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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인문학 - 모자를 보면 시대가 보인다
고호성 지음 / 주류성 / 2026년 7월
평점 :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
예전에 신발, 헤어스타일 같은 독특한 소재를 다룬 역사 인문학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다양한 사진, 삽화와 함께 내용들도 흥미로워서 꽤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책은 중세부터 현대까지 모자의 역사를 총망라한 내용으로, 인물, 문화, 사회, 정치 등 굉장히 다양한 내용들을 만나볼 수 있고, 무엇보다 매 페이지를 가득 채운 다양한 시대적 모자 사진들이 주는 시각적 재미가 굉장히 크다.
자주 보는 모자들의 명칭도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어서 좋다.
짧은 머리 모양에 맞춘, 종처럼 생긴 모양의 모자 클로슈, 대영제국의 대표적인 모자인 굴뚝모자 탑 햇, 찰리 채플린 영화로 대중화된 영국의 중산모, 디킨스 원작 영화인 < 올리버 트위스트 > 에서 올리버가 줄곧 썼던 아일랜드 모자 플랫 캡, 상남자 카우보이를 위해 만들어진 스텟슨 모자 등등 명칭은 낯설지만 익숙한 모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다.

로열 애스콧은 1711년 앤 여왕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왕실 주관의 영국 사교계의 가장 큰 행사로, 매우 엄격한 드레스 코드가 적용되고 있고, 엘리자베스 2세가 가장 사랑했던 행사였다고 한다.
5일간의 기간 중 셋째 날인 '숙녀의 날'에는 그들의 의상과 특히 모자에 중점을 두고 패션 퀸을 선정하기 때문에, 귀족부인들은 물론이거니와 관련업체들의 모든 관심이 총집중된다고 한다.
이 로열 애스콧의 상징으로 남은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이애나비 같은 영국상류층 여성이 아닌 바로 오드리 헵번으로, 그녀가 연기한 < 마이 페어 레이디 > 의 배경이 로열 애스콧이었는데, 영화 속 그녀의 의상과 모자는 전 세계 패션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셰프들이 쓰는 하얀 모자를 '토크 블랑슈' 라고 하는데 그 모자의 탄생은 비극적 사건을 담고 있다.
다혈질이고 성격 급하고 미식가인 헨리8세는 어느 날 자신의 요리에서 머리카락 한 올이 나왔고 순간 화를 참지 못해 주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만 수석 셰프를 참수하고 만 것이다.
그 사건을 계기로 왕실의 모든 요리사는 반드시 모자를 착용하게 되었는데, 위계질서가 분명한 주방세계에서 수석 셰프의 권위와 카리스마를 점철시키기 위해 초반 이 토크의 길이는 상당했다고 한다. 이후 주방에서 여러가지 불편함과 위험이 발생하면서 점점 짧아지게 됐고...

100여년 전 신사들의 필수품은 모자였지만, 한여름에도 두꺼운 펠트모자를 착용해야 해서 더위에 시달려야 했던 그들에게 구세주처럼 등장한 모자가 있었으니, 바로 밀짚모자인 파나마모자이다.
그러나 정작 이름과는 달리 이 모자는 파나마가 아닌 에콰도르가 원산지인데, 미국에 이 밀짚모자가 알려지게 되면서 서부 노동자들이 파나마 운하를 지날 때는 꼭 이 모자를 착용하게 되었고, 단지 파나마에서 샀을 뿐인데도 파나마모자로 불리게 된 것..
이에 에콰도르정부는 지금까지 170여 년 동안 꾸준히 국제사회에 모자이름을 바로잡기 위해 홍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큰 변화가 없다고 한다.
이 밀짚모자의 수공업 사업에 성공하면서 에콰도르 경제를 이끈 인물의 아들 또한 부친의 사업을 이어받아 성공하게 되는데, 그는 에콰도르의 대통령에까지 당선되고 연임할 정도로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이 모자가 에콰도르 사회에 끼친 엄청난 영향과 비중을 생각하면 정말 이 모자명은 억울할 만도 하다.
이 외에도 르네 마그리트와 중산모, 천경자, 생텍쥐페리 등의 문학과 스포츠와 관련된 다채로운 모자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다.
제목은 다소 딱딱할 수 있는데,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총천연색의 모자들과 멋진 배우와 모델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어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아쉬울 정도이다. 소장가치 백프로 인문학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