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도 이브도 없는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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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멜리 노통브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소설에서 사랑이란, 『사랑의 파괴』에서처럼 어렸을 적 여자아이를 통해 깨달은 사랑이 아니다. 『머큐리』 등에서 보여주었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도 아니다. 평범한, 남녀 간의 첫사랑이다. 스무 살 초반의 풋풋한 사랑에 대해 그녀가 드디어 글을 썼다. 누군가를 죽이려는 살의도, 무언가를 파괴하려는 의도도 없는 ‘코이(戀) 스토리’이다.

  첫 문장부터 나는 아멜리 노통브의 이야기 속에 퐁당 빠져버린다. 마치 연락이 되지 않았던 옛 친구와 오랜만에 재회한 것과 같은 반가운 기분. 거기엔 그녀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반박』에서부터 나는 그녀의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솔직하고, 정열적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명확하다. 돌아가지 않고 거침없이 직선으로 나아간다. 그녀의 문장도 그렇다. 그녀의 문장은 바로 그녀 자신이다. 그녀는 자신을 숨길 줄을 모른다. 그래서 그녀의 문장들은 하나하나 매력을 발산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과 『두려움과 떨림』에서 그녀의 일본 생활은 잘 알 수 있다. 시기로 치면 이번의 소설은 위의 두 소설 사이에 존재한다. 그리고 『배고픔의 자서전』에서 그녀는 이미 슬쩍 일본인 청년과의 사랑에 대해 단서를 흘렸다. 그녀는 솔직하다. 결국 숨기지 못하고 모두 글로 써버리고 만다. 그녀의 소설에 생명력이 더해지는 이유는 소설 속에 늘 작가 자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많은 소설들 속에서 ‘아멜리’라는 주인공을 발견할 수 있다. 언어유희를 즐기고 유머러스하고, 엉뚱하고 유쾌하다. 어떤 캐릭터보다도 유니크하다. 물론 그녀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글쓰기에 한창 빠져있거나 즐거운 일에 몰두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멜리’라는 캐릭터는 그 어떤 캐릭터보다 생명력이 있다. 살아있는 작가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멜리는 자라투스트라가 되어 후지산 천 오백미터를 지나서는 거의 날다시피하며 정상으로 향한다. 그리고 다시 날다시피 뛰어 45분의 기록을 세우며 산을 내려온다. 그녀는 또한 혼자 눈보라가 치는 산에 오른다. 그리고 결국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산을 헤매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이 모든 경험들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다. 그녀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살아오면서 목숨이 위태로운 경험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그녀는 살아있고 그러한 경험들을 통해 더욱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녀가 일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앞의 다른 소설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특히『두려움과 떨림』에서는 직접 일본사회를 체험하면서 그녀는 일본을 비꼬거나 풍자한다. 가끔은 비웃는 것 같기도 하다. 때론 자신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거나 일본 사회 전체를 우습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그 속에서는 일본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애정이 바탕이 되어 있다. 그녀의 첫사랑 린리는, 어쩌면 그녀가 알고 있는 일본의 전부일지 모른다. 린리에게 아이(愛)라고 말하기 어렵듯 그녀는 일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것보단 코이(戀)이라고 말하며 곁에 두고 유희하고 즐기고만 싶다. 그녀는 일본에 대해 감탄하고 감동하지만 어쩌면 그게 전부이다. 그녀에게는 일본이란 나라가 하나의 재미난 놀이터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릴 수 있는 대상이다. 일본 사회에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고통이라는 것을 이미 그녀는 알고 있다. 그녀에게 일본이라는 곳은 어렸을 적 동화책을 읽으며 가진 환상과 비슷하다. 환상은 현실이 되는 순간 고통이다. 그래서 몰래 도망칠 수밖에 없다.  

  그녀에게는 아직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원고들이 가득하다고 한다. 또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글쓰기에만 몰두한다. 그녀의 소설들의 뿌리들은 모두 어렸을 적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경험해야 했던 사람들과 문화들. 그녀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스며들었다가 문장이라는 것으로 만개한다. 이번 소설은 어쩌면 그녀에게 부끄러운 고백이다. 모든 사랑을 다 받아놓고는 비겁하게 도망쳐야 했던 과거 사랑 이야기다.(물론, 이건 픽션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어야 했던 과거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노통브의 문장은 발랄하다. 먼 미래는 없다는 듯 현재에 충실하다. 그 젊음 특유의 충실함이 나를 끌어들인다. 거침없이 자기 자신만을 사랑한다고 외치는 그 문장들이 탐이 난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랬듯 책을 덮자마자 그녀의 다음 책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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