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지 못한 어글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
콘스턴스 브리스코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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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 책장은 빠르게 넘어간다. 옆 자리 사람이 내리고 우르르 아이들이 몰려온다. 세 명의 아이들이 내 옆에 서로 자리를 다투며 앉았다. 아이들의 엄마는 맞은편에서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외친다. 아이들은 그 말이 들리지 않는지 좁은 자리에서 몸을 비틀며 창밖을 내다본다. 아이들의 더러운 운동화가 나의 옷에 닿는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옷을 털어낸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세 명의 아이들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욕설을 퍼붓고 발길질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두 눈을 감고 읽고 있던 책을 잠시 덮어 둔다. 아이들의 엄마는 말로만 가만히 있으라고 다그친다. 나는 아이들이 싫다.

한때 학대받는 아이들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다. 온갖 종류의 폭력에 휘둘렸던 아이들의 에세이들, 알콜중독에 자신의 가족들을 학대했던 가장의 에세이들, 그리고 상처 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인물들이 나오는 다양한 픽션들, 어느 순간 나에 대해 깊이 궁금해지면서 그러한 책들을 읽었다. 달라진 건 그러한 학대의 이야기에서 나아가 이제는 그 치유에 관한 이야기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이 책이 지금은 성공한 사람의 고통스런 어린 시절 이야기라고 했을 때 나는 어떻게 그것을 극복해 나갔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러나 이 책에는 대부분 잔인한 폭력에 관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픽션이길 바라는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최악의 악역을 맡고 있었다. 가공의 인물보다 지독했다. 역시 삶은 픽션보다 끔찍하고 이해 불가능한 일들로 가득하다. 소개하는 글에 있듯이 이 책을 읽는 건 분노를 참는 훈련을 받는 것 같다. 조금만 더 읽으면 행복한 이야기가 나오겠지. 그래도 희망에 찬 이야기가 나오겠지. 그러면서 어머니의 끝없는 학대의 역사를 읽어 내려간다. 그러나 이 책 한 가득 담긴 건 그야말로 학대의 역사다. 온갖 종류와 방법의 학대들, 그리고 그걸 극복해내고 대처해나가는 저자의 눈물어린 극복, 이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웠던 건 저자가 어렸을 적 에피소드까지 너무나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린 시절의 기억이기에 완벽하게 정확한 재현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일기장까지 결국에 어머니에게 뺏겼다면 더욱 정확한 사실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어린 저자가 느꼈던 그만큼의 폭력일 것이다. 저자에게는 그것이 진실일 것이고, 그렇게 현재까지 몸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해 듯 나는 아이들을 싫어한다. 당연히 아이들은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사랑받고 사랑 주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면? 그러한 것들은 어렸을 적부터 아니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몸으로 습득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것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실행하려면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쩌면 나도 그 중 하나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책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다른 이들의 폭력의 역사를 보며 극복해내가는 과정을 보며, 이제는 점점 질려가는 이러한 반복된 학대의 패턴들을 보아가며. 내가 해서는 안 될 것들과 가지지 말아야 할 마음가짐들을 되짚어 보게 된다.

역자의 말에서 나왔듯 원서에서는 이 책에 대해 저자의 어머니가 제기한 비방죄 소송 경과가 부록으로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 부록도 함께 실렸더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책 자체에서도 모든 것을 극복한 저자의 모습이 보이지만 그 긴 폭력에 비해 그 희망의 메시지는 너무나 작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을 처참하게 짓밟았던 어머니에게서 드디어 승리를 얻어내는 순간이 더욱 많았다면 내 마음이 더 편안해졌을지도 모른다.

가끔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부모님이기에, 아니 가족이 아니라 그 누구라해도 결국엔 용서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용서해야 자신이 비로소 강해지고 그것을 극복해나갈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어렸을 적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아무리 어머니라 할 지라도(특히 끝까지 용서를 구하지 않는 저자의 어머니같은 사람은 더더욱) 복구될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에게는 조금이라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라고 말하는 자체가 또 다른 상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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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집 마련의 여왕>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집 마련의 여왕
김윤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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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너무 착하다. 마지막 몇 장을 남기고 생각한다. 나는 처음의 설렘이 조금 사그라짐을 느낀다.  

올해가 시작되면서 가장 간절히 바라게 된 것이 ‘내 집’이다. 사실 그런 욕심은 지난 십 년 간 열 두 번도 더 넘게 혼자 이사를 다녀야했던 나의 시간을 되돌아 봤을 때 진작부터 품고 있던 바람이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나는 유목민이다 하며 여기저기를 옮겨 다녔지만 그것도 나이가 들어 지쳐버린 것 같다. 늘 떠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야 여전하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짐들, 그것들이 머물 곳이 필요하다가 아우성을 치고 있다. 이제 나를 따라다니는 짐들이 너무 무거워졌다. 어디를 떠돌아 다닌다 해도 내가 돌아올 나만의 보금자리가 간절해졌다.

수빈은 그야말로 소설 속 인물이다. 실제로 이런 인물이 있다면 너무 질투가 날 것이다. 그녀는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아주 멋진 남편을 가졌고 천사같은 딸이 있다. 그리고 신데렐라처럼 누군가의 눈에 띄어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이 생각지 못한 능력을 발견하고 별난 미션들을 해결한다. 그건 그녀가 평생토록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습득된 능력의 총집합이다. 내 집을 갖고 싶은 사람들에게, 각자 원하는 집을 마련해주는 일.

첫 번째 의뢰는 가난한 형제의 집 구하기이다. 여러 가지 경매 용어들이 나오고 경제이야기들, 서울의 부동산 시장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경제는 물론 수학, 아니 숫자에도 약한 나는 머리가 아파온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그건 내 집을 갖고 싶다는 욕망에 공감하면서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다.

서대리 형제와 박가 할아버지, 윤소장, 이간호사까지, 수빈은 우여곡절 끝에, 영화나 드라마가 다 그러하듯 해피엔딩으로 모든 미션을 완성한다. 그녀가 도와줬던 이들은 나중에 다시 수빈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다시 수빈과, 그렉과 인형같이 예쁜 딸 지니는 행복한 가족으로 돌아간다. 그들의 소울하우스를 뒤로 한 채 온 세계에 그들의 집을 지을 듯 한 의지로.

‘희망, 나는 그걸 믿는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생각한다. 나는 무얼 바란걸까. 이 책에서, 재미를 원했다면, 내 욕심의 공감을 원했다면, 그리고 그것의 대리만족을 원했다면 나는 충분히 그것을 충족했다. 그러나 뒤에 남은 이 공허함은 무엇일까. 뭔가 속았다는 느낌? 마지막 저 문장이 작가가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처음 이 소설은, 현실을 가장한 비현실로 시작한다. 시작하는 작가의 말에서 깜박 속아 넘어간다. 그렇게 소설의 현실로 들어간다. 재미있는 건 다루고 있는 부동산 문제나 내 집 마련이라는 사항들은 지금 한국의 현실적 문제이지만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는 유별나게 판타지 같다는 것이다. 수빈에서부터 그렉, 지니는 말할 것 없고 미션을 주는 정사장까지 캐릭터가 분명하지만 그만큼 극단적이다. 아마 영화로 만들어 진다면 딱 맞을 소설 같다는 느낌이다. 물론, 그런 재미있는 캐릭터들과 빠른 전개와 재미들, 그리고 은근한 감동과 희망의 메시지까지. 소설은 순식간에 읽힐 정도로 재미있게 버무려져 있다. 영화화 한다면 각색할 것도 없이 그대로 해도 될 정도다. 그러나 이 허전함은 무엇일까. 결국 소설 속 인물들은 해피엔딩이 되었고 나는 그 해피엔딩에 같이 행복해하기보단 그래 소설 속 이야기니까. 라는 생각만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윤영 작가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앞의 작품은 단편집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사회적인 문제와 소설을 재미있게 섞어서 쓰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는 그때도 그녀의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뭔가 깊숙한 것을 찌르지 못한 느낌이었다. 지금의 책도 물론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려 노력했다. 그런데 마무리에 다가오자 나는 이야기가 점점 더 판타지로 빠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현실도 그것처럼 늘 해피엔딩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이런 고단함도 해피엔딩으로 끝날 거라고 믿고 싶다. 이 소설을 보고 행복한여운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허구 속에서 일어난 결말이라는 것을 안다. 허구임을 알기에 잠깐의 행복한 여운만 가질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작가는 과도하게 행복을 노래했을까 나는 책을 덮고 나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씁쓸한 현실을 더 자각하게 되었다. 작가는 희망을 믿는 다고 하지만 나는 그 극적인 해피엔딩에 현실의 쓴 맛이 더 쓰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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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세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무도회가 끝난 뒤 - 러시아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외 지음, 박종소.박현섭 엮어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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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시작된 후 오직 한 벌의 외투만 입고 다니는 아이를 알고 있다. 눈이 많이 오던 날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도, 고집스러워 보일 정도로 그 코트만 입고 다녔다. 물론, 그 아이에게는 유일한 겨울 외투였을 것이다. 겨울이 한풀 꺾이면서 다른 아이들은 그 아이를 피하기 시작했다. 두 달이 넘게 입고 다녔던 그 아이의 칙칙한 코트에서는 겨울을 함께 지내온 시간만큼의 냄새가 배어나왔다. 고골의 외투를 읽는 내내 나는 이 아이의 코트 냄새가 떠올랐다. 외투를 찾으려고 절박하게 항의 하는 아까끼의 고군분투가 내내 마음이 아팠다. 이 아이를 몰랐을 몇 년 전 이 작품을 읽었을 때는 몰랐던 안쓰러움이었다.

러시아를 꿈꾼다. 몇 년 전 러시아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온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나는 십년 뒤 뿌슈낀 광장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나를 상상한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를 보고, 모스크바에 발을 딛는 순간 나도 누군가처럼 그 땅에 키스를 하고 싶다. 러시아는 나에게 함부로 덤비지 못한 거대한 괴물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대륙에서 이어져 온 거친 삶, 잔인한 역사, 혹독한 추위까지 어느 순간 나에게는 러시아의 모든 것이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현재 러시아의 문학 작품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흔히 알려 진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 고골이나 체호프 등 19세기 문학작품들이 우리에게 알려진 러시아 문학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도 마찬가지다. 책에 실린 13편의 단편을 읽다보면 안타까움을 넘어 처절한 러시아의 역사의 단편들과 마주하게 된다. 지하에서 죄수처럼 빵만 만들며 일만하는 사람들, 추위에 떨다 이웃의 장작 다섯 개를 훔치고 결국 서로 독약을 먹겠다고 애절하게 대화하는 부부, 서로를 죽이고 죽이는 부자지간의 이야기, 이 한 권의 책 속에 그 역사를 몸으로 겪어온 작가들만의 문체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지방에 내려갔다 올라오는 기차 속에서 이 책을 읽는다. 외출을 잘 하지 않는 나에게 힘겨운 하루였고 많은 사람들과 마주해야 했던 날이었다. ‘암소’라는 작품을 읽으며 5개월 된 아들을 안고 결혼식장에 나타난 친구를 떠올린다. 화려한 결혼식장에 참석한 옛 친구들을 마주하자 ‘시간’이라는 단편이 떠오른다. 혼자 기차에 앉아 저물어가는 창밖을 보며 ‘일사병’을 읽어 내려간다. 이 단편들은 알게 모르게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온다. 러시아의 너무 먼 이야기 같았는데 읽을수록 백년이 더 지난 지금도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현실이 숨겨져 있다.

러시아의 혁명과 망명과 억압, 그리고 그 속에 피어있기에 더 눈부신 화려함.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들의 바닥에 있는 혹독한 추위, 러시아의 소설들은 그래서 특별하다. 혼란스런 역사와 고통스러운 삶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러시아의 추위가 그들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아프고 슬픈 이야기를 하지만 그 추위 속을 지나온 탓인지 모든 문체들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담담하다. 이러한 추위가 없었다면 고골의 ‘외투’가 탄생했을까, ‘동굴’이라는 소설이 그렇게 절실하게 다가왔을까, 그들은 매일매일 그 추위 속에서 살아남아야했기에 진한 보드카를 마시듯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깊숙하게 파고들지 않았을까. 많은 것에서 의미를 찾아야 했을 것이고 추위 속에서도 버텨나가게 해 줄 아름다움을 찾아야 했을 것이다.

처음 러시아 문학을 접한 것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었다. 십대의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책이었고 나는 그저 완독하는데만 급급했다. 조금 자라서 러시아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다시 집어 든 그 책은 달랐다. 나는 놀라울 정도로 책 속으로 빠져들었고 그 두꺼운 책을 통해 러시아의 차가운 공기를 맛 본 기분이었다. 러시아의 단편들은 종종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고골의 ‘코’나 푸쉬킨의 ‘스페이드의 여왕’은 백퍼센트 이해하기 전에 작가의 상상력에 웃음을 터뜨렸고 그들의 작품 세계, 더 나아가 러시아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여기 이 책 속에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거나 당황시키게 하는 작품들은 없다. 그보다는 삶 전체를 하나씩 돌아보게 하는 단편들이 엮여 있다. 더구나 작품마다 해설이 담겨 있어 더 깊이 작품에 대해 이해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작품마다 연관시켜 더 읽어볼만한 책들을 소개시켜 주고 있어 앞으로 다른 러시아 소설들을 읽어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아주 사소한 에피소드들, 간혹 책 페이지 위에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들, 그것들이 한참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게 한다. 오늘의 나의 하루와 어제와 내일을 더듬어보게 한다. 이런 소설은 곁에 두고 잊을 때쯤 한 번씩 한 번씩 읽게 되면 읽을 때마다 다른 깊이가 내 속에서 생겨나게 한다. 아주 가볍게 잊었던 것들, 예전의 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들, 나에게는 없을 거라고 장담했던 일들, 그 책 속에 실린 단편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게 되면 내가 가졌던 삶에 대한 확신들이 흔들리고 무너지기도 하면서 점점 더 성숙하게 깊이 있게 다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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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날의 파스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보통날의 파스타 - 이탈리아에서 훔쳐 온 진짜 파스타 이야기
박찬일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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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하는 걸 싫어한다. 혼자 산지 거의 십년, 처음 나만의 부엌을 가졌을 때는 요리책도 몇 가지 구입하고 욕심내서 이것저것 시도했다. 엄마한테 전화해서 이건 어떻게 하고 저건 어떻게 하지? 묻기도 많이 했다. 그러나 점점 나는 나에게 요리에 재능이 없음을 깨달았다. 더구나 혼자 한 요리를 혼자 먹는 건 지긋지긋하다. 그리고 재료 손질 후 버려진 음식쓰레기들을 보면, 그걸 치우고 있노라면 참, 구질구질해진다. 금방까지 먹었던 음식의 맛은 잊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돈을 더 열심히 벌어서 맛도 좋고 분위기도 좋은 곳으로 가서 그저, 음식을 즐기기만을 바란다. 

  이 책을 보다가 요즘 하고 있는 <파스타>라는 드라마를 보게 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난 요리에 관심이 없다. 레시피가 어떤지 궁금하지 않다. 그냥 맛있으면 그만 아닌가! 그러나 드라마와 이 책을 오가며 나는 정말 파스타를 당장 해먹고 싶어진다. 잠들기 전에 책 속의 사진들을 보면 잠도 확 달아나 버린다. 대충 배를 채운 저녁 시간에 책을 보면 내가 금방 먹은 것들은 정말 오로지 배만 채우기 위한 것들임을 깨달아 슬퍼지기도 한다. 다음 날 친구와 파스타를 먹으러 갈 약속을 잡고야 만다.  
  책을 읽다 생각해보니 요리에 관한 에세이는 처음이다. 더구나 파스타를 위해 이탈리아 유학을 다녀온 사람의 책이라니, 허세가 잔뜩일 것만 같다. 책 제목이 ‘보통날의 파스타’이다. 왠지 포장하려는 듯 하다. 보통날의 파스타, 우리에게 흔한 비빔밤 앞에 보통이라는 건 붙이지 않는다. 그건 말하지 않아도 그대로 '보통'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보통날'이라는 단어를 붙여 파스타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버린다. 파스타하나만 보고 유학까지 다녀왔으니 그에게는 당연한 제목이다. 특별하면서도 늘 함께 하는 것이 그에게는 파스타이다.

  이탈리아에서 진짜 현지의 것들을 몸으로 느끼고 돌아온 그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파스타의 선입견을 잡아주기도 한다. 그의 허세가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이탈리안 음식의 허세를 밝혀준다. 그리고 나는 드라마 <파스타>와 동시에 이 책을 보며 놀란다. 이 책에 나온 정보들이 드라마 속에서 속속들이 보여주는 게 아닌가. 그 중에 하나가 이탈리아에는 피클이 없다! 사실 나도 파스타를 먹으러 가면서 그 집의 피클맛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직접 담근 듯 한 피클을 내놓는 레스토랑을 선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탈리아에서는 피클을 찾아보기 힘들다니, 듣고나서 생각해보니 피클을 굳이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스푼은 쓰지 않는다는 말, 저자가 말했듯 포크질이 서툰 어린아이가 보통 쓴다고 한다. 물론 포크를 주로 쓰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써도 흉이 될 건 없겠지만, 면을 다 먹고 수저로 소스까지 열심히 퍼먹었던 나인데 이탈리아에서는 소스의 양도 면과 함께 포크로 딱 먹을 정도라고 한다. 그 외에도 카르보나라에 관한 진실 등 우리나라에 들어와 변형된 요리와 형태를 보면 왠지 우리나라 배추김치가 어디선가는 양배추김치가 되고 비빔밥을 어떤 외국인은 나물을 하나씩 따로 먹는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각각 그 나라에 맞춰서 음식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요리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대한 유혹도 강해진다. 저자가 잠깐씩 말해주는 이탈리아인의 특성과 그 나라의 분위기들, 작가가 만난 이탈리아인들, 그가 언급했던 파스타의 고장들을 따라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것도 즐거울 듯하다.  

  마지막으로 그가 만든 요리사 자질에 대한 테스트를 하고 책을 덮는다. 역시나 나는 무사태평형! 다시 한번 확고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그냥 남이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하다. 내가 계속 요리를 한다면 분명 음식자체를 싫어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나도 한번은 꼭 시도해보고 싶은 파스타가 생겼다.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을 그토록 애타게 만들었던, 저자가 모두의 파스타라고 말 한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면과 올리브 오일, 마늘만 있으면 된다니! 그가 알려준 여러 레시피 중에 유일하게 체크해 놓은 것이다. 무조건 간단한 재료가 제일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이것도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수십번 실패를 해야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다면, 그냥 레스토랑에 가서 알리오 올리오만 외친 채 친구와 수다를 떨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나는 친구에게 왜 이것을 꼭 주문해야 하는지 이야기 하기 위해 이 책을 식탁 위에 풀어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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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도 이브도 없는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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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멜리 노통브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소설에서 사랑이란, 『사랑의 파괴』에서처럼 어렸을 적 여자아이를 통해 깨달은 사랑이 아니다. 『머큐리』 등에서 보여주었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도 아니다. 평범한, 남녀 간의 첫사랑이다. 스무 살 초반의 풋풋한 사랑에 대해 그녀가 드디어 글을 썼다. 누군가를 죽이려는 살의도, 무언가를 파괴하려는 의도도 없는 ‘코이(戀) 스토리’이다.

  첫 문장부터 나는 아멜리 노통브의 이야기 속에 퐁당 빠져버린다. 마치 연락이 되지 않았던 옛 친구와 오랜만에 재회한 것과 같은 반가운 기분. 거기엔 그녀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반박』에서부터 나는 그녀의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솔직하고, 정열적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명확하다. 돌아가지 않고 거침없이 직선으로 나아간다. 그녀의 문장도 그렇다. 그녀의 문장은 바로 그녀 자신이다. 그녀는 자신을 숨길 줄을 모른다. 그래서 그녀의 문장들은 하나하나 매력을 발산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과 『두려움과 떨림』에서 그녀의 일본 생활은 잘 알 수 있다. 시기로 치면 이번의 소설은 위의 두 소설 사이에 존재한다. 그리고 『배고픔의 자서전』에서 그녀는 이미 슬쩍 일본인 청년과의 사랑에 대해 단서를 흘렸다. 그녀는 솔직하다. 결국 숨기지 못하고 모두 글로 써버리고 만다. 그녀의 소설에 생명력이 더해지는 이유는 소설 속에 늘 작가 자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많은 소설들 속에서 ‘아멜리’라는 주인공을 발견할 수 있다. 언어유희를 즐기고 유머러스하고, 엉뚱하고 유쾌하다. 어떤 캐릭터보다도 유니크하다. 물론 그녀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글쓰기에 한창 빠져있거나 즐거운 일에 몰두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멜리’라는 캐릭터는 그 어떤 캐릭터보다 생명력이 있다. 살아있는 작가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멜리는 자라투스트라가 되어 후지산 천 오백미터를 지나서는 거의 날다시피하며 정상으로 향한다. 그리고 다시 날다시피 뛰어 45분의 기록을 세우며 산을 내려온다. 그녀는 또한 혼자 눈보라가 치는 산에 오른다. 그리고 결국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산을 헤매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이 모든 경험들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다. 그녀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살아오면서 목숨이 위태로운 경험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그녀는 살아있고 그러한 경험들을 통해 더욱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녀가 일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앞의 다른 소설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특히『두려움과 떨림』에서는 직접 일본사회를 체험하면서 그녀는 일본을 비꼬거나 풍자한다. 가끔은 비웃는 것 같기도 하다. 때론 자신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거나 일본 사회 전체를 우습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그 속에서는 일본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애정이 바탕이 되어 있다. 그녀의 첫사랑 린리는, 어쩌면 그녀가 알고 있는 일본의 전부일지 모른다. 린리에게 아이(愛)라고 말하기 어렵듯 그녀는 일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것보단 코이(戀)이라고 말하며 곁에 두고 유희하고 즐기고만 싶다. 그녀는 일본에 대해 감탄하고 감동하지만 어쩌면 그게 전부이다. 그녀에게는 일본이란 나라가 하나의 재미난 놀이터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릴 수 있는 대상이다. 일본 사회에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고통이라는 것을 이미 그녀는 알고 있다. 그녀에게 일본이라는 곳은 어렸을 적 동화책을 읽으며 가진 환상과 비슷하다. 환상은 현실이 되는 순간 고통이다. 그래서 몰래 도망칠 수밖에 없다.  

  그녀에게는 아직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원고들이 가득하다고 한다. 또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글쓰기에만 몰두한다. 그녀의 소설들의 뿌리들은 모두 어렸을 적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경험해야 했던 사람들과 문화들. 그녀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스며들었다가 문장이라는 것으로 만개한다. 이번 소설은 어쩌면 그녀에게 부끄러운 고백이다. 모든 사랑을 다 받아놓고는 비겁하게 도망쳐야 했던 과거 사랑 이야기다.(물론, 이건 픽션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어야 했던 과거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노통브의 문장은 발랄하다. 먼 미래는 없다는 듯 현재에 충실하다. 그 젊음 특유의 충실함이 나를 끌어들인다. 거침없이 자기 자신만을 사랑한다고 외치는 그 문장들이 탐이 난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랬듯 책을 덮자마자 그녀의 다음 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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