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이 떨어지자 정영신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아니, 사람이 실수를 한 거 가지고 무슨 그렇게―" 나는 정영신의 말허리를 끊었다. "실수요? 실수라는 건 모르고 한 게, 의도치 않은 게 실수고요. 인터넷에 글자를 쓰면서도 계속 생각할 수 있고, 몇 번이나 수정도 가능하고, 올렸다가도 바로 삭제도 할 수 있는데, 그걸 끝까지 올리면서 마지막까지 댓글로 선동하고 맞고소를 한다고까지 하신 게 실숩니까? 더 할 얘기없으니 그만 가세요."
이번 일로 인해서 가정이 파탄 나는 지경에까지 이른 듯했다. 그래도 고소를 취하할 생각은 없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으니 더욱. 내가 봐주면 또 그럴 사람이니까.
"대부분 자신이 맡은 특정 분야가 있게 하려고요. 그래야 일도 손에 더 잘 붙고 효율이 좋으니까."
가족끼리 할수록 이런거 확실하게 해야지, 안 그러면 서로 서운한 것만 생겨.
"그래도는 인마, 확실하게 해야지. 할 거면 제대로, 아니면 딱 말고"
나는 불이 잘 붙도록,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점화기였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한 번에 벌이니 쉴 틈이 없었다.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고, 펜을 움직이며 생각들을 정리해나갔다.
요단 강은 죄를 씻는 곳이고, 천국으로 건너가는 곳이며, 복된 처소로 들어가는 통과문인 동시에 하나님의 처소에 이르는 길목이자 옛 자아가 죽고 거듭나는 곳이라고 한다.
언젠가 죽으리란 것도 알고, 그다음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안다. 완전한 끝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할 것들도 많았다. 잃을 게 많아지니 더 죽기가 싫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정을 떼는 거라고들 한다.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다. 환자의 인성 같은 걸 보호하기 위한 말은 아니다. 보호자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다. 그래야만 버틸 수 있으니까. 실제로 간병을 하는 보호자들 10명 중 6명은 우울증을 겪는다고 한다.
"엄마도 잘 지내죠?" -그럼. 잘 지내지. 다 같이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정수리 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아버지가 나지막이 말했다. -고생 많았다. 그리고 미안했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였다. 내게 직접 건네는 것보다는 중얼거림에 가까웠지만,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순간 목구멍이 확 뜨거워지며 울컥했다. "저도요......."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리면 예후가 안 좋다고들 한다. 젊은 만큼 암세포 성장도 빠르기 때문이다.
"네. 암이란 게 치료를 마치고 나서 1년차에서 2년차 사이에 가장 재발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지금까지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다‘ 생각하면서 살긴 했는데, 막상 다가오니 겁이 나네요."
"이것 역시 희재 씨도 복용해도 좋습니다. 핵심은 알루미늄이 조금도 들어 있지 않은 베이킹 소다와 메이플 시럽입니다." "베이킹 소다랑 메이플 시럽이요?"
"일단 물 한 잔을 데웁니다. 너무 뜨겁지 않게요. 한 65도 정도. 그리고 베이킹 소다를 티스푼으로 한 숟갈 넣어 잘 풀어줍니다. 그리고 메이플 시럽을 티스푼으로 세 숟갈 넣습니다. 그리고 전부 잘 섞은 뒤 식전 30분에 마시면 됩니다. 이걸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드세요."
"이건 첫 날 기준입니다. 다음 날은 한 번에 베이킹 소다 두 숟갈, 메이플 시럽은 여섯 숟갈 넣으세요."
"그렇게 아침저녁으로 먹으면 되나요?" "아니요, 셋째 날은 또 다릅니다. 양은 같으나, 이때부터는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드십시오."
"이건 단순히 연명만을 기대하는 건 아닙니다. 기적이 일어나 완치를 바라고 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효원 씨의 의지가 중요하고요."
"베이킹 소다는 소디움 바이카보네이트가 100%인 것으로 구입하셔야 하고, 메이플 시럽은 유기농 제품으로 B등급을 구입하셔야 합니다. B등급이 A등급보다 단맛이 덜하고 걸쭉하며 향이 진합니다. 씁쓸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요. A등급도 괜찮긴 한데, 색이 어두운 것을 고르세요."
"이게 원리는...... 베이킹 소다로 암세포를 죽이는 것인데요. 메이플 시럽을 더하는 이유는 암세포가 베이킹 소다만 넣어주면 흡수를 하지 않습니다. 암세포가 좋아하는게......" "당이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메이플 시럽의 단맛으로 암세포를 속이는 거죠. 기왕이면 몸에 안 좋은 설탕보다는 유기농메이플 시럽으로 대체하는 거죠. 메이플 시럽 대신 꿀 같은걸 사용할 수도 있긴 한데, 가능하면 제가 말씀드린 것들 그대로 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이게 얼마나 효과를 보일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의미가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암이 기관 내에 제한돼 있는 경우 치료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간의 경우 직접 접촉되지는 않아 치료 효과가 얼마나 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아예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직접적인 원인이 됐던 직장암을 잡아준다면, 전체적인 신체의 컨디션이 올라가고 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면, 간도 기대해볼 수 있겠죠."
"간의 70%를 절제하셨다고했죠? 그러고도 이렇게 지내실 수 있는 건 간의 재생능력이 뛰어나기 때문 아닙니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노력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딱 다음 정기검진까지만 해보세요. 그리고 다음 검진때 깨끗하면 베이킹 소다와 메이플 시럽 복용은 멈추셔도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인 관리법을 몇 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단 운동...... 너무너무 힘들어도 하셔야 합니다. 운동을 할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체의 기능이 그만큼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요. 그리고 체온을 올리는 게 중요하기도 하고요."
정효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네, 암세포가 열을 싫어한다더라고요." "맞습니다. 아마 해보셨으리라 생각되는데, 체외에서 열을 쬐는 걸로는....... 글쎄요,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저는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직접 운동을 해서 체온을 올리는 것보다는 효과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됩니다." "열심히 움직일게요."
"그리고 드시면 좋은 것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마늘, 현미, 퀴노아, 브로콜리, 양배추, 무, 케일, 생양파, 등을 드시면 좋은데요. 전부 유기농으로 드시고요."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피해야 할 것들은 이미 알고 계실 텐데요. 그래도 한 번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제된 설탕이나 탄수화물은 무조건 피하셔야 합니다. 과일도 당분이 높은 것은 안 좋습니다. 설탕이 든 탄산음료 같은 건 독이라고 생각하시고요."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머지는 환자 본인에게 달려 있었고,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하는 수밖에. "정말 감사합니다." 민희재가 고개를 꾸벅였다.
휴일이란 게 거의 없다시피 계속 지내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쉬고 싶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잠깐 멈추고 싶었으면 이렇게 일을 벌이지 말았어야지. 그렇다고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 원해서는 하는 거였고, 그 결과물이 계속 나와주니 하는 맛이 났다.
‘문전박대도 당하셨나요?" "어휴, 많이 당하죠. 결국은 영업이었잖습니까. 아무리 예의를 갖추고 노력해도 싫어하는 분들은 싫어하시더라고요."
"송이는 어디에 좋습니까?" "송이요? 일단...... 독버섯은 당연히 제외하고, 버섯 자체가 몸에 좋죠. 칼로리도 낮고, 각종 영양소도 풍부하고, 식이섬유도 꽤 많이 들어 있고요. 버섯에 함유된 에르고스테롤은햇빛에 의해 비타민D로 바뀌어서 장내의 칼슘 흡수도 돕습니다."
"비타민D가 굉장히 중요한 영양소입니다. 실내 활동이 길어진 현대인들의 경우 다수가 비타민D 결핍을 겪고 있죠."
"햇빛을 제대로 받아야 비타민D 수치가 올라가거든요. 면역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심혈관 질환이나 정신건강에도 도움을 줍니다. 얘기가 조금 다른 길로 샜는데......."
"사실 비타민D 섭취만을 위해서라면 버섯보다는 영양제 하나만 먹어줘도 되는 거지만요.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자연에서, 자연식으로 얻는 것보다는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화학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말이죠."
"송이버섯도 워낙 귀하고해서 향과 맛을 즐기기 위해 먹는 사치스러운 식품인 느낌이 강한데요. 효능도 뛰어납니다. 일단 항암효과와 면역력증강이 상당히 뛰어납니다. 수많은 버섯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요. 균사체에 있는 다당류 성분인 글루칸이라는 물질이 있는데요, 그게 이러한 효과들을 냅니다."
"몇 가지 더 대표적인 효능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버섯의 구아닐산이라는 성분이 콜레스테롤을 줄이고 체내 노폐물을 제거합니다. 여러 가지 성인병 예방과 치료에 도움을 주죠."
"철분이 많아서 빈혈도 예방하고, 임신기와 수유기에도 좋죠. 피부미용에도 좋고, 소화에도 도움을 줍니다. 이 정도가 대표적인 효과들입니다."
"분명히...... 송이버섯의 효능이 훌륭한 건 맞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맛과 향을 즐기기위해 먹는 거라고 생각해요. 훨씬 저렴한 대체제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그래도 몸에도 좋고 맛도...."
"이야, 소고기 먹는 겁니까? 소고기 사주는 사람은 조심하라던데." 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왜요?"
"대가 없는 소고기는 없다더군요.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래요." "푸하하하! 뭐, 틀린 말은 아니네요. 잘 보이고 싶어서 대접하는 거니까." "에이, 또 무슨 말씀을 그렇게."
원래 일할 시간에 이렇게 긴 식사와 휴식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기분이 좋았다. 여유로움마저 느껴졌다. 조금도 조바심이 나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덕분이리라. 경제적인 부분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이득일 거라 생각했다. 모두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다. 일할 맛이 나야 하고, 원동력이 필요하다. 직원이 행복해야 기업도 행복해진다.
"응, 저번에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했던 거 기억나지?" "당연히 기억하지" "그 이유가 뭐야, 규모가 커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절세를 위해서잖아? 법인리스로 차를 운용하면 비용처리가 가능하거든. 어차피 세금으로 나갈 돈을 차에 쓴다고 생각하면 돼."
"응. 예전에는 어차피 세금으로 나간다고 비싼 외제차 몰고, 스포츠카 몰고 난리도 아니었어. 근데 몇 년 전부터 법이 바뀌어서 비용처리 한도가 천만 원으로 줄어서 어느 정도 네 돈도 들어가지! 그래서 자차로 그냥 모는 것보다는 여러가지로 좀 더 낫다."
"그런데 네가 자차로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돼. 어차피 리스는 이자도 붙고, 이래저래 더 비싼 돈 내고 모는 거니까. 조금이라도 더 싼 걸 따지면 자차가 더 나을 수도 있긴 한데......."
"있을 때 잘 굴려야지, 돈 좀 벌리기 시작했다고 막 쓰고 그러면 인생 조져." "막 쓰라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는 투자를 해야지." "차 모든 게 투자냐?" "그럼." 의외로 녀석이 단호하게 나와서 당황했다.
"솔직히 속을 까보기 전에는 모른다지만, 사람들은 겉모습 보고 판단하잖아. 네 생김새부터 시작해서 뭘 입고 있는지, 뭘 차고 있는지, 뭘 타는지에 따라 대하는 게 달라져. 여러 브랜드들 내는데, 국산 중형차 같은 거 몰고 다니면 좋게 볼 거 같아?"
오정득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거의 다 안 그래. 무시하지. 네가 모는 차를 자금 운용력이랑 이어서 생각한다. 비싼차 몰면 여유가 있어서 좋은차 탄다고 생각하고, 싼 거 타고 다니면 검소한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그거 몬다고 생각해. 사업은 영혼까지 끌어 모아서 억지로 굴린다고 여길 거고."
"무조건 비싸기만 한 외제차를 몰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클래스는 겉으로 드러내야 돼. 안 그러면 몰라. 네가 돈 많은 걸로 엄청 유명한 게 아닌 이상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한다니까." "그럴 수도 있긴 하겠네." "진짜로 그래. 너야 방송도 좀 타고 유명세를 타긴 했는데, 그걸로는 부족해. 오히려 더 가십이 되기 쉽지. 이제 돈 떨어졌나 보다, 빛 좋은 개살구였네, 실속은 없네, 돈은 얼마 못 버나 보다. 그런 소리 듣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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