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는 주인공인 와타나베와 그의 여사친 중 한 명인 미도리와의 대화가 쭉 이어진다. 미도리는 기존에 자신이 만나던 남자친구와 무언가가 맞지 않았는지 결별하기로 하고 와타나베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쉽게 말해 여사친에서 여친이 되고 싶다는 말이었다. 물론 와타나베도 미도리에게 호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와 함께 적잖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고, 한동안(약 2달간) 떨어져 지내면서 이래저래 외롭고 쓸쓸했던 터라 미도리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던 타이밍이기도 했다.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미도리가 와타나베에게 자신이 얼마만큼 좋냐고 물어보자 그에 대한 답으로 와타나베가 한 말인데, 표현이 좀 독특하긴 하지만 호감의 크기가 엄청나다는 것만은 명확해보인다.
하지만 와타나베의 마음 속에는 미도리 외에도 한 명의 여사친이 더 있었다. 바로 나오코다. 고교시절부터 기즈키와 함께 셋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친구이고, 이성적인 감정도 어느정도 있었던 터라 그녀를 쉽사리 떠나보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물론 그녀는 기즈키의 예상치 못한 죽음 이후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외진 곳에서 요양 중이라 자주 만나는 것이 어려웠지만, 와타나베에게는 특별한 인연이었기에 나오코를 버리고 미도리에게 간다는 결정을 하기가 굉장히 힘든 상황인 것이다. 이 내용이 나온 챕터의 제목이 ‘갈등의 벼랑 끝에서‘ 인데, 개인적으로는 와타나베의 내면을 아주 잘 나타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 세계 정글 속의 호랑이가 모두 녹아 버터가 되어버릴 만큼 좋아." - P375
내가 나오코에 대해 느끼는 건 무섭도록 조용하고 부드럽고 맑은 애정이지만, 미도리에 대해선 전혀 다른 종류의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서서 걷고, 호흡하고, 고동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뒤흔듭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몹시 혼란스럽습니다. - P379
온갖 일을 너무 심각하게만 받아들이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멋진 일이고, 그 애정이 진실하다면 누구도 미궁속에 내동댕이쳐지지는 않아. 자신을 가져. - P380
연애란 원래 그런거야. 사랑에 빠지면 거기에 자신을 내맡기는 게 자연스럽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것도 하나의 성실한 모습이니까. - P380
우리는(정상인과 비정상인을 다 포함한 총칭이야) 불완전한 세계에 살고 있는 불완전한 인간들이야. 자로 길이를 재고, 각도기로 각도를 재며, 은행 예금처럼 그렇게 융통성 없이 살아나갈 순 없어. - P381
그런 건 죄도 아무것도 아니야. 이 드넓은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이니까! 날씨 좋은 날 아름다운 호수에 보트를 띄우면 호수도 아름답지만 하늘도 아름답다는 것과 다를 게 없어. 그런 식으로 고민하지 마. 놔둬도 만사는 흘러가야 할 방향으로 흘러가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사람은 상처 받을 땐 어쩔 수 없이 상처를 받게 마련이야. 인생이란 그런 거야. - P381
와타나베는 때때로 인생을 지나치게 자기 방식으로만 끌고 나가려고 하는 것 같아.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싶지 않으면 좀 더 마음을 열고, 인생의 흐름에 자신의 몸을 맡겨봐. 나(레이코)처럼 무력하고 불완전한 여자도 때로는 산다는 게 근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산다고. 정말이야, 이건! 그러니 와타나베도 더욱더 행복해져야 해. 행복해지려고 노력을 해봐. - P381
와타나베는 누구도 염려하지 말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행복해지도록 해. 내가 경험해봐서 하는 말이지만, 그런 기회란 인생에 두세 번밖에 없고, 놓치면 평생 후회하게 되거든. - P381
그것은 내 탓도 아니고 누구의 탓도 아니며, 비가 내리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막지 못할 일이었다 - P383
돈이 떨어져가면 나는 사나흘 막노동을 해서 당장 필요한 돈을 벌었다. 어디를 가도 뭔가 할 일거리는 있었다. 나는 정처 없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하나씩 이동해갔다. 세상은 넓고, 어디를 가든 이상한 일이나 기묘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 P384
그녀의 이미지는 밀물처럼 끊임없이 잇따라 나에게 밀려와서, 내 몸을 기묘한 장소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 기묘한 장소에서 나는 죽은 사람과 함께 살았다. 그곳에는 나오코가 살아 있어서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포옹할 수도 있었다. 그 장소에선 죽음이 삶을 결말짓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죽음이란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인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나오코는 죽음을 품은 채 거기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와타나베. 그건 그저 죽음일 뿐이야. 신경 쓸 것 없어." 하고. - P386
나는 그런 장소에서는 슬픔이란 것을 느끼지 않았다. 죽음은 죽음이고, 나오코는 나오코였기 때문이다. 봐, 걱정하지 마, 난 여기 있잖아? 하고 나오코는 수줍은 듯 웃으면서 말했다. 여느 때와 같은 사소한 몸짓이 내 마음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치유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것이 죽음이라면 죽음도 그다지 나쁜 건 아니구나, 하고. 그래, 죽음이란 건 별거 아니야, 하고 나오코는 말했다. 죽음은 그저 죽음일 뿐이고, 게다가 나는 여기 있으니 아주 편안해. 어둠에 싸인 파도 소리 사이로 나오코는 그렇게 말했다. - P386
‘죽음은 삶의 반대편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분명히 그것은 진리였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시에 죽음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 P387
나오코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이런 것이었다. 그 어떤 진리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진리도, 그 어떤 성실함도, 그 어떤 강인함도, 그 어떤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실컷 슬퍼한 끝에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렇게 배운 무엇인가도 다음에 닥쳐오는 예기치 않은 슬픔에 대해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 P387
어이, 기즈키. 너는 오래전에 나의 일부를 죽은 자의 세계로 끌고 들어갔지. 그리고 지금, 나오코가 나의 일부를 죽은 자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버린 거야. 때때로 난 나 자신이 박물관의 관리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휑뎅그렁한 박물관 말이야. 나는 나 자신을 위해 그곳을 관리하고 있는 거야. - P390
고텐바(후지산 아래에 있는 유명한 관광 도시) - P392
"내가 거길 나올 수 있었던 건 내 힘이 아니야." 하고 레이코 씨가 말했다. "내가 거길 나올 수 있었던 건 나오코와 당신 덕분이야. 나는 나오코가 없는 그곳에 남아 있는 게 견딜 수 없었고, 도쿄로 나와 와타나베와 한번 조용히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거든. 그래서 거길 나온 거야.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난 아마 평생 동안 거기에 처박혀 있었을 거야." - P393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나와 죽은 자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간다. - P395
확실히 마음을 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던 거지. - P399
"그 사람들, 이제 나와는 관계를 안 갖는 게 좋아.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 나름대로의 새로운 생활이 있고, 나는 만나면 만날수록 괴로워질 테니까. 안 만나는 게 제일이야." - P404
"나는 이미 끝난 인간이야. 와타나베 눈앞에 있는 건 나 자신의 남아 있는 기억에 지나지 않아. 내 속에 있었던 가장 소중한 것들은 이미 예전에 다 죽어버렸고, 난 그저 그 기억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뿐이야." - P404
"와타나베가 만일 나오코의 죽음에 대해서 뭔가 아픔 같은 걸 느끼고 있다면, 당신은 그 아픔을 남은 인생을 사는 동안 계속 느끼면 돼. 그래서 만약 배울 게 있다면 거기에서 뭔가 배우면 돼.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미도리와 둘이서 행복해져야 해. 당신의 아픔은 미도리와는 관계가 없잖아. 더 이상 그녀를 상처 입히거나 하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악화되고 말 거야. 그러니까 괴롭겠지만 강해지라고. 좀 더 성장해서 어른이 되어야 하는 거야. 난 와타나베에게 이 말을 하려고 요양원을 나와 일부러 여기까지 온 거야. 그 먼 길을, 그 관棺같은 전철을 타고서." - P406
"우리 모두 언젠가는 그렇게 죽는 거야, 나도 당신도." - P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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