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최근에 읽었던 소설중 가장 웃기면서 슬프면서 재밌었다.
처음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때, 뭔가 뻔한 내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령화가족> 이란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요즘에는 평균 수명도 늘어났으니 나이 많은 부모님과 나이 든 자식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일들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뭐, 큰 맥락에서 보자면 내 예상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인생에 실패한 삼남매가 갈 곳 없어 결국 찾아온 곳이 혼자 화장품 팔아 살아가는 70대 엄마의 집이다. 기묘하게 얽힌 삼남매. 둘은 아빠가 같고 엄마가 다르고 또 다른 둘은 엄마가 같고 아버지가 다르다.
50대 큰 아들은 깡패짓이나 하다가 교도소를 들락거리고 둘째 아들은 좋은 대학 나와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지만 데뷔작을 말아먹고 그 후 영화 한편 찍지 못한 채 빌빌거리다 엄마 집으로 기어들어온다. 바람 피우다 두번 이혼 당하고 딸래미와 함께 엄마의 집에 들어앉은 막내딸도 있다.
작가가 주인공의 입을 통해 말했듯이 정말 막장도 그런 막장이 없다.
온갖 막장의 구성요소들을 다 끌어들인 느낌이 들 정도로 3류 저질들의 집합소 같다.
가족의 평균 나이가 40대 이상이니 정말 제목처럼 <고령화가족>에 딱 맞는 구성이지 않은가.

남부끄러울 법도 한데 굴러들어온 다 큰 자식들에게 엄마는 잔소리는 커녕 세상에 나가 싸우려면 밥을 잘 먹어야한다며 매일 고기를 먹인다. 숨겨졌던 엄마의 과거를 알아버렸을 때는 일말의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엄마도 여자이고 사람이었으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나는 동남아로 튀고 하나는 에로영화 감독의 길로 들어서고 또 하나는 새로운 사랑을 만나 집을 떠나간다. 그리고 엄마도 세상을 떠났다. 

이제 그들이 다시 한번 세상에 맞서 고개를 떨구더라도 보듬어 줄 존재는 없어졌지만 삼남매는 엄마를 통해 그들에게도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터이니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읽으면서 키득키득 재밌기도 했고 너무 오버스러운 설정은 아닌가 하는 우려와 함께 정말 막장의 막장을 보여주는 가족이구나 싶기도 했다. 또한 앞으로 우리 세대의 모습이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서글프기도 했지만 그런 걱정은 그때 해도 늦지 않을테지요. 최근에 읽은 작품 중 가장 즐겁게 읽은 작품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다시 가고 싶다, 벨기에!

달콤함이 번지는 곳 벨기에 ㅣ In the Blue 2
백승선 / 쉼 / 2010년 1월

우리나라 경상도 면적만큼의 땅에 천만명의 인구를 갖고 있는 나라, 벨기에.
벨기에는 초콜릿과 맥주, 와플의 나라이다.
난 몰랐는데 스머프와 플란다스의 개, 틴틴의 모험이 만들어진 만화의 나라이기도 하다.
또한 르네 마그리트와 루벤스, 오드리 햅번이 태어난 나라이기도 하고.
유럽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인 EU와 NATO가 있다고 하니 작다고 절대 무시할 수도 없겠다.

도버해협을 건너 제일 먼저 도착했던 곳, 벨기에.
2004년 4월 유럽여행 갔을 때 딱 하루 머물렀던 곳인데, 지금 기억에 남은 것이라곤 하루종일 숙소를 찾아 헤매던 기억 뿐이다.
유명하다던 와플은 때를 놓쳐 먹어보지도 못했고 오줌싸개 동상은 정말 작아서 정말 저게 맞나? 하며 인증샷만을 건졌을 뿐.
브뤼셀은 굉장히 작았던 걸로 기억한다. 하루종일 돌아다녔더니 그게 다였거든.
물론 난 책에 등장하는 안트베르펜이니 브뤼헤니, 겐트같은 작은 소도시에는 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가보지 못했던 작은 소도시들에도 아름다고 멋진 건물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눈도장 찍듯이 여행을 하는 것도 좋지만 한 나라를 이렇게 자세히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더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 브뤼헤에 대한 소개에 영화 <킬러들의 도시>가 브뤼헤를 배경으로 찍었다는 설명이 나와 있어 조만간 볼 예정이다. 보니깐 영어 제목이 <In Bruges>더라고.

읽고 나니 달콤한 초콜릿 향이 물씬 풍겨나오는 듯 제목만치 달콤하고 예쁜 책이었다.
제목때문일까? 책속에 등장하는 몇몇의 사진들은 일부러 그런 것마냥 약간 번진 느낌이었어.
내가 가봤던 빅토르 위고가 극찬했다는 그랑쁠라스니 생 미쉘 성당이니 오줌싸개 동상이니, 사진으로나마 다시 보니 왜이렇게 반가운지.
사진들이 많아 보는 내내 마치 다시 한번 벨기에를 여행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원래 이런 느낌 느끼려고 여행책을 읽는 것 아니겠는가. 

속죄

속죄
미나토 카나에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공기가 좋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초등학생 여자 아이, 에미리가 살해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에미리의 친구이자, 시체의 첫 발견자이기도 한 네 명의 소녀들은 아무도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사건이 발생한지 3년 후, 에미리의 엄마인 아사코는 네 명의 아이들을 불러 놓고 범인을 찾던지, 너희들 나름대로의 속죄를 하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이용해서라도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이 책에는 네 명의 소녀, 사에, 마키, 유카, 아키코가 아사코에게 쓴 속죄의 편지가 담겨 있다.
그 사건이 발생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이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왔는지가.
다 잊고 잘 살아갈 것이라던 아사코의 생각과는 달리 그 아이들의 마음속엔 깊은 두려움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네 명의 아이들은 범인을 밝혀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었고 그 사건과 관련해 자신들이 속죄할 방법을 찾던 중 나름대로 속죄라 생각하는 일들을 행한 후(살인) 그것으로 인해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고백한다.
또한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은 어린 소녀들에게 저주의 말을 퍼부었던 아사코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된 일이었음을 아사코 역시 고백하게 된다. 

<고백>에 이은 두번째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이었던 <속죄>. 진행 방식이 고백과 매우 유사했다.
주인공 각자의 이야기들이 나오고 마지막엔 중심에 서 있는 자의 이야기가 나오며 흩어져 있던 이야기 구조가 꿰맞춰진다.
책을 읽는 동안의 주인공들의 심리와 주변의 상황들에 대한 탁월한 묘사가 뛰어났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역시 <고백>처럼 흡입력이 굉장했다.

다시 가슴이 뜨거워지다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 열정 용기 사랑을 채우고 돌아온 손미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손미나, 기다리던 그녀의 세번째 책이다.
사실 처음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했는데 이제서야 다 읽었다.
잠들기 전에 틈틈히 읽다가 어제는 새벽 3시까지, 오늘 점심시간에 나머지를 모두 읽어 버렸다.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읽고 느꼈던 그만큼은 아니지만 내게 그녀의 글은 늘 기대만큼의 만족감을 주었다.

탱고, 에비타, 축구, 이과수 폭포.
아르헨티나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그곳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지내며 현지인들과 함께 호흡하고 부대끼며 지낸 시간들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녀의 이야기 중심에는 늘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있어 좋다.
단순한 여행서적이라기 보다 그곳에서 만나 친구가 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들이.
책을 읽으면서 왜 이렇게 사진이 적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유가 궁금하시다면 책을 읽어보시길~
누군가가 추천사에 썼듯이 그녀에게서는 따스함과 친밀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처음 본 누구도 그녀와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도 여행을 좋아하고 많은 곳을 다녀봤지만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이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는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그곳이 특히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곳이라면, 특히 여자 혼자의 몸이라면 더욱.
그런면에서 그녀에겐 용기와 함께 어느 정도의 운도 함께 했던 것 같다.

얼마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관한 책을 읽었기에 아르헨티나라는 나라가 내겐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남극과 가까운 세계의 끝. 그곳에서 멀지 않은 파타고니아의 빙하. 사진만으로 이미 내겐 감동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다섯 명의 가우초 청년들과의 잊지 못할 피크닉.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그녀가 몹시 부러웠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후 기억에 남는 건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행복한 추억이 아닐까.
앞으로도 쭈욱~그녀의 여행 이야기들이 계속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아픔을 이겨내고 다시 뜨거워진 가슴으로 행복해지길 빌어본다.

프랭크자파 스트리트

프랭크자파 스트리트 - 행복유발구역
노나카 히이라기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09년 11월

행복유발구역, 프랭크자파 스트리트에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들.
살고 있는 이들이란 사람뿐만 아니라 개와 고양이 새들을 모두 포함한다.
마치 동물농장을 떠올리게 하는 듯- 동물들의 의인화랄까?
7개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챕터의 시작에 등장하는 일러스트는 참 예쁘다.
마지막엔 Love & Recipe가 소개되어 있어 아기자기한 느낌이 든다.

미미와 하루만이 정상적인 인간들의 모습.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개와 고양이 얼룩말과 기린 퍼그 등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이다.
더구나 중간에 등장하는 조니 뎁과 케이트 모스 이야기. 어이없으면서 웃기다.
그 둘 깨진지가 언제인데 -
아, 지금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 작품은 원래 1998년에 출간되었는데 우리나라에 지금에서야 소개되었나보다. 조니 뎁과 케이트 모스가 헤어지기 전에 씌여졌던 모양이네.

제목과 표지의 일러스트만 보고 뭔가 재미를 기대하며 이 책을 주문했지만
사실 읽으면서 내심 실망스러웠다. 너무 가벼운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확실히 웃기는 뭔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여러가지 동물들의 설명을 보면서 조금의 상상력을 유발할 수 있었다는 정도?
왠지 자꾸 책에 대한 비판만 하게 되는 것 같은데,, 사실 기대했던 것과 달라서 오는 실망감이 커서 그런가보다. 

행복은 걸어오지 않아. 그러니까 걸어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