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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의 여왕
김윤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은 너무 착하다. 마지막 몇 장을 남기고 생각한다. 나는 처음의 설렘이 조금 사그라짐을 느낀다.
올해가 시작되면서 가장 간절히 바라게 된 것이 ‘내 집’이다. 사실 그런 욕심은 지난 십 년 간 열 두 번도 더 넘게 혼자 이사를 다녀야했던 나의 시간을 되돌아 봤을 때 진작부터 품고 있던 바람이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나는 유목민이다 하며 여기저기를 옮겨 다녔지만 그것도 나이가 들어 지쳐버린 것 같다. 늘 떠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야 여전하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짐들, 그것들이 머물 곳이 필요하다가 아우성을 치고 있다. 이제 나를 따라다니는 짐들이 너무 무거워졌다. 어디를 떠돌아 다닌다 해도 내가 돌아올 나만의 보금자리가 간절해졌다.
수빈은 그야말로 소설 속 인물이다. 실제로 이런 인물이 있다면 너무 질투가 날 것이다. 그녀는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아주 멋진 남편을 가졌고 천사같은 딸이 있다. 그리고 신데렐라처럼 누군가의 눈에 띄어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이 생각지 못한 능력을 발견하고 별난 미션들을 해결한다. 그건 그녀가 평생토록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습득된 능력의 총집합이다. 내 집을 갖고 싶은 사람들에게, 각자 원하는 집을 마련해주는 일.
첫 번째 의뢰는 가난한 형제의 집 구하기이다. 여러 가지 경매 용어들이 나오고 경제이야기들, 서울의 부동산 시장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경제는 물론 수학, 아니 숫자에도 약한 나는 머리가 아파온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그건 내 집을 갖고 싶다는 욕망에 공감하면서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다.
서대리 형제와 박가 할아버지, 윤소장, 이간호사까지, 수빈은 우여곡절 끝에, 영화나 드라마가 다 그러하듯 해피엔딩으로 모든 미션을 완성한다. 그녀가 도와줬던 이들은 나중에 다시 수빈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다시 수빈과, 그렉과 인형같이 예쁜 딸 지니는 행복한 가족으로 돌아간다. 그들의 소울하우스를 뒤로 한 채 온 세계에 그들의 집을 지을 듯 한 의지로.
‘희망, 나는 그걸 믿는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생각한다. 나는 무얼 바란걸까. 이 책에서, 재미를 원했다면, 내 욕심의 공감을 원했다면, 그리고 그것의 대리만족을 원했다면 나는 충분히 그것을 충족했다. 그러나 뒤에 남은 이 공허함은 무엇일까. 뭔가 속았다는 느낌? 마지막 저 문장이 작가가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처음 이 소설은, 현실을 가장한 비현실로 시작한다. 시작하는 작가의 말에서 깜박 속아 넘어간다. 그렇게 소설의 현실로 들어간다. 재미있는 건 다루고 있는 부동산 문제나 내 집 마련이라는 사항들은 지금 한국의 현실적 문제이지만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는 유별나게 판타지 같다는 것이다. 수빈에서부터 그렉, 지니는 말할 것 없고 미션을 주는 정사장까지 캐릭터가 분명하지만 그만큼 극단적이다. 아마 영화로 만들어 진다면 딱 맞을 소설 같다는 느낌이다. 물론, 그런 재미있는 캐릭터들과 빠른 전개와 재미들, 그리고 은근한 감동과 희망의 메시지까지. 소설은 순식간에 읽힐 정도로 재미있게 버무려져 있다. 영화화 한다면 각색할 것도 없이 그대로 해도 될 정도다. 그러나 이 허전함은 무엇일까. 결국 소설 속 인물들은 해피엔딩이 되었고 나는 그 해피엔딩에 같이 행복해하기보단 그래 소설 속 이야기니까. 라는 생각만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윤영 작가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앞의 작품은 단편집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사회적인 문제와 소설을 재미있게 섞어서 쓰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는 그때도 그녀의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뭔가 깊숙한 것을 찌르지 못한 느낌이었다. 지금의 책도 물론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려 노력했다. 그런데 마무리에 다가오자 나는 이야기가 점점 더 판타지로 빠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현실도 그것처럼 늘 해피엔딩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이런 고단함도 해피엔딩으로 끝날 거라고 믿고 싶다. 이 소설을 보고 행복한여운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허구 속에서 일어난 결말이라는 것을 안다. 허구임을 알기에 잠깐의 행복한 여운만 가질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작가는 과도하게 행복을 노래했을까 나는 책을 덮고 나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씁쓸한 현실을 더 자각하게 되었다. 작가는 희망을 믿는 다고 하지만 나는 그 극적인 해피엔딩에 현실의 쓴 맛이 더 쓰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