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세의 작품이 주로 다루는 것은 가족 관계와 세대 간의 관계를 통해 볼 수 있는 인생, 사랑과 죽음 같은 우리 삶의 보편적인 모습들이다. 그의 작품에는 너무나 평범해 보이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삶의 그림들이 단순한 구조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그림에는 많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며, 항상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버지, 어머니, 아이, 남자(남편), 여자(아내), 소년, 소녀 그리고 배경으로 이웃이 때때로 등장한다. 이들 대부분은 이름이 없으며 고유한 성격도 없다. 인물들은 항상 단순한 일반인이며, 그들의 관계는 한눈에 파악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평범함과 보편성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성찰하게 만든다. 포세가 만들어 내는 인간관계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이지만 그는 그 관계를 철저히 관찰하고 파악해 낸다. - P113
포세는 이렇게 말한다.
작가로서 내가 흥미를 갖는 것은 심리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성격의 원형을 묘사한다. 나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고 싶다. 정체성이 아니라 여러 관계들이 우리의 삶을 조종한다. (…) 내게 문제가 되는 것은 인물들이 서로에 맞서 어떻게 구성되는가, 그들이 그들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는가, 그들 사이에는 어떤 소리가 존재하는가다. - P114
포세의 작품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영역, 그 영역 내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움직인다. 그만큼 포세가 드러내는 현실은 때론 극단화되어 있기도 하지만 구체적이다. 굵은 윤곽으로 이루어진 담담한 그림, 그 사이의 여백에인간의 삶이 가진 구체적인 모습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현대인이 만들어 내는 의사소통 부재의 사회적 관계이기도 하며 인간 의식 속에 존재하는 무형의 원형질이기도 하다. - P114
포세의 인물들은 대부분 아웃사이더라 할 수 있다. 이들에게서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내면의 방황이고, 그렇기 때문에 고독하고 고립된 상태에서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되어 있다. 특별한 사건은 드러나지 않으며 인물들은 자신의 삶자체를 깊이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독자는 사랑에 대한 그리움, 만남과 헤어짐, 상실의 경험, 불안, 죽음 그리고 자유에 대한 갈망과 같은 인생의 일면을 만난다. 포세가 그려 내는 이러한 삶의 모습은 누구나 겪고 생각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어 독자는 그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며 깊은감정이입의 순간을 경험한다. 그러나 포세의 이야기는 단순히 피상적이고 가벼운 삶의 단면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본질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기에 이를 통해 독자가 만나는 삶의 성찰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 P115
"내가 쓰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 P115
각각의 텍스트가 드러내는 세밀한 세계는 그 고유성을 지니고 있어 독자는 유사한 주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사유할 기회를 얻는다. - P115
나타내지 않고 감춤으로써 표현과 의미의 확장을 이루고자 하는 미니멀리즘 전략은 포세의 언어에서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해 있다. - P116
또한 중간에 자주 끊기는 문장, 반복되는 문장은 그의 언어적 특징에 속한다. 이 끊김과 반복의 리듬은 평이한 단문을 아름다운 시의 언어, 음악의 언어로 바꾸어 놓으며 침묵의 순간들은 내적인 빈자리를 형성한다. 이는 포세가 10대 시절, 거의 광적으로 빠져들었던 음악적 경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P116
나는 일찍부터 아주 집중적으로 음악을 연주했다. 록밴드에서 그리고 그 밖에 고전음악을 바이올린과 기타로, 하루에 여섯 번 내지 일곱 번씩, 거의 병적이었다. 나는 형편없는 음악가였고, 열여섯 살 때 음악을 그만두었다. (・・・) 언어 자체는 물론 음악이 아니다. 단어들은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의미한다. 이야기가 있고 인물이 있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쓸 때 그에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대신 일종의 음악적 구조에 빠져든다. - P117
포세의 언어는 그가 성장한 곳이 피오르드 해안의 조용한 작은 마을이었다는 점과도 관련 있다. 그의 마을 사람들은말을 많이 하지 않았고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 않았으며 그런 곳에서 성장한 것이 자신의 언어에 영향을 주었음을 포세는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인물들은 말해지지 않은것을 듣는다. 독자에게도 말해지지 않은 것이 들린다. 그 울림이 가슴을 채우는 충만의 순간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 P117
이 같은 포세의 고유한 언어는 소설로 보자면 숨 막힐 듯 팩빽한 과잉의 설명과 인위적 스토리텔링으로 가득한 현대소설에 새로운 소설 언어를 제시한 것이며, 희곡으로 보자면현란한 이미지와 물질성으로 가득 찬 현 시대 희곡의 흐름에서 벗어나 본질적인 언어 예술로서 희곡의 회복을 의미한다. - P118
포세의 성장 배경은 그의 언어뿐만 아니라 작품 배경에도 그대로 이입된다. 그의 많은 작품에 배경이 되는 곳은 피오르드의 자연이다. 바다와 해안, 외부와는 격리된 외딴집 그리고 여기에 긴 세월을 담고 있는 오래된 사물들이 존재한다. 다시 포세의 말을 들어 보자.
내가 쓰는 모든 것의 토대가 되는 것은 해변의 바에서 들려오는 소리, 가을의 어둠, 좁은 마을길을 걸어 내려가는 열두 살짜리 소년, 바람 그리고 피오르드를 울리는 장대비, 불빛이 새어 나오는 어둠 속의 외딴집, 어쩌면 자동차 한대가 지나간... 이러한 것들이다.
이렇듯 포세의 텍스트에 담겨 있는 공간은 인위적인 사회의 관습과 제도, 의무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내는 억압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공간이다. 이 공간에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며 인물들은 자신의 근원적 존재에 대한 의미를 생각한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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