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 책에 마지막으로 수록된 ‘잠‘이라는 단편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약 2달 전에 별도로 출간된 동저자의 《잠》이라는 책을 읽었었는데, 그 책과 이 책의 옮긴이가 다른 관계로 문장의 디테일에 약간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아무튼 한 번 접해봤던 내용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처음 읽을 때 놓치고 지나갔던 것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처음 읽을 때보다는 힘을 좀 빼고 술술 읽어봤는데, 그중에 하나 건진 게 바로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이었다.
머릿속에 뭔가 잡생각이 많아질 때 몸을 움직임으로써 그것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말인데, 이 소설 속 등장인물은 수영을 하러 가는 것으로 자신의 머리를 식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뭐 수영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가볍게 걷거나 뛰는 것도 좋고, 아무쪼록 머리를 쓰거나 생각하는 걸 잠시 멈추고 몸을 쓰는 행동을 함으로써 잡생각을 모조리 던져버리고 리프레시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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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쭉 읽어나가면서 독자인 나는 옮긴이가 옮긴 문장에 따라 독자들이 느끼는 바의 밀도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 수록된 ‘잠‘같은 경우 대명사와 같은 간접적인 표현보다는 좀 더 직접적인 표현으로 쓰여있는 부분들이 많아서였는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 이전에 단편집으로 읽을 때보다 내가 느끼는 바의 깊이가 더 깊어진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이 이야기를 한 번 더 읽다보니 똑같은 것을 보고도 기존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됐든 간에 오늘 독서를 통해 저자가 ‘잠‘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또다른 차원에서 볼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수많은 독서가들이 왜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보는지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덧붙여서 앞서 언급한 또다른 차원에서 봤던 것들을 잠시 얘기하자면, 소설 속 화자가 잠을 안 자는 것을 자신이 누리는 세계가 확장된다고 느낀다는 점이었다. 화자는 남편과 아들이 자는 동안에 자신은 깨어있으면서 책(안나 카레니나)을 읽거나 낮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함으로써 뭔지 모를 뿌듯함 혹은 보람같은 것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을 처음 읽을 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생각인데, 오늘 2회독을 통해 잠이라는 것을 조금은 다른 각도로 볼 수 있었다. 독자인 내 생각을 좀 더 보태보자면 단기적으로는 화자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하나뿐인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결과적으로 소설 말미에 간접적으로 암시된 것처럼, 잠을 안자고 계속 버티다가는 잠자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동안 어둠만을 바라봐야 하는, 소위 말하는 죽음이라는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잠을 자고 나면 몇 시간 뒤에 깨어나지만 잠을 안자고 버티다가 몸이 망가져서(여기선 차가 뒤집어지는 것으로 암시됨) 죽고나면 이 세상에선 더이상 깨어날 수 없고 저 세상에서 영원한 어둠만을 바라보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주의 섭리 또는 이치를 거스르는 행동은 화를 부를 수 있다는 게 독자인 내가 내린 결론이다.

몸을 마음껏 움직임으로써 몸속에서 무언가를 몰아내버리고 싶었다. - P181
수영하는 동안, 수영에만 의식을 집중했다. 다른 일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몸을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만 생각하고 규칙적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뱉었다. - P185
내 인생은 대체 무엇일까? 나는 경향적으로 소비되고, 그걸 치유하기 위해 잠을 잔다. 내 인생은 그 반복일 따름 아닌가? 어디로도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닌가? - P191
잠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설령 미친다 해도, 잠을 못 잠으로써 생명의 존재 기반을 잃는다 해도,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상관없다. 나는 어쨌거나 경향적으로 소비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 경향적 소비를 치유하기 위해 잠이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거라면, 그런 건 필요 없다. 내게는 필요 없다. 만일 내 육체가 경향적으로 소비될 수밖에 없다 해도 내 정신은 나 자신의 것이다. 나는 그것을 나를 위해 우수리 없이 떼어두겠다. 누구에게도 건네주지 않겠다. 치유 같은 건 원하지 않는다. 나는 잠자지 않겠다. - P192
나는 잠 못자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두려워할 게 아무것도 없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될 일이다. 요컨대 나는 인생을 확대하고 있다, 고 생각했다.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는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었다. 하루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그 시간은 지금까지 잠이라는 작업에ㅡ ‘쿨다운하기 위한 치유 행위‘라고 그들은 부른다ㅡ소비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은 나 자신의 것이 되었다. 누구의 것도 아니다. 내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누구의 어떤 요구도 받지 않고, 그렇다, 그야말로 확대된 인생이다. 나는 인생을 삼분의 일씩 확대하고 있다. - P192
생물학적으로 봐서 정상은 아니라고 당신은 말할지도 모른다. 하긴 그럴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정상이 아닌 일을 계속함으로써 지는 빚을 훗날 갚아야 할지도 모른다. 인생은 확대된 몫을ㅡ말하자면 나는 그만큼 당겨서 쓴 셈이다ㅡ나중에 돌려받으려 할지도 모른다. 근거 없는 가설이지만, 부정할 근거도 없을뿐더러 일단 논리적이라고 나는 느낀다. 요컨대 마지막에 시간의 대차잔고를 맞춘다는 말이다. - P193
솔직히 그런 건 이미 아무래도 좋았다. 만일 무슨 이유로든 내가 일찍 죽어야 한다 해도 전혀 상관없었다. 가설은 가설 나름의 길을 마음껏 걷게 두면 된다. 적어도 지금, 나는 내 인생을 확대하고 있다. 이건 훌륭한 일이었다. 손맛이 전해진다. 내가 여기 살아있다는 실감이 있다. 나는 소비되지 않는다. 적어도 소비되지 않는 부분의 내가 여기 존재한다. 그렇기에 나는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살아있다는 실감이 없는 인생이 장장 계속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은 확실히 그렇게 생각한다. - P193
잠을 버림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확대했다. 중요한 건 집중력이다. 집중력 없는 인생이라니, 눈만 뜨고 있었지 아무것도 못 보는 것과 똑같다. - P194
이따금 책을 읽다가 감정이 몹시 고조될 때가 있었다. 그런 때는 잠시 멈추고 방 안에서 몸을 움직였다. 유연체조를 하거나 혹은 그저 방 안을 왔다갔다 했다. 마음 내키면 한밤중에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주차장의 시티를 몰고 나가 근처를 정처 없이 달렸다. 이십사 시간 영업하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 들어가 커피를 마실 때도 있었지만, 사람 상대하기가 성가셔서 대개는 줄곧 차 안에 있었다. 위험해 보이지 않는 곳에 차를 세우고 멍하니 생각에 잠길 때도 있었다. 항구까지 가서 한동안 배를 바라보기도 했다. - P195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들은 세계가 아무 변화도 없이 지금까지와 똑같이 움직인다고 완전히 믿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세계는 그들이 모르는 곳에서 착착 변화하고 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 P197
남편은 분명히 추해졌다. 얼굴에서 야문 맛이 사라졌다. 나이 든다는 건 아마 그런 것이다. 남편은 나이 들었고, 그리고 지쳐 있다. 닳고 해졌다. 앞으로 틀림없이 더 추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 - P199
분명히 남편은 내게 잘해준다. 자상하고 속도 깊다. 바람 한 번 안 피우고, 열심히 일한다. 성실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다. 내 친구들은 모두 다시없는 사람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흠 잡을 데 없다고 나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 흠 잡을 데 없음이 때로 나를 짜증나게 한다. 그 ‘흠 잡을 데 없음‘속에는 무언가 상상력의 개재를 허용하지 않는 묘하게 경직된 구석이 있었다. 그게 마음에 안 든다. - P201
죽음이란 잠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상황 아닐까ㅡ그것은 어쩌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끝없이 깊이 각성한 어둠인지도 모른다. 죽음이란 그런 암흑 속에서 영원히 깨어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 P203
만일 죽음이라는 상황이 휴식이 아니라면, 이 피폐로 가득한 불완전한 우리 삶에 대체 어떤 구원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결국 죽음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누가 죽음을 실제로 보았나? 누구도 보지 못했다. 죽음을 본 자는 죽고 말았다. 살아있는 자는 누구도 죽음을 모른다. 그저 추측할 뿐이다. 어떤 추측이건 그저 추측일 따름이다. 죽음이 휴식이어야 하다니, 그런 건 그럴싸한 논리조차 아니다. 죽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죽음은 어떤 것이라도 될 수 있다. - P203
나는 아직 눈을 가만히 감고 있었다. 눈을 뜰 수 없어지고 말았다. 나는 눈앞을 가로막는 두꺼운 어둠을 꼼짝 않고 바라보았다. 어둠은 우주 자체처럼 깊고, 구원이 없었다. 나는 외톨이였다. 내 의식은 집중하고 확대해 있었다. 마음먹으면 그 우주의 깊디깊은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보지 않기로 했다. 아직 너무 일렀다. - P204
만일 죽음이 이런 것이었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죽음이란 것이 영원히 각성한 채 이렇게 꼼짝 않고 어둠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 P204
생물학적으로 보면 분명히 부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대체 누가 자연에 대해 알고 있을까? 무엇이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지는 결국 경험적 추론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런 추론을 넘어선 지점에 있다. 이를테면 나를 인류의 비약적 진화의 선험적 샘플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잠자지 않는 여자. 의식의 확대. - P205
잠을 못 자게 되기 이전의 기억이 가속도가 붙어 속속 멀어져가는 듯 느껴진다. 무척 신기한 느낌이다. 매일 밤이 오면 잠들었던 무렵의 내가 진짜 내가 아니고, 당시의 기억은 진짜 내 기억이 아닌 것 같다. 사람은 이렇게 변화하는구나,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 변화를 모른다.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밖에 모른다. 설명해도 그들은 모를 것이다.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믿는다 해도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절대로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그들은 나를, 자신들의 추론 세계를 위협하는 존재로밖에 이해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나는 실제로 변화하고 있다. - P207
뭔가 잘못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차분하게 생각하면 잘 될거야. 생각을 해. 침착하게 · 천천히 · 생각하는 거야. 뭔가 잘못됐다. 뭔가 잘못됐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됐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내 머릿속에는 농밀한 어둠이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이미 나를 어디로도 데려가지 않는다. - P209
나는 우는 것밖에 할 수 없다.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넘친다. 나는 혼자고, 이 작은 상자에 갇힌 채 어디로도 갈 수 없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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