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박종채가 쓴 <나의 아버지 박지원>을 읽고 부모님의 이야기를 나도 써보고 싶었다. 박지원처럼 역사에 남을 분들은 아니지만 내 개인의 역사에는 너무나 중요하고 소중한 분들이기에. 그럼에도 박지원과 박종채에게 어쩐지 기가 죽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결이 전혀 다른 책임에도 이 그림책을 읽고 그 기억이 떠오른 건 엉뚱한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삶을 돌아보면 그 시간에 소소하지만 깊은 흔적을 남긴 사람은 늘 잊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풍부하면서도 친근한 그림과 직접 쓴 글자들이 그래서 더 아련하게 다가온다.처음 읽고는 할머니가 참 낭만적이다 싶었는데 아이와 같이 읽으니 사계절에 따라 민들레씨를 불고 과일을 나눠먹고 낙엽을 줍고 직접 빚은 만두로 떡국을 끓여 먹는 장면을 모두 즐거워한다. 작가에게 따스한 기억으로 남은 일들을 어린 딸도 모두 좋아하는 것이라는 게 떠올랐다. 일상에 담긴 소박한 사랑, 그것이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풍요룹게 해 주는지 다시금 되새긴다.사실 나는 할머니와 애틋한 기억은 없어 이 책을 보고 엄마가 떠올랐다. 어느새 민들레 씨처럼 머리 하얀 할머니가 된 소박하지만 단단하고 따스한 우리 엄마. 이 책을 읽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기억은 분명 소중하고 따뜻한 것이리라. 그 사람의 이름을 떠올려 보는 시간. 마음이 메마르는 것 같은 피곤한 시대, 잠시 쉼표를 찍으며 마음을 충전하기 좋은 책이다.
때가 때인지라 마음이 어지럽고 뒤숭숭한 요즘.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었다. 요즘 무지개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는 빨주노초파남보 책의 글자와 그림에 반응하며 즐거워했다. 그 모습을 보니 무럭무럭 자라는 게 고맙다가 문득 아이의 미래에는 어떤 세상이 될까 두렵기도 했다. 그러다 책의 한 페이지, 색색으로 빛나던 세상에 먹구름이 끼어 이윽고 비가 내리는 장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뒤이어 오는 맑에 개인 하늘, 거기에 걸려 있는 고운 빛깔 무지개. 갑자기 울컥하여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여전히 알 수 없어 무서운 세상, 하지만 비가 지나면 늘 찾아오는 파란 하늘.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는 걸 늘 기억하겠다고 생각하며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아직 어린 딸은 책의 글자가 색색으로 다른 게 참 좋다며 까르르 웃는다. 숨어 있는 재미가 곳곳에 자리한 예쁘고도 말간 그림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