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보면 똑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A라고 말하지만 어떤 사람은 A‘라고 말하는 식이다. 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데, 뭐 이런 거는 그냥 각자의 스타일이라 생각하고 사회적으로 그닥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용인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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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위의 일반적인 견해와는 별개로, 소설 속 화자인 주인공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참고인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어부‘와 ‘문학‘이라는 별칭으로 지칭되는 경찰 2명이 주인공을 취조하는데, 이건 뭐 단지 물리적인 폭력만 없을 뿐이고 취조받는 사람에게 엄청난 정신적 데미지를 안겨준다. 진짜 별것도 아닌 걸 하나 붙잡고 계속 물고 늘어지는 느낌이랄까. 화자는 본문에서 (프란츠) 카프카적인 냄새가 난다는 표현까지 쓸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 그런 류의 취조였다. 어느정도 끝났다 싶으면 또 물어보고 그것이 끝나면 또다른 걸 물어보는 식으로. 소설 속 화자도 엄청 답답했을 것 같은데, 독자인 나도 보면서 답답함이 느껴졌다. 특별히 두 번째로 밑줄친 문장에서 얼추 느낄 수 있듯이 실질보다는 형식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그런 문화(?) 로 인해 파생되는 엄청난 비효율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고 피곤하게 만드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단순히 조사받는 사람만 피곤한 것이 아니라 조사하는 사람도 피곤하게 만든다. 마음같아선 이러한 비효율이 당장에라도 개선되면 참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책임‘같은 문제로 인해 개선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일에 대해 말하는 방식엔 여러 가지 있다. - P355

"유감이지만 관청이란 게 그런 곳 아니겠어. 서류가 전부지. 서류와 인감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곳이나 마찬가지지." - P358

지독한 장소다. 여기서는 온갖 수단을 써서 인간의 자아며 감정이며 자부심이며 신념을 압살하려고 든다. 눈에 보이는 상처가 남지 않도록 심리적으로 짓이겨 내고, 개미굴 같은 관료적 미로 속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사람이 품는 불안감을 최대한으로 이용한다. 그리고 태양의 광선을 멀리하고,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게 한다. 불쾌한 땀을 흘리게 한다. 그런 식으로 해서 곰팡이가 생겨난다. - P359

"어쩌면 나 자신을 벌주고 있었는지도 몰라." - P365

생각할 필요가 있다. 머리에 나사를 조일 필요가 있다. 조일 수 있을 만큼 꽈악 말이다. - P370

"뭔가 이렇게, 그런 것을 본 사람의 감정이 공기처럼 이쪽으로 전달되는 거라고. 그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야. 눈에는 안 보이지만, 난 그것을 느끼고, 형태를 바꿔 놓을 수가 있어. 하지만 그건 정확한 형태는 아니고, 형태 비슷한 거야." - P370

"유키는 내 속에 있는, 혹은 내게 달라붙어서 존재하고 있는 감정이나 사념을 느끼고, 그것을 예컨대 상징적인 꿈처럼 영상화할 수 있다, 그말인가?"
"사념?"
"강렬하게 생각하는 것 말이지." - P371

"그뿐이 아니야. 그 강렬하게 생각한 것을 만들어 낸 것, 그런 것이 있어. 아주 강렬한 무언가. 생각을 만들어 내는 힘이라고 하면 되려나. 그런 게 있으면 나는 느껴 버리거든. 감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걸 나 나름대로 보는 거지. 하지만 꿈같은 건 아니야. 텅 빈 꿈. 그래. 그런 거. 텅 빈 꿈이야. 거기엔 아무도 없어.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아. 왜 그 텔레비전의 밝기를 굉장히 어둡게 하거나 굉장히 밝게 했을 때 같은 거. 아무것도 안 보여. 하지만 거기에 누군가 있는 거야.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그걸 느껴. 거기에 있는 것은 양 모피를 뒤집어쓴 사람이다, 하고. 나쁜 사람은 아니야. 아니, 그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어. 그렇지만 나쁜 존재가 아니야. 그래도 보이진 않아. 불에 쬐면 나타나는 그림처럼 그건 거기에 존재해. 보이진 않지만 알 수 있어.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 보이는 거야. 형태가 없는 형태인 거지." - P371

"난 예지는 아니고, 거기에 있는 걸 다만 느끼는 것뿐이야. 뭐랄까, 무슨 일인가 일어나려면 일어나기 위한 분위기 같은 게 있겠지. 이해가 가? 예컨대 철봉을 하다가 다치는 행위에는 무엇인가 방심이랄까 과신이랄까 그런 것이 있겠지? 들떠 가지고 제멋에 겨워 있다든가. 그런 감정의 파도 같은 것이 나한텐 굉장히 민감하게 느껴진단 말이야. 그리고 이건 뭔가 위험해,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렇게 되면 텅 빈 꿈 비슷한 게 훌쩍 튀어나와. 그것이 튀어나오면...... 일어나는 거야, 그게. 예지가 아니야. 더 어렴풋한 거야. 근데 그게 벌어져. 보인다고. 하지만 이젠 아무 말도 안 해. 무슨 말을 하면 모두 나를 귀신이라고 부르니까. 그저 보는 거야. 여기서 이 사람은 화상을 입지 않을까 하고. 그러면 화상을 입거든.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그런 건 너무 지독하지 않아? 스스로가 싫어져. 그래서 닫아 버려. 닫아 버리면 스스로를 싫어하지 않아도 되니까." - P375

"양 사나이는 정말로 있어?"
"정말로 있어"라고 나는 말했다. "그 호텔 안에 그가 살고 있는 장소가 있어. 호텔 안에 또 다른 호텔이 있거든. 그건 평소엔 보이지 않는 장소야. 하지만 그건 어김없이 거기에 남겨져 있어. 나를 위해 남겨져 있는 거야. 그건 나를 위한 장소니까. 그는 거기에 살아 있으면서, 나와 여러 가지 것들을 연결하고 있어. 그건 나를 위한 장소고, 양 사나이는 나를 위해 일하고 있어. 그가 없으면, 나는 여러 가지 것들과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아. 그가 그런 것들을 관리하고 있거든. 전화교환원처럼."
"연결한다고?"
"그래. 내가 무엇인가를 요구하지. 무엇인가를 연결하라고 말이야. 그러면 그가 그것을 연결해." - P375

"양 사나이는 아주 옛날부터 있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옛날부터 있었지. 내가 어렸을 적부터. 나는 그걸 줄곧 느껴 왔었어. 거기엔 무엇인가가 있다고 말이야. 하지만 그것이 양 사나이라는 또렷한 형태를 가지게 된 건, 그다지 오래전의 일이 아니야. 양 사나이는 조금씩 조금씩 형태를 정하고, 그가 사는 이 세계의 형태를 정해 왔거든. 내가 나이를 먹는 데에 따라서 말이지. 왜 그럴까? 나도 알 수 없어. 아마 그럴 필요가 있어서겠지. 살아가기 위해, 그런 것들의 도움이 필요해진 거겠지. 그렇지만 나는 확실하게는 알 수 없어. 다른 이유가 있는지도 몰라. 줄곧 생각하고 있는데 모르겠어. 바보 같지." - P376

"아저씨도 귀신 조직의 한 사람인 거야" - P376

"학교 같은 데 억지로 갈 건 없어.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면 돼. 나도 잘 알고 있어. 거긴 형편없는 곳이야. 꼴 보기 싫은 놈이 잘난 척 뽐내고 있어. 형편없는 교사가 거들먹거리고 있지. 명백히 말해서 교사의 팔십 퍼센트는 무능력자 아니면 사디스트야. 또는 무능력자인 데다 사디스트야. 스트레스가 잔뜩 쌓여서, 그걸 혐오스러운 방식으로 학생들한테 내던지지. 무의미하고 자질구레한 규칙이 너무나 많아. 사람의 개성을 압살하다시피 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상상력의 부스러기도 없는 바보 같은 놈이 좋은 성적을 받거든. 예전에도 그랬어. 지금도 분명 그럴테지. 그런 건 변하지 않거든." - P378

"어떻게든 되지. 어떻게든 되지 않는다면, 또 그때 가서 생각하면 돼." - P378

"글을 쓴다고 할 만한 게 못됩니다"라고 나는 말했다. "구멍을 메우기 위한 문장을 제공하고 있을 뿐입니다. 뭐든 상관없죠. 글자가 쓰여 있기만 하면 되지만, 그건 누군가 반드시 써야 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제가 쓰고 있는 겁니다. 눈 치우는 일 같은 겁니다. 문화적인 눈 치우기." - P386

"수준이 낮으면, 모든 것은 아주 단순해지죠." - P387

"무엇이 정의인지 아무도 알지 못해. 다들 알지 못하지. 눈앞의 일로 다투고 있을 뿐이야." - P387

"완고하지는 않습니다. 제게는 저 나름의 생각 시스템이라는 게 있을 뿐입니다." - P395

"이제 그런 것은 별로 의미가 없어. 손으로 만든 진공관 앰프와 마찬가지야. 노력과 시간을 들여 그런 것을 만들기보다는, 오디오 숍에 가서 신품인 트랜지스터 앰프를 사는 편이 싸게 먹히고, 소리도 좋아. 망가지면 곧 수리하러 오지. 신품을 살 때에는, 신품 대금의 일부로 중고품을 팔 수도 있지. 생각의 시스템 운운할 시대가 아냐. 그런 것이 가치 있던 시대가 확실히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달라. 무엇이든 돈으로 살 수 있지. 사고방식도 그래. 적당한 것을 사갖고 와서 연결하면 돼. 간단하다고. 그날부터 곧바로 사용할 수 있어. A를 B에 삽입하면 되는 거야. 눈 깜짝할 사이에 해낼 수 있지. 낡아 버리면 교환하면 돼. 그러는 편이 편리해. 시스템 따위에 구애 받으면 시대에 뒤떨어지게 돼. 눈치 빠르게 행동할 수가 없어. 남들이 귀찮게 여긴다고."
"고도자본주의 사회" 하고 나는 요약했다. - P396

현실이 점점 용해되어 어둠 속으로 녹아 흡수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것들이 그 본래의 형태를 잃고 뒤섞여 버리고, 의미를 상실하면서 하나의 카오스가 된다. - P397

피곤해지지는 않았다. 다만 현실이 용해되어 가고 있을 뿐이다. 용해되어 하나의 둥근 카오스의 공 모양을 이루고 있다. 마치 일종의 천체 같은 형태를. - P397

"시스템도 좋지만, 버티면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아. 이미 그런 시대가 아니거든." - P398

"버티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라고 나는 말했다. "댄스 스텝같은 거예요. 습관적인 겁니다. 몸이 기억하고 있어요. 음악이 들리면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이죠. 주변이 바뀌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굉장히 까다로운 스텝이어서, 주변을 생각하고 있을 수 없는 겁니다. 너무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 스텝이 틀어져 버리니까요. 단지 서투를 뿐이에요. 유행을 따라가지 못해요." - P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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