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최근에 읽었던 《상실의 시대》에서도 그렇고 오늘 읽는 이 《댄스 댄스 댄스》에서도 그렇고 일관되게 나오는 감정이 있는데 그건 바로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아마도 이 작품을 쓰던 시기에 저자가 갖고 있던 감정이나 생각들이 일정부분 투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조심스레 해보게 된다.

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도 어김없이 이러한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나온다. 주인공인 화자는 자신이 호감을 갖고 만났던 돌핀 호텔의 프런트 직원인 유미요시라는 사람과 통화를 하는데, 자신이 예전에 꿨던 어떤 불길한 꿈(?)으로 인해 그녀를 만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 속에 이와 관련된 단서들이 몇 가지 등장한다)

비단 이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소설들이나 혹은 실생활에서도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인간의 행동에 굉장히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와 관련된 생각들이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은지라 이와 관련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섣불리 쓰지 못하고 있는데, 향후에 기회가 된다면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 써보고 싶다.

"우리는 자꾸 이동해 가고 있어. 그리고 이동해 감에 따라 여러 가지가, 우리 주위에 있는 여러 가지가 사라져 간다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무엇 하나 머물러 있지 않아. 의식 속에는 머물러 있지. 하지만 이 현실 세계로부터 사라져 가는 거야. 나는 그게 걱정이야." - P350

"꽤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현실로 돌아왔어. 여러 가지 기묘한 것들 속을 통과해 왔어. 여러 사람이 죽었어. 여러 가지 것을 상실했지. 굉장히 혼란해졌는데, 그 혼란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냐. 아마 혼란은 혼란스러운 대로 존속되리라고 생각해. 하지만 나는 느껴. 나는 이로써 한 바퀴 돌았다는걸. 그리고 여기는 현실이야. 나는 한 바퀴 도는 동안 기진맥진해서 녹초가 되어 있었어. 하지만 어떻게든 계속 춤을 추었지. 제대로 스텝을 밟았어. 그래서 이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거야." - P355

"정해져 있어. 정해져 있는 것을 나는 이러쿵저러쿵 따지고 싶지 않아. 그렇게 하다 보면, 거기에 있는 중요한 뭔가가 깨져 버리기 때문이야. 정말이야. 거짓말이 아니야." - P356

그 따스함이나 무게나 떨림은 정말로 현실의 것이었다. - P357

그것은 연기고, 화면 위에서 노니는 빛의 이동이며, 한 세계로부터 또 하나의 세계로 빠져나가는 그림자였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이건 현실이다. 어쩜. - P357

"그러니까 정해져 있었던 거야"라고 나는 말했다. - P359

"나는 이 장소가 좋아. 여기는 당신의 장소인 동시에 내 장소이기도 하거든." - P361

그렇다. 나는 그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문장. 시나 소설이나 자서전, 편지 나부랭이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한 단순한 문장. 주문도 마감도 없는 단순한 문장. - P363

"귀를 기울이면 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뚫어지게 바라보면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그 대상물이 보여." - P367

그래, 여기가 내 연결 지점이야,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여기에 속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이것은 현실이다. 괜찮아, 이제 나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아. 나는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는 이음매를 회복하고, 그리고 현실과 이어져 있다. 내가 그것을 바라고, 양 사나이가 그것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 P368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두려웠다. 그건 어떤 이유도 통하지 않는 근원적인 공포였다. 유전자에 새겨지고, 태고의 시대부터 면면히 전해 내려온 공포였다. 어둠이라는 것은 어떤 존재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역시 두렵고 꺼림칙한 것이다. 그건 사람을 몽땅 삼켜 버리거나, 그 존재를 일그러뜨리고 파괴하거나, 소멸시켜 버릴지도 모른다. 대체 누가 완전한 어둠 속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겠는가? 어둠의 존재 이유ㅡ대체 누가 그런 것을 믿겠는가? 어둠 속에서는 모든 게 쉽게 일그러지고, 뒤바뀌며 소멸되어 버린다. 그리고 어둠의 논리인 허무가 모든 걸 뒤덮어 버리는 것이다. - P370

"무섭지 않아. 이번에는 내가 함께 있어. 서로 손을 잡고 있자. 손을 놓지 않으면 괜찮아. 어떤 일이 있어도 손을 놓으면 안 돼. 가만히 붙잡고 있는 거야." - P371

"아니, 나는 걱정이 돼. 저리로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 그가 어떤 이유로 나를 찾고 있을지도 몰라. 그래서 또 우리를 이 세계로 연결시킨 거야." - P372

"가자. 손을 꼭 잡고 있는 거야. 나는 당신을 원하고 있고 당신은 나를 원하고 있어. 걱정할 것 없어. 우리는 여기 머무는 거야. 어디에도 가지 않아. 분명히 돌아갈 수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 P373

우리는 어둠 속에서 이어져 있었다. - P373

양 사나이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는 혹시 죽어 버린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만났을 때, 그는 몹시 피로하고 훨씬 더 늙어 보였다. 그대로 죽어 버렸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굉장히 오래 살았다. 하지만 그 역시 늙어 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는다.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나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만일 그가 죽어 버렸다면, 이제 누가 이 세계와 나를 연결시켜 줄 것인가? 누가 나를 이어 준단 말인가. - P373

"양 사나이가 이 세계를 관리하고 있어. 여기가 이음매 같은 곳인데, 그는 나를 위해 여러 가지를 이어 주고 있어. 전화의 배전반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그는 양의 모피를 입고 오래전부터 계속 살아왔어. 그리고 여기에 머문거야. 세상의 모든 것이 싫어서."
"무엇 때문에 숨어 있어?"
"무엇 때문일까? 전쟁이 싫어서, 문명이 싫어서, 법률이 싫어서, 시스템이 싫어서... 양 사나이답지 않은 세상의 모든 것이 싫어서." - P374

나는 세계의 끝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대인이 생각한 세계의 끝. 모든 게 폭포처럼 나락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는 듯한 세계의 끝이다. 그 끝부분에 우리는 서 있다. 단둘이서. 우리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암흑의 허무가 펼쳐져 있을 뿐이다. 방의 공기는 뼈에 스며들듯이 차가웠다. 우리는 서로의 손바닥을 통해 겨우 따스함을 나누고 있었다. - P375

"어두운 데서 안 좋은 일을 생각하면 안 돼. 되도록 좋은 쪽으로 생각해" - P375

"간단한 것처럼 보여. 하지만 그쪽으로 가버리면 다시 돌아올 수 없어. 당신은 그걸 모르고 있어. 거기는 아니야. 거기는 현실이 아니라고. 거긴 저쪽 세계야. 이쪽 세계와는 다른 곳이라고." - P377

나와 유미요시는 이쪽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걸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 왔다. 나는 그걸 위해 복잡한 스텝을 밟으면서 여기까지 도달한 것이다. - P378

나는 유미요시를 쫓아 벽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유미요시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키키가 벽으로 빨려 들어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벽을 빠져나갔다. 예전과 마찬가지였다. 불투명한 공기의 층. 매끄럽고 딱딱한 감촉. 물과도 같은 차가움. 시간이 흔들리고, 연속성이 구부러지고, 중력이 뒤흔들렸다. 태고의 기억이 시간의 심연 속에서 증기처럼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내 유전자다. 나는 자신의 육체 속에서 진화의 기운을 느꼈다. 나는 복잡하게 뒤얽힌 나 자신의 DNA를 뛰어넘었다. 지구가 팽창하고, 그리고 냉각되어 오므라들었다. 동굴 속에 양이 숨어 있었다. 바다는 거대한 사념인데, 그 표면으로 소리도 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얼굴 없는 사람들이 파도가 밀어닥치는 물가에 서서 앞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 P378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이 거대한 실 덩어리가 되어 하늘에 떠 있는 것이 보였다. 허무가 사람들을 삼키고, 그보다 더 거대한 허무가 그 허무를 삼켰다. 사람들의 살이 녹아 백골이 드러나고, 그것도 티끌이 되어 바람에 날려가 버렸다. 아주 완전히 죽어 있다, 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어쩜, 하고 누군가가 말했다. 내 살은 분해되어 날려가고, 그리고 또 하나로 응결됐다. - P379

"무엇이든 진지하게 보려고 하면 어둠 속에서도 제대로 보이는가 봐." - P380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 세계는 취약하고 그리고 위태롭다. 이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든 간단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 P381

나는 상실된 것을 위해 울고, 아직 상실되지 않은 것을 위해 울었다. - P382

시간이 현실을 새기고 있었다. - P382

현실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여기에 머무는 것이다. - P382

말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고 표현이 있다. - P383

춤을 춘다는 것은 음악과 분위기에 잘 맞추고, 파트너의 발을 밟지 않도록 신경 쓰고, 다른 커플들과 부딪치지 않게 하는 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춤을 춘다는 것은 ‘나‘ 자신이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과의 관계성을 회복하고 새로이 정립해 나가는 적극적인 행동의 비유임을 알 수 있다. - P389

‘나‘의 ‘재생‘을 위해서는 ‘나‘의 ‘죽음‘이 불가피했다 - P390

‘상실감‘과 ‘절망‘과 같은 삶에 있어서의 부정적인 부분을 뚫고 나옴으로써, 사람은 누구나 ‘재생‘이랄 수 있는 재출발을 할 수 있는 것이리라. -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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