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개인적으로 하루키의 책을 하나씩 읽고 있는데 이 책은 검색하다가 새롭게 알게 된 책이다. 목차를 보니 이 책은 총 9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듯하다.
목차에 나온 제목들만 보고는 솔직히 어떤 내용들이 나올지 쉽사리 짐작이 되진 않는다. 다만 저자는 과거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에세이에서 단편이라는 것이 장편을 쓰기 위한 준비단계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쓴 장편소설들 가운데 물론 이미 읽어본 것도 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것도 적잖이 있기에, 이 단편을 통해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장편의 내용들이 무엇일지 조금이나마 추측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여기 나온 이야기들이 장편으로 이어지는 것 없이 그냥 단편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뭐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다. 순수 단편은 또 그것만의 가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하루키가 쓴 글들을 읽어보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느낌이 자꾸 든다. 속된 말로 누가 칼들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저자가 쓰는 용어를 잠깐 빌려 표현하자면 놀라운 흡인력이 있다고나 할까. 왜 그럴까 나름대로 생각해봤는데, 아마도 하루키가 쓴 글들이 각각 따로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미세하게나마 조금씩 다들 이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어떤 하나의 큰 그림을 이루는 분리된 퍼즐 조각들을 하나하나씩 맞춰나가는 느낌이랄까. 물론 각각의 작품들마다 등장인물과 소설 속 각각의 배경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본질적인 무언가는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이야기에 사용되는 소재라든가 특정한 주제(예를 들면 상실같은 것)가 반복되어 등장한다는 것도 독자인 내가 느끼는 것들에 적잖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쓰다보니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어졌는데, 본론으로 돌아와서 오늘 처음 밑줄친 내용들에 대해 언급하자면 핵심은 결국 모두 이미 다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될 일은 무슨 짓을 해도 될 것이고 안 될 일은 무슨 짓을 해도 안 될 것이기에 그냥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내게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이렇게만 쓰고보니 내가 무슨 운명론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저자의 생각을 내가 그냥 있는 그대로 수용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단지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 내게 주어진 능력 안에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내게 무언가 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면 그리 어렵지 않은 선에서 무언가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내 역량이 어떤 것에 미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욕심을 내어 그것을 취하려고 애쓴다면 그것은 크나큰 고통과 함께 좋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세상에는 옳지 않은 선택이 옳은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고, 옳은 선택이 옳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으니 - P9
우리는 실제로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고, 대체로 난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 P9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것이며,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 P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