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테스에게 몹쓸짓을 했던 더버빌이 회심하여 목사님이 되어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상상도 못했다. 아마 테스도 나랑 비슷하게 느꼈을거 같다. 나는 책으로만 읽었는데도 온몸에 전율이 일었는데 테스는 오죽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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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쓰러진 것은 힘든 일 때문이기도 했지만 남편과 헤어진 이야기를 하느라 흥분한 탓이 컸다. - P189
이렇게 양쪽 집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것은, 자기의 잘잘못을 곰곰생각해 보고서 자기가 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되는 호의나 동정은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 독립적인 성격 탓이었다. 그녀는 일어서든 넘어지든 자기 힘으로 해 보려고 노력했고, 엔젤이 한때의 충동에 이끌려 자기와 결혼식을 올렸다고 해서 얼굴도 모르는 그의 가족과 한 식구가 되었다는 순전히 형식적인 권리 같은 것은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어찌나 열이 나고 가슴이 뛰던지 더 이상 자제가 되지 않았다. - P194
그 친구들은 시부모의 마음을 사로 잡으려면 가장 예쁜 옷으로 차려입고 가야 한다고 테스에게 성화를 부렸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클레어 신부가 검소하고 엄격한 캘빈주의를 신조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옷치장에는 무관심했고 심지어 치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 P196
마음이 개암나무 열매보다 작지않은 여자라면 누구나 그랬을 테지만, 이즈는 테스 앞에서는 반감을 가질 수 없었다. 테스가 같은 여자들에게 끼치는 감화력은 아주 남다른 따뜻함과 힘을 지니고 있어, 기묘하게도 심술이나 경쟁심 같은 좀 더 저열한 여자들의 감정을 압도해버리는 것이었다. - P197
이즈는 스스로 자신의 인품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잠시 엔젤의 유혹을 받았을 때 친구를 배반하지 않았다는 게 흐뭇했다. - P198
아름다움을 느껴본 모든 사람들처럼, 테스도 아름다움이란 사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느꼈다. - P199
그녀는 인습적인 판단 기준으로 자신에게 이런 슬픔을 안겨 준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그이의 형들을 보고 아버지를 판단하여 마지막 중요한 순간에 나약하게 용기를 잃어버린 것이 자기 생애에서 가장 큰 불운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길을 떠났다. 그녀의 지금 형편이야말로 클레어 씨 부부의 동정심을 얻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들은 극도의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금방 마음의 문을 열었지만, 덜 절망적인 사람들의 미묘하고 정신적인 고통에는 관심이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 P211
그러나 테스에게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교리보다 그의 목소리였다. 있을 수 없는 일 같았지만 그것은 분명 알렉 더버빌의 음성이었다. - P216
그러나 테스의 시선은 청중과 문 쪽을 향해 밀가루 부대 위에 서 있는 연사에게로 쏠렸다. 오후 3시의 태양이 그의 모습을 훤히 비춰주었다. 테스는 그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릴 때부터 마음속에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던, 자기를 농락했던 자가 가까이 있는 것 같다는 이상하리만치 힘 빠지게 하는 확신이 마침내 사실로 드러나는 것을 목격했다. - P217
테스는 이런 사람의 입에서 그토록 엄숙한 성경 말씀이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걸 보고 처음에는 섬뜩할 정도로 괴이쩍고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4년도 채 안 되어 다시 듣게 된 그 익숙한 목소리는 어찌나 예전과 다른 의도를 지닌 말들을 쏟아 내고 있는지그 대조의 아이러니에 그녀는 속이 몹시 메스꺼워졌다. - P219
그것은 개심이라기보다는 변신이었다. 예전의 감각적인 곡선은 지금은 헌신적 열정의 직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유혹을 의미하던 입술 모양은 지금은 기도를 표현하고 있었고, 지난날에 방종으로 해석될 수 있었던 볼의홍조는 지금은 경건한 복음을 전달하는 광휘로 바뀌어있었다. 육욕은 광신으로, 이교적 미신은 바울의 가르침으로 변해 있었다. 예전에 정복의 욕심으로 테스의 육체를 쏘아보던 그 대담하고 부리부리한 눈은 지금은 무서우리만치 격렬한 신앙의 열정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예전에 욕망이 거부당할 때마다 경직되어 도드라져 보이던 그 거무스름하고 각진 얼굴에서는 진창에서 뒹굴던 시절로 돌아가려고 고집하는, 개심이 불가능한 타락자 같은 인상이 드러났다. - P220
테스는 생각할 수 있게 되자 경악했다. 서로의 입장이 바뀌어도 이렇게 바뀔 수가 있다니! 그녀에게 몹쓸 짓을 저지른 남자는 지금 성령에 편에 서 있는데, 그녀 자신은 여전히 죄를 씻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키프로스의 여신(키프로스 섬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를 가리킴 옮긴이)이 제단 앞에 나타나자 사제의 열정이 거의 꺼져 버리고 만 격이었다. - P222
여기에 올 때만 해도 그녀의 마음은 무기력한 슬픔으로 무거웠으나 지금은 근심의 성격이 바뀌어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거부당한 애정에의 갈망으로 괴롭던 마음은 잠시 사라지고, 아직도 그녀를 에워싸고 있는 무자비한 과거의 고통이 피부로 느껴지는 듯했다. 그로인해 그녀는 자신의 실수를 더욱 강렬하게 인식하게 되었고 정말 절망스런 기분이 들었다.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연결하는 고리가 끊어지기를 그토록 바랐건만 그런 일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이 과거의 존재가 되어 사라지기 전에는 과거는 결코 완전한 과거가 아니었던 것이다. - P223
"이렇게 갑작스런 일은 믿을 수 없어요! 당신이 나한테...... 당신이 나한테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을텐데, 그런 식으로 말하다니 화가 치미는군요. 당신이나 당신 같은 사람들은 이승에서 재미란 재미를 다 보려고나 같은 사람의 일생을 비통하고 암담하게 만들어 놓고서, 그 짓도 지겨워지니까 이제는 회개해서 천당의 기쁨까지 얻겠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참으로 훌륭하시군요! 그따위 수작은 집어치워요. 난 당신을 믿지 않아요. 난 그런 짓거리를 증오해요!" - P230
모든사람은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성령이 인도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P239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는 대답을 기다리며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숙여 얼굴을 수건으로 완전히 가린 채 다시 순무 다듬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일을 계속하면 그가 자신의 감정에 접근하는 것을 더 잘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P246
그것은 그녀를 향한 그의 옛 열정이 되살아났다는 것을 드러내는 명백한 징후였다. 책임감과 욕망이 손에 손을 잡고 있었다. - P249
테스는 자기를 꾸짖는 사람보다 두둔하는 사람이 더 두려웠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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