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오서 지음 / 씨큐브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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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봄 햇살 같은 소설이다.
책을 펼치면 표지에서 느껴졌던 따스함이 그대로 이야기 속으로 이어진다.

기차 안에서 스쳐 지나가는 풍경처럼,
각 인물의 삶도 잠시 교차하고 흘러가지만
그 짧은 순간들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는다.

삼랑진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지역명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는 시간”에 대한 은유처럼 다가온다.
일상에 치여 미뤄두었던 감정과 기억들이
조용히 얼굴을 들이밀고 말을 걸어오는 순간—
그 따뜻함이 이 책의 매력이다.

크게 요란하지 않지만
읽고 나면 마음 한켠이 환하게 밝아지는 소설.
봄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조용히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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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들
이동원 지음 / 라곰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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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들』 — 이동원

프롤로그부터 숨이 턱 막힌다.
잔혹하다는 말보다 차갑다는 표현이 더 맞는,
인간의 얼굴 뒤에 감춰진 폭력과 균열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가제본이라는 생생한 질감 속에서 읽는 『얼굴들』은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감정을 그대로 품고 있다.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잔혹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잔혹함이 얼마나 일상과 맞닿아 있는지
작가는 피하지 않고 끝까지 파고든다.

잔인함이 목적이 아니라,
그 잔인함을 만든 사람의 내면을 해부하려는 시선.
이 점이 이 소설을 더욱 섬뜩하게 만든다.

한 사람의 얼굴에는 수많은 감정과 욕망, 결핍이 숨어 있고
그 얼굴들이 모일 때 비로소 드러나는 거대한 진실—
이 책은 그 지점을 날카롭게 비춘다.

읽는 동안 불편함이 따라붙지만
그 불편함이 바로 이 책의 힘이다.
진짜 인간을 마주하게 만드는,
읽고 나면 오래 마음에 남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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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완전 범죄
호조 기에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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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 어울리지 않는 소녀에게』 · 호조 기에

호조 기에는 이번 작품에서 특유의 서늘한 감정선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처음 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유령과 소녀가 나누는 긴장감 있는 분위기가 독자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림자처럼 스며드는 공포, 이유를 알 수 없는 기묘한 기류,
그리고 “완전범죄”라는 단어와 결코 어울리지 않는 한 소녀의 존재감이 대비되며
이 소설만의 독특한 공기를 만들어낸다.

이야기의 전개는 빠르지 않지만,
대신 한 컷 한 컷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심리적 압박감이 깊게 파고든다.
특히 유령이 단순한 공포 요소가 아니라
소녀의 감정, 상처, 죄의식을 둘러싼 상징으로 자리하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서늘함이 축적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범죄'보다 인물의 내면에 집중하는 방식이 탁월하다.
사건을 해결하거나 반전을 쫓기보다
그 인물이 왜 그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어떤 고립과 침묵을 안고 살아왔는지를 따라가게 만든다.
그래서 ‘완전범죄’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독자는 점점 소녀라는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가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장르적 재미도 충분하다.
긴장감은 서늘하게 유지되면서도
이야기 자체는 지나치게 어둡지 않고
호조 기에 특유의 “일상 속의 기묘함”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읽는 재미가 쌀알처럼 톡톡 튀어난다.

색다른 소재, 묘하게 중독되는 서늘함,
그리고 독특한 캐릭터의 조합.
그래서 이 책은
“무섭기만 한 소설”이 아니라
“이 분위기, 계속 읽고 싶다”는 마음을 남긴다.

장르 소설을 좋아한다면—
특히 잔잔한 공포와 미스터리가 어우러진 작품을 좋아한다면
충분히 매력을 느낄 만한 장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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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나았을까?
모리오카 마사히로 지음, 이원천 옮김 / 사계절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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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나았을까?』 — 모리오카 마사히로

모리오카 마사히로는 이 책에서 존재의 가장 깊고 아픈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
‘나는 태어나지 않는 게 나았을까?’
누구나 한 번쯤 스치지만, 쉽게 입 밖에 꺼내지 못하는 그 질문을 책은 차분하면서도 단단하게 붙잡는다.

저자는 생명철학의 관점에서
태어남을 축복으로만 보지 않는 사람들,
심한 고통 속에서 ‘존재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던 이들의 마음을
가볍게 판단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만약 내가 마음속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동안 행복했던 시간도 함께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되는 마음”
이라는 현실적인 심리를 솔직하게 짚어낸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그 질문을 회피하거나 억지로 긍정으로 덮지 않는다는 점이다.
‘태어난 것’도 긍정할 수 없고,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떨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조심스럽게 한 걸음 더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어떻게든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다’는 암흑에서 빠져나가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광명을 향해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저자가 건네는 이 메시지는
억지 희망이 아니라,
존재의 가장 어두운 질문을 통과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솔한 제안처럼 다가온다.

짧지만 깊고, 철학적이지만 따뜻한 문장들 속에서
독자는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얻게 된다.

무거운 질문을 다루지만, 그 끝에서 조용한 빛을 보여주는 책.
사유의 깊이를 더하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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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해도 좋은 - 빛으로 헤아린 하루의 풍경
유재은 지음 / 책과나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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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해도 좋은』 — 유재은

유재은의 『무용해도 좋은』은
‘빛’이라는 언어로 하루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에세이다.
소란한 하루 한복판에서 놓쳐버린 감정들을
빛결에 비춰 조용히 건네는 문장들이 깊고 차분하다.

책을 읽는 동안, 마치 햇살이 먼지를 통과하며
방 안의 공기를 금빛으로 물들이는 순간처럼
평범한 감정들이 갑자기 아름답게 보였다.
서툴고 불완전한 마음들이
빛을 만나 하나씩 제 모습을 드러내는 느낌.

어쩌면 무용해 보이는 것들이
우리를 끝까지 버티게 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작가는 따스하게 보여준다.

빛, 향기, 만남, 말, 기억.
이 모든 것들이 다 쓸모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그 안에는 누군가의 하루를 살게 하는 이유가 들어 있다.

읽고 나면 마음 한쪽에 잔잔한 온기가 남는다.
쓸모보다 존재의 가치를 더 크게 바라보게 하는 책.
빛이 머문 자리가 마음에도 남아 오래도록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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