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그런 게 먹혀. 다 똑같이 고치고, 똑같이 생긴것보다 개성이 센 게 낫지."
믿을 수 있는 가족들이 있다는 것은 큰 재산이었다.
가족들이 아니었으면 어디 내가 지금의 삶을 꿈이나 꿀 수 있었나. 시간은 절대 멈추는 법이 없고, 새해가 찾아왔다.
나는 아침의 시작을 간단한 식사 그리고 공부로 했다. 언제 누가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할지 모른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하나라도 더 익히고 있는 게 나의 운명이라 생각한다.
"응. 예전에 시작하기 전에도 그랬잖아. 이렇게 내 가게를 갖는 게 꿈이었어. 조금 다른 점이라면......." "왜, 뭐가 생각처럼 안 돼?" "내가 생각한 가게는 엄청 여유롭고 느긋하고 그런 거였거든. 근데 할 것도 너무너무많고 바쁘네. 뭐, 손님들이 많다는 건 좋은 거지만."
"요즘 내가 이리저리 모델활동을 좀 하잖아?" "그렇지." "전부 오빠 덕분이야. 처음에 웰니스 모델 한 번 했던 게 잘 돼서 SNS로 좀 유명해지고 여기저기서 일이 들어오더라고. 협찬까지 들어오고."
"그 일이 생각보다 재밌더라고. 들이는 시간에 비해 이것도 조금 짭짤하고." 강인나가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나는 피식 웃었다. "계속 얘기해." "근데 촬영 스케줄 맞추는게 어렵더라고. 웬만한 날들은 괜찮은데, 딱 하나를 할 수가 없어." "뭔데?"
"사실은...... 저번에 해외 촬영이 들어왔었거든. 잡지 화보였는데, 발리로 가야 된대. 2박3일 일정이더라고. 근데 난최대 쉴 수 있는 게 이틀이잖아." "그거 때문에 일을 거절했던 거야?" "그랬지." 나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바보야, 그럼 나한테 말을하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챙긴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빈곳들이 드러난다. 사람과 사람이 엮이는 이상 인간관계고, 거기서 완벽함이란 없겠지. 하지만 분명히 신경을 쓰면 더 개선이 가능하다. 더 노력하면 된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안 해서 문제지, 하면 된다.
"그러시겠죠. 근데 식사 전에 도수가 낮은 술을 소량 섭취하면 소화를 촉진해서 입맛을 돋우는 효과가 있어요. 요즘 막걸리 칵테일 같은 것들 있잖아요? 그런 경우에는 유산균이 있어서 좀 더 위장운동을 촉진한다고도 하죠. 뭐... 사실상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요."
언젠가부터 내 삶의 중심은 일이 돼 있었다. 능력을 얻은 이후가 아니라, 훨씬 전부터 그랬다. 차이점이라면 그때는 일에 치였고, 지금은 일을 좇는다.
새해에도 시간은 빠르게도 지나간다. 아니, 해가 바뀌니 더 빨라진 느낌이다. 10대에는 시간이 10km 속도로, 20대에는 20km로, 30대에는 30km로,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고들 한다.
내가 누군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줄 수 있다는 게 기뻤다.
다들 ‘시간 참 빠르다‘ ‘세월 빠르다‘라는 말을 달고 산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런데 진짜로 이렇게나 시간이 빠르게 흐름을 느끼는 건 처음인 듯하다. 벌써 3월을 바라보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게 일이 되니 편하다. 생계를 이어감과 동시에 즐거우니까.
돈을 벌어보기 전에도 알고는 있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
돈을 번 지금은 더욱 느낀다. 돈을 많이 벌어서 좋지만,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 말이 진짜다. 모자라면 고통스럽지만, 어느 수준 이상만 다다르면 돈으로 인한 행복도의 차이는 별로 없다고. 우리가 물질적인 풍요로부터 얻을 수 있는 행복의 값은 생각보다 낮다. 처음부터 목표가 그리 멀지만은 않다는 걸 알았다면 좀더 빨리 삶을 바꿀 수 있었을지도.
작은 목표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이루라는 말 역시 옳았다. 그랬다면 금세 돈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더 중요한 것들을 빠르게 찾았으리라.
내게 더 잘 맞는 누군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확실한 건 절박함이 없다.
언제나 텐션이 높다. 녀석의 밝은 모습은 주변사람들까지 기분이 좋아지게 한다. 나는 그 효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목표가 뚜렷하고 열심히 할수 있더라도 누군가 끌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그 빛을 더 빨리 볼 수 있다. 나 역시 할아버지가 끌어주지 않았다면 지금 위치에 다다르지 못했겠지.
"아무튼,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두 분 함께 자리 안내해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그때 박종만이 안고 있던 유주나무 화분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거." "또 이렇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장님께서 이거 주실때마다 가게가 잘 되더라고요." "그래요? 매번 챙겨달라는 말씀을 또 이렇게 하시네." "하하하하, 그런 거 아닙니다."
이전의 맛도 최대치라고 여겼지만, 분명히 더 나아졌다. 권호순도 마지막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뭐든지 그렇다. 끝이라고 생각해도 해보면 다음이 있다. 절대 멈추는 법이 없어야 한다.
"퀴노아도 좋을 거 같다. 그쪽에서 유기농 구하는 게 어렵지도 않고, 요즘 건강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유행하거든. 식물성 고단백 식품이기도 하고." "퀴노아는 제가 먹어본 적이 없네요. 무슨 맛이에요?" "난 그냥 밥에 살짝 섞어서 먹어보니까 약간 좁쌀 느낌 나고 좋더라고. 밥의 맛에 크게 영향을 안 미쳐."
내가 언제부터 베풀기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이렇게 챙겼을까. 곳간에서 인심 난다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는 듯하다.
오픈한 지 1시간도 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왜 음식장사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일이 고되더라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했다. 맛있는 걸 먹고 행복해하는 표정은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건강상담을 마치고 홀가분하게 미소를 지으며 나가는 사람을 보는 기분과 비슷했다.
브레이크 타임은 결코 쉬는 시간이 아니었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니 식사를 하고, 저녁 장사를 준비하기 위해 더 움직여야 될 때였다.
"네, 일단 후토마키는 생각보다 꽤 괜찮더라고요. 밥에 그렇게 간을 하니까 사실 초밥느낌도 좀 나고, 전에 말했던아보카도도 들어가고....... 문제는 손이 너무 많이 가겠더라고요."
"개성 있고 맛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목적을 잊으면 안 돼. 건강."
"훈제는 맛에는 좋을지 몰라도 사실 건강에 좋다고 보기는 어렵거든." "훈제도요? 직접 구워서 태우는 것도 아닌데 몸에 나쁜가요?" "기본적으로 태워서 나오는 연기로 조리를 하는 거잖아. 그래서 좋다고 보기는 어렵지. 요즘은 방법도 더 간단하고 연기를 직접 쬐는 게 아니라면서목초액이나 화학조미료를 쓰는 경우도 있는데, 글쎄......."
"훈제도 몸에 안 좋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삶는 것보다는 못 해도 굽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차라리 건강한 기름에 타지 않게 굽는 게 좋다고 봐." "그럼 연어는 구워서 쓸까요? 좀 비싸지긴 하겠지만, 연어는 포기할 수 없는 재료 같아요. 건강적인 측면으로나 맛으로나요."
"중불 정도에 올리브유 살짝 해서 구워내면 좋을 거 같아요. 아니면 스프레이 오일써서 오븐에 구워 내거나요." "그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을까? 미리 준비하기도 어렵고, 오븐에 미리 구워놨다가 회전이 늦어지면 맛이 떨어지잖아." "아무래도 그렇죠."
"연어를 먹는데 촉촉한 맛이 있어야지." "흠......." 그때 뭔가 머릿속에서 반짝하고 떠올랐다. 내가 ‘촉촉‘이라고 해놓고는 그게 힌트가 됐다. "수비드한 걸 살짝 구워서내는 건 어떻겠냐? 연어 스테이크처럼" "수비드로요?" 노우민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은 요리도 조예가 깊으신 거 같아요."
"비행기 태우지 마라 인마. 수비드 가지고 무슨 조예씩이나 나오냐. 그냥 그런 조리법도 있다는 걸 아는 것 뿐인데." 수비드는 밀폐된 비닐봉지에 재료를 넣어 중온에서 고온 사이의 물로 가열하는 조리법이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한채 천천히 익히는 방법인데,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수비드의 가장 큰 장점은 수분을 잃지 않고 맛과 향을 보존한다는 것. 식감도 다르고.
"네, 아마 60도 이내에서 온도 잡고 2, 30분 정도만 하면 될 거 같은데요? 비린내만 확실하게 잡으면 진짜 괜찮겠네요. 오히려 고급 요리라고 할수 있죠."
"원래 신선한 연어를 소금, 설탕, 후추, 허브 등을 넣어서 숙성시켜 먹는 건데요. 이걸로 수비드를 하면 비린내가 안 날거예요. 그다음 올리브유에 살짝 구워낸 다음 김밥에 쓰면진짜 맛있을 거 같은데요?"
노우민은 만약에 안 됐을 때를 걱정하지 않았다. 안 되면 다시 하면 된다고 여겼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어떤 면에서는 존경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녀석의 나이 때 저런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지 못했으니까.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여겼다. 공부라는 건 평생 해야 하는 것이고, 나보다 나이가 적든 많든, 어리석든 똑똑하든, 돈을 적게 벌든 많이 벌든, 어떤 환경에 놓인 사람이든 배울점은 있다. 심지어 막 나가는 개차반이더라도 배울 게 있다. 반면교사로 삼으면 되는 거니까.
먹는 걸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치지 못한다. 할아버지에게 능력을 전수받고 나서는 더 와닿는 말이다. 그래서 저 말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들.
앞으로가 기대된다. 세상 사람들이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즐거워하며 더 건강하길 바랄 뿐이었다.
-으응, 사실 할 말이 있긴해. "금방 갈 거니까 만나서 얘기해요." -그래, 곧 봐. 궁금했지만 전화를 붙잡고 오래 통화하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숙모가 이야기를 정리할 시간을 주고 싶기도 했고. 경험상 꽤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제대로 된 사람들은 이런상황에 처했을 때 변명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자신의 이야기를 최대한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변명은 티가 난다. 변명이나 늘어놓을 사람이면 서서히 멀어지는 게 맞다. 그 정도가 지나치면 그 자리에서 자르는 거고. 그 대상이 누구든 간에 예외는 없다.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스스로 선택하고, 그선택이 결과로 이어진다.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선택을 강요당하는 건지도 모른다.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니까.
선택을 하면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 그 결과는 책임이라는 것도 업고 있다. 지금 나는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연민은 쉽게 지치는 법이다. 여기저기서 연민을 다 거둬들이고 다니면 답이 없다. 내가 안고 있는 연민꾸러미에서 어떤 걸 흘리고 다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계속 위로는 쌓는다. 연민이 쌓여 시야를 가리게 된다. 결국 스스로 해야 한다. 연민이 아니라, 우러나는 마음으로 움직여야 된다. 잠시 품어보는 연민이 아니라, 스스로의 보람을 위해 하는 게 낫다.
사람은 어쩔 수 없다.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가족을 가장 끔찍이 생각한다. 촌수도 없는 배우자, 나의 분신과 같은 부모님과 자녀, 핏줄이 이어진 가족들 등. 자신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면 끊임없이 할 수 있다. 내가 좋으니까. 결국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한 번의 삶에서 원하는 것을 전부 이루지는 못해도, 그걸 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언제부터인가 생각 구조 자체가 바뀐 나는 사람들을 돕는게 좋다. 그 무엇보다 즐겁다. 돕고 나서 보람찬 기분, 사람들의 칭찬과 고마움의 표시가 좋아서 그렇다. 지금도 내가 원하는 걸 하려고 한다. 바뀌었다고 하지만, 과거의 나 역시 나다.
"그만하세요! 이것도 폭행입니다!" 경찰은 내 팔을 거세게 당기지 않았다. 그냥 감싸고만 있었다. 그리고 눈으로 말했다. 더러워도 참으라고. 이러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나는 천천히 팔을 내리면서도 씩씩거렸다. 나 역시 폭행을 저지른 순간이었다. 경찰이 나를 있는 힘껏 제압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건지 질책하는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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