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타 이슬라
하비에르 마리아스 지음, 남진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페인의 국민작가이자 현대문학의 거장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거의 800페이지에 육박하는 벽돌책을 만나보았다.

이 소설은 스파이 소설이라고 칭하지만 스파이 활동 그 자체보다는 스파이가 됨으로써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어떻게 무너져내리는지 그 과정을 너무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정말 신기한 소설이다. 긴장감이 고조되는 큰 사건이라던지 크라이막스 그런 부분이 거의 없이, 주인공의 심리와 독백이 주를 이루는데 읽다보니 어느새 800여 페이지가 거의 끝나간다. 그럼에도 스파이 스릴러라는 표현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영화에서 수없이 만나봤던 멋드러진 스파이의 이미지를 이 책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로 인해 한 개인의 인생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게 되는지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이 책은 주로 부인인 베르타의 입장에서 그녀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나는 오롯이 그 피해를 감내해야만 했던 토마스가 왠지 더 가엽기 그지없다.

 

뛰어난 언어 능력으로 인해 비밀요원의 눈에 띄게 되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파이가 되어야만 했던 토마스.

어린 시절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으로 베르타와 부부가 됐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일을 말할 수 없는 관계로, 짦은 결혼생활 이후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게 되고 결국은 긴 이별을 마주하게 된다.

남편을 너무 사랑했고, 하염없이 남편을 기다려야만 했던 베르타의 그리움과 고독도 마음 아프고, 선택의 여지가 없이 스파이가 되어야만 했던 토마스가 몇십 년이 흐른 후 진실과 마주하게 되지만, 잃어버린 자신의 인생에 대한 보상을 어느 누구에게서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참으로 씁쓸하기만 하다.

 

정말 오랜만에 묵직하면서도 소설이 주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식가의 수첩 - 맛 평론의 원류 언론인 홍승면의 백미백상
홍승면 지음 / 대부등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조 맛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1976년부터 돌아가시기 전인 1983년까지 '주부생활' 에 연재한 글들이 재정비되서 나온 책이다.

책도 책이지만 먼저 저자의 약력에 굉장히 눈길이 갔는데, 한국일보,동아일보의 편집국장,논설위원을 지내신 지성인이셨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칼럼니스트셨다고 한다. 유신시절 언론탄압에 의해 언론계를 그만두시고 그 후 음식에 대한 글들을 쓰셨다고 한다.

 

책의 서두에도 적혀 있듯이, 이 책을 읽다보면 40-50년 전 글이라 어딘가 옛스런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 왠지 이런 느낌이 상당히 좋았다. 투박하고 살짝 촌스런 문장을 마주하게 되는데 감칠맛도 나고, 된장 고추장 냄새를 느낄 수 있는, 진정한 한식에 대한 책이다.

 


 

신선로를 잘 모르는 젊은 주부들에게, 남편을 모르모트로 삼아 실험하는 것이 미안할지라도, 다양한 시도로 트라이해보라고 말하는데, 40-50년 전 젊은 주부들이 신선로를 잘 모를 정도이니, 지금의 젊은 주부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나는 젊은 주부가 아닌데도 신선로라는 단어만 알 정도이니..

 

엄마가 만드시는 빈대떡을 참 좋아하는데, 이 책을 통해 옛날 흉년이 들었을 때 서울에서 부자들이 성문에 빈대떡을 한가득 실어서 난민들에게 던져주었던 유례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저 서울사람들에게는 보잘 것 없었던 이 빈대떡이 해방 후 월남한 이북사람들에 의해 비로소 다양한 재료를 넣어 뜨끈뜨끈하게 먹는 '맛있는' 음식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고 한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지만 빈대떡도 죽을 것 같지 않다는, 노병은 그저 사라질 뿐이라지만 빈대떡은 그저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는 저자의 입담이 참 유쾌하기 그지 없다.

 

이 책에서는 두릅, 쑥, 마, 더덕, 구절판과 신선로, 약밥, 강정, 오이소박이, 화채, 족편, 추탕, 꼬리곰탕, 순대 등 우리의 한식, 잊혀진 한식과 지금도 사랑받는 한식에 대한 유례와 인문학적인 사색을 구수하고 찰진 문장들로 이야기하고 있어, 더할 나위 없이 배부른 독서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식가의 수첩 - 맛 평론의 원류 언론인 홍승면의 백미백상
홍승면 지음 / 대부등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담백한 분위기의, 재미와 깊이가 한가득인 우리의 한식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머니의 유산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송태욱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마도 이 책을 좀 더 젊을 때 읽었다면 느낌이 달랐을 수도 있겠다. 뭐 이런 자식들이 다 있어 하면서 혼자 분개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 부모님이 연로하시고 병석에 오래 계셔서 가족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들을 종종 마주하면서 소설 속 상황이 결코 현실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 !!!!이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을 듯 하다.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듯..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을 듯 죽을 듯 죽지 않는 엄마를 보면서 실망을 하고, 연명치료거부의사를 밝혔음에도 자꾸 뭔가를 시도하려는 의사를 원망스러워하고, 아픈 남편을 머나먼 요양병원에 처박아둔 채 병문안도 뜸하고, 남편은 그렇게 외롭게 떠나보냈으면서 정작 자신이 병들어 자리보전하게 되었을 때에는 딸에게 이제 나한테는 너 밖에 없다는 식으로 큰 부담을 안기는 상황들을 마주하면서 소름마저 돋는다.

 

어머니의 죽음을 시작으로, 왜 두 딸과 어머니는 그토록 애증의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들 가족사가 펼쳐진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후 비로소 주인공이자 둘째딸인 미쓰키는 스스로 독립된 삶을 시작하게 된다. 어머니로부터 해방되고, 바람피는 남편으로부터 해방된다. 중년의 여성이 이렇게 아무 두려움없이 훌훌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여기에 미쓰키는 어머니가 남긴 유산의 큰 도움을 받게 된다.

 

읽는 내내, 큰 딸에 밀려 어릴 때부터 항상 뒷전이었고, 커서는 반대로 엄마의 모든 뒤치닥거리를 도맡아 해야했던 미쓰키의 상황이 참으로 안스럽고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애증의 갈등이 충분히 공감이 간다.

또 별개의 이야기지만, 프랑스 유학 생활을 하는 미쓰키를 통해 그 시절 일본인들의 서양과 유학에 대한 동경, 우상화 등을 마주하면서 몇 십 년 전 우리나라를 보는 느낌이다.

 

굉장히 섬세하게 인간의 심리를 그려내는 한편 그 묘사는 섬뜩하리만치 직설적이고 날카로우면서도 공감이 가서 더 슬펐다.

누구나 늙고, 병들고, 외로울텐데.. 자신의 노년이 어떻게 될지 누가 예측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이그레이션 - 북극제비갈매기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서
샬롯 맥커너히 지음, 윤도일 옮김 / 잔(도서출판)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소개만 보고 에세이인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소설이다. 이런 소재를 다룬 소설 좋아하는데 참 오랜만에 만나본다.

이 책은 기후변화와 생태계 보존을 바탕으로, 새를 연구하는 프레니라는 한 여성이 지구에서 멸망할 위기에 놓인 북극제비갈매기의,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 새들의 이동을 따라 남극으로 향하는 험난한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배를 구하는데 있어서 7명의 선장에게서 거절을 당했고,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사가니호의 선장 에니스를 설득해 7명의 선원들과 함께 드디어 남극 그린란드로 향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뱃사람들이 시시각각으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역경이 리얼하게 묘사되고, 프레니라는 여성의 과거 이야기도 함께 하면서 왜 그녀가 그다지도 북극제비갈매기의 여정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조금씩 드러나게 된다. 그저 새를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과거의 베일이 하나둘씩 벗겨지면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상처입고, 외롭고 끊임없이 떠돌아다녀야 했던 그녀의 삶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선원들의 생명에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그녀가 조금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그럼에도 그녀를 지지하는 선장과 일부 선원들이 대단하다는 생각 또한 들게 된다.

 

북극제비갈매기는 북극에서 남극까지 갔다가 1년 안에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이들의 평균수명 30년 정도를 기준으로 봤을 때, 평생동안 이동한 거리는 지구에서 달까지 세 번 왕복하는 거리와 맞먹고, 이 세상 동물 중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새라고 한다. 그러나 지구에서 동물들이 사라져 가는 원인을 제공하는 인간은 그것도 부족해 이러한 동물의 본능마저 인간의 기준에 맞춰,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장거리 여정을 하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게끔 가둬 두고 적응을 목적으로 먹이마저 식물성으로 대체한다.

 

소설 속에서 벌어진 수많은 동물들이 겪는 현실이 소설 속 이야기만으로 그치지 않을 듯한 두려움이 들 정도로 이 소설은 인간이 외면하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렇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게, 오히려 격동적이고, 때론 감성적으로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다른 어떤 소설보다 시각적 효과가 클 수 밖에 없는 스토리 전개라 영화가 매우 기대된다.

 

 

p.s : 선장 에니스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경찰체포 후 어떻게 됐을지 갑자기 궁금하다...내가 놓친 부분이 혹 있었나..

 

 

 

 

[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