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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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시공사/김재혁 옮김)』는 독일 문학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유럽을 비롯한 일본, 남아메리카공화국 등에서 각국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슐링크의 대표작이기도 하지만 2008년 개봉한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로 먼저 기억되기도 한다. 저자인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법학을 전공한 후 교수로 재직하고 헌법재판소 판사를 역임하는 등 소설가 이전에 법조인이었으며 자연히 그의 작품은 주제와 등장인물, 전개방식이나 문체에 있어서 작가의 내, 외적 환경을 반영한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과거를 회상하며 거슬러 올라오는 미하엘 베르크의 1인칭 시점 소설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이야기가 진실되다고 생각하며, 바로 그런 까닭에 그것이 슬픈 이야기냐 아니면 행복한 이야기냐 하는 물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275p)” 자신을 사로잡는 이야기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써낸 소설이 하나의 판본일 뿐, 말해지지 않은 무수한 판본이 여전히 그의 안에 새롭게 살아나고 있음을 밝힌다. “내 나이 열다섯이던 해에 나는 황달에 걸렸다.(9p)” 소년은 이 질병으로 불편한 증상을 겪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그녀를 만났으며, 서른 여섯 살의 그녀로부터 경험하는 육체적, 정신적 변화는 그의 의사와는 별개로 인생 전체의 근간이 된다.

총 3부의 구성으로 1부는 미하엘 베르크와 한나 슈미츠의 만남으로 그들이 함께 보냈던 시간을 보여준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있기. 이것은 우리 만남의 의식이 되었다.(60p)” 소년은 사랑에 매혹당하고 그녀는 <오디세이아>부터 <전쟁과 평화>까지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된 미하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소년의 배반과 한나의 떠남은 머지않아 닥친다. “그 후 나는 한나를 배반하기 시작했다.(98p)”로 시작하는 15장에서 “그리고 부인(否認)은 배반의 다른 몇 가지 떠들썩한 유형들과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의 토대를 앗아가버린다.(98p)”등 부인, 배반, 죄책감, 회피, 합리화, 후회의 연속적인 갈등이 스치듯이, 그러나 상흔을 남길만큼 깊게 지나간다.

“한나 이후로 나는(114p)”, 이제 ‘나’는 한나 이전과 이후로 뚜렷한 경계를 인정한다. 다시 한나를 만나게 된, 엄밀히 말하면 ‘보게 된’ 것은 법정에서였다. 재판을 직접 체험하는 법과대 학생의 신분으로 나치 수용소 감시원들의 재판을 방청하면서 한나를 대면하는 자신의 상태를 “마취”에 비유한다. “누가 나에게 주사를 놓았는가? 마취를 당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나 자신에게 주사를 놓은 것인가? 마취는 법정 안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마치 한나를 사랑하고 열망한 사람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던 것처럼, 즉 내가 잘 알지만 나 자신은 아닌 그 누구였던 것처럼 그녀를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나는 내 인생의 다른 모든 부분에 대해서도 나의 한쪽 옆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132p)” 특정 상황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로 고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는 알고 있는 죄의식에 대한 방어기제로 거리두기, 관망, 타자화를 선택한다. 책 속에서 단어들은 조금씩 변화한다. 마취에서 마비증세로 “마취되거나 술에 취한 듯한 무자비와 무관심, 불감증(134p)”으로 확산되며, 시간이라는 요인을 영원에까지 늘려 추가시키자 “화석화(134p)“에 도달한다.

한나가 소년을 떠났던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자신의 은밀한 배반이 아니라 단지 전차 회사에서 약점이 노출될까 두려웠기(171p) 때문이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나의 선택은 작품 속에서 끈질기게 내비쳤던 수수께끼, 혼란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그녀는 승리를 위해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이 노출되는 대가를 치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중략) 그녀에게는 자신의 이미지가 감옥에서 보낼 세월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175p)”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를 들고 철학교수인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하는 장면은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이다. ‘행복’이 아니라 ‘개인과 자유와 품위’에 초점을 맞추면 문제는 다른 색을 띈다. “하지만 어른들의 경우에는 내가 그들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좋다고 여기고 있는 것보다 더 우위에 두려고 하면 절대 안 된다.(180p)” 3부에서 그는 다시 한 번 한나의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된다. ”한나는 다시 한 번 나에게 있어서 나의 모든 힘과 나의 모든 창의력과 나의 모든 비판적인 상상력을 묶어서 바치는 재판관이 되었다. 그런 후에 나는 나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낼 수 있었다.(233p)“ 그럼에도 그는 보이지 않는 벽은 허물지 않았고 오히려 공고히 했으며 그녀는 그것을 안다.

문장이 아름답고 묘사는 빛나지만 두 번 읽고 싶은 작품은 아니었다. 거의 2년 전, 4월 따뜻하던 봄날에 읽었던, 그래서 더 대비되었던 이 무겁고 먹먹한 작품을 다시 열어보게 될 줄은 몰랐다. 밑줄은 비슷하지만 많이 추가되었고 시간에 쫓겨 서평도 메모도 없었지만 이번에는 제법 여러 번 멈추고 페이지의 앞과 뒤를 무한루프처럼 반복해 넘겼다. ”나는 한나에게, 내가 생각하기에 소중했던 벽감 하나를, 내게 무언가를 주었으며 나 또한 그것을 위해 무언가를 행한 조그만 벽감 하나를 내주었을 뿐 나의 인생의 어떤 자리도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왜 내가 그녀에게 내 인생의 한 자리를 내주었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그녀를 하나의 벽감으로 격하시켰다는 생각으로 인해 느낀 양심의 가책에 스스로 화가 나서 반발했다.(247p)“ 인간의 내밀한 심리적 갈등과 작동을 사진 찍듯 포착한 문장들은 익숙한 자기방어의 행로와 이기심을 나의 것으로도 치환시킨다.

2차 세계대전 후 많은 유대인을 죽음으로 내몬 강제수용소 여자 감시원이었던 한나 슈미츠가 과거를 숨기고 그림자처럼 살았지만 그녀가 더 숨기고 싶었던 사실은 따로 있었고 수수께끼를 푸는 단서가 된다.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164p)”라고 재판장을 향해 잇따라 묻던 그녀, 결코 자신을 방어하지 못했고 결국에는 방어하지 않기를 선택했던 그녀, 프리모 레비부터 한나 이렌트까지 책꽂이를 채웠던 그녀, 결국 읽고 쓰게 되었으며 오지 않는 그의 편지를 기다렸던 그녀, 그의 사진을 마지막까지 간직했던 그녀, 받아들여지지 않을지언정 속죄하고 싶었던 그녀가 살아냈던 시간이 먹먹하게 다가온다. 결정(結晶)이 되어가는 농축된 원액같은 이야기 속 그녀를 본다.

 

-우리의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집하여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의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 된다. (2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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