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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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게 쉽지 않다. [이 한 문장을 쓰고 `게-것이`가 눈에 띈다. 저자는 `적의`를 보이는 `것들` 즉, `적` `의` `것` `들`은 습관적으로 쓰기 쉬우니 가급적(벌써 `적`을 두 번이나 썼다) 줄여 써야 한다고 했다] 

문장을 쓴 다음 무언가 걸리는 기분이 들 때면 이 책을 뒤적인다. (문제는 찾으려 해도 찾기가 쉽지 않다)

이 책에 적힌 좋지 않은 예를 너무 태연히 쓰고 있었다. 아무 의식 없이. 앞으로 잘 쓰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저 '무언가 걸리는 기분이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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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6-06-29 05: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문장 작법(글쓰기) 책들 대부분이 “적/의/것/들”을 되도록이면 쓰지 말라고 하던데요. 저는 이게 우습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 책들이 오히려 저런 습관적인 주장을 습관적으로 한다는 느낌입니다. 대체 그 근거가 뭐라는 것인지요? 근거가 설득력 있고 타당하다면 일부 받아들여서 참고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판단컨대 그 근거가 불분명하거나 매우 빈약해 보입니다.

저는 솔까 “적/의/것/들”을 의도적으로 즐겨 쓰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의 ”가 한 구절에서 서너 네댓 번 반복되는 명사구를 의도적으로 쓰기까지 합니다. 문법적/논리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축약 표현을 가능케 하기 때문입니다. 영미권 유명 작가/철학자들 영어 문장에도 “~of”가 서너 네댓 번 반복되는 명사구가 많이 나옵니다. 이때 이걸 “~의 ”가 서너 네댓 번 반복되는 거의 동일한 형식으로 번역해도 괜찮습니다. 이른바 ‘직역투/번역투’라고 비판받는 사례 말입니다. 물론 좀 더 우리말답고 좀 더 가독성 높은 번역문이 가능하다면 “~의 ” 중복 문장을 고집할 필요는 없겠지요. 하지만 “~의 ” 중복 문장이 가독성에 별다른 장애가 되지 않고, 오히려 축약 표현을 가능케 한다면 얼마든지 반복 채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솔까말 “적/의/것/들”은 한국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성분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적/의/것/들”의 쓰임새와 기능은 아주 풍부하고 다양합니다. 해서 이것들을 쓰지 않고는 우리말 문장을 자연스럽게 쓰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해서 문장을 적법하고 매끄럽게 쓸 수만 있다면 “적/의/것/들”은 얼마든지 반복 사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실상이 이러한데, 습관적 주장을 철저한 분석과 타당한 근거 없이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글쓰기 책들한테 무비판적으로 동의하는 건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글쓰기 책들을 폄하하는 게 아니라 그 책들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선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boooo 2016-06-29 09:03   좋아요 0 | URL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

cyrus 2016-06-29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소한 문법을 잘 쓰려고 생각을 많이 하면, 문장 하나 제대로 쓰기 힘듭니다. ^^;;

boooo 2016-07-08 22:2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쓸 때마다 신경 쓰이죠 ^^
 

Christiaan Huygens(1629~95)

네덜란드어에서 'g'라는 철자는 우리말로 'ㅎ'소리에 가깝다. 따라서 굳이 따지자면 화가 Van Gogh는 '반 고흐'보다는 '판 호흐'가, 역사학자 Huizinga는 '호이징가'보다는 '호이징하' 또는 '휘이징하'가, 그리고 화가 Bruegel은 '브뢰겔'보다는 '브뢰헐'이, 축구팀 감독 Guus Hiddink는 '거스 히딩크'가 아닌 '휘스 히딩크'가 더 옮다. 물론 이미 굳어진 말을 다시 고쳐 읽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몇 가지 네덜란드어의 번역에서는 가급적 네덜란드 발음을 따라 옮기려 하였다. 그래서 Huygens는 '호이겐스'가 아니고 '호이언스'로, 제5장에 나오는 벨기에인 Keverberg는 '케버버흐'로, 케틀레가 태어난 벨기에의 유서 깊은 도시의 이름 Ghent는 '헨트'로 옮겼다. [통계학의 역사, 한길사]


* 위키백과에서는 크리스티안 하위헌스로 표기한다.



우리나라에 외래어 표기법이 있으나, 원어 발음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에 외래어 표기법과 다르더라도 원어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기를 좋아하는 저자도 있다. <온도계의 철학>과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를 쓴 장하석 교수는 과학자 이름과 지명을 다음과 같이 표기한다.


Bentham 벤땀 (제러미 벤담)

Cavendish 캐븐디쉬 (헨리 캐번디시)

Dalton 돌튼 (돌턴)

De Luc 들룩 (데루크)

Eddington 에딩튼 (에딩턴)

Lavoisier 라봐지에 (라부아지에)

Medawar 메다와 (메다워)

Neurath 노이랏 (노이라트)

Newton 뉴튼 (뉴턴)

Norfolk 노폭 (노퍽)

Schrodinger 슈뢰딩어 (슈뢰딩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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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16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호이겐스`는 `하위헌스`, `헨트`는 `겐트`로 씁니다. 그래도 저는 호이겐스가 익숙합니다. ^^
 
과학, 도덕을 말하다 - 한국 스켑틱 Skeptic 2016 Vol.6 스켑틱 SKEPTIC 6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 / 바다출판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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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의학 검사를 하다 예상치 못한 질병을 발견하는 일이 있다. 이를 우연종incidentaloma이라 한다. 이 경우 보통 검사를 더 받고, 대부분 별 문제 아닌 것으로 나온다. 어쩌면 병이 있다는 걸 모르는 편이 더 나았을 지 모른다. 


● 우연종 그 자체가 해롭지 않더라도 그에 대한 진단 과정은 해로울 수 있다.


● 현대 영상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일은 더 빈번해졌다. 발견되는 우연종이 심각한 질병인 경우는 1퍼센트 이하다. 그 외 나머지 경우들은 환자에게 불필요하고 떄로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 러블은 누구나 영상사진을 찍어보면 비정상적인 소견이 두세 개씩은 있다고 말한다. "나는 정상인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만약 모두가 비정상 소견을 갖고 있다면 우연종은 '정상' 소견이지 않을까? 우연종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 의사는 딜레마에 빠진다. 방사선 전문의가 "주요 소견은 아니지만 악성종양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진단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통계적으로는 시간을 두고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 가장 좋다. 


● 하지만 의사와 환자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의사는 환자가 죽을 경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비난받을까 걱정한다. 반면 환자는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가지고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무조건 불필요한 치료를 시작하는 것보다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연구 결과를 안다고 하더라도 불확실성을 안고 살기는 힘들다. 통계를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기는 힘든 것이다.


● 대장암, 자궁암, 폐암을 제외하면 다른 암들은 초기에 진단을 받아도 사망률이 감소하지 않는다. 유방 촬영술은 유방암 환자의 수는 늘렸지만 사망률을 낮추지는 못했다.


● 나는 의사가 그저 경과를 보기 위해 CT 검사를 하자고 할 때는 검사를 거부한다.


● 우연종 치료는 득보다 실이 많다... 불확실성을 견디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스켑틱 VOL.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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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ology 2016-06-16 06: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1년 뒤에 다시 단층촬영을 했는데 그냥 ˝사진이 그래 보였던˝ 경우 였어요. 오진이었다는 판단을 기다리는 1년동안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고 다짐했지만 며칠만에 원래대로 돌아가버리고 말아서, 안타까웠습니다.

boooo 2016-06-16 18:26   좋아요 1 | URL
저도 그런 적이 있어요. 폐에 이상한 게 보인다고 해 폐CT 찍었는데 예전에 난 상처라 하더군요. 이래 저래 비용 들고 신경 쓰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1987년 여름, 어떤 사람이 별생각 없이 녹음한 그 노래들을 듣고 '진짜' 음반을 내자고 했습니다.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인가 했는데 그 사람은 진지했습니다. 그가 바로 '산울림'의 김창완이었습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형이 안목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음반을 내기로 하고 건반 치는 후배도 데려오고, 기타 치는 친구, 드럼 치는 친구들 데려오고 그렇게 하다 보니 원래 4명인 멤버가 7명이 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음반이 <동물원> 1집입니다.


막상 판이 나오자 김창완 형은 "이걸 누가 사냐?"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걸 왜 안 사요." 자신감 있게 말했지만, 득달가은 반응이 없자 왜 잘 안 팔리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결국 듣는 사람보다 우리만 좋았다고 결론을 내리고는 아무 기대 없이 두 번 공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음반이 잘 팔리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일이 바빠졌습니다.


김광석, <미처 다 하지 못한>,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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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6-06-03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뮤지컬 `그날들`을 갔었어요. 인터미션때 객석 중앙에 김광석님의 사진과 흰국화꽃이 놓여있는것을 봤어요..
그때부터 어찌나 슬프고 눈물이 나던지..

그가 준 음악에 감사하며..

boooo 2016-06-14 22:36   좋아요 0 | URL
김광석 공연을 직접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음악을 참 좋아하고, 그가 없다는 게 참 아쉽고, 그렇습니다.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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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를 반 정도 읽었다. (아마 2014년부터 읽었으리라)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며 2년에 걸쳐 반을 읽었다. 한강 작가가 쓴 작품을 읽은 거라곤 그게 전부다. 채식주의자는 알지도 못했다. 맨부커상을 받고서야 알았다. 2004년과 2005년에 발표된 연작 단편 3편을 엮은 사실도 책을 받고서야 알았다.

(아, '몽고반점'이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란 건 알았지만, 그게 채식주의자 연작 단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몰랐다.)


첫 편을 읽었을 때 든 생각은 음..

두번째 편을 읽었을 때 든 생각은 괴기하다.

세번째 편을 읽었을 땐 아, 정말 대단하다.


이런 작품을 여태껏 모르고 있다니. 나도 참.

한강 다음 작품을 골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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