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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체 (반양장) -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사계절 1318 문고 64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0년 8월
평점 :
달력도 한장 남아 있는 2017년도... 그동안 뭐했지? 심란한 마음에 울적하다.가볍고,재미있는 소설책이나 읽어봐야 겠다 싶어 일전의 친구 알라디너의 리뷰를 통해 알게된 박지리 작가의 소설 하나를 골랐다.
이 책의 저자인 소설가 박지리에 대한 출판사의 소개를 보면, "문학을 배워 본 적 없는 이 젊은 작가는, 2010년 『합체』로 제 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한국 문단에 갑작스럽게 등장했다. 진지한 문제 의식, 비교 대상을 찾을 수 없는 독보적인 작법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동시대 작가와 독자,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비롯해 『양춘단 대학 탐방기』 『맨홀』 『세븐틴 세븐틴』(공저) 같은 작품을 남겼다. 2016년 9월 향년 3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되어 있다.
한참 왕성하게 창작을 하여야 할 나이에 그녀는 무슨 이유로 이 세상을 그리 일찍 떠났을까? 안타깝다. 더 우울해 질려고 한다. 빨리 소설에나 몰입해야지... 재밌고, 경쾌한 학원 명랑, 모험소설이다. 술술 잘 읽힌다. 그러나 통통튀는 학창시절의 대화와 어이없는 상황전개속에는 슬픔이 숨어있다.
작가는 조세희의 '난쏘공'을 차용("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쟁이였다.")하여 '오래전, 한 난쟁이 아버지가 하늘로 작은 공을 쏘아 올렸다. 그 공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으로 이 소설의 첫머리를 열고, 공을 굴리며 관객을 웃기는 예능인 ‘난쟁이’ 아버지가 후진하던 트럭에 치여 죽는 장면까지 이 소설의 각 장은 "아버지는 난쟁이였다."로 시작한다. 그렇다.무슨 천형의 문둥병 같은 '작은 키'는 일란성 쌍둥이인 오합,오체 두 형제에게 가장 큰 콤플렉스다.그러니 '키 크는 것'이 그들의 최고의 목표일 수 밖에 없다.
어느 날, 체는 동네 약수터에서 뱀독을 빼주며 알게 된, 자칭 ‘계도사’한테 키 크는 ‘비기’를 전수받고, 여름방학 동안 합과 함께 짐을 꾸려 계룡산으로 수련을 떠난다. 33일 동안 ‘형제동굴’에서 수련을 쌓아가기로 한 합과 체는 24일째 되는 날 라디오에서 '계도사'가 치매에 걸린 노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집에 돌아온다. 다소 허무맹랑한 소설의 결말은 예상대로 난쟁이 아버지가 하늘로 쏘아올린 작은 공이 놀라운 마술을 부리는 해피엔딩일 수 밖에 없고, '흙수저 삶'에 대한 위안이 될테지만, 소설가 박지리가 진짜 이 세상에 드러내고 싶었던 인상적인 말들과 소설창작의
고통에 대해 토로하는 말이 눈에 띄어 적어본다.
"체 게바라는 혁명 그 자체입니다. 이 세상은 아직도 부조리투성이예요. 힘 있는자가 약한자를 착취하고,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미 제국주의가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 아프리카를 좀먹고 있습니다. 다 뒤집어야 합니다. 형제들, 혁명을 해야 합니다. 지금의 현실에 이대로 쓰러져서는 안됩니다.체는 아직도 우리들 가슴속에 살아 있습니다."(46쪽)
""역사에 남는 혁명은 주로 정치와 관련된 것이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환경을 위해 분리 수거에 앞장서는 것도 혁명이고, 고생하시는 부모님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혁명이고, 친구와 싸운 후 먼저 사과를 하는 것도 혁명입니다.저는 꿈을 가진 사람이 꿈을 이루기위해 노력하는 게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혁명은 빨간 머리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붉은 피가 만들어지는 바로 여기,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선생은 주먹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툭툭, 쳤다."(50쪽)
" 비록 니가 그 개미 한 마리를 당장 죽일 수는 있다고 하나, 개미세계 전체를 무너뜨릴 수는 없지 않느냐. 오히려 이 개미의 죽음이 전해지고 전해지면 개미들은 더 강한 방어 체계를 만들 것이고 더 힘을 기를 것이다.멀리 보면 그렇게 해서 개미들은 진화하는 것이 아니겠느냐."(95쪽)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지만 정작 끝이 보이지 않는 작업은 재미보다는 답답함을 더 많이 가져왔고, 잠깐의 성취감 뒤에는 어김없이 긴 좌절감이 따라다녔다. 그래서 책이 나오면 마냥 홀가분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막상 일을 다 끝내고 나니 시원한 마음 옆에 서운한 마음이 나란히 서 있다. 꼭 졸업을 하는 것 같다."(작가의 말, 2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