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는 주인공인 하지메가 어린 시절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시마모토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낸다. 세월이 지나 약 25년만에 우연히 재회하게 된 두 사람인데, 하지메는 단지 25년 전의 시마모토만을 알고 있을 뿐 현재의 시마모토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것이 없다. 이는 그녀가 자기자신의 현 상황에 대해 말하기를 어려워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독자인 나도 단지 화자인 하지메의 말에 근거해 시마모토의 상황에 대한 몇 가지 추측만 가능할 뿐 정확히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아마도‘와 ‘한동안‘같은 소위 말하는 매직 워드magic word를 사용하여 자기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뒷부분에 가면 그녀의 신상에 대한 추가적인 얘기들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때가서 살펴보면 되는 것이지 지금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고 보여진다.
처음 밑줄친 두 문장에서는 개인적으로 예전에 읽었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나 볼 법한 표현이 등장한다. 하지메가 시마모토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별의 속성에 빗대어 나타내는 문장인데, 소설 속 전반적인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아주 적합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이 내는 빛이라는 건 그 빛이 실제로 뿜어져 나왔던 시점과 우리 눈에 육안으로 비쳐지는 시점에 적잖은 차이가 있기 마련인데, 이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12살 때의 시마모토와 지금 현재 37살인 시마모토와의 시간 차이와도 얼추 비슷하다. 또한 과거에 빛을 발산했던 그 별은 지금 현재 시점에서는 이미 사라져버리고 없는 죽은 별일 수도 있고, 설령 죽지 않고 남아 있다 하더라도 과거에 빛을 발산하던 그 별과는 이미 다른 성질을 가진 노후화된 별이 되기 마련인데, 이것은 12살의 시마모토와 37살의 시마모토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너를 보고 있으면 때때로 먼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 나는 말했다. "그 별은 무척 밝게 보이지. 하지만 그 빛은 몇만 년이나 이전에 보내진 빛이야. 그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천체의 빛인지도 몰라. 그렇지만 그 빛은 어떤 때에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실적으로 보이지." - P250
"넌 지금 여기에 있어. 여기에 있는 것처럼 보여. 하지만 넌 여기에 없는지도 몰라. 여기에 있는 건 네 그림자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지도 몰라. 진짜 너는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지도 모르지. 아니면 아주 오래전에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르고. 난 그걸 점점 알 수 없게 되어버렸어. 내가 손을 뻗어 확인하려 해도 넌 언제나 ‘아마도‘라든지 ‘한동안‘ 같은 말로 몸을 감추고 말지. 언제까지 이런 일이 계속되는 걸까?" - P251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그녀는 말했다. "뭐야? 그 태양의 서쪽이라는 건?" "그런 곳이 있어." 그녀는 말했다.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라는 병을 들어본 적 있니?" - P258
"시베리아에 사는 농부들이 걸리는 병이야. 상상해봐. 네가 농부고, 시베리아의 벌판에서 홀로 외로이 살고 있어. 그리고 매일매일 밭을 가는 거야.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북쪽에는 북쪽의 지평선이 있고, 동쪽에는 동쪽의 지평선이 있고, 남쪽에는 남쪽의 지평선이 있고, 서쪽에는 서쪽의 지평선이 있어. 그것뿐이야. 넌 매일 아침 동쪽의 지평선에서 태양이 떠오르면 밭에 나가 일을 하고, 태양이 바로 네 머리위로 오면 일하던 손을 멈추고 점심을 먹고, 그리고 서쪽의 지평선으로 태양이 저물면 집으로 돌아가 자는 거야." - P259
"동쪽의 지평선에서 떠올라, 하늘의 정중앙을 지나, 서쪽의 지평선으로 저물어가는 태양을 매일매일 보고 있는 동안, 네 속에서 무언가 뚝 하고 끊어져 죽어버리는 거야. 그리고 넌 땅바닥에다 괭이를 내던지고는 그대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서쪽을 향해 걸어가는 거야. 태양의 서쪽을 향해. 그렇게 뭔가에 홀린 듯이 며칠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계속해서 걷다가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져 죽고 말아. 그게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야." - P260
"태양의 서쪽에는 도대체 뭐가 있는데?" 그녀는 또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몰라.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을지도 몰라. 아니면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아무튼 그건 국경의 남쪽과는 좀 다른 곳이야." - P260
"두 번 다시 내가 어디에도 가는 걸 원치 않는다고 한다면, 넌 나를 모조리 가져야 해. 나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내가 끌고 가는 것이나, 내가 안고 있는 것 전부. 그리고 나도 분명 네 모든 걸 갖게 돼야겠지. 모든 걸 말이야. 넌 그걸 알고 있어? 그게 뭘 의미하는지도 알고 있는 거야?" - P263
"가장 큰 문제는 내게 뭔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거야. 나라는 인간에게는, 내 인생에는, 뭔가가 빠져 있는 거야. 상실되어버린 거야. 그리고 그 부분은 언제나 굶주려 있고 메말라 있어. 그 부분은 아내도 메우지 못하고 애들도 메우지 못해. 그 일을 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너 한 사람밖에 없어. 너랑 있으면 난 그 부분이 충만해지는 걸 느끼거든. 그리고 그것이 채워지고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어. 이제까지의 긴 세월 동안 내가 얼마나 굶주리고 메말라 있었던가 하는 걸 말이야. 난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세계로 돌아갈 수는 없어." - P264
"어떤 종류의 일은 두 번 다시 제자리로는 돌아가지 않아. 그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어." - P266
누구든 언젠가는 그 암흑의 근원 속으로, 공명을 잃은 침묵 속으로, 한없이 깊은 고독 속으로 떨어져가는 것이다. 나는 그 세계를 눈앞에 두고 숨이 막힐 정도의 공포를 느꼈다. 그 암흑의 구멍에는 바닥이라는 게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 P2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