 간수치가 올라간 적도 있고, 위경련 때문에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어요. 그래서, 조금 무섭습니다. 오히려 더 아프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들고요."

"몸에 무리를 주는 약을 쓰거나 할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어머님을 치료해 드린다는 게 아닙니다. 애초에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요. 하지만 남들보다 건강관리를 위한 것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나는 진심을 다해 말했다.
"반드시 치유에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어머님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럼 해봐요."

그때 얘기를 듣고 있던 이필순 할머니가 김현자를 끌어안았다.
"잘 생각했다, 잘 생각했어. 포기하면 안 돼야....... 애미보다 먼저 가는 자식이 어디 있다니......."
이필순 할머니가 엉엉 울었고, 김현자도 끝내 눈물을 보였다.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제발 김현자가 낫기를. 수많은 사람들이 건강하기를.

"여기 어머님께서 제가 말씀드린 대로 하셔야 돼요. 일단 기력이 따라줘야 합니다. 지금 몸이 너무 약해지셨어요.
입맛 없어도 무조건 드셔야 합니다. 정말 정 안 먹히면, 건강에 좋은 게 아니어도 일단 드셔야 됩니다. 그래야 싸울 힘이 생깁니다."

"네.......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너무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지쳐서.......무서워서..."
나는 김현자의 손을 꼭 잡았다.
"알아요. 저도 아버지께서 투병생활을 오래하셔서 잘 알고 있습니다."

"오래오래 사셔야죠. 할머님도 같이 관리 열심히 하세요. 또 누군가 같이하면 힘도 더 나는 법이니까요."

4기는 암이 전이된 상태를 뜻한다. 김현자는 대장암으로 시작됐지만, 현재 간에도 상당부분 전이가 됐었고, 폐에도 아직 확신은 못하지만 암으로 의심된다는 소견이 있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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