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육의 형제인 내가 무력으로 통일을 하고 나면 같은 민족 간의 우열의식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때 북측의 상대적 소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 P137
국가의 수반으로 섬기는 지도자에게는 중요한 덕목이 있다. 나는 그때 그들이 나에게 했던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우리의 목자가 되어주십시오."
왕이 되고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국민들의 목자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 목자적 대통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먼저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곧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목자는 양들이 풀을 뜯어먹기 좋은 목초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듯, 백성들이 좋은 환경에서 잘 살아가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 P151
그렇다면 목자적 대통령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목자가 양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아끼지 않듯, 목자적 대통령 또한 백성을 자기 생명처럼 여겨야 한다. 더 나아가 목자가 양들을 인도하여 좋은 길로 나가도록 방향을 제시하듯 목자형 지도자는 국민이 나아갈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존 맥스웰이 자신이 저서인 ‘열매 맺는 지도자‘에서 한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그들과 전쟁을 벌일 수도 있다. 우리는 쟁기가 될 수도 있고, 불도저가 될 수도 있다. 쟁기로는 땅을 일구어 고르게 한 후 종자를 경작하기에 합당하게 만든다. 불도저는 땅을 문질러 깎고 방해물들을 옆으로 치워 버린다. 쟁기와 불도저는 한가지로 유용한 기구이지만, 전자는 경작시키는 반면, 후자는 결단을 낸다. 쟁기형의 지도자는 사람들 속에서 경작되기를 기다리는 보고를 찾아 내지만, 불도저 타입의 지도자는 사람들 속에서 파괴되어야 할 방해물을 본다. 당신은 경작자가 되라!" - P151
불도저와 같이 방해가 되는 것은 치워버리고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은 목표를 위해 과정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신나게 일할 장을 열어주는 것은 지도자의 몫이다. - P151
대한민국에도 쟁기형 지도자가 필요하다. 치유와 희망을 통해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목자적 리더십이 중요하다. 특히 통일국가가 되면 목자의 심정으로 국민을 사랑하며 지도할 수 있는 대통령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 지도자가 세워지기를 기대해 본다. - P152
한때 서럽기만 했던 도망의 길이 훗날 작전의 키가 된다는 사실에 남다른 감회가 밀려왔다. 역시나 주님의 인도하심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한다. - P156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배울 수 있었다. 바로 모든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화합과 단결이라는 명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기반이되는 것을 아까워하지도 말아야 했다. 만약 내가 헤브론을 수도로 유지했다면 어떠했을까? 국민들은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겪어야 했을지 모른다. 자연히 마음을 모으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분명 나의 기반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을 택했기에 국민들의 마음을 합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할수 있었다. - P161
수도 이전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지역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될 수 있다. 사람들은 국가를 생각하기에 앞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한쪽이 득을 보고, 다른 한쪽은 손해를 보기 쉽다. 이런 상태를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갈등이 오래 가면 나라가 흔들리고, 그토록 없어지길 바라는 지역주의 근성도 더욱 강화된다. 그런 차원에서 대한민국이 수도를 옮길 절호의 기회는 통일이 된 이후라고 생각된다. - P162
물론 남이나 북에 치우치지 않은 중간 지역을 수도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서로 간에 이동하기도 쉽고 소외감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취지라면 판문점 부근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남한의 경기도 진서면과 북한의 평화리 등을 포함한 영역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그곳은 개성공단과도 가깝기 때문에, 통일한국의 수도로 자리매김하기에 그리 무리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더불어 수도 이전 추진에 있어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 방향이 전국민 화합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균형있는 판단이야말로 국민들을 대등하고 평등하게 이끌어 갈 수 있다. - P163
또한 나는 주님의 궤를 둘 한 장소를 마련했고 궤를 안치할 장소에 장막을 쳤다. 영적 수도가 되기 위해서는 언약궤가 없어서는 안되었다. 언약궤란 십계명 돌판이 들어 있는 법궤로, 성막에 보관되어 있었고 이스라엘의 광야생활 때 항상 그들 앞에서 행진하곤 했다. 이 언약궤는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나 여리고성을 함락시킬 때에도 늘 함께했다. 통일 이스라엘을 주님께 드리는 봉헌식을할 때 역시 이 언약궤가 빠져서는 안 되었다. - P165
"주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잘 들으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을 봐주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의 말씀을 버리셨기 때문에, 주께서도 임금님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5:22-23) - P168
난 그때 깨달았다. 모세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언약궤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흠이 없어야 했다. 그런데 이방인 농부에게 주님의 축복이 임했다는 것은 이제부터 누구나 언약궤에 가까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주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누구라도 주님 앞에 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놀라운 메시지가 아닐 수 없었다. - P169
언약궤가 도착함으로써 우리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의 소유임을 고백하게 되었다. 날마다 주님의 자비를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나는 장막을 만들어 언약궤를 그곳에 안치했고 이후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까지 40여년 동안 ‘모세의 성막과 다윗의 장막이 공존하는 시대가 열렸다. ‘모세의 성막‘에서는 전통대로 제사가 이루어진 반면, ‘다윗의 장막에서는 감사를 고백하는 경배와 찬양이 드려졌다. 이는 ‘모세의 성막에서 드려졌던 많은 절차와 완전히 달랐다. 우선 짐승의 희생 제사, 대제사장에게만 허락됐던 지성소, 지성소를 구분하던 휘장 등이 사라졌다. 또한 이 장소는 24시간 365일 내내 누구에게나 열린 예배 공간이 되었고 주님의 깊은 임재를 경험하는 장소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오늘날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의 원형이 만들어진 셈이다. - P172
나는 예배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예배의 틀을 세워나갔다. 음식과 친교, 찬양, 기도, 악단의 연주, 성가대 등을 중심으로하는 예배 말이다(참조: 역대상 16:3-7). - P173
"겁낼 것 없단다. 내가 너의 아버지 요나단을 생각해서 네게 은총을 베풀어 주고 싶구나. 너의 할아버지 사울 임금께서 가지고 계시던 토지를 너에게 모두 돌려주겠다. 그리고 너는 언제나 나의 식탁에서 함께 먹도록 하여라."(사무엘하 9:7)
그는 내 말에 매우 황송해하며 엎드려 말했다. "이 종이 무엇이기에 죽은 개나 다름없는 저를 임금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이러한 나의 행동이 북쪽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그곳의 사람들 또한 동일하게 대우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이 일로 나는 보다 호의적인 민심을 얻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통일 후 행정수도를 옮김으로 지역화합을 도모했고, 언약궤를 옮김으로 가치관의 영적 통일을 이룰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정적들에 대한 관대한 정책을 펼침으로써 인덕의 왕으로 불리게 되었다. - P175
"너는 많은 피를 흘려 가며 큰 전쟁을 치렀으니, 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수 없다. 너는 내 앞에서 많은 피를 땅에 흘렸기 때문이다. 보아라. 너에게 한 아들이 태어날 것인데, 그는 평안을 누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내가 사방에 있는 그의 모든 적으로부터, 평안을 누리도록 해주겠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지어라. 그가 사는 날 동안 내가 이스라엘에 평화와 안정을 줄 것이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것이다. 그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그의 왕위가 영원히 흔들리지 않고 튼튼히 서게 해줄것이다." (역대상 22:8-9) - P177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이어 갈 것이며, 네 왕위가 영원히 튼튼하게 서 있을 것이다." (사무엘하 7:16)
성전 건축은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 약속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나는 온 힘을 기울여 내 주님의 성전 건축을 할 수 있는 자금과 물질을 준비해 나갔다. 지금 내가 담당할 일은 성전 건축이 아니라 성전건축을 예비하는 일이었다. - P178
내 시대에 위대한 업적을 완성하여 후대들로부터 나의 치적으로 듣고 싶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시대별로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보면 건국의 기초 확립, 경제 부흥, 민주화를 통한 선진국의 기반 형성, 빈부 격차 해소, 사회 안정, 첨단 과학 발전, 정의와 공의 사회 구현이라는 시대별 과제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 차원에서 진정한 리더라면 내 이름을 드러낸 무엇인가를 남기려고 하기보다, 다음 주자를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각오해야하지 않을까? - P178
국민통합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하나된 힘을 모아서 어디엔가 써야 하는데 과연 어디에 힘을 쏟을 것인가? 내가 선택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외세의 침입과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 동안 우리 이스라엘 민족은 주변의 블레셋, 모압, 암몬 등 숱한 외세의 침략 속에서 불안한 생활을 해왔다. 따라서 나는 백성들이 이러한 불안함에서 벗어나 평안하게 살아갈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했다. 이에 모든 위협세력을 제거하는 사명을 안고 영토확장을 시작했다. - P179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블레셋사람이 듣고, 온 블레셋 사람이 다윗을 잡으려고 올라왔다. 다윗이 이 말을 듣고서, 요새로 내려갔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몰려와서, 르바임 골짜기의 평원을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사무엘하 5:17-18) - P181
언제나 전쟁에서는 상대방의 예상을 초월해야 한다. - P182
이스라엘의 군대가 이렇게 강한 전쟁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는 기동대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아둘람 동굴에서 훈련받은 6백 명의 정예부대원들이었다. 둘째, 우리에게는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많았다. 심지어 전쟁 중에 내가 갈증이 난다고 혼잣말을 하자 생명을걸고 블레셋의 진영에까지 침투하여 우물물을 가져오는 군인들도 있었다. 셋째, 우리는 다윗병법이라는 책을 쓸 정도로 전략과 전술에 능했다. - P183
나는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백전백승의 비결에 대해 궁금해할 것으로 생각되어, 여기에 중요한 몇 가지를 적고자 한다. 첫째로 전쟁 전에 항상 기도하라. 링컨은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들었다는데, 나는 밤이든 낮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다. 전쟁은 주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기도를 중시했다. 기도할 때 주님께 이렇게 고백하였던 기억이 있다. "주님은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분, 나의 하나님은 나의 반석, 내가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이십니다. 나의 찬양을 받으실 주님, 내가 주님께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나를 원수들에게서 건져 주셨습니다." (시편 18:2-3) - P186
둘째로는 전쟁에 임하는 자세를 확고히 하라. 이것이 승리를 가른다.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적은 외부에 있지 않다. 아군에 있지도 않다. 바로 내 안, 즉 내 마음에 있다. 두려움은 패배로 달려가는 발걸음이다. 임전태세에 있어 내가 품었던 고백 하나를 소개한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편 27:3) - P186
셋째, 상대방의 예상을 깨며 허를 찔러라. 이미 앞에서 소개했듯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무릿매 작전 여부스성 함락을 위한 두더지작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의 후면 기습공격작전 등을 시행했다. 나는 상대방에게 수가 읽히는 뻔한 전술은 철저히 배격했다. 아이젠하워의 노르망디 상륙전쟁이나 맥아더의 인천상륙전쟁 등도 모두 상대의 허를 찌르는 전술이었다. 상대방이 안심하고 있는 부위를 힘들더라도 공격해야 한다. - P186
넷째, 공격할 때는 쓰나미처럼 밀어부치라. 전쟁에서는 승리 이외에는대안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한니발 장군의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군만무려 6만여 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나는 전쟁에 나갈 때마다 적을 전멸시키다시피 했다. 아마 간담을 서늘게 한다는 소문도 주변 나라들에 꽤 퍼졌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했던 이유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그들을지키려면 반드시 군사적으로 강국이어야 했다. 평화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 P187
오죽했으면 내가 주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고 싶다고 간청했을 때 적국의 피를 많이 흘리게 했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겠는가! 당시 주님이 나에게 하셨던 말씀은 이러했다.
"너는 많은 피를 흘려 가며 큰 전쟁을 치렀으니, 나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수 없다. 너는 내 앞에서 많은 피를 땅에 흘렸기 때문이다."(역대상 22:8) - P187
다섯째, 전쟁에서 이길 때 다시 덤빌 수 없도록 응징하라. 한번은 유프라테스강과 다마스커스 지역의 시리아군대가 연합군을 조직하여 싸움을 걸어왔다. 이때 기마병 1700명, 보병 2만 명을 포로로 잡았다. 전차를끄는 말들은 십분의 일만 남기고 모두 다리의 힘줄을 끊어 버렸다. 이때시리아군 2만2천명을 전사시켰다. 숫자에 차이를 보이지만 역대기를 기록한 저자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그 병거 일천 승과 기병 칠천과 보병 이만을 빼앗고 그 병거 일백 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역대상 18:4) - P187
여섯째, 적들의 연합을 저지하라. 암몬이라는 나라 왕에게 신세를 지었던 적이 있었다. 그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려오자 얼른 조문단을 보냈다. 이때 그들은 우리 조문단을 정탐꾼으로 오해하여 선을 넘는 짓을 하고 말았다. 아들 왕에게 조문단이 당한 수모는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수염을 우스꽝스럽게 잘라 버렸고, 엉덩이가 훤히 보이도록 옷을 잘라버리기도 했다. 꼴 좋다고 하며 낄낄거리고 배가 아프도록 웃어 대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조문단이 느꼈을 수치심을 생각하니 머리 위에서 김이 날 정도로 열이 올랐다.
"그래서 하눈(암몬의 새로운 왕은 다윗의 신하들을 붙잡아서. 그들의 한쪽 수염을 깎고, 입은 옷 가운데를 도려내어, 양쪽 엉덩이가 드러나게 해서 돌려보냈다." (사무엘하 10:4)
나는 그들의 태도를 정면으로 나에게 대들겠다는 선전포고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의 오른 팔 요압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암몬으로 갔다. 암몬은 끝까지 어리석었다. 이제라도 미안하다고 하면 됐을 것을 오히려 시리아 용병 3만3천 명을 데려와 이스라엘 군과 맞장을 떴다. 물론 아들람 동굴에서부터 잔뼈가 굳었던 용맹한 요압의 군대를 당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들은 뒤늦게야 백기를 들고 말았다. - P188
문제는 이전에 패했던 시리아의 우두머리 하닷에셀왕이 엉겨붙기 시작했다. 시리아인들로 구성된 대규모 연합군을 만들었다. 아마 지난 패배를 설욕하고 싶었나보다. 하도 가소롭고 패심하여 요압에게 맡기기 보다는 이번에는 내가 직접 참전하여 지휘했다. 이번에 완전히 시리아군을진멸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전투에서 시리아의 전차부대원 7백 명, 기마병 4만 명의 목숨이 날아갔다. 시리아 지휘관도 잡아 그 자리에서 목을 쳤다. 다시는 연합군을 결성하지 못하도록 본 떼를 보여주었다.
"하닷에셀의 부하인 모든 왕은, 자기들이 이스라엘에게 패한 것을 알고서, 이스라엘과 화해한 뒤에, 이스라엘을 섬겼다. 그 뒤로 시리아는, 이스라엘이 두려워서, 다시는 암몬 사람을 돕지 못하였다." (사무엘하 10:19) - P189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한 땅에 대한 약속이 있었다. 그내용은 이랬다.
"바로 그 날, 주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시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땅을, 이집트 강에서 큰 강 유프라테스에 이르기까지를 너의 자손에게 준다. 이 땅은 겐 사람과 그니스 사람과 갓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사람과 르바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을 다 포함한다."(창세기 15:18-21)
주님은 이 약속을 아브라함의 후손인 나와 통일 이스라엘 국민들을 통해 이루셨다. 밑으로는 이집트 강에서부터 위로는 유프라테스강에 이르기까지 그 넓은 땅을 이스라엘에 주셨다. 주변에서 감히 건드리는 나라 또한 없었다. - P190
나는 ‘국민 한 사람의 생명이 곧 국가‘라는 생각을 했다. 이스라엘의 국민 한 명의 생명이나 왕인 나의 생명이나 동일하게 소중했다. 따라서 대외적으로는 군사적 강국을 추구했지만 국내 정치에 있어서는 철저히 공평함과 의로움을 추구했다. 이것이 나의 국정철학이었다. 사무엘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다윗이 왕이 되어서 이렇게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에, 그는 언제나 자기의 백성 모두를 공평하고 의로운 법으로 다스렸다."(사무엘하 8:15)
잘못된 판단으로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이 주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후에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나에 대해 이렇게 썼다.
"다윗은 그의 세대에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섬겼다." (사도행전 13:36) "David had served God‘s purpose in his own generation."(Acts 13:36)
그렇다. 나의 역할은 섬기는 것이다. 첫째는 주님을, 둘째는 나의 국민을! 나는 날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잊어버린 적이 없다. 빈칸을 포함하여 ‘일곱 글자‘ 밖에 안 되는 이 모토는 나의 가슴에 철도장으로 늘 박혀 있었다. - P192
주님, 우리 주님! 주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저 하늘 높이까지 주의 위엄 가득합니다. 어린이와 젖먹이들까지도 그 입술로 주의 위엄을 찬양합니다. 주께서는 원수와 복수하는 무리를 꺾으시고, 주께 맞서는 자들을 막아낼 튼튼한 요새를 세우셨습니다. 주께서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주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주십니까? (시편 81-4, 다윗의 시에서) - P193
한번은 요압이 군대를 이끌고 암몬과의 전쟁터에 나갔다. 나는 그때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고 여유로운 날들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루는 저녁시간 즈음 오랜만에 기분 전환을 하고 싶어 옥상에 올라갔다. 그날따라 공기도 참 맑았고 신선했다. 모든 것이 완벽한 하루 같았다. 바로 그때 나는 한 여인의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그 여인은 밧세바였고 그녀의 남편은 요압과 함께 전쟁터에 나가 있던 우리아였다. 그녀를 보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 P198
결국 나는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말았다. 당시 나는 왕권을 가지고 있는 최고 권력자로서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영이 늘 깨어 있어야 하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을 육체의 본능에 맡겨버렸다. - P199
내가 쓴 시편에 등장하는 그 악인은 바로 나였다.
"악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죄의 속삭임만 있어,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의 눈빛은 지나치게 의기양양하고, 제 잘못을 찾아서 버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란 사기와 속임수뿐이니. 슬기를 짜내어서 좋은 일을 하기는 이미 틀렸습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남 속일 궁리나 하고, 스스로 좋지 않은 길에 버티고 서서, 한사코 악을 버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시편 36:1-4)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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