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은 확신으로 가득한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 뭐냐? 그리고 전에 다니던 회사가 어디냐? 돈 많은 사람들 돈 관리해주는 일했었잖아. 백이면 백다 그렇더라. 안 그런 사람들이 더 적어. 뭐 오래된 차에 낡은 옷 입고 쓰레빠 찍찍 끌고 다니는 건물주? 있기야 있지. 없지는 않아. 근데 당연히 부티가 나지는 않지."
"네가 혼자서 돈 굴리는 부자면 그래도 돼. 그런데 아니잖아. 넌 이미 어느정도 얼굴을 팔면서 지금 미라클 헬스케어를 설립한 거 아니냐. 깔끔하고 깨끗하고 건강한 이미지. 너 자체도 기업의 이미지야. 그래서 더 행동 조심하는 것도 있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확실히 그렇지." "그러니까 사치스러운 차를 타라는 게 아니라, 너한테 걸맞은 차는 타야지." "너 무슨 자동차 딜러 같다."
"그럼 국산 준대형 정도면 괜찮겠지? 비용처리 하기에도 적절할 거 같은데." 오정득은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정도면 될 거 같다. 건강즙, 건강식품 판다는 놈이 외제차 몰고 다녀도 보기좋을 거 같지는 않거든. 뭔가 안 맞고." "그치?" "응. 국산이어도 높은 급의 대형차로 가면 너무 회장님 이미지고." "그러니까."
"요즘 언제 누가 들어올 줄알고. 들어온다는 사람 있을때 넘겨야지."
"너도 알겠지만, 타겟층을 잘 설정해야 돼. 한식 부페로 가면 오피스 상권밖에 없어. 근처 직장인들이 싸게 밥 먹으러 오기 좋게. 뭐, 택시기사들도 좀 올 거고, 가끔 동네 아줌마들도 좀 오겠지! 근데 그런장사는 한계가 있어. 일단 이미 너무 많아. 그리고 임대료 내면서 할 장사도 못 돼."
"그리고 그런 건 차리면 필연적으로 진상도 많이 꼬인다. 반찬이나 채소 같은 거 쌔빌라고 하는 사람들 없을 거 같냐? 무조건 있다." "그것도 그렇겠네요. 그래도 그건 너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거 아닌가?" "문제가 될 것들 중 일부를 말하는 거지. 당연히 문제가 수두룩해. 무조건 비싸게 받자는 건 절대 아니지만, 무조건싸다고 좋은 게 아니야. 일단 건강 챙기려는 사람들 타겟으로 잡고 있는 거잖아."
"건강을 위해서라면 지갑을 열어놓는 사람들이야. 돈을 조금 더 쓰더라도 질 높고 맛좋은 거 먹으러 오는 거라고. 싸다고 찾아올 거 같냐? 아니, 네가 하는 거라고 올 수도 있기야 하겠지. 근데 그것만 믿고 장사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싸게 맞추려면 음식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어." 작은 아빠는 확신에 차서는 열변을 토했다.
"싸고 양 많고 맛있으면서 재료의 품질까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그런 게 어딨냐?" "그건-" "우리가 만들어내면 된다는말 같은 거 하지 마라. 임대료랑 인건비는 어쩌려고? 땅 파서 장사하냐? 박애주의적인 정신도 좋은데, 그럴 거면 사업하지 말고 봉사활동해야지. 그리고 이미 그런 거 하고 있잖아. 장사할 때는 장사만 생각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것들부터 챙긴 다음 다른 것들도 챙기는 거야."
"네가 하고 싶다면 하는 거지만, 아니라고 보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야. 돈 조금 더 받더라도 제대로 된 거 내야지. 많이 팔리기만 하면 장땡이 아니지. 진짜 건강한 걸 맛있게 먹 ‘이어서, ‘아, 돈이 안 아깝다‘ ‘이정도면 이득이다‘ ‘가성비 좋다‘ 라는 말이 나와야지."
"뭔가 하나 딱 정하면, 그 자기 색깔이 분명해야 돼."
"다온 어때요? 다온." "다온?" "순우리말인데, 모든 좋은 일이 다 들어온다는 뜻이에요. 퓨전이긴 해도 기본적으로는 한식당이니까 괜찮지 않아요? 외우기도 쉽고."
하나하나 쌓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문제라고는 돈을 얼마나 들일 것이냐, 그것 하나밖에 없었다. 새삼 다시 깨닫는다. 뭘 해도 다 돈이다.
내 주머니에 꽂히는 돈만 월 수천. 이만큼 벌면 아무 걱정 없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돈으로 고민하는 일은 생긴다. 일정 소득을 넘기면 행복감은 더 이상 상승하지 않는다고 한다. 연봉 8,500만 원이 넘어가면 금전으로 인한 행복감 증가가 멈춘다고.
일정 부분은 공감이 되고, 일정 부분은 그렇지 않다. 돈을 많이 벌수록 좋은 건 확실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도 느낀다. 돈으로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여전히 있다. 고민과 스트레스가 사라진다고 무조건적으로 행복도가 상승한다고 보는 건 어떻게 보면 어려울지도 모른다. 불행하지 않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니까.
행복하다고 해서 불행한 일이 없지도 않다. 삶이란 게 그렇다. 인생이 세상 그 무엇보다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어떻게 보면 참으로 단순하다. 그래서 중심이 필요한 듯하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감정이란 파도 안에서 꿋꿋하게 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절대 꺾이지 않을 목표가 필요하다.
그 목표까지 다다르기 위해서는 가까운 거리의 목표들도 여러 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당장 떠안고 있는 고민도 최대한 즐겨본다. 어차피 피할 수 없고,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하는 것들이니까. 모든 일의 결과는 나로 인한 것이다. 그렇게 다음 목표를 향해 꿋꿋이 나아간다.
몸이 10개라도 부족하고, 하루가 48시간이면 좋겠다는 나날이 지나간다. 그나마 언젠가 실현 가능할것 같은 게 있다면 1시간만 자도 10시간을 잔 효과를 주는 알약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수면은 인체에 굉장히 중요하다. 그만큼 큰 영향을 끼친다. 아마 매일 8시간씩 숙면을 취하는 것만 지켜도 웬만한 병들은 다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매일매일 실천하는 여러 가지 민간요법들로 체력을 기르고 있긴 하지만 슬슬 무리가 온다. 어쩔 수 없이 오늘부터는 수면시간을 1시간은 늘려야 할 것 같다.
다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짓인데, 건강을 잃으면 전부 부질없으니까.
"그래서 약간 자매 브랜 느낌으로 이름 정했는데." "그래요? 어떤 거요?" "웰니스요." 웰니스. 웰빙(well-being)과 행복(happiness), 건강(fitness)의 합성어. 신체와 정신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건강한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딱이네요."
차 지붕이 뻥 뚫린 듯한 파노라마 선루프가 마음에 든다. 차의 무게도 더 늘어나고, 전복사고가 일어났을 경우 위험하다는 이유로 부정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도 많다. 그저 ‘감성‘ 하나만 보고 질렀다. 나는 소위 말하는 할배운전 스타일인지라, 위험한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이 모든 걸 내걸고 한다는 느낌은 확실히 소비자들에게 먹힐 겁니다."
존대를 하는 친구 사이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도 투명한 벽을 세우고 예의는 지키고 있었기에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이상적이라는 느낌이었다.
"응, 응. 요즘은 이너뷰티(inner beauty)라고, 화장품도 먹는다고, 내부에서부터 건강한 피부 가꾼다는 말도 있잖아. 몸속 건강도 챙기고, 그게 외적인 건강하고도 이어진다고. 그게 다이어트랑도 관련이 있다고 봐야지."
"일단 원장님은 세계 대회에서도 우승할 만큼 자신의 몸매를 다듬었잖아. 그걸 뽐내는게 나쁠 건 없지. 스스로 이뤄낸 결과물이니까. 그리고 그런 몸매의 모델이 마시는 주스라면? 일단 다이어트 욕구를 불러일으키게 돼. ‘내가 몸을 만들면 저것보다 더 나아질 수 있어‘ 혹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같은 생각을 한단 말이야."
"모델의 효과가 그거잖아. 모델이 광고하는 주스를 마시면 나도 그 모델처럼 될 수 있을 것 같은 거. 그냥 그 모델이 좋아서 구매하는 효과가 더 클지도 모르지만"
"그래. 이너뷰티가 그거잖아. 네가 모델로 섰을 때 사람들이 ‘나도 저 주스를 마시면 저렇게 피부가 좋아지겠지?‘ 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지 않겠어? 실제로 피부에도 영향을 끼치게끔 좋은 재료들로 건강하게 만들 거고."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른다. 마냥 긍정적이기만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부정적이거나 염세적일 필요도 없다.
온 세상이 암이라는 공포로부터 벗어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기적도 언젠가 일어나리라. 그렇게 진심을 담아 소망한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타인의 심정을 100% 이해하는 것이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삶이 통째로 달려있는 문제였으니, 내가 뭐라 왈가왈부할 게 아니라 여겼다. 그런 것보다는 내가 맡은 바에만 충실하고자 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하고 있다. 나머지는 기적을 바라며 기도하는 수밖에.
나도혜와 손을 잡은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는 내게 아주 고마운 고정수입이 될 예정이었으니까. 나도혜 입장에서도 상당한 이득이었다. 탕약기 수를 늘리면 그걸 놓을 공간도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출근할 한약사도 고용해야 한다. 게다가 지속적인 관리를 해야 하는데, 높은 임대료는 피치 못한다. 그 모든 것들을 나를 통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전부 줄일 수 있다. 어쩌면 나보다 나도혜가 더 남는 장사일지도.
"초심은 잃지 말자." 사업에 집중하고 있긴 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됐다.
"그렇군요. 하긴, 하나의 관계가 끊어졌다고 전부 그래야되는 것은 아니죠."
걱정이 되는 부분이라면 한가지였다. 이일우와 숙모의 관계였다. 두 사람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그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일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있었다. 좋은 쪽이라면 좋겠지 만, 나쁘게도 될 수 있는 거였으니까.
두 사람이 만난 시간은 고작 20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숙모가 나와 통화를 하는 시간은 벌써 20분이 넘어가는 중이었다.
신체적 건강만큼이나 중요한 게 정신적인 건강임을 새삼 깨달았다. 행복이란 건 참으로 좋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무엇보다도 쉽게 퍼질 수 있는 거니까.
-다들 형편이 좀 나아지니 이제는 좀 누리고 살 수 있겠지. 전부 네 덕분이야. "무슨 제 덕분이에요. 다 각자 열심히 잘해서 그런 거지." -네 덕분이지. 너 아니었으면 지금처럼 이렇게 딴 생각 못 했을 거야. 삶에 여유가 없으니까. 가난이라는 게 참 무섭더라. 사람의 마음을 메마르게 해. 모든 것에 예민해지고. 심적으로 여유가 사라지고, 피해의식이 생기니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 그래. 그리고 항상 후회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무거운 진실함이 느껴지는 말에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런 생각도 많이 했어. 애들한테 참 미안하다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는 건 불행의 확산이 아닐까.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야 여유가 좀 있었지만, 알다시피 오래 못 갔잖아. 모든 게 무너졌잖아. 그래서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도 축복을 받은 게 아니라, 저주를 받으며 시련이 시작된 게 아닌가, 그런...... "그런 말씀 마세요."
"그러니까 이제 행복해질 일만 생각하세요. 그런 생각은 몸도 아프게 해요.‘
숙모도 사람인지라 외로웠을 것이고, 생각지도 못한 인연의 적극적인 대시에 당황도 했지만 좋았으리라. 하지만 그 안에는 큰 죄책감 비슷한 것 또한 자리를 잡고 있는 듯했다.
"숙모의 상황도 그렇잖아요. 모든 게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 삶이 그렇고, 우리 자체가 그렇죠. 하지만 어느 면을 보일지는 우리 선택에 달려 있고요. 다른 쪽을 보지못한 사람이 뭘 알겠습니까? 지금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그치, 맞는 말이다.
"그리고 폐만 끼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우선 행복해야지. 그것만 생각하세요. 작은아빠가 그럴리도 없지만, 다소 껄끄러워하더라도 숙모 마음 가는 방향대로 하세요." -고마워. 마음이 많이 편해진다. "당연히 그러셔야 하는 거예요."
안도와 걱정이 뒤섞인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숙모에게 한 말들은 전부 진심이었지만, 나 역시 작은아빠가 신경이 쓰이긴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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