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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어글리
콘스턴스 브리스코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 책장은 빠르게 넘어간다. 옆 자리 사람이 내리고 우르르 아이들이 몰려온다. 세 명의 아이들이 내 옆에 서로 자리를 다투며 앉았다. 아이들의 엄마는 맞은편에서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외친다. 아이들은 그 말이 들리지 않는지 좁은 자리에서 몸을 비틀며 창밖을 내다본다. 아이들의 더러운 운동화가 나의 옷에 닿는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옷을 털어낸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세 명의 아이들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욕설을 퍼붓고 발길질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두 눈을 감고 읽고 있던 책을 잠시 덮어 둔다. 아이들의 엄마는 말로만 가만히 있으라고 다그친다. 나는 아이들이 싫다.

한때 학대받는 아이들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다. 온갖 종류의 폭력에 휘둘렸던 아이들의 에세이들, 알콜중독에 자신의 가족들을 학대했던 가장의 에세이들, 그리고 상처 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인물들이 나오는 다양한 픽션들, 어느 순간 나에 대해 깊이 궁금해지면서 그러한 책들을 읽었다. 달라진 건 그러한 학대의 이야기에서 나아가 이제는 그 치유에 관한 이야기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이 책이 지금은 성공한 사람의 고통스런 어린 시절 이야기라고 했을 때 나는 어떻게 그것을 극복해 나갔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러나 이 책에는 대부분 잔인한 폭력에 관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픽션이길 바라는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최악의 악역을 맡고 있었다. 가공의 인물보다 지독했다. 역시 삶은 픽션보다 끔찍하고 이해 불가능한 일들로 가득하다. 소개하는 글에 있듯이 이 책을 읽는 건 분노를 참는 훈련을 받는 것 같다. 조금만 더 읽으면 행복한 이야기가 나오겠지. 그래도 희망에 찬 이야기가 나오겠지. 그러면서 어머니의 끝없는 학대의 역사를 읽어 내려간다. 그러나 이 책 한 가득 담긴 건 그야말로 학대의 역사다. 온갖 종류와 방법의 학대들, 그리고 그걸 극복해내고 대처해나가는 저자의 눈물어린 극복, 이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웠던 건 저자가 어렸을 적 에피소드까지 너무나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린 시절의 기억이기에 완벽하게 정확한 재현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일기장까지 결국에 어머니에게 뺏겼다면 더욱 정확한 사실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어린 저자가 느꼈던 그만큼의 폭력일 것이다. 저자에게는 그것이 진실일 것이고, 그렇게 현재까지 몸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해 듯 나는 아이들을 싫어한다. 당연히 아이들은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사랑받고 사랑 주는 법을 잘 알지 못한다면? 그러한 것들은 어렸을 적부터 아니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몸으로 습득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것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실행하려면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쩌면 나도 그 중 하나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책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다른 이들의 폭력의 역사를 보며 극복해내가는 과정을 보며, 이제는 점점 질려가는 이러한 반복된 학대의 패턴들을 보아가며. 내가 해서는 안 될 것들과 가지지 말아야 할 마음가짐들을 되짚어 보게 된다.

역자의 말에서 나왔듯 원서에서는 이 책에 대해 저자의 어머니가 제기한 비방죄 소송 경과가 부록으로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 부록도 함께 실렸더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책 자체에서도 모든 것을 극복한 저자의 모습이 보이지만 그 긴 폭력에 비해 그 희망의 메시지는 너무나 작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신을 처참하게 짓밟았던 어머니에게서 드디어 승리를 얻어내는 순간이 더욱 많았다면 내 마음이 더 편안해졌을지도 모른다.

가끔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부모님이기에, 아니 가족이 아니라 그 누구라해도 결국엔 용서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용서해야 자신이 비로소 강해지고 그것을 극복해나갈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어렸을 적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아무리 어머니라 할 지라도(특히 끝까지 용서를 구하지 않는 저자의 어머니같은 사람은 더더욱) 복구될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에게는 조금이라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라고 말하는 자체가 또 다른 상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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