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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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투명인간(창비)』 은 2014년 출간된 장편 소설로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반 세기를 거슬러 주인공 만수를 중심으로 그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을 보여준다. “5월 초순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등장한다. 그들 중에는 만에 하나쯤, 그러니까 0.01퍼센트의 확률로 대단히 드물긴 하지만 투명인간도 있다. 나부터 그러니까.(6p)” 투신 자살을 막기 위한 캠페인 메시지를 보며 투명인간은 생각한다. “연약하고 다정하다가 극악무도해지기도 하고 그런 채로 사랑에 빠지는가 하면 나르시시즘과 자기환멸 사이를 널뛰기하면서 바퀴벌레처럼 강인하게 생존을 이어가는 인간, 인간들.(9p)” 그 인간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가 다리 위헤서 우연히 만난 또 다른 투명인간은 김만수다.

소설은 연극적이다. 단편적으로 이어지는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모두 ‘나’로 ‘만석꾼’이라 불리고도 남을 김만수의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지는 가계도 속 인물들은 각자의 사연을 들려준다.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무대 위로 올라 조명 아래 모노드라마를 펼치듯이 풀어내는 목소리가 쌓이면서 점차 사실로써의 삶이 입체적이고도 생생하게 살아난다. 매번 바뀌는 화자를 바로 알아차리게 될 때도 있지만 페이지를 넘기며 유추할 때도 있어 주인공 찾기는 책을 읽어나가는 또 다른 재미다. 어릴 때 입다 작아져버린 옷을 오리고 바느질해 이은 조각이불이 각각의 사연을 간직한 채 전체적으로 압도하듯이 하나의 이야기 조각은 잇대어지고 자리잡아 다른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김만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성향이 다른 부자지간이다. 깊은 산골 개운리까지 들어가게 한 장본인이라 생각해 아들은 아버지에게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인생 망치고 집안 망조 들게 하는 공부나 책 따위와는 담을 쌓았고(29p) 일부러 더 목소리를 높힌다. “나는 매일 황소처럼 일했고 늘어나는 식구를 먹여 살렸다. 그런 일들이 나를 나로 만들었다. 헛된 말과 이루지 못할 계획이 아니라.(30p)” 만수 아버지는 세 딸과 세 아들에게 식구는 분신이고 뿌리고 울타리이며 끝까지 책임져야 할 존재임을 늘 강조한다. 개운리에서의 시간은 가난하고 고달프지만 동화처럼 아름답게 그려진다. 맏형 백수가 만수에게 돈 끼호테의 로시난떼에 비유해 하는 따뜻한 말, 평생의 노래가 된 “클레멘타인”을 배우던 순간, 고드름 선물과 세상 하나밖에 없는 빙수 등 빛이 난다. 특히 훗날 가슴아픈 일을 당한 명희의 목소리라 다시 읽을 때 더 처연하다.

어린 시절의 학창 시절은 모두의 추억을 소환한다. 시대적 배경은 깨알 장치로 등장해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이리 저리 둘러보고 멈춰있게 만든다. 잊고 있던 분위기를 알아채기도, 이건 모르겠네 하는 장면에서는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한다. 형제들이 성장하며 개성도 뚜렷해지고 경험의 폭도 인생의 방향도 달라지지만 죽음과 사고로 지울 수 없는 슬픔을 각인하게 된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 위험과 함정에 빠지기도 하고 공안과 고문이라는 무서운 일들 앞에 인격이 스러지는 일들도 기록된다. 안타까운 선택들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 잘못되기 시작한 첫 순간을 바꿀 수 있다면 달라졌을까 되풀이 생각하게 된다. 속도를 내며 불안하게 일방향 성장하던 나라의 시대적 현주소와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임박한 삶의 문제에 내몰리던 개인의 이야기는 두 개의 매듭처럼 얽힌다.

“우리 할아버지가 젊을 때 빚을 져서는 증조할머니하고 할머니, 아버지 데리고 밤중에 도망쳐가지고 내 고향 개운리 산골짜기로 들어오셨다는구만. 그래서 아버지가 어머니하고 결혼해서 우리 육남매를 낳았지. 우리 할아버지가 빚 때문에 도망치지 않았으면 나도 세상에 없었을 거야. 나는 빚 때문에 태어난 거라고. 어떨 때는 빚도 고마운 거야.(302p)” 선하고 열심이며 언제나 솔선수범하던 만수가 삶을 바라보는 무한 긍정의 태도를 보여주지만 이에 드리워지는 그늘도 무시할 수는 없다.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노력인지 고생인지 희망인지에 턱걸이 한 채 안간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왜 투명인간인가? 해리 포터가 아버지의 유산으로 받은, 세상에 하나 뿐인 투명 망토가 있다면 하고 선망하고 상상할 때의 신비로움과는 다르다. ‘투명 인간’은 도입부 이후 작품 속에서 스치듯 짧은 힌트를 남긴다. 친구 이동해와 “맞다. 인간은 염력으로 피라미드도 세우고 신대륙도 발견했다. 투명인간도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거다.(152p)”, 탈영병 난동 중 시민을 위해 움직였던 전경 김만수를 보며(211p), 김만수의 아내가 태석이에게 힘들어하며 “하지만 태석이는 나를 무시했다. 내가 투명인간이라도 되는 것처럼.(339p)”말할 때 그렇다. 간절함이 끓는점에 도달했을 때, 그렇지 않다면 일반론적인 ‘무시’의 의미일까 유추하는 중 감정이 증폭되는 부분은 만수 부부가 양자로 들인 조카 태석이 장면이다. 가장 예기치 못했던 장면, 감동과 애틋한, 슬프고 마음 아픈 복합적인 감정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 부분을 그렇게 종결을 얼마 안 남기고 맞게 되고 “투명인간 론”을 이후 본격 서술한다.

“갑자기 그게 됐다.(중략) 나는 내 삶의 어느 순간보다 나다웠다.(346p)”, “그게된다, 가끔. 그래서 나는 살 수 있다.(348p)” 소설은 인생의 여러 얼굴, 어느 하나 같을 수 없는 다양한 삶의 모습, 동기와 행동과 그로인한 결과,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우연까지 엮어 파노라마를 펼쳐보인다. 한 가족의 일대기를 따라가며 시 공간의 교집합에서 우리 각자의 추억을, 웃음과 눈물을 발견하게도 된다. 정밀 묘사같은 에피소드의 생생한 재현과 극한 판타지의 결합이 묘하게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투명인간”은 예술로서의 창작물이면서 동시에 유산으로서의 기록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우리들의 이야기, 살아가며 살아내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책 속에서>

-살아 있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아도 서로를 안다.(362p)

-보이지 않는 인간은 스스로를 투명하다고 믿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착각, 맹신, 오해이거나 그저 이야기에 불과하거나, 사람들은 그런 데서라도 희망과 위안을 찾으려 하니까. 신화와 동화, 민담은 그래서 생겨났다. 이룰 수 없는 희망을 이야기로 바꾼 것이다. 이야기는 비록 이루어질 수 없다 해도 달콤한 위로가 되어준다. 그래서 허망한 줄 알면서도 인류는 아직 이야기로부터 젖을 떼지 못했다. (364p)

-지금 같은 순간이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내가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 기쁨이 내 영혼을 가득 채우며 차오른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느낌, 개인의 벽을 넘어 존재가 뒤섞이고 서로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진짜 나다.(3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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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층 나무 집 456 Book 클럽
앤디 그리피스 지음, 테리 덴톤 그림 / 시공주니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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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그리피스의 『13층 나무집(시공주니어/테리 덴톤 그림)』을 읽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 앤디 그리피스의 기념비적인 첫 작품이 우리 나라에서 출간된 2015년 이후, 7년이 지난 이 순간까지 13층씩 높아지는 나무집은 매니아 독자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일단 시리즈의 첫 책 “13층 나무집”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예의일 것이기에 빨갛고 노랗고 초록 가득한 표지부터 만나본다. 면지는 더 근사하다. 성장기에 한 번쯤 꿈꾸는 나무 위의 집을 평범한 상상력으로는 불가능한 환상 경지로가지 완성하고 있다. 어딘가에 있다고 믿어버리고 싶을 만큼, 책을 읽고 나면 그 소망의 실현은 한 뼘 가까워지리라 설레이는 마음으로 독자는 나무집 세계에 입성한다.

앤디와 테리, 두 친구가 사는 나무집 입구는 언뜻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나무사다리 위의 공간은 깨알 글씨와 흑백의 선으로 채워졌음에도 컬러풀한 면지의 화려함보다 매력적이다. 중요한 방과 장치를 설명하다 자기 소개를 하는 장면, “나무 집은 우리가 사는 곳이기도 하지만, 함께 책을 만드는 곳이기도 해. 나는 글을 쓰고 테리는 그림을 그리지.”(23p) 둘이 쓰고 그린 책 더미, 제목을 보니 두 친구가 조금 달라보인다. 출판사 사장인 큰코 씨는 두 친구에게 원고를 독촉한다. 마감은 내일 오후 5시 까지.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최악의 전 직장, 원숭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데 있을 수 없는일, 그렇다면 원고를 완성하는 수 밖에. 급한 중에 맞춤법 지적을 받자 하는 말, “이봐요, 로알드 달 작가 선생! 그렇게 글쓰기에 대해 잘 알면, 당신이 써 보지그래요?”(74p) 유쾌하게 받는다. 사실, 이 책에서 로알드 달이 언뜻 겹쳐보이기도 했다. 특히 “제임스와 슈퍼복숭아”는 제일 먼저 떠올랐다.

사건이 발생하고 재치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하고, 한 장면에 사로잡혀 “남은 평생을 머리에 유리병을 쓰고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94p)등 엉뚱한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간다. 그러나 영리한 두 친구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식은 죽 먹기야, 앤디. 우리는 아무것도 구상할 필요가 없어. 오늘 하루는 정말 흥미진진했잖아.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걸 전부 다 쓰고 그리는 거야. 그럼 우리 책이 만들어지는 거지!”(227p) 그리고“이렇게 여러분이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우리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얘기!”(244p)라며 유쾌하게 끝난다. 아기자기한 소재들이 따로 도드라지지 않고 잘 연결되고, 결론까지 속도감 있게 마무리된다. 글쓰기 테마가 들어가 있다는 점, 시간에 쫓기면서도 성향이 다른 두 친구가 조화를 이루며 문제해결력을 발휘하는 점도 멋지다. 글과 그림의 자유로운 배치, 프레임이나 말주머니를 사용한 만화적 구성도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초등 고학년 독서 동아리 어린이 친구들이 필독도서에 추가하기를 원했던 책이다. 그렇다면 첫 권과 마지막 권을 지정했는데 물론 모두 읽으면 나무랄 데가 없겠고 13층을 읽었으니 자연히 26층에 손이 제일 먼저갈 수도 있겠다. 친구들의 신나는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것 같다.

책 속에서>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거실로 올라갔다. 이제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한눈팔면 안 된다. 변명도 안 된다. 하늘을 나는 고양이도, 거대 바나나 공격도, 왈왈 짖는 멍멍이도, 가짜 인어도, 나쁜 바다 괴물도, 팝콘 세례도, 레모네이드 마구 마시기도, 트림 가스로 가득 찬 풍선껌 풍선도, 마시멜로로 만들어진 트램펄린도 더는 안 된다. 우리가 할 일은 책을 쓰고 그리는 일뿐이다.(1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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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지킴이 레이첼 카슨 - 레이첼 이모와 함께한 밤 바닷가 산책길 지구를 살리는 그림책 10
데버러 와일즈 지음, 대니얼 미야레스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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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버러 와일즈의 『지구지킴이 레이첼 카슨(보물창고/대니얼 미야레스 그림)』은 “지구를 살리는 그림책”시리즈의 열 번째 책이다. 보물창고 출판사의 상상놀이터 시리즈나 I LOVE 그림책 시리즈까지 매력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는데 2016년부터 나오고 있는 생태 환경 테마의 지구를 살리는 그림책은 어린이를 위한 지식 정보 도서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나아가 연령에 상관없이 공존이라는 주제로 질문을 던지며 멈추어 생각하게끔 해준다. “지구 지킴이 레이첼 카슨”은 “레이첼 이모와 함께한 밤 바닷가 산책길”이라는 부제가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지구의 딸, 지구의 목소리라고 불리는 레이첼 카슨, 환경운동가로서 “침묵의 봄”은 기념비적인 저서가 되었으며 해양 생태 과학자이자 작가로서의 재능을 온전히 헌신했던 그녀를 그림책으로 만난다.

표지는 검푸른 밤 풍경 속이지만 노란 등잔 빛이 따뜻하다. 타이틀 표지의 외딴 집 한 채는 숲에 둘러싸인 채 아직 불이 꺼지지 않았다. 천둥치는 밤, 로저는 두렵기도 했지만 이모의 제안에 비옷과 장화, 손전등을 들고 밤 바닷가 산책을 나선다. 보이는 것도 들리는 소리도 이전과는 달라지는 순간, “자, 생물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렴.”하는 이모의 말에 화답하듯 부엉이도 개구리도 귀뚜라미도 자기만의 소리를 낸다. 바닷가에 도착해서 날아가는 바닷새, 도망치는 달랑게들과 놀고, 이제 손전등도 끄고 눈도 감았다 뜬 잠시 후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여러 색깔 보석처럼 반짝이며 바다를 빛나게 하는 것, 바다의 작은 생명체들은 장관을 이룬다. 이 장면은 눈 앞에 깊은 빛이 드리워진 것처럼 아름답게 그려졌다. 번지는 수채화의 물감이 온전한 반짝임처럼 보인다. 로저는 폭풍 속에서 길 잃은 반딧불이를 담아와 돌봐준 후 자연으로 돌려 보낸다.

잠시의 외출이지만 자연의 품에 한껏 안겼던 로저는 이 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넌 숲과 바다의 모든 생물들을 사랑하는 아이란다. 넌 그들의 용감한 보호자야.”라는 카슨의 말도 마음 속에 심어질 것이다. 책의 말미에는 레이첼 카슨과 이 그림책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 그림책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그 중에서 “나의 희망은 레이첼이나 로저처럼 여러분이 밖으로 나가 자연 속에 있을 때, (중략) 경이감으로 가득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책 속에서, 부록)”라는 부분은 자연과 우리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왜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지식 정보책답게 “생물 발광”에 대한 설명도 담아 이 신비한 현상을 더 찾아보고 싶어진다. 그림책을 통해 그녀와 함께 한 시간은 짧지만 감동과 여운은 영롱하기만 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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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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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국의 『순교자/문학동네/도정일 옮김』 는 1964년에 출간되었다는 점에서 먼저 주목하게 된다. 역자는 그 의미를 한국 전쟁 발생시점에서 14년 만에, 휴전 기점으로 10년 후라는 것 만으로도 이미 ‘경이롭다’(313p.해설)고 한다.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현재 진행형 고통 속에서 여전히 혼란스러울 시점에 서른 두 살의 젊은 작가는 완벽한 작품화를 통해 마땅히 기억해야 할 것들을 기록으로 보전하고 객관화 시킴으로 공론의 장을 마련한다. “이 작품은 욥, 도스토옙스키, 카뮈의 위대한 전통 속에 있다.(314p)”고 초판 출간시 뉴욕 타임스는 평가했다는데 읽는 내내 언급한 인물과 작품들의 그림과 장면들로 쉼 없이 왕래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1950년 6월 어느 이른 아침 전쟁이 터졌고 북한 인민군이 수도 서울을 점령했을 무렵 우리는 인류문명사 담당 강사로 재직했던 대학을 이미 떠난 뒤였다.(11p)” 유엔군이 북한 수도 평양을 점령했던 전쟁이 발발한 해 10월, 육군 본부 정치정보국의 파견대 본부를 장로교회 평양 중앙교회 맞은편으로 잡는다. 화자인 이 대위는 ‘실종된 목사들에 대한 조사’임무를 맡는데 집단 총살 당한 열 두명과 살아있을 두 명을 찾아내 사실관계를 밝혀야 한다. 이 대위의 동료이면서 친구인 박 군의 아버지도 이미 죽은 목사들 중 한 명이고 신앙의 갈등으로 부자의 연을 끊었던 박군은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추적한다. 과연 당신의 말처럼 끝까지 소신을 지켜낸 죽음이었을까, 실패한 죽음이었을까를. 살아남은 두 목사, 신 목사와 충격을 못 이기고 미쳐버린 젊은 한 목사까지 그 둘과 죽음을 맞은 열 명에 대해 열은 어떻게 죽었는가 왜 둘은 살아남았는가, 목사들의 순교에는 살아남은 자의 배반이 있었을까 의심의 눈초리는 답을 요구하고 순교자와 생존자의 프레임은 견고해가며 점차 원하는 답을 의도한다.

반복되는 화두는 ‘진리란 무엇인가’이다. 신 목사의 진리는 양심의 진리, 신앙의 진리(55p)고 이에 반해 이 대위에게 진리는 ‘인간에 관한 사실(55p)’로 결을 달리한다. 장대령은 “열두 명의 순교자들은 위대한 상징이야. 그들은 고난받은 교인들의 상징이자 궁극적인 정신적 승리의 상징이지.(75p)”라며 목표하는 진리가 분명하다. 고 군목의 출현은 또 다른 물음을 동반한다. 군목이 버려야 했던 결국 공산당에게 죽음을 맞은 네 사람 중 한 명은 빨갱이들의 끄나풀(80p)이었지만 자신의 교회 장로의 아들로 영웅적인 죽음이었다 믿고 있는데 ‘사실’을 밝히는 것이 진리 편 아닌가. “그 사람은 이미 늙었고, 자네가 말한 그 영광스러운 환상이 필요한 사람이야. 어떻게 감히 그 늙은이에게 또 고통을 안겨줄 수 있겠어?(83p)“ 신목사는 그를 만류한다, 그의 진리 실현을 가로막는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 누가 진리 편인가, 진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진리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더라도 선한 목적이면 용납해야 하는가, 선과 악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이 질문은 마지막까지도 계속 된다. 신 목사에게 이 대위는 말한다. ”저라면 진실을 얘기하겠습니다. (중략) 진실은 뇌물을 먹일 수 없는 겁니다.(85p)“ 하지만 은밀히 요청되고 만들어지는 진실을 본다. ”젊은 친구, 그들이 진실을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소?(103p)“ 진실은 그것이 진실이기에 밝혀지고 발표되어야 한다는 이 대위에게 장 대령은 “진실은 묻어두어도 여전히 진실이야. 그걸 꼭 까발리고 떠들어야 하나?(153p)”며 반대한다. 진실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법인데 대의를, 또 순교자들이 순교자로 남는다는 선한 목적을 위해, 장 대령은 신 목사에게 양심을 보증하기로 한다. 이는 선한 거짓말을 견딜 양심이다. 양심의 순결을 더럽히지 않는, 양심의 품질과 관계 없는 일종의 면역된 양심(109p)을 만드는 일에 착수하는데 모든 이론은 예비되고 조정 가능하다.

“목사님의 신-그는 자기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이 고난을 알고 있을까요?(37p)”, “목사님, 목사님의 신은 저들의 고난을 진정 알고 있을까요?(202p)” 되풀이되는 이 질문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이 동생 알료샤에게 나열한 예들을 상기시킨다. 죄없는 어린이들에게 가하는 잔인한 학대의 사례를 들며(1권479~496p/문학동네) 그런 신이라면 신이 존재하더라도 그 나라의 입장권을 돌려주겠다고 단언한다. 죄 없는 그들이 고통당할 때 신은 그 고난을 알고 있는가, 왜 침묵하는가 하는 질문은 오래 되었고 여전히 반복된다. 신 목사는 아내와 한 목사의 죽음이라는 두 번의 쓰디쓴 실패로 무서운 결단을 하고 그것을 자신의 십자가라 부른다. 죽음 이후에 아무것도 없다는 내면의 확신을 홀로 간직하겠다며 ‘하나님의 종에게 숨겨진 그 무서운 진실(263p)’을 감춘다. “우린 절망에 대항해서 희망을 가져야 하오. (중략) 우린 인간이기 때문이오.(257p)”신과 인간의 이분법 속에 인간의 서를 선택하는 목사. 가엾은 인간들이 평화와 믿음과 축복의 ‘환상’ 속에서 눈감게 하겠다는 희망은 다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 대심문관의 논리와 일치한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손을 놓을 수 없는 흡인력을 지닌 작품으로 매 장이 의외의 전환이나 새로운 절정으로 맺어지기에 다음 장으로 속히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장면의 전환과 그에 따른 극적 효과는 연극을 보듯이 눈앞에 그려지고 예상을 빗겨가는 진행과 속도감 있는 전개는 각 인물들이 쫓는 개별 진실을 예측하면서도 역사의 수레바퀴 속 미미한 하나의 톱니로 마모되고 부스러지는 인간 비극을 담담히 그려낸다. 고립되는 도시 평양으로 운전대를 돌리며 죽음을 목전에 둔 중환자들 곁에 남는 의사 민 소령에게는 『페스트』의 리외가 보인다. 그들은 모두 설득되지 않는 자기만의 의지를 살아내고 그 결과를 수용한다. 마지막 페이지의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이 전해질 때 밤낮 없이 댕그랑거리던, 이제는 흔적 없는 그 교회의 종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질문, 놓지 않아야 할 질문은 “진리란 무엇인가”, “신은 침묵하는가”일 것이고 이는 새로운 매일의 답안지를 요청한다. 무참히 고립되었던 도시 평양과 페스트의 오랑과 욥의 우스땅은 동일한 인간 조건을 의미하지 않을까.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기1:1)” 욥의 고난과 순종과 영광을 생각한다.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그들을 향해 들려오는 두 개의 목소리- 하나는 역사의 안에서, 또 하나는 역사의 건너편 저 멀리에서 각기 구원과 정의를 약속하며 각각 자기 쪽에 충성해줄 것을 요구하는 그 두 개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것인가?(3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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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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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시공사/김재혁 옮김)』는 독일 문학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유럽을 비롯한 일본, 남아메리카공화국 등에서 각국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슐링크의 대표작이기도 하지만 2008년 개봉한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로 먼저 기억되기도 한다. 저자인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법학을 전공한 후 교수로 재직하고 헌법재판소 판사를 역임하는 등 소설가 이전에 법조인이었으며 자연히 그의 작품은 주제와 등장인물, 전개방식이나 문체에 있어서 작가의 내, 외적 환경을 반영한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과거를 회상하며 거슬러 올라오는 미하엘 베르크의 1인칭 시점 소설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이야기가 진실되다고 생각하며, 바로 그런 까닭에 그것이 슬픈 이야기냐 아니면 행복한 이야기냐 하는 물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275p)” 자신을 사로잡는 이야기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써낸 소설이 하나의 판본일 뿐, 말해지지 않은 무수한 판본이 여전히 그의 안에 새롭게 살아나고 있음을 밝힌다. “내 나이 열다섯이던 해에 나는 황달에 걸렸다.(9p)” 소년은 이 질병으로 불편한 증상을 겪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그녀를 만났으며, 서른 여섯 살의 그녀로부터 경험하는 육체적, 정신적 변화는 그의 의사와는 별개로 인생 전체의 근간이 된다.

총 3부의 구성으로 1부는 미하엘 베르크와 한나 슈미츠의 만남으로 그들이 함께 보냈던 시간을 보여준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있기. 이것은 우리 만남의 의식이 되었다.(60p)” 소년은 사랑에 매혹당하고 그녀는 <오디세이아>부터 <전쟁과 평화>까지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된 미하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소년의 배반과 한나의 떠남은 머지않아 닥친다. “그 후 나는 한나를 배반하기 시작했다.(98p)”로 시작하는 15장에서 “그리고 부인(否認)은 배반의 다른 몇 가지 떠들썩한 유형들과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의 토대를 앗아가버린다.(98p)”등 부인, 배반, 죄책감, 회피, 합리화, 후회의 연속적인 갈등이 스치듯이, 그러나 상흔을 남길만큼 깊게 지나간다.

“한나 이후로 나는(114p)”, 이제 ‘나’는 한나 이전과 이후로 뚜렷한 경계를 인정한다. 다시 한나를 만나게 된, 엄밀히 말하면 ‘보게 된’ 것은 법정에서였다. 재판을 직접 체험하는 법과대 학생의 신분으로 나치 수용소 감시원들의 재판을 방청하면서 한나를 대면하는 자신의 상태를 “마취”에 비유한다. “누가 나에게 주사를 놓았는가? 마취를 당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나 자신에게 주사를 놓은 것인가? 마취는 법정 안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마치 한나를 사랑하고 열망한 사람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던 것처럼, 즉 내가 잘 알지만 나 자신은 아닌 그 누구였던 것처럼 그녀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나는 내 인생의 다른 모든 부분에 대해서도 나의 한쪽 옆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132p)” 특정 상황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로 고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는 알고 있는 죄의식에 대한 방어기제로 거리두기, 관망, 타자화를 선택한다. 책 속에서 단어들은 조금씩 변화한다. 마취에서 마비증세로 “마취되거나 술에 취한 듯한 무자비와 무관심, 불감증(134p)”으로 확산되며, 시간이라는 요인을 영원에까지 늘려 추가시키자 “화석화(134p)“에 도달한다.

한나가 소년을 떠났던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자신의 은밀한 배반이 아니라 단지 전차 회사에서 약점이 노출될까 두려웠기(171p) 때문이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나의 선택은 작품 속에서 끈질기게 내비쳤던 수수께끼, 혼란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그녀는 승리를 위해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이 노출되는 대가를 치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중략) 그녀에게는 자신의 이미지가 감옥에서 보낼 세월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175p)”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를 들고 철학교수인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하는 장면은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이다. ‘행복’이 아니라 ‘개인과 자유와 품위’에 초점을 맞추면 문제는 다른 색을 띈다. “하지만 어른들의 경우에는 내가 그들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좋다고 여기고 있는 것보다 더 우위에 두려고 하면 절대 안 된다.(180p)” 3부에서 그는 다시 한 번 한나의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된다. ”한나는 다시 한 번 나에게 있어서 나의 모든 힘과 나의 모든 창의력과 나의 모든 비판적인 상상력을 묶어서 바치는 재판관이 되었다. 그런 후에 나는 나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낼 수 있었다.(233p)“ 그럼에도 그는 보이지 않는 벽은 허물지 않았고 오히려 공고히 했으며 그녀는 그것을 안다.

문장이 아름답고 묘사는 빛나지만 두 번 읽고 싶은 작품은 아니었다. 거의 2년 전, 4월 따뜻하던 봄날에 읽었던, 그래서 더 대비되었던 이 무겁고 먹먹한 작품을 다시 열어보게 될 줄은 몰랐다. 밑줄은 비슷하지만 많이 추가되었고 시간에 쫓겨 서평도 메모도 없었지만 이번에는 제법 여러 번 멈추고 페이지의 앞과 뒤를 무한루프처럼 반복해 넘겼다. ”나는 한나에게, 내가 생각하기에 소중했던 벽감 하나를, 내게 무언가를 주었으며 나 또한 그것을 위해 무언가를 행한 조그만 벽감 하나를 내주었을 뿐 나의 인생의 어떤 자리도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왜 내가 그녀에게 내 인생의 한 자리를 내주었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그녀를 하나의 벽감으로 격하시켰다는 생각으로 인해 느낀 양심의 가책에 스스로 화가 나서 반발했다.(247p)“ 인간의 내밀한 심리적 갈등과 작동을 사진 찍듯 포착한 문장들은 익숙한 자기방어의 행로와 이기심을 나의 것으로도 치환시킨다.

2차 세계대전 후 많은 유대인을 죽음으로 내몬 강제수용소 여자 감시원이었던 한나 슈미츠가 과거를 숨기고 그림자처럼 살았지만 그녀가 더 숨기고 싶었던 사실은 따로 있었고 수수께끼를 푸는 단서가 된다.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164p)”라고 재판장을 향해 잇따라 묻던 그녀, 결코 자신을 방어하지 못했고 결국에는 방어하지 않기를 선택했던 그녀, 프리모 레비부터 한나 이렌트까지 책꽂이를 채웠던 그녀, 결국 읽고 쓰게 되었으며 오지 않는 그의 편지를 기다렸던 그녀, 그의 사진을 마지막까지 간직했던 그녀, 받아들여지지 않을지언정 속죄하고 싶었던 그녀가 살아냈던 시간이 먹먹하게 다가온다. 결정(結晶)이 되어가는 농축된 원액같은 이야기 속 그녀를 본다.

 

-우리의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집하여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의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 된다. (2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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